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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포사이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에 대한 주석: 안무를 시차적인 것 안에서 재현한다는 것
    REVIEW/Dance 2026. 7. 8. 13:55

    윌리엄 포사이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황승택[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대위법적 안무로 유명한, 윌리엄 포사이스의 20여 년 전의 작업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이하 〈하나의 편평한 것〉)을 다시 소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무래도 이는 김성용 단장의 현재 작품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사전 포석이자 광고적 셈법이 전제한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더군다나 이 작업의 구조적 차원의 기술이 명료하고 적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인상은, 그것의 역사화가 성립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역사화가 현재화로 인해 지연된다는 인상에 가까운 것이다.

     

    이 작품의 결정적인 건 철제 구조물과 무용수 간의 대위법적 구도에 있을 것인데, 이는 그 사물이 하나의 신체로서, 신체의 연장으로서, 또한 신체의 지지체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곧 그 사물이 결코 배경에 그치지 않고 진정 주요한 차원으로 다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 안무적 형식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넘어, 동시대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조명될 수 있는 부분이겠다.

     

    반면, 이 사물에게 독립적 위상을 수여하기 위해서는 무용수들의 철저한 고립과 분리가 그것으로부터 가능해야 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제한된 환경에서 일반적 환경보다 더 큰 강도와 밀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함을, 엄청난 훈련과 반사 신경적 체득의 경로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오히려 무용수를 옥죄는 차원에서만 이 대위법적 구도가 지닌 강렬함 뒤의 엄격함과 절제된 형식미랄 것이 역설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무용수들은 자신이 기능하는 바를 결코 조망할 수도, 인지할 수도, 파악할 수도 없다. 이는 철저히 기능적인 부품이 되는 것이다. 곧 흔히 포사이스의 안무적 사물 혹은 안무적 오브제라 부르는 것은 바로 그런 역설을 어느 정도나마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엄격히 제어된 장면들의 조합이, 무언가 아직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건 또 한편으로 그 간극으로부터 끌어내지는 주체의 동기에 대한 질문, 불가역적 수용으로서 안무 방식에 대한 의문을 역설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개의 다른 춤이 하나의 제목으로 아상블라주되는 것―‘더블 빌: 김성용 & 윌리엄 포사이스’―처럼 두 춤이 비교 체제 안에 작동한다면, 하나는 한없이 단단하고 하나는 한없이 부드러운 두 극의 비교 차원―그 두 대극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이 두 안무의 조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서 조합된다면, 오히려 포사이스의 춤은 포사이스가 아니라 김성용을 위한 것은 아닐까라는 지점에서, 이러한 질문은 한층 더 증폭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왜 이 춤은 다시 한국 무용수에 의해 전유되었어야 했을까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편평한 것〉은 테이블을 밀고 들어와서 다시 밀고 나가는 것 사이에서, 그 테이블과 공진하는 움직임들로 채워지는데, 무용수는 이 테이블을 일종의 매끄러운 횡단면의 차원으로 전유하며 미끄러져 가거나 또는 그것에 연장되는 신체로써 대응하며 각각 테이블이라는 어포던스를 또는 상대의 존재를 상정하는데, 이것은 동시 다발적으로, 편재적이고 단속적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모든 걸 그 각자의 자리에서 살피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것의 급격함은 그 자체로서가 아닌, 그 사이의 차원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으면서 또한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각의 증폭은 우발성의 경로 대신에, 상호 전파 되고 조응한다는 오지각 속에 어떤 밀도로 각색되는데, 그것은 혼돈의 카오스가 일종의 정제된 구성의 의도이자 지각의 초과된 범주라는 점을 우리가 가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체를 제대로 잘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뛰어난, 엄청난 것이라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 돌아가, 대단히 기계적인 강도와 순서, 일종의 시퀀스적 정렬의 셈 아래에서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열광하는 것이 현존의 초과적 범주가 현존의 증폭됨으로 또한 강도로 전이―또는 혼동―되는 지점에서 온다면, 그 과정에서 초재적 현존의 비가시적 주체를, 곧 안무가라는 현존을 어느 정도 은폐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라면, 〈하나의 편평한 것〉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것의 안무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간략화하는 것이 아니라, 곧 안무를 간단하게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부들의 축적이 양적 팽창과 확산으로, 무용수들의 기괴한 현존의 풍부함으로 채색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공연이 한국 무용수에 의해 다시 행해졌다면 어떨까. 지나치게 잘 끼워 맞춰지는 사물로서 신체가 완전히 체결되지 않은 지점까지 최대한 밀어붙이는 움직임만이 있었다면, 그리하여 그것이 땀과 노력의 결정체로 이해되었다라면 어떨까.

     

    김민관 편집장

     

    더블 빌: 김성용 & 윌리엄 포사이스

    2025-11-08 ~ 2025-11-09 토 3PM, 7PM 일 3PM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

     

    안무 윌리엄 포사이스
    음악 톰 윌렘스
    무대·조명디자인 윌리엄 포사이스
    스테이저 티에리 귀데도니, 아이만 하퍼
    기술수퍼바이저 타냐 뤼엘
    리허설디렉터 김성훈
    조명수퍼바이저 공연화
    의상수퍼바이저 황수풀
    사운드오퍼레이터 최태현
    출연 고동훈 권재헌 기자욱 김건 김수인 김예은 김은서 김희준 박세진 서보권 서정빈 송승욱 이준석 정건 조선재 프리실라 찬 하연주 한규은 *공연 회차별 출연진 상이
    *초연: 2000.02.02 프랑크푸르트 발레단, 보켄하이머 데포(프랑크푸르트)
    기술무대감독 설요셉
    음향감독 정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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