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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AFE 2026] Nonlybody, 〈Towards Equilibrium〉: 사물과 연루되면서 상대를 지지해 내는 원초적 커뮤니케이션REVIEW/Dance 2026. 7. 30. 17:46

[MODAFE 2026] Nonlybody, 〈Towards Equilibrium〉ⓒHanfilm[사진 제공=(사)한국현대무용협회]. 〈Towards Equilibrium〉은 긴 막대기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균형을 다룬다. 봉은 하나만 있고, 한 사람―Li-En HSU―이 봉을 점유하고 다른 사람―Yu-Chi CHEN―이 이를 따라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처음 이 모사는 하나를 다루는 둘의 관계로 곧 바뀌게 되는데, 그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중반 이후에 Yu-Chi CHEN은 Li-En HSU에게 시샘을 보이며, 봉을 걷어찬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자본주의적 경쟁의 가치를 가져가지는 않는데, 오히려 거기에는 상대를 따라가고 싶은 연합에의 갈망이 자리하는 것이다.
제목과 같이 ‘균형을 향한’ 여정은 끊임없는 불안정의 질서에 기초하며, 어떤 힘을, 그것의 효과를 주고받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는 봉을 매개로 상호 합입되는, 둘의 구분 불가능한 상태로 연장되는데,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엄정한 계산과 측정에 기초한 결과가 아닌, 하나의 제3의 매개가, 중간이, 간격이, 체류가 자리하는 순간에 이미 (그리고 아직) 위치하(지 않)는 연장의 시간에 속하는 바와 같다.
그것은 서로를 직접 겨냥하는 대신, 서로에게 기울어지는 제3의 시간 안에 있는 것이 된다. 한 발씩 발등 위에 올린 막대기를 다른 발로, 다시 앞의 발로 나란히 옮기는 과정, 이 같은 랠리로서 발재간은 하나의 사물이 적확하게 교차하는 순간이 아니라 양분되면서 공유된, 어느 정도의 수평성, 더 정확히는 서로의 발 모두에게서 봉이 떨어지지 않음을 위해, 일정한 간격과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는 평형성을 유지하며 서로가 함입되는 그 간격으로부터 기울어짐을 포함한 봉과 신체의 공동의 떨림과 진동은 신체를, 대상을 초과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함께라는 시간이 고인다. 어떤 이미지의 변화와 변용 자체로도가 아닌, 이미지 위에 부착되며 예측 불가능한 지점에서, 아니 모든 게 예측의 범위 바깥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허용하는 지점에서, 이미지는 그 둘이 파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종합하는 생성의 기호로 그 둘에 부착된다.
이때 상대의 중요성은 상대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 입각한다. 그것은 하나를 메우는 정도의 그런 대상이 아니라, 유동하는 하나를 다루는 일자의 차원에서 그 하나가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에게 분배되는 것, 상호 합입되는 과정에서, 그 대상을 살피는 것으로써 서로를 살피는, 대상의 중요성에 상대의 중요성을 합목적적으로 포함시키는 그런 놀이가 된다.

사실 이 막대는 분리되는 대상으로, 그리하여 그것을 함께 다루며 서로에게 내속되기 전에는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다뤄지는데, 가령 둘이 막대를 끼고 서는 자세에서 일종의 강박으로 분류되었을 법한 사물에 대한 애착은, 머리와 배 사이의 각종 홈을 옮겨다니는 것으로 마법적 효과로써 유희적으로 처리되며 아주 약간의 틈만큼의 유격을 연속적으로 두는 것에 따라 막대기는 아래로 내려가며 ‘빨려들듯’ 그 홈에 들어박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놀라운 결과가 아니라 응당의 과정이 되는데, 그것은 이 둘이 잘 다루(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자석과 같이 그 홈의 힘, 곧 인과 관계에 막대기가 들어가며 자연스러운 현상을 증명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반면, 이 둘이 처음 미메시스의 단계에서, 결착됨, 분리되지 않음의 단계를 거쳐, 분리된 대상을 거리를 두고, 원격으로 다룰 때는 공간에 대한 자율적 사용권이 전제된다.
이때 사물에 대한, 떨어지지 않음에 대한 강박은 너무 쉬이 반전된다. 상대에게 막대기를 퉁 튕겨 던지고, 이것이 두 번 바닥을 찍고 상대에게 도달할 때 서로는 그것을 매번 완벽하게 잡으려 하지 않고, 이 두 번의 찍힘이 성사되는 지점을 바라보는 데 그치기도 한다. 이는 그것이 어떻게 튈지가 자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기보다 포착의 더 나은 순간을 기다리는 일에서 그러하다. 그렇지 않은 순간을 의심 없이, 기꺼이, 별생각 없이 포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불가능성을 의식하는 것과도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과도 다르다.
〈Towards Equilibrium〉을 균형을 향한 애착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어디로 도착하는가. 또는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그보다 어떤 최종 수식됨의 명사/동사를 두지 않는 것,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그 가없는 충동과 열정, 그리고 시간으로부터 이 둘은 위치하고 상관된다. 이 대상으로부터 서로는 공평해진다. 그것은 서로가 함께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소유를 포기하며 그것으로부터 연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명이 할 수 없는, 한 명을 초과하는, 두 명을 감축하면서 상회하는 일일 것이고, 그것은 극장의 수행성, 수행성으로서 극장을 정초하는 일 아닐까. 둘 이상의 사람이 하나의 규칙 아래 무언가를 하는 것, 그것이 위태로운, 불안정한 균형을 담보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그것을 완전한 평형의 규격을 맞추는 것도, 상대에 대한 직간접적인 배려나 존중의 인격적 차원이 부가되는 것도 아니라, 그저 그 둘의 수행 아래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것으로서 하는 것.
균형의 정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라는 어떤 상태 자체에 대한 의지, 아니 필연, 그리고 그것을 지지해갈 수밖에 없는 식으로 서로를 투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는 어떤 소란한 침묵과 같은 것, 이 모든 것이 〈Towards Equilibrium〉의 기저에 있다. 그것은 결국 애착이나 강박이 아니라, 깊은 연루와 몰입의 상태이며, 그 안에서 서로는 서로를 따르고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다만 그것은 어떤 표현이나 언어의 차원으로 발화되지 않으며, 또한 그럴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2026.06.12 금요일 19:00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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