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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은미, 〈동방미래특급〉: 우리 안의 타자를 생성하기
    REVIEW/Dance 2026. 6. 13. 13:42

    우리를 응시하는 가면 

    안은미, 〈동방미래특급〉ⓒJean-Marie Chabot, 옥상훈, 안은미컴퍼니(이하 상동).

    아시아의 여러 이미지를 혼종적 스타일로 끝없이 병치하는 〈동방미래특급〉의 입구, 그 ‘특급’ 열차를 탑승하는 길목을 표시하는 첫 장면은 미스터리한 침묵으로 완성된다. 이는 이후 다른 장면과 결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징후적 차원을 사후적으로 일찍이, 바로 시작과 함께 완성하며 증발한다. 검은 옷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정체불명의 존재는 선녀 복장의 존재가 등장하자 손을 내밀며 기꺼이 그에 끌려 무대 좌측의 끄트머리에 다다른다. 약간의 걸리적거림이 발생하고, 그는 마침내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유령의 동공 없는, 길게 찢어진 가면 위의 검은 눈이 우리를 향한다. 

    ‘저 너머’로의 여행을 할 존재는 별도의 표현적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 우리 자신임을, 앞으로의 우리 자신의 역할을 상기시켰을 소박한 교훈의 메시지는, 저 뒤돌아봄으로 인해 반전되는데, 곧 진실은 작은 틈으로 오인될 수 있는, 그 검은 무대의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다. 관객은 이제 어떤 존재도 나와 동류의 존재가 아니며, 실은 여행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동방미래특급〉은 이 이형적 존재의 자리로 수많은 이미지들을 갖다 놓는다. 그것은 아시아 각 나라의 전통적인 재료들의 합성이며 우리가 이미 보아 왔지만 재차 도달해야 할 “미래”의 장면들이다. 

    이 전통적 익숙함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미지의 표층적 차원이 가리키는 진실이 저 영속하는 시간성이라는 지점이다. 곧 이미지의 익숙함은 시간성이 없는 이미지의 전개 방식 위에 드리워지며 이미지의 가소성을 은폐, 엄호한다. 좌우의 끝없는 횡단, 곧 등장과 퇴장의 영구한 반복이 안은미의 안무의 기존 배치술이라면, 〈동방미래특급〉에서 이미지들의 꾸물거림, 더 많은 지체됨은 움직임보다는 이미지의 가시성 자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들은 동방에서 온 것, 아니 동방에 다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이 ‘동방’이라는 하나의 개념 안에 동등한 차원으로 자리 잡는 이질성‘들’은 각 고유한 문화적 흔적을 기운 단 하나의 이미지의 차이들로 환원되는바, 고유성의 절대적 차이는 합성되며 전용되는 차원에서 실은 익숙함으로 찾아오는 것들이며, 이 매개적 차원의 비가시성이야말로 ‘동방’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곧 수많은 전통의 인류지적 박물관이 지향하는 이미지는 일종의 차별 없는 뭉뚱그림으로, 그 목표는 각 문화의 식별과 상호 문화적 침투의 경로에 대한 식별이 아니라, 그것을 미래의 좌표로서 동방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들로 식별하는 것에 있다. 

    되먹임되는 동방이라는 신화

    이미지의 전유로서 무대 좌우를 오가는 배치는 그 전 안은미의 배치술을 감소된 속도로 다시 전유한 것과 같다. 치렁치렁하고도 화려한, 익숙함‘들’을 아상블라주해 포화시킨 의상들은 움직임을 감축하면서 그 자체로 의미를 띤다. 곧 움직임은 의상을 비추기 위한 차원에서 소구되는 일면이 강하다. 한편으로 이 진기한 이미지들의 행렬은 그 자체로 각각의 의상에 대한 상상적인 정체성을 표상하고 발화하며 그 이미지로 수렴하므로, 무용수의 역할 수용의 범주를 일차적으로는 벗어난 형태다―무용수의 고유성과 그 움직임은 오히려 의상에 잠식되는 바 있다. 이미지로서의 고정성은 나아가 비인간으로서 자동인형과 같은 모습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무대 중반에 이르러 이 이미지들을 정면으로 돌아 세우는 건, 김혜경의 노란색 트레이닝복 착장의 이소룡 특유의 기합 소리와 함께 뒤에 있는 적의 얼굴과 낭심을 고정된 팔꿈치로 위아래로 옮기며 빠르게 타격하는 장면으로서 우리가 아는 가장 익숙한 기표가 되겠는데, 이러한 대중 미디어의 재현 양상은 동방이라는 이세계의 인접된 기호들의 침묵에 ‘낯설게’ 던져지며 그 매개된 표상의 위치가 지닌 뚜렷한 상징의 확인 절차와 함께 그것이 일으키는 정서에 대한 주체를 호명하고 그 주체를 장면에 개입시키려는 목적이 엿보인다.

    이소룡의 고유성은 한편으로 구성된 타자성이기도 하다는 점, 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양의 신화에 대한 새로운 판본이라는 점, 곧 〈동방미래특급〉은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거꾸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고 있음을 이 익숙한 표상이 확인시킨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한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상기시키는데, 이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문구가 캐치프레이즈가 아닌 현재성을 띠게 되는 시점, 가령 서구에서 본 K-POP에 대한 열광이 이전 유명 팝스타의 내한 공연 당시 착란 상태에 빠진 몇몇 국내 관객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 곧 근과거가 근미래의 외양을 선취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과 함께 주체의 역전된 자리가 텅 빈 장소를 가리키는 바로 그 지점에 상응해 보인다. 그러니 또 다른 서구인의 시선으로서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동방미래특급〉이 우리의 상상적 위치가 그 외양이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 복식에 대한 콜라주나 아상블라주 형식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던적 유희의 패션쇼이거나 여러 문화가 뒤섞이는 가상의 시장―마치 〈블레이드 러너〉에서 국수를 파는 노점과 그 뒤의 여러 광고판이 주는 일본 문화와 같은―이거나 간에, 그것을 보는 우리가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떠안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우리가 속한 동양의 타자화라기보다 우리가 회고하는, 우리가 이미 타자로 각인한 동양에 대한 절취이며, 그 양상은 ‘타자화된 동양’의 자리를 대신하여 환상적으로 출현한다. 우리가 속하지 않은 상상적 과거가 근미래적 자리로 다시 찾아올 때 서양의 시선의 연속적 스펙트럼 하에 있는 우리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곧 끊임없이 창조되는 동양의 미래적 이미지들이 동양의 신화라는 기원을 재창조하거나 또는 영원한 현재로 바꾸는 가운데, 환상과 오인을 동반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향유하는 주체의 자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부재하는 적 혹은 과거의 왜상, 그리고 대타자의 응시

    동양을 다시 우리가 되찾고 환상적으로 향유해야 할 이미지로 바라보는 가운데, 텅 빈 기표들로서 이미지들은 기존 안은미 무용단의 현란하고도 정신없는 몸의 조각들을 표면의 이미지로 기우는 보철물이 되며―이는 뭔가 동양적인 무엇이지만 혼성되고 합성된 이미지로서 그 전의 안은미 작업의 의상들의 확장이자 변용일까, 아님 그 본래적 정체성, 곧 아시아적인 것 같은 어떤 다른 무엇의 출발점을 확인시키는 것일까―, 그 같은 아상블라주의 파편들은 문화들의 차이와 역사와 고유성에 식별 대신에 문화들의 혼종과 통합과 전이의 성격을 띤 자유로운 편집술로서의 안무로 식별된다. 

    이소룡은 여러 번 호출되는데, 김혜경의 이소룡의 기합과 격발, 안은미의 장판 격파가 그것이다. 이것이 갖는 현장성의 효과는, 곧 예외적인 생동감의 효과는 앞서 우리가 보는 이미지들을 그저 즐겨라라는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상에서 보아온 것과 같이 재현된 것이고, 앞선 것들 역시도 아마도 그와 같은 재현의 틀에 속하며, 또한 익숙하지만 새로운 메뉴들이며, 그것의 고유성과 기원의 신화를 따로 전제하지 말며, 하나의 이미지로서 또 이미지의 공작으로서 주어지는 새로운 것들인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메시지의 공작으로서 그것들의 향유를 향한 제스처가 된다. 곧 그 공격들은 일종의 쇼맨십일 뿐 결코 어떤 적을 상정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서양의 우람한 적들(에 대한 왜상)이 없다. 

    전동 휠을 신고 페티코트 위의 풍성한 치마 차림, 손에 든 향이 피어오르는 주전자, 회색 긴 손톱, 그리고 미스터리한 음악의 전개, 뚜렷한 응시를 실현하는 안은미라는 존재는 기원들을 깁는 원초적 어머니의 형상을 창조한다. 이 어머니가 대타자의 자리를 메운다면, 여러 작품에서 장식으로서 자리하던 쟁반은 대타자의 응시가 드러나는 장소로 변화한다. 곧 동양의 문양들이 각인된 장소들의 일차적인 함의는 조명이 밝혀지며 화려한 무대 세트의 일부로서 색조 화장품들의 진열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대의 중심이 옮겨가는 순간에는 중앙에 모아지는 부처 실루엣의 형상과 함께 심층의 진리로 드러나기도 한다―부처의 응시는 우리 내부의 응시인 셈이다. 

    탈구된 기원의 장소

    〈동방미래특급〉은 동양의 장소들과 결부된 이미지들을 추출한다. 산만하게 욱여 넣는 차용의 방식은 방대한 동양 문화의 보고를 전제하는 한편, 그것의 전유를 통한 무궁무진한 이미지의 생성 가능성과 그 역량 자체를 드러내는데, 이미지는 이 과거와 현재의 간격을 봉합한다. 그럼으로써 주어지는 건 어떤 미래인데, 과거의 맥락적 해설 대신에 현재적 기원으로부터 시작된 무한한 기표의 연쇄적 놀이, 곧 기원의 탈구로부터 탈구된 기원 자체의 형식을 보여주는 이 같은 시도는 과거를 미래(자원)화하면서 현재의 좌표 없음 자체를 하나의 증상으로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증상은 안은미무용단의 기저에 자리하는 어떤 증상과도 맞닿는데, 어떤 쉴 새 없는 그 동력은 이미 현재 없는 ‘미래’, 유예된 현재, 기피된 현재의 무시간적 경계 위에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방미래특급〉은 그 움직임을 이미지로 변용시키는 또 다른 단계라기보다는 그 움직임 위에 쓰인 이미지들을 함께하는 차원에 가깝다. 곧 동방의 기표들은 기존의 안은미의 안무에 더해진 풍성한 장식이면서 동시에 몸에 과잉되는 이미지이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아를 입는 안은미, 또는 의사-아시아적이나 아시아적인 공백 자체를 현상화하는 안은미는 하나의 증상으로 존재해 왔고, 이는 아시아적인 것들의 자리와 대면함으로써 한층 더 아시아스러운 무엇을 향해 비-아시아의 상관항의 자리를 자처하며 (곧 우리의 아시아적이지 않음을 기만하면서 또는 우리 자신이라는 타자를 과거에 대한 현재의 위치에서 새롭게 각색함으로써) 돌진하는 것 아닐까, 한층 더 거추장스러운 장식들로 뒤덮인 채 혹은 무장한 채. 

     

    김민관 편집장 

     

    2025.05.02(금) ~ 2025.05.04(일) 세종M씨어터

     

    예술감독·안무·무대 의상디자인 안은미  
    음악감독 장영규 
    제작·무대감독 김지명
    조명감독 장진영 
    영상감독 이태석  
    메타-드라마투르그 이정우-임우근준  
    주최 세종문화회관, 안은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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