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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무브먼트, 〈삼십육점오도〉: 공통의 온도를 향한 몸짓REVIEW/Dance 2026. 6. 19. 20:57

아하무브먼트, 〈삼십육점오도〉 포스터. 아하무브먼트의 〈삼십육점오도〉는 구조적이며, 연극적인 차원에서 그러한데, 이는 먼저 각양각색의 인물들의 첫 등장 장면의 갖는 무용함이 어떤 의미를 추동하는 데 이르러서 명확해진다. 이 등장은 한 번 더 반복되는데, 처음이 관객을 맞는다는 지점에서 단순하게 수행된다면, 중반 이후의 두 번째 반복에서는 하나의 의자를 가지고 벌이는 소극적 양상이 극의 시간 내에서 펼쳐지면서 그러하다. 후자가 행위의 차원에서 재현의 양상에 가깝다면, 춤의 무늬는 전자에서 더 다양한 차원으로 나타난다. 춤은 그 극으로의 편입 이전에 이미 닫힌다. 아마도 그 생명력의 그림자 형상이 후반 극의 맥없는 풍경으로 연장된다는 건, 그 허물어져 가는 풍경을 기어코 붙잡고 가는 행위에 대한 의문, 곧 그 의문이 의도로서 부상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앞선 생명력의 자장은 극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동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제목이 인간의 체온을 가리킨다면, 가장 적확하게 그것을 표현하는 건 바로 인간들의 다양한 생명력의 체현으로서 첫 번째 춤이다. 어떤 언어적 상징을 불러오지 않는 가운데, 표현되는 그 순전함이 인간의 온도이다. 그런데 이 춤은 거의 등장으로만 이뤄진 안은미컴퍼니의 안무적 공식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감각은 구성적인 차원에서 소급되는 것으로, 단지 그 둘의 공통됨이 예외적인 차원일 때 비로소 명시될 수 있는 부분인데, 곧 무용수가 캐릭터로 존재하며, 무대의 살아 있는 존재들임을 명시하는 이 같은 작용이 안은미의 안무에서처럼 예외적이라는 사실이다. (안은미컴퍼니에서 하지혜 안무가가 무용수로 있었다는 사실이 이 언급을 저어하게 하는 바 있지만, 이 예외적 순간의 특별함 역시 그 미시사적 순간이 만드는 무용의 계보로 갈음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조금 더 확장적인 형태로, 무질서의 의미를 구성하는 데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또한 좌우축의 횡단성이 아니라, 산포됨의 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 차이를 갖는데,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을 가득 채우는 인물 열전은 제멋대로의 산만한 배치를 정렬하는 무질서의 체계에 의존하며, 이를 통해 전적인 캐릭터로서 과시를 의도한다. 이는 해당 무용수가 각자의 커튼콜을 미리 앞당겨 진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데, 곧 무용수라는 캐릭터로서 위치하는 것이다. 각각의 무용수로 수렴하는 동작들의 차이와 공간의 산포도는 상응하며, 그것들을 한데 꿰는 건 음악이다. 곧 신체들은, 군중은 하나의 음악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음악에의 휘말림의 효과 역시 안은미의 어떤 공식이다. 그런데 이것의 절대적 힘은 구조적 차원으로 흘러들어가며 관계의 고단함과 무의미함의 내용에 이르러 비로서 교훈의 메시지로 자리잡는다. 그러니까 각자의 온도로써 공동체를 유지할 것. 이 간단하고도 교훈적인 메시지가 작품의 교훈일 수는, 나아가 주제일 수는 없다. 포획되지 않는 춤의 에너지를 일시적으로 포획하는 것, 그 불가능성을 가시화하는 것, 곧 이 첫 번째 장면이 안무의 역학을, 역학으로서 춤을 고안하는 것이 안무임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주제를 대신하는 혹은 넘어서는 표현으로서 실질이(며 이는 커튼콜에서 한 번 더 반복되며 이전의 흥분과 열정이 진정한 것이었음을 승인한)다.
화려한 행렬이 지나가고 난 뒤 몸의 실재성이 강조된다. 두 사람의 끈덕한 얽힘, 몸 뒤를 타고 구르고 미끄러지고 가는 연속 계열의 움직임, 그리고 그 주황, 황톳빛, 석양을 가리키는 듯한 어두운 붉은 색 계열의 조명 변화와 맞물려 이어지는 개의 움직임을 재현한 듯한 기어다니는 움직임들, 다시 흰색과 파란색,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석양의 느낌까지 이 점진적 변화와 그 반복 에서, 두 개의 대비가 구성된다.
끈덕지고 원초적이며 동물적인 몸짓들과 유려하며 문명적이고 현대적인 몸짓들, 이는 옷과 조명이 조응되며 변화하는 것에 또한 따르는데, 석양이 ‘물드는‘ 흰 옷과 신체의 스펙트럼에서, 이전되는 명도의 차이 속에서 뚜렷한 예각의 준별로 자리 잡는 검은 옷으로, 다시 채도의 유사함으로 상호 전이된 분간할 수 없는 뒤섞이는 바디수트를 입은 감각적인 몸으로 이행한다.
이는 세 번째 장, 모두가 하나의 현실에 자리하며 의자 하나를 놓고 벌이는 눈치 게임이 전면화되는 순간들로 이어진다. 그 온도가 첫 번째는 관객에게, 이 세 번째는 상호 간에 펼쳐졌던 것과는 다른, 중간의 실재적 시간은 관계의 양상이 실존적 고립에서 측정되는, 추정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마지막 현실의 고투는 오히려 36.5도라는 공통의 온도가 이전 순간의 첫 번째 장면에서 선취되었고, 또한 그 온도에 대한 내적 친밀감을 다시 한번 ‘이상’으로서 확인케 하는 지난한 과정으로서, 거기에 부가되는 장면이 아닐까.
귀마개 모자, 털 비니 등을 착용한 이들은 단체로 꼬리를 잡고 개인의 일탈을 방어하는 것에서, 의자로 모두의 시선이 옮겨지면서 하나의 의자에 모두가 한 번에 앉기를 시도하다 폭발하는 것처럼 의자는 한정된 자원에 대한 분배의 어려움이 아닌, 욕망의 미끄러지는 대상의 차원에서 접근된다. 처음부터, 그리고 처음과 같이 의자라는 것이 없었다면, 욕망의 조건이 발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면, 이 의자라는 신체와 밀접한 대상이 없었다면, 관계도, 사회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또한 명확하다.
이 욕망과 관계의 지지체로서 의자는 가장 직접적으로 상대의 자리를 체현한다는 점에서, 곧 그의 체온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자는 또한 양적 차원으로 진단되기보다 관계의 이행과 감각이라는 질적 차원으로 감각된다. 아마도 36.5도는 그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에 묻어 있는 신체의 흔적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 싸움과 격렬한 전쟁으로부터 더 중요한 건 의자라는 대상이 아니라 의자로 교환되고 매개되는 존재의 차원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들의 놀이는 경쟁적 사회로서의 혼동을 주거나 상투적 재현으로 전락할 위험을 갖는데, 그 안에서 보다 실재적인 건 실존적 고립과 고독함의 차원이 서로의 온도로써 공통된 온도로 변화해 가는 그 변화의 과정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2025.09.14. 일요일 3PM / 7PM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안무 - 하지혜
출연 - 강은나, 나혜영, 민희정, 오진민,
서동솔, 임예지, 김덕용, 백진혁
기획 - 강정환
음악 - 김대희
드라마투르그 - 장영
무대 - 이유성
조명 - 김민수
공연사진 및 영상 - 피아트
컨셉사진 - 이미지 훈스튜디오
포스터 및 리플렛 디자인 - 박명근
후원 - 서울문화재단
주최•주관- 아하 무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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