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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제 이애주류 주연희 춤, 《의례》: 근본적 몸짓의 시간으로 돌아가다REVIEW/Dance 2026. 7. 8. 13:55
주연희, 〈태평춤본〉

〈태평춤본〉은 긴장감 속 결연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음악이 요란해지며 앞발을 힘차게 차 내밀 때까지 걷고 어슬렁거리고 재고 땅을 밟고 점하며, 공간을 만지고 다듬는 공간(에)의 육화가 있다. 이는 익딘 유인상의 장구와 완만하게 거리를 잴 때 그리하여 춤과의 거리를 잴 때 놓이는 춤이며, 장구의 채편이 거세지고 잦아질 때 몸은 땅을 딛은 채 몰입되고 장구를 타며 분절되기 시작한다. 곧 공간 ‘위’에서 몸짓들이 쪼개진다. 하나의 중심이 공간에 박힌다.
몸에 생기를 돋우는 요란함은 몸을 이완시키고 재간을 수용한다. 덜그럭거리는 장구와 단속적 징(박주홍)의 잦아짐에 따라 몸은 활주한다. 곧 잦아들고 징이 주조음 격으로 장구보다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곧 장구가 무심하게 흐른다면 징은 배면에 드리운다. 징은 분명 의식을 채찍질하는 장구와는 다른, 감도는 파동 효과이지만, 이는 음악의 여진을 상대하고 빈 공간에 조응하며, 고적한 몸의 자취를 감돈다.
홀연한 자취와 무심하게 벼리는 이 시간은 잠재적인 것의 효과로, 조용한 것과 요란한 것의 합성, 또는 여진 아래 여흥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공간의 육화는 공간의 분절들 위에 포개진다. 그것은 점입가경인데, 무심한 장구의 더듬거림과 의식을 무화시키는 징의 자취 아래 몸이 계속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수직적 고도화 또는 안정화로서 주연희의 중심적 선은 여전하다. 묘기 어린 장구와 잦아드는 징으로부터 버선코가 툭툭 튀어나오는 잰걸음의 활보가, 소리 없는 고양이 걸음의 사뿐한 기세가 두드러진다.
징의 밀도가 더해지다 피리(강완규)와 대금(장진엽)을 위시한 음악적 비상과 함께 몸도 비상의 자세를 취한다. 음악이 풍부해지면서 평탄화되고 장구의 고도의 박자와 징의 무게감으로부터의 잽싼 발디딤은 느슨하고 풍만한, 유연하고 더딘 선의 궤적으로 전이된다. 이때 늦추어진 몸은 감정과 정동을 입는데, 그것은 음악을 전적으로 타는 게 아니라 이제 음악을 듣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은 이제 서사를 갖는다. 무엇보다 대금에는 곡절이 있다.
몸은 하나의 굽이치는 능선이 된다. 잦아든 몸에는 음악이 고스란히 실린다. 마치 거대한 산의 형상으로 뒤돌아설 때 몸은 춤을 벗고 완전히 음악을 듣는 몸이 되어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처음의 결기 어린 몸의 첫 순간을 기입한다. 그리고 그 전으로 되돌아감이다. 음악은 역설적으로 몸짓이 끝나고 난 후 한 번에 더 쏟아부어 의례를 갈음한다, 어정쩡하고도 화들짝하게도. 그것은 곧 몸으로부터 멈춰 세워졌던 또 다른 몸의 각성 효과 같은 것 아닐까.
하근정, 최현주, 여정숙, 〈본살풀이〉
〈본살풀이〉에는 곡절이 실려야 한다. 현악기 아쟁(김소리)이 주도적인데, 두 팔은 가지런히 떠 있다. 이는 마치 제한된 보폭으로 외나무다리를 걷는 것 같기도 치마로 감추어진 발로 인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인상도 준다. 팔이 떠 있다는 건 그 몸의 기본값이 속도의 감산 작용을 함을 뜻한다. 더디게, 더딘 채 감산되고 또 가산된다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상반신을 누여 오체투지 하듯 엎드리는데, 이때 바닥과 상반신의 아슬아슬한 경계는 보는 이의 의식의 기조를 구성한다. 한없이 좁아지는 틈으로의 더딘 몸짓은 하나의 세계를 그 구멍에 담는다.
변승희, 〈권명화류 입춤〉
〈권명화류 입춤〉에서 가장 주요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건 감고 마는 소매 끝 원환의 무한한 움직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계속 뿜어내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무언가가 실제 나온다. 그것은 일종의 마술과도 같다. 거기에는 많은 사물들이 담겨 있고, 그중 중요한 명주 수건 역시 있다. 소리는 태평소(강완규)가 주도하는데, 그것은 요란하면서도 이 마법 같은 움직임과 구멍의 오묘함에 부합한다. 이 안으로의 구심을 가져가는 움직임 곧 덩실거림은 끝없이 용출되는 샘물처럼 물을 퍼올리고 또 뿜어댄다.
순간 멈칫 앞으로 모아진 몸이 착 내려갈 때 흠칫 하게 되는데, 이때 소리가 몸을 타고 흘러가며 공간의 패임을, 멈춤의 순간을 드러낸다. 태평소가 불고 당기며 자기 자장 안에서 맥놀이를 강화할 때 (그것은 하나의 몸이 되고) 조명이 올라가고 무대의 경계는 객석으로 확장되고, 분위기가 고조된다. 나폴거림은 드리워짐으로, 몰입은 발화로, 마술은 유희가 된다.
주연희, 〈완판 승무〉

주연희의 〈완판 승무〉는 40분 분량 정도로 길다. 승무는 다른 춤에 비해 단단하고 또 큰데, 이는 그야말로 긴 소매를 하나의 몸처럼 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특하게도 북채를 잡은 손이 긴 소매를 지탱하는 긴 팔이 되어 후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데, 이는 본격적인 북 연주 이전에 몸과 북의 접촉으로서 관계성을 부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곧 연주와 춤의 모호한 경계 지대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승무는 또한 결연하고도 스산한 생명력의 용출인데, 이는 좀 달리 말하자면, 검은 배경의 하얀 형상의 스냅 샷들이기도 하다. 아쟁과 대금이 맞물리는 가운데, 의례의 차원이 부가되는 것은 좀 특이하다고 할 것인데, 그것은 정적인 근본적 리듬 안에 동적인 것이 파고드는 형상이 된다. 모호하고도 더딘 움직임이랄까, 웅장하고도 묵묵한 대화랄까. 또한 날카롭고도 처연한 정조랄까.
모든 순간은 놓이고 잠시 멈춘다. 매 순간에 분절이 각인된다. 승무는 소매와 본 몸의 시차로써 이뤄지는 춤이다. 완전하게 바닥으로, 살포시 내려앉을 때 하얀 옷의 여린 질감이 늦추어지고 선연해지는 걸 감각할 수 있다. 사물화되며 땅으로 용해된다고도 하겠는데, 마침내 두 손에 북채가 드러나고 북을 칠 때 한 번은 춤으로서 몸짓이다. 두 번째는 고독한 북에의 몰입이다. 연주 역시 잦아들며 그 뒷모습을 지켜본다.
처음 한 번 몸짓-연주에 화답해 연주가 요란해질 때 몸짓은 가벼워진다. 또는 연주가 분산되며 몸짓이 그 안에서 분화된다. 정보다는 동에 움직임이 찍힌다. 잠깐 북과의 혼연일체 이후 다시 연주가 시끌벅쩍한 분위기를 만들며 몸은 공간을 노닐며 북과 만나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다시 북에 온몸을 맡기고 사그라들 때 장구 연주자 음악감독 유인상의 구음이 튀어나와 강한 자취를 남긴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순환하는, 위와 아래를 맞물려 들어가는 그 구음은 탁월하다 하겠다.
이때 한 발씩 앞으로 발을 딛고 긴 소매를 젖히고 펄럭이는데, 몸은 한층 누그러지고 유연하며 정서적으로 가라앉는다. 목소리는 몸으로 전이된다. 몸은 곧 소리가 된다. 유장한 소리-몸의 더딤, 더뎌짐은 시간이 가라앉는 것과도 같다. 〈완판승무〉는 삶의 여러 리듬과 모습을 그 안에 담고 있다는 특색이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의 고독, 고아한 이념, 숭고한 정서의 일관됨과는 다른 것이다. 거기에는 희로애락이 다 있다. 그리고 이는 연희적인 것과 처연한 가라앉음 사이의 맥놀이라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
2026.02.22. PM 5:00
포스트극장
출연: 주연희, 하근정, 최현주, 여정숙
특별출연: 변승희(대구광역시 무형유산 살풀이춤 전승교육사)
음악감독 및 장구: 유인상
악기 연주: 강완규(피리), 김기범(해금), 장진엽(대금), 김소리(아쟁), 정부교(깽과리), 박주홍(징)
분장: 강윤자
스태프: 박영숙, 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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