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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 DREAM & VISION] 조현희, 마소정, 김동현, 김하림, 이하윤: 둘을 위한 혹은 향한 형식들
    REVIEW/Dance 2026. 8. 2. 17:15

    조현희, 의존: 감싸 안고 뻗어 나가며

     

    [2026 DREAM & VISION][사진 제공=창무예술원](이하 상동).

    의존은 일반적인 발레의 2인무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형태적, 테크닉적 차원의 상동성으로부터 구도의 조정, 독립된 기전의 움직임 등을 통해 조금 더 내밀한 차원의 반독립적 현존의 양상으로 전화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하얀색 브라탑과 반바지, 하얀색 긴 바지만 입은 여자(조현희)와 남자(강미호)는 처음 상수에서 옆모습으로 나란히 등장하는데, 곧 둘은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이때 보통 움직임의 지지체가 되는 남자의 역할은 남자가 처음 바깥에 위치하며, 둘이 일직선 방향으로 하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의 공간성을 구축해 가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여자의 비켜나감, 동시에 남자의 막의 역할에서 옮겨가는 두 팔의 중심된 선분들의 남자~여자의 연속적 움직임은 유선형의 터널을 만든다고 할 수 있으며, 곧 공간의 구축은 그 공간의 내밀함에 대한 가시화로서 결절된다.

     

    의존은 이 공간에의 분별을 이미지, 현상학적 차원에서 부분부분 결정짓는데, 곧 그로부터 상호 침투적인 것과 독립 이행적 차원의 연결성 모두가 펼쳐지는 앞선 순간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자가 정면성을 갖고 그로부터 하수 앞쪽 공간에서 독립된 움직임을 하는 가운데, 남자 역시 상수 뒤쪽 공간에서 독립적이 되는데, 이 둘은 떨어져 뒹굴고 다시 하나의 선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엎드린 남자 위에 여자가 엎드려 결착된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가장 결정적인 의존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의존은 일종의 물리적 지지의 차원에서 경로를 산출하는 것에 상응하는데,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의존은 이 장면에서 궁극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쩌면 정면을 향할 때 조현희의 눈빛 역시 외부로의 어떤 의존에 대한 갈망의 다른 표현이었을 수도 있는데또는 그 놓아버린 상대에 대한 갈망의 반향으로서, 의존은 그 서사를 명확하게 가시화하는 대신, 움직임의 디테일들을 통해 공간과 구도 차원에서 물리적으로 암시하고 드러낸다고 하겠다.

     

    마소정, 서로가 씌운 탈: 탈이라는 마법적 매개물

     

    서로가 씌운 탈은 탈이 심리적 의존 그리고 동시에 변형적 모티브의 지지체로 자리하는데, 하나의 탈을 갖고 두 존재(마소정, 권보빈)이 씨름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 상수 앞쪽에 놓인 탈과 일직선 계열로 뒤쪽에 위치한 마소정이 전반적으로 그 탈에 강력하게 연루되어 있음의 상태에 있다면, 하수 쪽 사다리에 오르며 탈과 그 둘로부터 거리를 둔 권보빈은 더 자유롭다.

     

    이때 사다리에서 내려와 턱을 괴는 권보빈의 그 동작은 탈이라는 지지체를 시험해 보는 인상을 주는데, 이후 두 손을 망원경처럼 말아쥐고 여기저기 편재하는 모습에서는 탈의 모습을 형상화하지만, 특정 변용 상태, 곧 관찰로서 시각의 증폭됨을 가시화하게 된다. 그리고 객석 계단으로 올라가 앉아 관객과 같은 시각 체제에 속하게 되는데, 곧 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가는 마소정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이는 탈의 마법적 소환 작용으로부터 자유로움과 그 역량을 동시에 구성하게 됨을 의미한다. 곧 권보빈의 의사-탈은 마법적 효과로의 종속 대신, 더 능산적인 신체의 자율성으로 연장된다. 이 가면은 서로에게서 벗겨지며 소유되는 대신 영혼을 빼앗기게 되는데, 권보빈이 마소정에게서 처음 빼앗아 든 탈을 상수 쪽 다른 장소에 놓아두고 거기에 이윽고 빛이 맺힘으로써 마소정은 탈구된상태로서 또 다른 변환을, 곧 변환 이전의 상태를 이루게 된다.

     

    그것이 금단 증상인지 결정적으로 결여된 존재의 상태를 나타내는지는 모호한데, 어쨌거나 그것에 대한 결정적 환유로서 자리할 전반의 음악은 비장하며 진지하다. 이후 둘은 서로를 향하고 서로를 겨냥하며 맞물리고 대칭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탈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탈을 상수 앞쪽에 놓고 마소정이 그와 떨어져서 괴로워할 때 권보빈은 마소정의 탈 재쟁취 행위를 무마한다.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구음이, 그리고 사물놀이가 출현한다.

     

    이어 탈을 쓰고 신비한 느낌의 음악이 나오면서 권보빈은 탈을 들고 하나의 중심에 고착되어 도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때 그는 비자율적이며 타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사라지는데, -빛의 앞선 상태는 탈 자체에 인격과 마법적 차원의 생명력을 부여했음을 의미하며, 탈 자체의 변성 과정으로 인해, 둘의 물리적 거리의 차이는 약화되며 탈의 마법적 나눔과 한결 더 동조되는 상태로 이어지게 된다. 서로가 씌운 탈은 이 중간 매개의 강력한 효과를 어떻게 미묘하고도 역동적으로 구현하는지를 보여주는 극이라 하겠다.

     

    김동현, Largo: 자연이 주는 숭고 혹은 안온

     

    Largo는 플리츠 롱 스커트를 입은 존재이두희와 나무 화분과 밀착되어 자리하는 또 다른 존재김동현의 분리된 관계 양상에서 상징적 차원을 부상시키는 것으로 나아간다. 곧 중앙의 그 화분 옆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김동현은 화분의 가지들 사이사이에 신체가 위치한, 마치 화분 그 자체가 된 양상으로 화하는데, 유동적인 이두희의 경우, 구심력에 걸려 있다는 인상을 준다. 곧 화분과 하나인 김동현이 권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두희는 그것으로 소환될 수밖에 없는 비자율적 존재라는 아이러니를 갖는다.

     

    느리고 장중한 음악은 제목이 가리키는 바로, 음악의 형식이 곧 작품의 형식을 결정 짓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닥에 놓였던 나무 판을 걸어가는 퇴장 장면에서 그를 비추는 조명은 나무와 연접된 기호로서 햇빛과도 같을 것이다. 이 자연의 유장함의 시간, 곧 조명의 물리성이 어떤 기호로 독해되는 시간에, 형식적 차원은 물리적으로 응결된다. 그것이 첫 번째로 화분이라는 움직임 없는 기호였다면, 두 번째는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그러나 어떤 공간의 반향을 낳는 조명-햇빛인 것이다.

     

    사실 이 곡은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1738년 초연했던, 희극적 오페라 세르세(Xerxes)에 나오는 아리아의 한 대목인 옴브라 마이푸(Ombra mai fu,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동명의 페르시아 왕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오페라에서 아리아 역시 세르세(518465 BC. 흔히 고전 그리스어 발음인 크세르크세스라고 한다.) 왕이 부른다.

    이 곡은 아리아가 아닌 연주곡일 때 라르고라고 불리며, Largo역시 오르간 연주로 된 곡을 차용했다. 오페라 제1막이 시작되면서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쉬고 있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세스는 그 나무 그늘이 주는 편안함에 탄복하고 칭송하는데, 이때의 나무는 버즘나무라고 하며, Largo는 이 전사를 내용으로 구성한다.

     

    김동현는 하늘거리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이두희와 같이 그 둘은 공통적으로 여성적인 어떤 존재로서 자연의 기호를 그렇게 상정한다. 또는 반대로 그렇게 자연에 대해 접근해 가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곧 화분으로의 수동성 역시 어떤 폭력성이나 남성적 부정성의 차원 그 반대편에서의 의미 혹은 개념 설정으로서 분명한 의도가 드러나는데, 이는 다시 ‘Largo’라는 느리고 장중한 것이 갖는 어떤 종교적이거나 성스러운 차원의 의미 지형 아래 희미하게 연결성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김하림, Daybreak: 평형의 차원에서

     

    Daybreak는 남녀의 고도의 2인무를 그린다. 제목처럼 새벽의 시간은 거기에 있는 그 둘의 내밀한 관계의 시작을 알릴 뿐만 아니라, 그 달라진 공간감까지를 반향하게 된다. 둘 다 검은색 의상으로 통일되었는데, 김하림이 입은 볼레로와 브라탑을 입은 정선우에서 단연 더 시선이 가는 건 김하림이다. 그리하여 여자정선우와의 수평을 맞춘 남자김하림의 곁의 지지가 충실하고도 섬세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지지체로서 남자의 역할을 넘어 조금 더 동등하면서 동시에 보조적인 역할에서의 주의, 집중을 같이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둘이 돌 때 수평을 맞추면서 남자는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무거워지고, 그 무게를 지탱하면서 동작 역시 더 무게가 실리게 된다. 정선우는 옆모습에서 두 팔을 위로 뻗으면서 한 팔을 김하림에게 보내고, 한 발을 뒤로 뻗어 역치 상태에 이른다. 이때 한껏 확장된 순간이 긴장과 약동의 차원을 함께 제시하는 지점에서, 아마도 새벽의 상징성이 찍힌다. 마치 그 시간이 세계의 잠재된 열림과 용출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과정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둘이 단지 하나의 평행적 구도를 이룰 때, 김하림이 직접적 지지체가 아니더라도 곧 그 둘이 따로따로 움직이더라도 정선우의 움직임은 더 안정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데, 이는 김하림이 뒤나 옆에 있어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그리고 그것은 김하림으로(부터) 전이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그 가상의 단면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김하림은 동등하면서도 약간의 시차와 거리를 둔 배치의 설계를 의도하고 있으며, 정선우로부터 결정적으로 새벽의 어떤 한 상징적 순간을 만들어 낸다.

     

    이하윤(이종우), 순환: 순환의 가상적 축제

     

    순환은 두 남자정호진, 이종우의 댄스 배틀의 경쟁 구도와 그것을 중간에서 지켜보며 반응하는 여자박효민의 중심된 장면을 향해 가는데, 이는 처음 도로가 소음에서 음악으로 변전되며 그러하다. 처음 한 남자정호진가 걸터앉아 얼굴이 이따금 이지러지다 또 깜빡깜빡하는 무기력하고도 불안한 이중 표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하수 뒤쪽에서 등장한 여자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때 둘은 같이 움직이고, 하이라이트를 벗어난 남자는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며 여자로부터 구원된다는 인상을 준다.

     

    남자는 떨고 여자는 그에게 손을 뻗어 안온함을 준다. 반면, 또 다른 남자이종우의 등장은 대립 구도를, 경쟁에 대한 유인을 산출한다. 이때 고추잠자리곡이 나오고, 그는 비보잉의 기초가 되는 춤을 춘다. 이는 그 장르가 갖는 재현적 현실로 급격하게 선회하게 하는데, 그것이 나를 명확하게 과시하면서 상대에게 도발한다는 의미로서 자리 잡으며, 다음 무대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내 셋은 재즈풍의 음악에 맞춰 같이 춤을 추다, 이윽고 남자 둘의 본격적 경쟁 구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자의 관전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두 남자의 관계는 실은 교도소 간부와 사형수로 전제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처음 졸고 있는 듯한 남자는 감시 중에 있는 간부의 나태함을 드러내는 것일까, 감방에 갇힌 사형수의 무기력함을 표현하는 것일까. 갑자기 이 세계를 뚫고 나와 활약하는 남자는 교도소 바깥의 자유를 꿈꾸는 사형수일까. 아님 감방 바깥에 이미 있는 간부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는, 토드 필립스(Todd Phillips, 1970-.) 감독의 조커(2019)의 마지막 시퀀스의 짧은 대사와 겹쳐지며 이어지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That’s Life(1966)에 맞춰 춤을 춘다. 영화가 갖는 정동을 추출하며 피치를 올리는 이 셋의 움직임은 폭력과 억압의 일방향적 이행이 아니라, 축제의 구도 아래 각자의 순서로써 이행되는 순환의 형식을 갖는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여자는 관찰자이자 그 둘 사이에서 매개의 역량을 가져간다.

     

    김민관 편집장

     

    2026. 05. 29(금) pm.7:30 ~ 2026. 05. 30(토) pm.5:00

    📍 포스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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