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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지영, 〈지진: 러브웨이브〉: 실존적 진동
    REVIEW/Dance 2026. 8. 29. 21:38

    실존적 숨

     

    우지영, 〈지진: 러브웨이브〉©옥상훈[사진=크리틱스초이스댄스페스티벌](이하 상동).

    〈지진: 러브웨이브〉에서 제목과 같이 지진의 러브파를 나타내는 건 처음 하수 아래로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길게 가로축으로 뻗어 나오는 것보다는 이후 상수에서 하수로, 동시에 하수에서 상수로 무대 좌우 축을 이으며 신체 상단 높이로 결정되는 조명이 결정적이다. 또한 후반에는 하얀 종이들이 천장에서부터 낙하하며 공간에의 요동을 공간의 파동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도 그에 부합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진의 초재적인 힘은 첫 장면에서와 같이 한 개인의 심리적인 차원과 결부되는 것이며,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직접적 주의를 기울이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내면의 진동이며, 그의 바깥으로 드러나면서 그에게 물리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환상적 차원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간의 차원을 전환하는 효과로서 작용한다. 이른바 실존적 사태를 초래하지 않지만, 실존적 사태에 대한 특수한 가시화로서 자리한다.

     

    그러니까 “지진”이 단지 은유적 차원에서 동원되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환유적 차원에서 물리적 효과를 심리적 차원으로 재전환해야 할 때, 곧 지진을 경유하여 그것을 은유로서 갈음지어야 할 때, 명확한 전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관된 건 표정이다. 갈급하고 다급하며 타동적인, 심리적으로 고초를 겪는 이 심각한 표정의 상태는, 세계의 (의사) 위기보다 더 견고하며 그것으로부터 닫혀 있다―견고하게 닫혀 있다.

     

    이 풀리지 않는 표정은 무트댄스 정단원이기도 한 우지영에게는 기본 호흡의 초석에 부합한다. 그것은 숨으로써 일관된 신체를 주조하는 신체 운용법 자체일 수도 있다. 후반에 내려오는 종이들의 긴 구문은 외화된 숨이며, 신체 외재적 차원에서 신체 내재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요동치는 신체, 정지하듯 하며 움직이는 불안정한 숨의 가시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출구

     


    첫 장면,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들고 손을 뻗고 하며, 하나의 통로를 기어 나오되 정체된 듯 느릿하게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오는, ‘제4의 출구’를 기점으로 함으로써 정면성에 입각하게 되는 장면은, 붉은빛에 싸여 명확하게 분별되지는 않는다. 이후, 수평으로 그어지던 선분은 점차 확대되며 무대 상수, 하수의 문 사이로 네 개씩의 붉은 조명들로써 확대된다.

     

    이 빛이 존재의 뒤쪽에 위치하며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일자의 심리적 차원을 드러내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지진의 효과는 음악의 박동이다. 이는 군무의 앞으로의 전진, 그리고 에어로빅 같은 힘 있는 리듬감의 산물로서 체현된다. 또한 세로축의 선이, 중앙 부의 두 세로축의 선들로 대치되며, 중심축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로써 그 안에서의 등장은 패션쇼의 런웨이랑 비슷해지게 된다.

     

    그리고 좌우 축으로부터의 횡단에도 안정적인 지대로서 효과를 갖게 된다. 이는 마치 처음부터 환영적 산물인 듯 음악의 변화 없이 즉각 사라지고, 음악은 박자만을 남기게 된다. 음악이 사라지면서 숨을 토해내고 신음이 들려온다. 이때 한 명이 눕고, 각종 마찰음과 함께 종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물방울 소리와 게임의 효과음이 뒤섞여 들리는데, 이는 서사 자체가 결락되거나 과잉되어 있는 순간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연만을, 인공적인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뒤쪽의 일자형 붉은색 조명이 켜지고, 기타 연주와 함께 박진감 넘치는 음악으로 전환된다. 이때 존재들의 움직임은 헤쳐나간다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수없이 떨어지는 종이들을 배경으로 한 움직임은 그 자체로 전경화된다. 행위성에 입각한 몸짓은 종이를 직접 다루는 몇몇 예외적 순간을 제하면, 그 사물성의 흐름 자체를 이미지로만 전제하는 가운데, 그 흐름이 정위할 수 없음의 기호로서 연장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진동하는 내면, 그리고 개인으로 소급되는 실존

     

    곧 중심적이지 않은, 흔들리고, 유동하고, 강인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불안정한 존재들은, 모두 이 흩날리는 종이 자체를 체현한다. 여성의 임신이 개인의 신체적 변화뿐만이 아니라 경력 단절의 미래를 불러올 수 있는 것에 대한 여러 우려와 고민 등이 이 작품에 전제가 되었다면, 사실 작품은 페미니즘적 차원에서 조금 더 사유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다만 이는 실존적 차원에서만 갈음되고 증폭되고 있는데, 그것은 신체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가운데, 개인적인 차원을 신체적인 것으로 소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것에 어긋나는 개인적인 신체가 만들어진다. 이는 사회라는 세계로 나아가는 경로를 차단하는데, 이른바 실존주의 미학의 작업이 갖는 가능성-한계의 차원 아닐까.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절대적인 것이라 혼동하고, 신체적인 것이 전적으로 개인을 형성한다고 착각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체적인 것을 특수화하는 대신 단순화한다. 그 반대는 신체와 개인에 주석적이고 비판적인 시점을 배가하고 개인적인 것을 상대화하며 또한 신체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해방한다.

     

    〈지진: 러브웨이브〉는 여성 한 개인의 실존을 표현하는데, 그것의 특수성은 세계의 축 자체가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 장면은 종이의 펄럭임이며, 무엇보다 특수한 건 그것이 진동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거겠다. 그런데 그것이 심리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라면, 여기서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닌 환상의 차원에 입각한 세계로 한정 지을 수 있을까.

     

    역으로 다시 묻는다면, 그것의 은유가 환유적 조각으로써 드러남이 그것의 심대한 실존적 차원을 표지할 때, 이는 최종적으로 심리로서 전이될 수 있을까. 다시 나아가 본다면, 사회적인 것, 외부적인 것을 도입하지 않을 때, 복잡성의 내면은 어떻게 그 바깥을 담보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이 강렬한 지진의 여파는 어떻게 그 심리를 담지해 내는 것일까.

     

    김민관 편집장

     

    8.1(토) 19:30/8.2(일) 19:3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기술감독 이도엽
    무대감독 이유성
    무대미술 김종석
    조 명 김민수
    옥상훈
    음악 목기린
    출연 조혜정 조상희 오승희 강소정 유다빈 김서연 강다연 배수현 홍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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