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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Logic〉: 무덤으로서 논리REVIEW/Dance 2026. 6. 14. 14:56

최재혁, 〈Logic〉ⓒ옥상훈. 무대 안쪽 하수의 쌓여 있는 뼈대만 있는 의자들은 공연의 중심 도상이다. 이는 공연 중간쯤 허물어져 산포된 뒤, 마지막 장면에서 간략화된 버전으로 오케스트라 피트의 부상과 함께 다시 출현한다. 곧 공연은 무너지기 쉬운 빈약한 논리의 차원이 반복되는 사회적 차원의 증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구체적 사물의 등장에 대응하는 건 무엇보다 음향인데, 이는 몇몇 신호음과 마찰음 들이 단속적으로 구가되며 하나의 리듬 단위를 이루면서 행위들의 파편적 요소들, 분산된 존재들, 관계되지 않은 원자들의 집합을 형식적으로 지시한다. 여기서 움직임은 형식 자체라기보다 그 음악의 구조적 성분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어쩌면 이 음악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 음악과 같이 음악 위에서 부유하는 몸짓들이 아닌 부분은 가장 처음에 반쯤 들린 채 바닥에 누인 여러 몸의 형상들인데, 이는 잠재된 몸 안에 차곡차곡 음의 간격이 담기기 때문이다. 곧 그 자체가 하나의 두드러진 움직임인 음향적 음악은 분절되면서 파편적 행위로의 분산을 형식적 질의 차원으로 인계하는 데 일종의 방해물이 된다. 또는 역설적으로 그 조각 난 의식의 구조 안에서 파편적인 몸짓들이 선취될 수 있다. 0차원의 몸에서 한 명씩 일어나며 상수로 도열하는 건 의자가 쌓이는 과정과도 같다. ‘논리’는 곧 신체에 체현되는 법칙이다.
한쪽 구석에 쌓여 있던 의자들이 떨어지면서 사선 방향의 가장 먼 곳에서 한 남자가 뛰어가 의자 하나를 낚아챔으로써 순간의 지각변동을 갈무리하는데, 중간 중간 배열된 이 의자들은 하나의 신체적 연장의 기호가 된다. 거기에 걸쳐진 이들은 그 의자에 이완되는 걸 넘어 비의식적인 존재, 나아가 의자 자체가 되는데, 여기서 멈춤은 의식의 정지를 의미한다. 의자들이 떨어지고 나서 분리된 신체들은 사회적 정체 상태의 국면을 맞는다면, 이것은 집단적 활력으로 거듭나는데, 곧 밝아진 노란 빛 아래 선명해진 피부로써 테크노적 음악의 공명에 힘입어 집체적 양산으로 확산된다.
파편들의 몸짓은 그렇게 강제적 종합의 국면을 맞는데, 로봇 같은 걷기와 그 동력이 주요하게 움직임 단위를 이루는 가운데, 처음 그 사이에서 우물 쭈물대다 가로막히는, 아직 ‘동화’되지 않은 여자는 작은 틈새는 주목할 만한 부분인데, 한 무더기로 곧 사라짐으로써 그 해석의 여지도 같이 사라진다. 음악적 전이의 양상은 굴절된 존재의 기이함으로 드러나면서도, 그 음악의 에너지 과잉 사태에 따른 움직임의 조응적 측면은 그 음악 안에서 닫히는데, 결코 그 음악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장면, 피트석에서 내려가는 여자의 뒷모습과 그 바깥의 무대에 선 이들이 마주하는 장면은, 이 관계의 틈새가 결정적이라는 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리고 다시 올라온 의자는 그 관계의 분리가 남긴 하나의 흔적으로, 고립된 자아에서 강제된 연결의 사이에서, 곧 0과 1의 극단적 지점 사이에서 해소될 수 없는 건 사물이다, 우리 앞에 놓인.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이 곧 사물 뒤의 잔여, 기억의 흔적, 임시적인 부산물 혹은 파편적 이미지라는 메시지로서 하나의 사물들이 놓이는 것이다.김민관 편집장
8월 28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안무: 최재혁
출연자: 신원민, 송예슬, 이은호, 윤혁중, 변민지, 조윤혜, 양진석, 정인하,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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