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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을 여는 춤 - 개인전》 - 이예주, 조성민, 김연재, 한혜수 리뷰
    REVIEW/Dance 2026. 7. 31. 20:44

    이예주, 이매방류 살풀이춤, 강선영류 태평무

     

    이예주의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살을 맺고 푸는데[기경결해(起景結解)], 역설적으로 풀기 위해 먼저 맺힌다. 살은 부정적 대상으로 따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체현되는데, 그 결과 춤은 비극과 희극을 횡단하는, 비극이 희극으로 융해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살을 경계하여 품고’ (체화된 그) 살을 기꺼이 흘려보낸다.

     

    이때 흰 수건은 신체 외재적인 예외적 대상으로서 신체의 확장을 기하는 한편 감정의 경계적 표지를 구성한다. 그러니까 감정을 다시 대상에 가두어 흘려보냄이 가능해진다. 가령 초반 수건을 한쪽 팔로 뒤로 젖힐 때 근엄한 표정은 순식간에 누그러들며 미소로 변한다. 그처럼 질서 잡힌 태도는 화색 돋은 얼굴로 일시에 뒤집히곤 한다. , 곧 수건을 보내고 나서는 누그러진다, 가벼워진다, 한층 밝아진다.

     

    그렇다면 이때 떠나 보낸 건 순수한 살인가, 아님 나의 감정적 응어리(까지)인가. 이 묘연한 지점은 나의 신체, 곧 살과 수건(으로서 살)이 구분되지 않는 경계와도 같고 또 그로부터 표지되는 부분이다. 가볍게 털어 뿌리고, 하늘하늘 품어 낸다. 곧 비우고 수용한다. 살을 비우고 살이 아닌 살이 비워진 자리에 어떤 감정을 수용한다. 살의 부정성은 소거되기보다 씻겨져 나가며, 해결이 아닌 해소의 차원에서 진작된다.

     

    한 손으로 수건을 펼쳐 내어 허공에 길게 늘어뜨릴 때 그는 그것을 마주하고놓는다. 놓으면서 놓이고, 놓이면서 놓아진다. 일종의 수건과 몸 사이에는 삼각형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수건은 외부의 대상으로 출현하지만, 곧 신체를 초과하여 미치며 신체를 변용한다. 이 과정에서 수건은 하나의 또 다른 신체로 분한다. 또한 수건은 그것을 놓아버리고 공간을 회전할 때조차 무대 앞쪽에 놓임으로써 자신의 결정적 지대를 표기한다.

     

    다시 수건 앞으로 돌아와 합장하듯 몸을 누일 때 거기에는 이예주의 곧은 몸이 유지되고 오히려 강화되는데, 곧 누임은 누그러지지 않음을 전제하며 축을 90도 회전하여 여전히 직각으로 그것을 응대하는 것과 같다. 이제 이 응결의 결정적 과정 이후에 입춤은 가벼워진 디딤의 회전하는 양상으로 분화되는데, 여기에는 강도 높은 맺음의 사태가 전제된다. 곧 바닥에 수건을 두 손으로 강하게 휘적이며 이전 스치듯 지나간 양우선을 마치 증폭하여 발현시키는데, 이는 그 3차원 구성을 벗어나는 대신에 고정된 수평축에 엄청난 밀도를 부여하는 셈이다.

     

    이후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도 밝은데, 더 정확한 구분은 음악적 전환이 자리한다. 곧 모든 악기가 한 차례 멈추고 다시 솟아날 때, 확연히 음악적 정조는 달라진다. 수건을 놓기 전 손()의 움직임이 가장 정교하고 힘 있게 나타났다면, 이후 수건은 외화된 대상이 아닌 신체 일부 본연의 것으로 작용하며 역시 손의 다양한 움직임과 변화를 정교하게 내포한다. 그럼에도 뒤쪽의 파란 조명이 들어오면서 삶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분위기가 또한 있다. 그렇게 다시 가라앉는데, 곧 수건을 살짝 끌어오면서 부질없는 삶의 순간에 잠기면서 맺는다.

     

    강선영류 태평무의 경우, 단단한 카리스마에 기초하는데, 이는 어떤 틈도 없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절대적 방어막과 그 절대 거리가 있다. 한삼을 벗어 놓고 그 가벼워진 만큼 완전히 밝아진 기운이 엿보이는데, 이는 안쪽 조명에 의해 강화된다. 두 손으로 치마를 잡고 좌우로 흔들며 두 발을 왔다 갔다 할 때는 가장 경박하고도 귀여운 부분이라 하겠다. 무대는 연주의 가락이 상승하면서 일직선을 이탈해 하수에서 오른손을 뻗는 몸의 치우침으로부터 다시 재편되며 시작된다.

     

    조성민, 임관규류 부채입춤, 김수악제 김경란류 교방굿거리춤

     

    조성민의 임관규류 부채입춤은 안정되고 여유로운 입춤의 견지를 보이는데, 이는 그 표정에서 먼저 드러나는 부분이다. 처음 부채를 펼치고 좌우로 긋고 휘젓는 동작에서 약간의 갸우뚱한 표정이 엿보이는 부분과 같이, 부채와 얼굴은 공진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차이를 발생시킨다. 부채를 뻗어 근엄한 눈빛과 함께 힘이 실릴 때 부채는 신체로부터 연장되는 대상으로 변화한다. 절정의 부분은 태평소가 맥놀이를 일으키며 어느 임계치에서 반복될 때로, 이때 뱅글뱅글 돌며 몸은 마치 개화된다는 인상을 준다.

     

    김수악제 김경란류 교방굿거리춤의 경우, 처음 좌우로 곧게 뻗은 두 팔이 강조되어 시작되는데, 거기에는 제법 무게가 실린다. 이러한 안정감 있는 자세와 힘은 유연하게 분화하며 주로 피리 소리에 따른 구슬픈 정서를 실어나른다. 또한 비교적 축이 부재하여 자유로우며 이리 저리 사방을 노니며 그 팔의 유연한 제스처를 연장한다. 어쩌면 공연은 공기를 빼는 작업과도 같은데, 처음에 실린 무게로부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흥취를 마구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김연재, 호남살풀이, 동초수건

     

    김연재의 호남살풀이는 앞선 이매방류 살풀이춤과 비교하면, 정서적 차원과 내면의 진동 같은 부분이 더 초점화되는데, 이는 살을 맺고 푸는 데 있어 일정 정도 샤먼의 매개자적 역량을 지녔던 것과는 차별화되며, 살보다는 한을 안은 하나의 인격체와 같은 모습으로서 단아한 기품을 갖는 가운데, 정서적 힘과 집중을 표정에 실어 낸다. 곧 수건보다 그 표정 자체가 대체로 절대적인데, 수건은 거기에 보조적으로 따라붙는 것과 같다. 수건을 한 번 휘저어서 감치거나 하는 방식 역시 화려하지만, 중심된 표정에 부차적이다.

     

    중심이 생겨난 몸에서 그 축 역시 중요해지는데, 90도로 틀어 두 축으로 방사될 때 갖는 역동성은 몸의 견고함 아래 있다. 움직임은 미묘하게 차이를 수용하며 그 자체로 변화해 가는데, 곧 앞으로 수건을 뻗는 것이 수건을 긋는 것이기도 하다면, 허공에서 앞으로 바치는 것은 훔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다시 앞으로 떨굴 때 그것은 수건을 받치는 것과 같다. 이는 수건으로 더해지는 정서적 효과가 곧 다시 신체로 되먹임되어 그를 바꿈을 의미한다.

     

    일체화된 수건과 몸은 정서적 자장을 구성하고 또한 미묘한 관계로써 비틀리며 증폭된다. 가령 얼굴에 따라붙는 수건의 운용과 그것이 중심된 오브제가 되어 몸으로 전이될 때 그리고 몸을 비켜나면서 몸으로 돌아올 때와 같이 그 바깥에서 신체와 분리되며 신체 감각을 증폭시키는 수건의 외재화되는 배가적 차원의 운용은 분명 차이가 있다. 휙 위로 뿌리며 음악이 변전되고 모든 게 좀 더 낮아지고 늦추어진다.

     

    김연재는 담담한 기풍을 유지하는데, 오른손의 수건으로 마치 눈물을 훔치듯 하면서 공연이 끝나는데, 이때 유일하게 주체적 차원을 벗어나 하나의 장면으로 이미지화된다. 그리고 얼굴과 수건이 하나의 이미지 차원으로 동조된다. 호남살풀이의 정서적 차원의 효과는 수건의 유연한 운용과 일정하게 유지하는 어떤 슬픔의 정조까지 개켜둔 채 몸을 단정하게 지지해 나가는 것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의지와 힘과 연속되어 있다.

     

    동초수건은 무대 중앙에 화문석을 놓고 그 위에서 천천히 손을 가슴께 갖다 대고 절을 올리는 자세에 이르러 시작하는데, 이 명확한 프레임에 맞춰 수직으로 그것과 맞닿으며 180도에서 360도로 곧 몸을 돌려세우는, 호남살풀이에 비한다면, 확장된 예각의 움직임과 축의 수직적 이전이 동시에 발생한다. 수건을 바닥에 두고 입으로 물어 들어 올리며 손으로 그것을 가리듯 훔쳐 낼 때, 매우 미시적인 사건의 효과가 이는데, 그것은 신체 지각이 클로즈업된 얼굴을 통해 주체적 차원에서 어떤 곤욕을 겪고 있는 (또한 무마하는) 것으로 확장되는 것과 같다.

     

    한혜수, 윤혜정류 부채산조 - 바람결, 윤혜정류 소고시나위 - 하루

     

    한혜수의 부채산조(윤혜정류)는 일종의 생기론적 사물이 되는 것과도 같은데, 생기는 몸짓의 정도, 배치의 간격 등 모든 구성의 요소에 미친다. 부채는 실제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로 운용되는데, 가령 부채를 들고 눈을 감을 때는 바람 안에 있고, 바람과 교감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부제로 더해지는 바람결과 같이, 명확한 배경의 조건을 현시하는데, 이러한 조건은 일상과 같은 일종의 연극적 상황과 유사하다.

     

    바람과 의 관계적 차원이 증폭되고 극대화되면서 주체의 생기라는 효과가 생겨난다. 눈빛은 구김 없이 일방향으로 뻗어 나오고, 또 몸짓은 쾌활하고 분주하다. 고고하고 고즈넉한 다른 춤들보다 상대적으로 춤의 마디마디가 분절되며 응결되는 정도 역시 빠르고 경쾌하며 무겁지 않다.

     

    이러한 생기의 차원은 윤혜정류 소고시나위 - 하루에서도 이어지는데, 소고를 얼굴께까지 들어 거두면서 얼굴을 화사하게 드러낼 때, 무대 뒤를 넘어서 튀어나올 때 약동과 순일한 밝음이 체감된다. ‘하루라는 부제 역시 연극적 상황을 전제하면서, 이러한 생기 어린 몸짓들을 일정한 은유로서 갈음한다. 미소를 머금고 멈출 때 작게 낮게 미약하게 그 자체의 발신적 효과를 가져오는데, 이때 공간이 일렁인다.

     

    김민관 편집장

     

    2026.04.24(금) 19:30, 04.25(토) 17:00 📍 포스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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