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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강프로젝트, 〈기초무용: 신들의 극장〉: 환상성 너머 안무의 공식
    REVIEW/Dance 2026. 9. 13. 19:51

    사물로서

     

    최강프로젝트, 〈기초무용: 신들의 극장〉©김신중  [사진 제공=최강프로젝트](이하 상동).

    〈기초무용: 신들의 극장〉(이하 〈신들의 극장〉)은 진동하는 신체 양상을 기초로, 주변의 사물들과 접목해 움직임을 확장해 간다. 움직임의 기초가 되는 건 몸의 떨림이며, 극장을 구성하는 건 다양한 사물들이다. 이는 ChatGPT와의 대화를 통해 동시대 무용의 이념을 살펴보는 전 작 〈바람과의 대화〉(2025)의 실험 이후, 다시 그 직전 〈기초 무용: 기적의 공식〉(2025)의 계열을 이어 간 것이다.

     

    “일상 행위”들을 ‘기초’로 삼아 언캐니한 변용을 이뤄내는 과정을 보여주던 전 작에 비해[각주:1], 〈신들의 극장〉은 조금 더 사물과의 관계성 자체에 몰입하는데, 이는 사물 주체성의 측면이 두드러지기보다는 사물로서 신체의 차원이 전면화되는 것에 가깝다. 정서적이지 않고 비의식적이며, 비의지적이며 나아가 반주체적인 신체는 일종의 사물로서 감응된 단계를 보여준다.

     

    사물이 신체로부터 연장되는 게 아닌, 신체가 사물로 연장되는 가운데, 신체와 사물의 관계는 어떻게 재정립된다고 할 수 있는가. 신‘들’, 곧 범신론적이거나 애니미즘적 사고로써 〈신들의 극장〉에 접근해 본다면, 인간의 가능적 지위 대신에, 인간의 축소된 지위가 안무의 차원에서 다른 출발선상을, 주체성을 담지할 수 있을까. 이는 의식-무의식의 표층-심층의 도식이 아닌, 다른 의식, 무용하고 탈의식적인 상태와 친연해 보인다.

     

    여기서 사물은 도구로서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쓰이지 않으며, 예컨대 하이데거의 용재성(Zuhandenheit; 손안에 있음)과 반대로, 사물 안에 내가 있음의 상태로 전도된다. 최민선이 노끈을, 강진안이 맥주캔을, 류지수가 전동 드릴을 각각 한 손에 들고 있을 때, 그것은 사물을 지지하고 있는 신체 자체에 방점이 찍힌다. 움직임이 사물이 쓰이기 위한 경로의 한 부분으로서 추출되는 게 아니라, 사물과 신체가 하나로 연결된 순간 자체가 영원화된다.

     

    사물에 근접해지기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의 오페라 《노르마》 1막 중 〈정결한 여신〉의 사운드 온/오프는 강진안의 첫 독립 움직임에, 최민선, 류지수의 등장이 차례로 이어지며 더해지는 가운데, 떨림의 움직임 자체를 제어하지 않고서 단속적으로 분기된다.

    음악은 움직임을 끊어내지 못하며, 움직임은 음악의 지속과 상관없이 계속된다. 음악은 사물화되며 의식 차원에 개입하지만, 이것이 떨림의 고착된 속성을 지워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허구적이다.

     

    떨림은 형태 안에서 공명한다. 곧 떨림은 형태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형태의 유지 속에서 그 형태에 고루 편재된 양상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사물(의 구체성)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그 사물에 어떤 유동하는 리듬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되는 구획 바깥의 온갖 사물들은 대체로 초록색 채도가 높고 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기성품들인데, 이는 공통됨을 오로지 그 초록색 스펙트럼 안―연두~진초록―에서만 취한다.

     

    음악이 사물의 진동을 연장하는 신체의 움직임에 대한 규칙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반대로 사물적 차원에서 음악을 포함시키는 것이라면, 그럼에도 음악이 오프된 상황에서 떨림이 끝난다는 것, 곧 떨림의 비유로서(는) 음악이 존재하지만, 새로운 움직임을 집합적으로 도모할 때, 그것은 의식적 차원이 지배하는 것이며, 또한 지배할 수 있는 간격이 주어졌음을 의미할 것이다.

     

    사물은 처음 모사로써 ‘근접’해진다. 에어갭 봉투를 뒤집어 깐 것을 강진안이 옆에 두자 최민선이 그것과 같이 포즈를 취하는데―골반을 벌린 채 쪼그려 앉아 바닥 면으로 넓어지면서, 두 손을 얼굴께로 들어 유선형의 곡선을 상정해 안을 뒤집어 깐 것 같은 모양이다.―, 그것을 눕히고 달라진 자세로써 그것에 또한 근접해지면서, 놀이의 법칙을 이어 나가는 것 일련의 과정에는 분명 일종의 문법이 있다.

     

    수행적인, 반연극적인

     

    또한 이 모든 건 당연히 적확한 구성의 흐름 안에 있는데, 사물의 양상을 보지 않고 그것이 재현되는 순간 직후에 그것을 행하는 것이 그러하다. 최민선의 시선은 무심하게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사물에 시선을 주지도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는 (반응하는 간극을 삽입하는) 것으로써 연극적 차원의 수행 구문의 완수라는 놀이의 차원으로 의미화될 수 있는 지점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그런데 이로써 주체의 행위가 순간 (의식으로서) 깃드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공작이 평행하게 주어지며, 사물-사물의 계열, 곧 시뮬레이션 용도의 사물과 형상기억합금 사물의 의미 지형으로 전화되게 된다. 프로토타입의 예시와 역량을 갖춘 본체의 차이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프로토타입을 갖다 놓는 이의 (인간학적) 매개 역시 은폐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떠밀리게 된다.

     

    이러한 의태로서 놀이―일종의 미러링이기도 하다.―는 초록 테이프를 가져오면서 한층 더 정교해지는데, 최민선이 테이프 끝을 바닥에 붙이며 뜯어낼 때 강진안은 무릎을 땅에 붙이고 허리를 깊이 숙여 머리를 풀어헤치고 팔을 몸쪽으로 말아, 가장 바깥쪽에 머리 끝을 두며 얇은 면에 근접한다.

     

    그리고 테이프 붙인 부위로부터 테이프 전체를 떼어 내 그 옆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앞에서처럼 위치시키자, 강진안은 자신의 안경을 벗어 앞쪽에 두고 자리함으로써 신체+보족물의 분기점(으로서 신체성)을 재갈음한다. 사물들의 아상블라주 차원은 하나의 신체를 더 동원한다. 테이프 사이에 낀 페트병에 대응하는 건, 강진안과 바닥 사이를 파고들어 떠받치는 류지수의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아상블라주로서 구성

     

    고도의 결합, 곧 아상블라주의 정점은 초록색 사다리 선반을 앞쪽 다리 한쪽을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 상자를 뒤집어 받치고, 뒤쪽 철제 다리 두 짝을 밑에 하얀 원통 위에 초록색 종이컵을 거꾸로 올려 부착해 둔 지지대 위에 세워 구조적 토대를 아슬아슬하게, 애드호키즘적 양식으로써 일시에 구성한다.

     

    앞선 우유 상자 다리 한쪽에는 개구리 모양 자동 비눗방울 분사 장치를 두고, 프링글스 곽을 세로로 세워 두고, 가장 위쪽에 서양배 모양의 방향제를 두고, 중간 칸막이에 책을 세워 꽂는다. 이로써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고 잡힌 상태에서, 비눗방울이 분사되고 무대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간다. 비눗방울 근처에 바람을 더해 그것이 무대 전체로 확장된다. 이는 ‘신들의 극장’이 다수성과 구체성의 집약으로 비로소 결정되는 순간일까.

     

    에어 서큘레이터를 하늘 쪽으로 향하게 위치시킨 이후, 강진안은 원통형 청소기의 노즐을 빼서 그 사이에 위치시킴으로써 두 개의 바람이 만나는 것이 비눗방울을 경유해 가시화된다. 최민선은 페트병 안에 역시 초록색 조명을 비추며 액체의 진동을 표식하는데, 그것은 암전 이후 남는 마지막 효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뒤집어 깐 봉투 자체가 형광이었던지라 그것 역시 마지막까지 시각적 효과를 발산하게 된다.

     

    앞선 전동드릴의 작동에 따른 소음은, 그것을 연상시키는 “드드드~” 하는 의성어 차원의 소리를 리듬으로 변주하는 음악 안에서, 작은 실재의 덩어리로 간헐적으로 조응한다. 사실상 기계 작동의 프로세스 안에 집단적 종속이 일어나면서 비주체의 행위성은, 사물을 다시 주체의 손에 있게 되고, 이 사물들을 다루는 분주한 몰입적 주체의 행위로 변모한다. 앞선 사물의 의태 역시 몰입적 지각의 한 부분인데, 이는 몸 자체가 사물에 근접하면서 얻어지는 지각이다.

     

    환상성 너머

     

    〈신들의 극장〉은 사물로서 비워진-충만한 몸, 사물을 의태하는 지각의 몸, 사물로서 세계를 구성하는 몸과 세계를 이뤄 가는 사물의 병존이라는 단계를 밟아 나간다. ‘기초무용’의 프로세스를 노출하면서 사물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 합성되며 어떤 구분 불가능한 경계를 이뤄 간다는 점에서, 금배섭의 공작식 안무와 비교 가능한 측면이 있다―앞선 클라이막스는 가령 〈누수〉(2025)에 비견된다[각주:2].

     

    가령 금배섭 안무작 〈누수〉가 잠재된 서사의 차원을 상정하고 그것을 향해 쌓아나가는 지점에서 물리적 공작이 허구적 환상을 충족시키게 되는데, 이때 역시 본연의 서사 내재적 차원이란 건 없으며 사물 내재적 차원에 잉여의 어떤 서사가 들러붙는 형식이 된다. 여기에서 지각의 상태는 사물(적 신체) 자체를 오히려 순전하게 향하고 있으며, 서사는 해석의 영역을 결부시키는 가운데 2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두 작품은 비슷하면서 2차적 사고의 측면을 배제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을 가질 뿐이다. 이 지점에서 〈신들의 극장〉은 제목상 서사를 함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물리적 공작 자체가 안무의 단지 기초를 이룬다는 지점에서 충분히 응결된다. 그러니까 사물을 다루는 것은 움직임의 기초로서 기입되며, 움직임의 기초를 재위치시키는 것이 된다.

     

    그 기초는 사물이 어떤 환상성의 세계 자체를 구성하면서 그 자체로 자족적이게 되는 것을 어느 정도 경계하는 것으로써 마련되며, 기초적인 몸짓들이 어떻게 신체 자체를 (재)의태하게 되는지를 검토, 검수할 때 기초무용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사물들의 공화국은 사물들이 의식을 지닌 주체로 부상하는, 어떤 (유일)신적 개념이 연상시키는 그런 개념이 결코 아니라, 사실은 사물과 신체의 어떤 하나의 토대를 가설하는 것, 사물처럼 단순하면서 지속하는 것의 연장으로서 신체 움직임의 감축과 동시에 강도적 확장을 하나의 기초로 구성하는 일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2026-08-28 금요일(19:30),  2026-08-29 토요일(15:00)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

    소요시간 50분

     

    안무•출연: 강진안, 최민선  
    공동 리서치•출연: 류지수 
    사운드디자인: 고요한 
    조명디자인 : 공연화 
    그래픽디자인: 전용완
    무대감독: 조은진  
    기록사진: 김신중 
    기록영상: 슈가솔트페퍼  
    프로듀서: 이보라미 
    주최, 주관: 최 x 강 프로젝트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1. 1. “하나같이 일상 행위들을 기저에 두고 있는데, 이는 그 행위들을 탈문맥화하여 전용하는 과정에서, 파편적 단위로 절취해서 일정 단위의 반복 구문으로 다시 행해지며… 재현 가능한 또는 포착 가능한 지점에서 그 행위들을 일상으로 되돌려 보낸다.” 김민관, 「최강 프로젝트, 〈기초 무용: 기적의 공식〉: 비인간(으로서)의 틈새」, 《몸지》 2025.09. [본문으로]
    2. 2. “두 남자가 정좌한 무대 안쪽에서 양쪽 가로부터 붙여 나간 비닐을 들어 올리고 거기에 부채로 바람을 불어넣자 순식간에 그것은 “방울산”으로 증폭다. 두 남자 사이에 여자가 서서 부채질을 하며 종을 울리는데 이는 후반부의 뒤늦게 나타나는 장면이다. 소리의 “파동”이 산으로 체현된다”, https://www.artscene.co.kr/20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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