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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플러그드 바디즈 컴퍼니, 〈JASON Project〉: 체현되는 그리고 관찰하는 신체
    REVIEW/Dance 2026. 7. 31. 20:44

    언플러그드 바디즈 컴퍼니, 〈JASON Project〉©옥상훈[사진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상동).

    언플러그드 바디즈 컴퍼니의 JASON Project‘JASON’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통해 지구의 문명 전반을 재상기하는 차원에서, 그의 시점으로부터 우리를 역투시하게끔 하는데, 암전 이후 실험실에 착륙한 벌거벗은 존재로부터 공연이 시작되는바, 의식이 없는 그 존재는 실험실 무대에 올려짐으로써 본격적으로 그 생명이 가시화된다. 무대 상수와 하수 가에 각각 3대씩 세워진 형광등 스탠드에 형광등 하나를 끼워 넣음과 함께 공간을 구동하고 동시에 지배하는 디제시스 사운드형광등과 동기화되는 지점으로 삽입되며 공간과 결착한다.가 출현하면서, 두 개의 별이 충돌함을 가정한 1장에서의 타 별의 새로운 생명체가 먼저 도착한 데 이어, 그것이 실험실 체제와 결속하며 이후 실험을 통해 탄생하게 됨의 계기를 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JASON은 연금술에 의해 탄생한 호문클루스와 사회에서 배제된 호모 사케르의 사이에 있는 존재 혹은 그 둘이 배합된 존재를 다루고 있다고 보이는데, 거기에 대한 물음은 새로운 생명체의 전적인 탄생이냐 실험을 경유한 결과냐라는 것곧 몸이 성실하게 보존되는 무대라는 특성상 전적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는 근본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보다는 일종의 윤리적 차원으로, 어떻게 벌거벗은 생명체를 실험실 안에서 지배하고 다룰 수 있느냐라는 것, 그와 같은 권력이 허용 가능한 것이냐라는 것이다.

     

    아마도 또 다른 그리고 더 적확한 참조점은 AI라는 가상 존재에 대한 대중화되고 관성화된 시점의 차용으로서, 이를 통해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를 시뮬레이션하고 우리의 시점을 되비춰보는 것 역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직은 몸이 실재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우리의 근본적인 몸의 실체로부터 연장되는 사고를 거기에 이전하고 대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기에는 분명 몸의 상대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상상의 권리에서 윤리의 책무를 저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무대의 표현적 역량이 자유로운 상상과 가장을 허용한다는 점으로 연장 가능하다. 결국, (AI라는) 신체의 재편 가능성이 실험실이라는 닫힌 체계의 은밀함으로 전이되는 셈이다동시대적 상상력이 신화적 은유를 거꾸로 입는다고도 하겠다.

     

    JASON Project의 무대는 실험실 공간을 상정하는데, 상수와 하수에 놓인 테이블들, 중앙에 놓여 있던 프레임만 있는 철제 의자들이 그것이다. 이때 벌거벗은 생명체(양승관/강승현)를 둘러싸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최우석)가 모든 걸 지시하고 통제한다면, 여타 검은색 전신 타이즈를 입은 존재들은 실험의 분자들, 표현 양태들로서 기능한다. 벌거벗은 생명체와 검은색 정장이 주동 인물로서, 서사의 재현적 양태를, 연극적 양식을 체현하는 데 어느 정도 구속된다면, 검은색 존재들은 장면을 매개하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무한하고 유동적인 역량을 갖는 존재로 이와 대비된다.

     

    전자가 불확정적이고 무정형적인 자아를 지닌 존재로서 계속해서 변용되어진다면 후자는 명령의 고체적 성질 아래 심리적 차원에서의 히스테리적 측면을 추가한 일상의 인물에 가까운데, 곧 전자는 생명적 약동을 재체현하며 변화하면서 후자는 전자에 대한 심리적 애착이 강화하면서 겪는 균열을 통해 점차 유연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둘은 세계의 경계를 설정또는 안의 구심점과 바깥의 경계와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하는 두 축으로서 대립과 대비를 가지며, 이는 역으로 그 중간에 반투명의 수많은 매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크로마키적 존재, 부존재하면서 존재를 가능케 하는, 현상의 마법적 중개를 시도하는 중간자적, 매개체적 존재로서 검은 복장의 존재들이다.

     

    5장으로 나뉜 공연이 서사의 다양하고 입체적인 분기들을 기록한다는 데 대한 JASON Project의 전반적인 서술적 흐름이 일종의 드라마적 양태에 가까우면서도, 명확한 서사, 등장인물 각자의 고유한 캐릭터성, 현실 장치로부터의 행위적 관계성 등을 일정하게 담보하는 것이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그 너머에서 실험실의 무대는 무대의 실험으로 전용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이것이 움직임의 순수한 역량에 대해 가장 많은 부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로 대치되는 그래서 직접적으로 섞이지 않는 두 주요 인물에 대한 해석이 그로 인해 모호해진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선 디제시스 사운드가 3번의 클래식을 도입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지배의 차원에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서사의 연극적 재현에 대한 제한은 그 목소리로부터 인간에 대한 해답, 단서, 언어를 제공한다는 것으로써 그 서사적 차원에서 주체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데, 움푹 팬 이 목소리의 질감은 지배자의 목소리를 대신 체현하거나 그에게 가해지는 초자아적 목소리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벌거벗은 남자의 옆에 그가 눕는 것으로써, 그 전에 목소리가 알려주듯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순간곧 처음 던져진 생명체의 존재의 자리가 반복되는에 직면할 것이 인류의 미래를 현상하거나 재정초할 수 있는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됨을 그가 이행하면서 극이 종료된다는 것이다.

     

    처음 엎드린 몸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생명체는 초반 대부분 의식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는 신체 마술의 은밀한 캐비닛으로서 테이블이 또 검은 천이 동원되는 것으로써 있음과 없음의 차원으로 그 변화를 대신 가져간다. 검은 형상은 조금 더 유동적이고 동시에 기형적인 신체로 연장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아래, 벌거벗은 남자는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긴 팔과 긴 몸의 포대기 신체를 안고 왈츠를 추기 시작함이 그렇다. 몸은 비정형적으로 늘어나며 예측 불가능한 사태로써 무대를 뒤덮는다. 이는 본격적인 생명의 시작이며 표현의 양상이다.

     

    그와 상반되는 차원에서 실험은 한층 가속화되고 뚜렷한 물질의 가시화로 드러나는데, 곧 상수 쪽 실험실 테이블 쪽에서 돌아가는 해골과 함께 연기가 발생하고, 검은색 존재 하나가 해골의 다리 한쪽으로 허공 위 포물선을 그리며 이동하고, 밝아진 무대 뒤쪽 풍경은 붉은 구름이 잠식하고 있다. 사라짐을 표현하는 모호한 분위기의 배경음 아래, 모든 현상은 자체 슬로우 모션을 건 채로 움직이는데, 이때 내레이션의 단어들이 세계를 새롭게 정초하려 한다. “Emotions”, “Shadows”, “Darkness” 같은 단어들은 생명과 반대편의 존재의 두 다른 심상을 창조하는 듯 보인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벌거벗은 생명체들은, 여러 실험적 변용의 단계를 겪기 시작하는데, 그 다양한 양태를 표현함은 그림자극의 연출이다. 곧 반투명 막 뒤에서 움직임은 단지 조명의 단속적 점멸로써만 가시화되는데, 하나의 장면에 대한 다른 시각에서의 또 다른 장면의 연결은 결과적으로 일종의 점프컷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테이블 위의 존재를 획책하고 통제하는 그 바깥 존재라는 두 이미지의 결합이 비추는 대비적 차원은 비율의 차원에서 극대화되는데, 이는 빛과 멀어짐으로써 그 크기를 부풀리는 테이블 바깥의 대상에 대한 움직임에서 전적으로 시험되는 부분이다.

     

    테이블 위 존재에게 총을 들고 위협하거나 가위나 칼로 자를 것처럼 겨누는 등의 동작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각각 각기 다른 시점에서의 두 번의 반복에 의해 말이다. 지구본을 들고 흔드는 동작은 추상적으로 산출된 개념에 대한 즉자적 이행처럼 해석되는데, 곧 그것은 그 자체로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의 재현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이 지구의 흔들림이라는 상징은 우리가 처한 세계에 대한 혼돈이 동시에 세계에 대한 개념의 혼동임을 나타낸다. 이 지구적인 지각의 위기로부터 모두는 퇴거하는데, 하수 쪽으로 테이블 하나씩을 밀어 일렬로 맞추고 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그러하다. 그리고 약간의 정체가 동반되는데, 이는 걸린 음악에 따라 표상된다.

     

    결말은 하수 테이블 위의 화분에 물을 주는 존재와 상수 테이블 위의 모래시계를 얹어둔 존재가 양립하는 가운데, 상수 안쪽에서 앞선 두 사람의 시차적 누움의 장면이 만들어지면서다. 시간이 반복되며 또한 흘러간다는 사실과 생명에 공급되는 자양분으로서 물은, 각각 문명과 자연을 의미한다. JASON Project는 벌거벗은 존재와 생명 탄생의 실험을 지시하는 존재 사이에서 수많은 그림자 주체들을 통해 복잡한 중간 과정의 실험 단계와 그 연금술적 성취의 결과를 마술적 차원으로 엮어 나간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복기나 성찰에 대한 의미를 수여한다기보다는 또한 AI를 경유한 과학의 미래적 이미지를 예측해본다기보다는 근원적 인간의 양태와 진리를 좇는 신경증적 인간의 심리를 그 둘의 관계선상에서가 아닌, 그 둘을 각각 형상화하는 가운데, 우리의 현존재적 양상을 조망해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곧 안정화되지 않은, 분열된 두 주체, 서로 다른 두 주체로, 거기에는 말 그대로 아직 접지되지 않은(‘언플러그드 unplugged’)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어떤 신체, 곧 인간에 대한 신체적 이미지가 있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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