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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앙상블(WALD ENSEMBLE)×SAL, 〈APOLLO〉: 무대로서 세계REVIEW/Dance 2026. 8. 29. 21:27
빈 공간에서

발트앙상블(WALD ENSEMBLE)×SAL, 〈APOLLO〉©Rara Choi[사진 제공=SAL](이하 상동). 〈APOLLO〉는 발트앙상블(WALD ENSEMBLE)과 SAL이 공동으로 기획한 공연으로, 전자의 연주, 후자의 무용, 이후 세 번째 곡에서 함께 만난다. 첫 번째 곡은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Suite italienne〉를 발트앙상블의 부음악감독 김세준이 편곡한 것으로, 두 번째 공연은 Rrose의 동명의 곡 〈Shepherd’s Brine〉(2011)―녹음 송출―에 따른 이지수, 최호종, 안유진의 무용이다.
세 번째 협업은 스트라빈스키의 동명의 곡 〈Apollon Musagète〉(1927-1928)의 연주와 무용―최호종, 안유진, 이지수, 유재성―으로 이뤄지며, 흔히 “Apollo”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지점에서 공연명이 나왔다고 볼 수 있겠다. 뮤즈들을 이끄는 자, 아폴론이라는 뜻으로, 처음 최호종이 객석 말단에 서서 아폴론의 등장을 예비하고 있다.
움직임은 〈Shepherd’s Brine〉과 공통되며, 순서상으로는 〈Apollo〉가 그로부터 연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거꾸로 음악들의 공통됨을 또는 소급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Shepherd’s Brine〉은 테크노 장르이기 때문이다. 처음 사물 조각을 의태하며, 다분히 최면적인 가운데, 시종일관 빈 공간에 대한 환유로서 사운드가 자리하는 이 곡은, 공간을 정초하는 차원에서, 움직임의 직접적 반향이 아닌 심리적인 차원을 주조하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먼저 등장한 이지수 앞으로 다른 두 명이 앞에 위치하고, 이지수가 그 사이로 튀어나온다. 세 명이 가깝게 위치하여 삼각형을 이루는 이 시작은, 각각의 존재가 인장되는 순간 자체를 안무로 두는 부분인데, 단차가 다른, 계단형의 하얀색 널찍한 무대 반경 안에서 횡단하고 교차하며 존재 간의 전이와 함께 공간을 존재화하는 데 또는 존재에 빈칸을 포함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것으로 나아간다―아울러, 하얀 바닥의 물질성을 조감하는 데에도 초점이 맞춰진다.
다양성에의 중심

〈Apollon Musagète〉는 유재성이 배가되는데, 기본적으로 초점이 이지수에서 최호종으로 옮겨간다. 뒤에서 등장한 최호종이 무대 천장에서 내려온 조명이 들어오는 커다란 직육면체 구조물, 천창 구조의 “빛 우물”1을 바라본다. 이어 팔을 감싸고 두 무릎을 바깥으로 하여 내려앉으며 고개를 탁 숙이는데, 이는 권위 있는 주체의 하락―의식의 추락―을 의태한다.
본래 발레 음악인 것과 같이, 움직임은 일견 발레 동작을 의태하지만 다른데, 이는 앞 무대에서 배를 만지면서 골반에 중심을 둔 움직임으로부터 연장되는 부분으로부터 명확해진다. 그러니까 이 어떤 시작으로서 움직임은 발레가 수직성의 기초를 갖지 않고 무게중심을 아래로, 수평으로,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분기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이념적이기도 하다.
일종의 잔 동작이 쉴새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결코 산만하지 않다. 흐느적거리면서도 신체를 붙잡고 매만지고 하며 부단히 지시하는 가운데 끈적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안으로 수렴한다. 곧 이는 신체의 중단 없는 놀림이 숨의 중심으로써 일정한 중심에서의 변전과 연장을 시도하기 때문에 갖는 효과이자 가능함이다. 움직임의 포화는 닫힘이 아니라, 분배의 이행 과정이고, 동시에 다양성의 배치적 흐름이다.
상징적 절차로서 신의 등장을 알리는 최호종의 앞선 고개 숙임은, 공연 설명에서의 “신의 무게를 짊어진”으로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수는 그와 친연한 대표적인 뮤즈의 한 명으로서, 둘이 교차하면서 최호종이 허리를 안고 들어 올릴 때 이지수가 팔을 벌리는 동작은, 그 전에 강인하고도 유연한 팔 동작이 얼굴과 머리로 손을 올려 감싸 안는 형국에서 일종의 고뇌와 분투의 여지가 안정과 안착의 구심으로 전이되는 부분이다.
조각적, 신화적

의자들의 편재와 그것의 현장에서의 재배치 등을 통해, 무용수들은 관조하는 자, 응시하는 자가 된다. 동시에 주연의 무대와 그 나머지 존재들이 함께 공유하는 무대로서 세계 또는 세계라는 무대를 구성한다. 다시 일어난 안유진은 두 팔을 빠르게 뻗어 내는데, 이지수와 움직임이 교차된다. 그 사이에서 유재성은 지지체로서 오가는데, 셋의 교차는 혼돈을 준다.
이후 넷의 동시 등장 이후, 네 개의 의자를 사각형의 꼭짓점들에 두고, 올라가는데, 이때 상수 안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지수, 유재성, 안유진, 최호종에 이른다. 이제 다리를 놀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지므로 또는 위태로워지므로, 가벼워진 두 팔은 빠르게 휘젓는 것으로써 변양되는데, 이 일종의 군무는 그 위태로운 균형에 따라 서로를 바라보며 ‘맞춘다’라는 느낌을 준다.
안유진은 의자를 내려와서 손을 뻗고 그것을 중심축으로 두며 이동하되, 그 손으로부터 시선을 지나치고 다시 팔을 내리고 상수로 사라진다. 이들은 뒤쪽의 하얀 벽을 보고 서며 막이 내리는데, 그것은 바깥으로의 응시이기도 하지만, 응시를 빼앗기지 않는다, 동시에 주지 않는다라는 걸 가리킨다. 곧 신들의 세계는 저 너머를 가리키는데, 인간을 초과하는 세계인 것이다.
컨템퍼러리 발레의 모던함이 주는 고아함과 역동성, 정제됨의 차원 등은 미세한 움직임의 끊임없는 조각적 결합과 매끄러운 연속의 차원으로써 도달한다. 반면, 거기에는 아래로의, 골반을 중심으로 하는 움직임의 기초가 자리하는데, 그것은 SAL의 어떤 독특한 움직임 메소드의 발현이다.
공간에의 모색과 음악과의 동조화

이는 주로 바이올린의 섬세하고 예리한 현 끝과 동조되는 차원으로 쓰이면서 그것에 대한 식별을 강화한다. 일종의 조각상과 같은 시각적 대상으로서 정적인 여지를 갖는 존재들은 번민하고 갈등하는 주체의 모습을 동시에 갖는데, 〈Apollon Musagète〉는 이 신화적 차원의 세계를 활인화적 풍경으로 각인한다.
〈APOLLO〉는 각 팀의 두 번의 분리된/독립된 무대 이후, 마지막에 만나는데, 조금 더 긴밀한 협응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브 음악과 동조를 이루는 무용의 사례가 흔치 않으므로, 이번 협업의 사례는 고무적인데, 공간에는 몇 가지 제약과 차이가 자리했다. 프로시니엄 아치가 아니며 단이 높지 않고 기본적으로 빛을 끌어오는 기둥이 있고, 로비와 이어져 있는 관계로 암전 상황을 만들기는 어려운 공간의 특성상 야외의 노천극장에 가까워졌다.
이 지점에서 SAL은 객석 통로를 활용하고, 단차를 등장과 퇴장의 다변화로 연장하고, 의자를 사용해 수직적 차원의 이행을 가져가면서 공간에의 여러 모색과 그 이동 자체를 안무의 기본적인 전제로서 두었다. 이는 신들의 위상을 정립하고 그사이의 차이를 현격화하는 한편, 세계 자체를 (무대 위의) 무대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마도 극장이었다면,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들어가는 연주단을 통해, 둘이 공존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는 불가능했을 부분도 있다. 하수 가에 위치한 발트앙상블과 함께 공연은 넓게 퍼져 자리했고, 이 공간 자체를 모색하고 지시하는 차원에서 움직임의 역사가 쓰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SAL은 연주를 전제하고 선명하게 구성되는 움직임들의 특성상, 다변화와 세분화의 안무를 시도하여 음악과의 협응적 차원을 모색했다고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
2026년 8월 2일(일) 오후 7시 30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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