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한맥의 춤〉에 대한 메모: 전통의 계승으로서 이행
    REVIEW/Dance 2026. 7. 22. 20:34

    〈한맥의 춤〉포스터[사진 제공=한영숙춤보존회].

    한국 전통춤의 역사, 한영숙미래를 잇는 한맥의 춤(이하 한맥의 춤)에서 한맥은 의미화되는 대신 상기된다. “한국한영숙은 자연스레 한맥을 향하고, 한국 고유의 결정(決定/結晶)적인 전통으로서 한영숙의 춤은 오늘의 현장을 통해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다. 이는 미래 시제로서 발흥되며, 기원에 대한 의지의 소산물로서 자리한다. 순수함의 근원적 측면과 역사의 굴곡이라는 변화의 현실적 측면이 하나의 맥에 대한 양면을 이루지만, 한영숙, 한국의 전통이라는 영원성의 토대가 추모와 기념의 행위를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맥의 춤을 통해 오늘날 한국무용이 어떻게 전수되고 새로운 서사로 쓰일 수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맥의 춤에서는 서거 35주년을 맞은 충남 천안 출생의 한영숙 안무가의 춤을 기리고 연장하는 데 뜻을 같이한 그의 제자들김매자, 김숙자, 정승희, 박재희와 그 제자들, 그리고 이애주, 정재만의 제자들을 주축으로 한 공연들이 펼쳐졌다. 공연의 토대가 된, 승무·학춤·태평무·살풀이는 한영숙 자신의 외조부이자 신무용의 선구자 한성준에게서 전수받은 그의 대표적인 춤들로, 대극장에 맞춰 학춤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에 대거 무용수의 참여로 무대가 구현되었으며, 여기서 군무의 형식은 추모에 대한 집단적 행위의 의미를 부각하는 동시에 춤의 스펙터클화가 전통의 무대를 새롭게 각색한다는 차원을 더한다

     

    가령 미래는 어떻게 앞서 현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역사미래사이에 낀 현재의 위치는 어떻게 독립적인 차원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인가. 곧 역사와 미래를 잇는다는 방식은 전통의 영원화된 미래를, 단선적인 시간의 영속적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어떤 것을 과거로부터 고스란히 잇는다는 것, 전수의 차원과 그것의 올곧은 수용 자체를 하나의 가시화의 목표로 둔다는 건, 무대가 전통 자체의 현재화이자 그 질서를 확립하는 현장 자체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이는 전통을 물신화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한맥의 춤민의 독특한 분기라기보다는 전통춤과 연관된 공연에서 대체로 발견되는 한 특징에 가깝다. 그러니까 자기 분열적 증상을 갖지 않으려면, 곧 어떻게 전통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그 틀을 이어가되 그것이 순전하게 그것에 귀속되지 않는 것인지를 타진하는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그 둘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대답을 마련하는 것의 불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건 전통을 계승하는 창작자의 당연한 선택의 귀결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이 하나의 강박적 태도라면, 위로 소급되는 기원의 신화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음의 차원을 부인하는 것이라면, 그 변화를, 현재의 관점을, 자유로운 춤의 질서를 따르는 또 다른 경로 역시 다른 한 축에서 요구될 수밖에 없고, 또 그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마도 조용진과 황태인의 조금만 바꿔볼까?(2024)라는 공연은, 그 후자의 축에서, 전통 또는 한국무용에 대한 수용의 일차원적 측면(의 강고함과 한계성)을 전제하고 밟아 나가는 공연, 어떤 틈과 경계의 차원에서 노정되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한맥의 춤에서 다른 한편으로 아쉬웠던 건 이 전통이 기원의 신화로 소급되는 경로에서, 권위의 차원이 위계의 차원으로 전이되는 지점, 그 둘이 혼동되는 지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가로막히게 되는 어떤 순간이다. 이는 정신적 차원의 고고함이 진정 현재적인 것이라기보다 그것을 단지 재현의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그러한 태도는 원본적이고 또 근본적인 것으로 격상되며, 그로 소급되는 과정에서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게 되는 어떤 창작의 과정과 그 기제를 진단할 수 있게 한다

     

    하나의 예시로서 승무를 본다면, 승무는 정재만 무용가의 제자이자 아들이기도 한 정용진과 이애주 무용가의 제자, 윤영옥과 김연정이 주축이 된 각각의 무대를 합한 것으로, 이는 두 기조의 분명한 차이를 명시화하는 동시에 두 축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음의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둘이 봉합되어야 하는 전제를 안긴다. 일차적으로는 흰 빛과 그 뒤의 어둠의 바탕, 푸른 어두스름의 두 시간대적 분별 아래, 두 집단적 승무가 각자의 시간을 누빈다. 전통춤 양식의 복장은 춤의 분명한 표식이자 하나의 정체성을 도출해 낸다. 승무의 고깔은 고개 숙인 자태의 고적함, 배면의 어둠을 연장해 낸다그 반대가 아니다

     

    나아가면, 중앙부에 자리한 정용진의 굳건한 터전은 여성 무용수들과의 대조를 통해 젠더적 차이를 의도치 않게 드러낸다이는 한맥의 춤에서 계속 의문으로 따라붙는 지점이었다. 여기서 작품 외적인 의도와 작품 내재적인 해석의 간격이 발생하는데, 다분히 기능적인 차원에서 배경이 되는 스펙터클은 독무의 다른 이름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젠더 분화와 구별의 심급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기서 오히려 명확해지는 건 춤의 고유한 특질보다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 관점이 전복되어야 한다는 현재의 시점이다. 또 춤의 바깥의 위계가 안으로 재산출되는 것의 의식하지 못함의 경계인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4. 10. 20.(일) 오후 6시
    국립중앙극장 해오름(대극장

    주최·주관 한영숙춤보존회
    후원 (사)한국춤협회, (사)창무예술원, The춤연구원, 정승희 춤마루, 이애주 한국전통춤회 벽사정재만춤보존회, (사)벽파춤연구회

    총감독 박재희
    연출/조연출 정용진/권상우,연준호
    총괄진행 홍지영
    진행 박보라 이은진
    음악감독 및 연주 유인상 전통음악그룹 판
    무대감독 서승진
    음향감독 김성욱
    조명디자인 김철희
    영상디자인 황정남
    영상기록 지화충
    사진기록 옥상훈
    분장 박서정 최유정 강윤자
    홍보물디자인 이동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