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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젝트 포란, 〈갈라진 마음들〉(윤성원 출연, 이소영 연출): 갈라진 그리고 연결된
    REVIEW/Theater 2026. 7. 30. 17:49

    행과 막

     

    프로젝트 포란, 〈갈라진 마음들〉(윤성원 출연, 이소영 연출)[사진 제공=더줌아트센터](이하 상동).

    갈라진 마음들14행의 소네트 양식을 차용하는데, 이는 4행씩 3번의 쿼트레인과 마지막 2행의 커플릿 한 번으로 마무리된다. 한 명의 배우 윤성원은 잠재적인 신체로서 파편적 이야기들을 하나의 공통된 세계의 구조로 연결 짓는다. 잠재성을 구체적 다양성으로 연장하는 이 신체 바깥에는 또 다른 외부의 신체성으로 기입되는 목소리, 곧 내레이션이 있다. 이에 따라 각각의 행을 지정하고 시작되는 방식 안에서 일종의 시가 낭독되고 있는 셈인데, 윤성원은 구조적으로 그 시의 내부에 있지만, 그 말의 바깥에 있다

     

    행은 막과 절합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행위가 시작되며 공간이 어두워지는 지점이 대부분 그 행이 끝나는 지점이다. 곧 행은 막으로 닫힌다. 윤성원은 목소리, 일종의 그 낭독을 잇기도 하고 자신의 말로 이끌어 오기도 하지만, 그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묘연한 신체와 상황, 시간이 남는다. 그러니까 신체는 말이 쓰이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후반에는 이 둘의 목소리가 겹쳐지면서 그 경계가 묘연해지기도 한다목소리는 윤성원의 기억이거나 그 자신의 목소리 자체이다

     

    그런데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지문이기도 하다. 경계 바깥이다. 목소리가 비가시적이지만 투명하게 말을 기입다면, 신체는 분명하게 그 말 여분의 것이 기입. 이 묘연한 말들, /그리고 모호한 상황들은 각 이야기가 갈라져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매체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곧 이 말들이 끝나는 지점에서 신체가 발생하고, 신체가 끝나가는 지점에서 언어 역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윤성원이라는 잠재적 신체는 이야기 파편들을 연장하는 매체인 동시에 종합하기 힘든 이 이야기들이 환원되는 기제이기도 하다

     

    모든 이야기는 퍼져 가지만, 정박되지 않은 채 멈춘다. 이야기는 내재적으로 갈라져 있다. 곧 하나의 시가, 하나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는 하나의 시가 나뉘는 게 행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이야기가 각기 다르게 시작하(고 마)는 게 엄밀히 행이다. ‘갈라진 마음들은 상실된 대상에 대한 애도로 혹은 저 너머의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갈음되는데, 이 지점에서 나와 같은 너라는 추상성의 존재들은, 역설적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묶는 유일한 존재로서 거듭난다. 마음의 차원에서 대상의 차이는 대상과의 간격으로 좁혀지고 일정해진다

     

    여기와 거기

     

    그리고 그 대상과의 거리로부터 존재의 다의성은 구체성의 경로, 판별 가능함의 경로로의 측정과 판단을 유예하는 듯 보인다. “광활한 우주에서 더줌아트센터라는 장소 특정성으로 급격히 좁혀지는 시작의 내레이션, “아직 닿지 못하는/누군가에게그리고 “1행 가능성이 시작되고, 이 거리는 (애도로 전화되기 전 그리고 애도로 전화되더라도 여전히) 그리움과 기다림의 차원으로 변주된다. 이는 매체-실재적 차원에서 한 명의 배우가 가진 숙명이다. 하나의 공간이 허락하는 저 너머에 대한 ()가능성이다

     

    여기거기는 서사가 시작되는 단초이다. 우주라는 하나의 토대, 그리고 우주에서의 미세 입자로서 나와 너의 비상관적 관계는 거기에서 여기로 좁혀지면서 무한한 거리로써 내속된다. 우주의 거기에서 나와 같은 한 점이 있을 수 있는 이 가능성은 운석과 달의 만남과 같은 우연성과 비예측성의 사실을 매개 삼아, 점과 점을 상상으로 이어보는가운데 분단을 해소한다. 곧 달에서 녹슨 철이 발견되는데, 철과 물이 서로 분포가 달라 만날 수 없는 환경에서, “운석이라는 외부가 달에 떨어지며 철과 물은 서로에게 스미어드는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스미어 듦, 서로 다른 두 존재의 상호 침투는 시간의 더딘 지연과 그 변용의 과정을 상상케 한다. 거기에는 상대에 대한 고착됨이 있다. 하나의 다른 하나의 기다림은 합성되지 않지만, 이곳에서의 고착됨이 선행된다. 마치 달은 운석을 영원히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2행의 기다리는 사람은 달력의 칸막이들로 분리될 수 없는 초과적인 날로 기입된다. 또한 기다리다가 기억하다가 기대하다가그리는시적 두운의 표현들의 연쇄 과정을 반복, 변주하는 것으로써 기입된다

     

    여기는 거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곧 거리는 심리적 거리 이전에 물리적인 절대적 거리로 현상되는데, 그것은 마치 산정 가능할 정도 멀며, 예측 불가능한 차원에서 우연한 접점을 맺을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분단은 이 우주에 내속된 존재에 대한 은유이며, 그 우주를 재접지하기 위한, 그리하여 우주를 상상하기 위한 매개적 관념, 사라지는 매개가 된다. 여기서 비가시화되는 몸, 곧 목소리는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그 우주를 상상하게 하는 매체이다

     

    나의 형상이 아닌, 그의 형상

     

    행위는 목소리보다 먼저 나타난다. 곧 목소리는 행위의 끝에 나타난다. 이것이 곧 막과 행의 차이인데, 2행의 너-거기는 하나의 테이블 안에서 이행된다. 흡사 방독면과 같이 생긴, 그러나 그보다 두 배쯤은 커 보이고 허리에 맬 수 있는 넉넉한 끈이 달린 그리고 이곳저곳 구멍이 벌어져 있는 처음에는 조명에 의해 검게 현상되지만, 이후 은박지 재질로 둘러싸인 돌멩이처럼 드러나는 이 오브제는, 자체 조명의 역할을 겸비하는데, 네 개로 나뉜, 같은 크기의 두 단으로 쌓인 스테인리스 테이블 여덟 개의 끄트머리에 그것이 놓이고, 그것을 집어 들고, 매고, 반대편으로 향해 가며, 나와 너의 간극이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이는 의 상관물로서 너와 상응되지만 엄밀히 너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고착된/긴 시간을 증명하는 를 투여해 온 의 상관물이다. 8행의 그의 텅빈 옷가지들을 그의 형상으로 채웁니다.”라는 묘연한 대사는 이것을 재결정하는 의미가 되는 듯하다. “그의 텅빈 옷가지들이 가리키는 그의 부재를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그것과 분리된 그의 형상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인가. 그의 텅빈 옷가지들을 입음으로써 곧 채움으로써 는 그의 형상이 되는 것일까

     

    마치 윤성원은 이 가두어진 빛-옷가지들을 입고 그의 형상으로 돌아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비치던 조명이 오브제로 전화되고, 윤성원은 이 오브제신체로 부속된 이후에, 다시 몸을 돌려 새로운 존재로 방향 전환, 회귀한다. 이는 그러니까 8행의 이 대사를 선취한다. 반대로 8행의 대사는 이를 성취한다. 이는 파편들이 근본적으로 잠재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과 행을, 막과 막을 가로지른다

     

    또 하나의 스밈은 음악이다. 처음 우주의 경계를 표기하듯 몽환적으로 퍼져 가는 음향에 더해지는 기본적인 최정우의 기타 연주는 그 경계 안에서, 그 경계를 기입하는 것을 향한다. 따라서 병치되는 두 매체는 약간의 시차를 가진 하나의 연장으로 보인다. 음악은 또한 격정적인 차원에서 배우를 대리해 대신 요동치는데, 이때 음악은 물리적으로 장소를 가늠하면서/널뛰면서 마음을 갈음한다. 최정우의 위치는 4면의 객석 배치에서 주로 윤성원이 정면성을 갖는 방향의 뒤쪽에 두 면의 사이에, 곧 배우와 관객 사이에, 관객과 관객 사이에 스미어 있다.

     

    오브제-신체

     

    극은 그것이 쓰인 중요한 기점을 1행에서의 달에서 발견된 산화철의 원인을 규명하게 된 2025년 어느 시점에 두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은 2행의 “72의 기다림이 정전 72년을 맞은 2025년과 조응되고 있는 것으로도 연장된다. 다른 맥락이 제시되지 않는다. 따라서 분단의 맥락 내에서 그것을 읽어내는 것은 가능성이 충분한 일로 보인다. 여기서 시적 유희로의 환산은 분절된 언어의 단위가 곧 시간의 단위가 되면서 그 길이의 덧없음과 무한함을 관념-실재적으로 구성해 낸다

     

    윤성원은 처음 중간 틈새로 빠져들어 가며 3행의 녹슨 철에 대한 표현을 선취하는데앞서 언급한 것처럼 행위는 말에 선행된다., 그가 그 중간 틈새로 다시 들어갔을 때는 이제 손을 위로 뻗는 것으로써 그의 막연한 기다림이 재현되거나 사라진 그의 존재를 선취한다. 그렇게 틈에서 존재가 새어 나온다. 이 고착된 작은 무대는 실은 두 단씩 쌓인 똑같은 크기의 6개의 테이블 중 중간에 놓인 테이블 두 개를 사선으로 정확히 반을 잘라 틈을 약간 두어 총 8개의 테이블로 불어난 것과 같은 형상인데, 이 잘라짐, 곧 분단의 틈으로부터 존재는 함입되고 또 주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 테이블 위와 아래 사이로 들어가 꾸물거리기도 한다. 따라서 공간은 비좁고도 입체적이다. 3행의 녹슨 철에서의 양철 로봇은 그사이에 대부분 끼어 있는데, 그는 로봇답지 않게 감정을 갖고 눈물을 흘려 자체 산화된다. 그는 녹슬고, 관절은 제 기능을 못하고, 고장 난 로봇이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상태, “젖어 있음을 그에 대한 사랑의 연장선상에서 긍정한다. 그와의 거리로부터 그는 운다. 반면, 그의 울음, 곧 고장남은 그의 고착됨의 원인이지만, 결과로 뒤집힌다. 곧 영원한 사랑의 순간은 그 거리, 곧 여기에의 고착됨에서 완성된다. 고착은 비극의 장면이 아니라 곧 충동이다.

     

    이 거기와 여기는 관객과 나의 거리로 연장되기도 하는데[9], 이는 제4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대신에 재지시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손끝 3cm”라는 거리를 서로를 마주하는 가운데 닿을 수 없는 벽이 된다. 이 벽은 4행의 에서 가설되는데, 극장 입구를 기준으로 좌측 안쪽 귀퉁이에 세워진 사다리 위로부터 모로 횡단해 내려오며 테이블을 가로질러 대각선의 바닥에 연결된 로프를 따라, 물음표 모양의 쇠 오브제원의 하단부 1/4 정도가 뚫린가 하나씩 단속적으로 레펠을 수행한다

     

    틈, 가까운

     

    5침묵 식탁에서는 햄릿의 폴로니어스와 레어티즈 두 부자 관계에서, 아들에게 훈계하는 폴로니어스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현실의 일상은 평범해지고 또 간접적인 차원으로 이행한다. 곧 또 다른 쿼트레인이 시작된 셈인데, 이는 6껍데기 왕에서 또 다른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처드 3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다

    말 그대로 껍데기 왕에 불과한 리처드 3세의 신세가 그 자신에 의해 항변되는 이 장면은, 입구 오른쪽의 중앙 벽, 객석 바깥쪽에서 진행되며, 5행에서 젓가락으로 비유된 오브제 여러 개를 윤성원은 손에 들고 머리 위쪽에 이듯 올려 오브제의 연속성으로써 장면의 이음매를 상쇄한다

     

    이때 그의 손에 들린 그의 머리 위에 닿을 듯한 오브제는 그의 거대한 장식의 왕관을 형상화하면서 그를 내리누르는 중압감과 뾰족한 칼끝의 위협을 함께 배가한다. 손잡이 아래를 잡아 손아귀를 빠져나오며 양옆으로 만개하는 오브제들은, 한편으로 부채꼴의 입체적인 왕관의 형상을 구성하지만, 이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자세이다. 곧 자신의 손에 들린 그 왕관이 떨어지지 않도록 또 그를 찌르지 않도록 두려움과 강박을 갖고 그것을 지탱하는 모순적 구조 아래 그 스스로가 착종되는 형국인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마치 상대편에게 맡긴 것 같은 인상도 주는데, 삐져나온 제비를 뽑는 절차가 빈손의 상대방에게 내맡겨진 것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생사를 아마 가를 것이다. 이러한 긴장감은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오브제들의 마찰음이 갖는 생기, 결기 이런 것을 서사적으로 연장한다. 8상실에 이르러, “내 아이가 없는 공간으로써 아이의 죽음을 의미하며, 애도의 차원이 다시 자리 잡는다

     

    애도는 9행의 손끝 3cm”, 이는 앞선 나와 같은 한 점으로서 관객 한 명이 초점화되고 3cm 정도에 닿을락 말락 한 거리로서 또 하나의 몸이 극에 개입되면서, 관객 전체로 그 대상이 확장되는 12행으로의 동력의 기원을 마련한다. 10서강잡스는 분단의 모티브를 다시 한번 끌어오는데, 휴대폰을 고치는 건 (그 주인의) 마음을 고치는 것이라는, 탈북민 서강잡스의 아이폰 수리 가게에 붙은 철칙은, 휴대폰에 대한 매체 의존도보다는 관계의 차원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향하는 그 마음에 초점이 맞춰진다.  

     

    승화되는 몸

     

    11산책12키스 소네트는 물 흐르듯 연결되는데, 앞선 관객은 무대로 초대되어 DMZ에 가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윤성원의 가이드에 맞춰 극장을 함께 한 바퀴 돌게 된다. 먼저 윤성원은 페스트로 극장이 닫히자 소네트를 쓰기 시작한 셰익스피어의 일화를 소개하고, DMZ갈 수 있는 데까지, 갈 수 있는 곳이 될 때까지마음을 쓰는 길을 이야기한다

    이는 대상을 상대로 전치하는 표현에 인접한데, 곧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66번 마지막 행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그대를 혼자 두게 되기에를 읊는다. 특정 관객과의 손끝 3cm는 눈앞에 북한을 앞둔 DMZ를 환유하게 되고, 거기에 분단의 실향민을 겹쳐 놓는다

     

    13수습은 마치 시신에 대한 물리적 대상을 잠재하는 단어인데, 윤성원은 그리고라는 단어 하나를 붙잡고,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대상에 신체를 병치시키는 것으로써 숨바꼭질하듯 움직인다. 이때 손을 뻗거나 테이블을 쓸어내리는 행위는 수습의 행위를 상기시키고, 어쩌면 스테인리스 소재의 테이블과 그 일정한 결집의 배치는, 시체 안치실의 그것을 상정한 사용을 가리키는 듯하다. 테이블 위로 얼굴을 빼꼼 내는 윤성원의 장난스러운 행위는, 일견 수습만이 아니라, 그 죽음의 시신 자체의 현전 역시 함께 나타내고 있는 건 아닐까

     

    13행과 마지막 14가장 사적인 통일2행은 소네트상 마무리와 결론의 구조에 해당하는데, 13행이 장소의 이전에 따른 그리고의 반복으로써 말의 진공 사이에 시간의 여러 장면들을, 또 다른 몸들을 담아낸다면, 14행은 갈라진 마음들을 주워 담는 하나의 신체 자체로의 수렴에 초점을 맞춘다. 요동하는 마음은 오히려 외부의 음악 자체이며, 기타 연주는 마구 오르내리며, 공간에 전이된다. 윤성원은 마지막 손을 뻗고 테이블 위에 누우며, 이때 암전 대신의 마지막 조명은 그의 마지막 의지가 솟구친, 곧 그의 눈이 이전된 것과 같다

     

    갈라진 마음들은 이야기 토막들을 기워나가는데, 이는 내용이 하나의 형식으로 전화되는 직접적 지점을 만든다.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갈라진 마음들을 은유하는 한편, 그것이 내용상의 불일치를 경유하여 각기 다른 몸들에 대한 하나의 매개체로서의 몸을 요청하게 되며, 이는 배우의 연기가 지닌 특별함보다는 배우의 윤리적 태도와 자세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의하는바, 신체는 타자를 경유해, 한편으로 순간적으로 채워져야 하며, 다시 비워져야 한다. 궁극에는 의미를 지정할 수 없는 실재에 가까워져야 한다. 이때 몸은 갈라진 마음들을 잇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하나의 매체로 승화된다. 그것이 곧 갈라진 마음들의 결론이 가리키는 바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일시: 2026. 07. 03(금) - 07. 12(일) / 평일 20시, 주말 15시

    공연장소: 더줌아트센터

     

    [만든이들]

    출연_윤성원

    연출_이소영

    작_이소영, 오한솔, 김강민, 윤성원

    구성_이소영, 오한솔, 박세련, 윤성원, 김강민

    조연출_김강민

    드라마투르그_오한솔

    음악감독/연주_람혼 최정우

    미술총괄_김지우

    프로듀서_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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