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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섭, 〈바흐〉: 음악, 인형, 사물의 아상블라주REVIEW/Dance 2026. 9. 8. 13:33
인형극과 같은…

금배섭, 〈바흐〉[사진 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이하 상동).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Violin Sonata No. 1 in G minor, BWV 1001, 1720)를 박진수가 현장에서 연주하는 것에 맞춰 움직임을 쌓아가는데, 이는 주로 하얀 셔츠와 바닥에 평행하게 붙인 하얀 테이프 두 선을 차례로 존재적 차원에서의 지지체로 삼아 다양한 2인무를 펼쳐 내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때 대상의 존재적 부상은 거꾸로 존재의 대상적 차원의 지지체로서 변모에 근거를 둔다.
이는 일종의 인형극적 차원의 외양을 띠고 있으며, 금배섭은 사물의 존재화를 추동하면서 동시에 인형 조종자의 외양 대신에 그것과 함께 거주하는, 그러니까 어떤 특별한 조작의 행위, 그것에 배가되는 몸짓의 특수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하나의 쌍을 이루는 것에 가깝다.
가령 와이셔츠와 하수 앞 끝 쪽의 두 테이프 끝을 각각 와이셔츠 팔 한 쪽씩에 감아 붙인 뒤 그것을 걸치고 다시 반대쪽으로 이동할 때, 테이프-와이셔츠는 금배섭을 물리적으로 경유해서 금배섭을 이미지적으로 연장한다.
사실상 와이셔츠의 두 팔과 쪼그라든 두 손이 테이프를 붙잡고 뜯어내고 있는 형상에서, 금배섭은 기괴한 이미지로의 포섭 작용 아래 있으며, 실은 그의 2인무는 테이프가 아니라, 자신의 몸 위에 덮인 와이셔츠와 직접적으로 내통하는 것이며, 일종의 그림자 외양을 입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그 접지의 차원에서 와이셔츠와 몸의 유격을 조금씩 떨어뜨리는 차원이며, 실은 그것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실제 와이셔츠에 두 팔을 끼우지 않고, 그는 살짝 뒤로 하며 팔을 내리고 있고, 두 발의 스텝이 테이프를 뗄 때의 장력을 지탱하게 된다. 그는 인형을 직접 조작하는 대신, 그 자신이 인형이 되며, 그것을 지탱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조금씩 탈구되어 간다. 그것은 물리적이고도 이미지적인 변화를 동반한다. 그것은 이미지이면서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축시키는 과정으로, 실은 물리적 변화 자체일 뿐임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음악-사물적인

폴대에 비끄러맨 줄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폴대 자체가 바닥의 줄을 당겨오는 이 뒤집힌 이미지는, 그저 와이셔츠를 손 안 대고 벗는 기술이기도 하며, 거기에 응결되는 이미지는 그야말로 이미지 생성의 메커니즘에 따라 붙는 분석 가능한 이미지 경로를 따르기 때문에 그 이미지적 조작과 혼동을 상징적으로 처리로 환원시키지 않아도 된다, 또는 상징적 차원으로 해석해야 할 의무로부터 벗어난다는 점이 곧 금배섭의 안무 지형이 갖는 특이점이겠다.
테이프-와이셔츠-신체의 아상블라주적 조합이 실시간으로 일으키는 물리적 변화, 테이프가 뜯어지며 걸쳐 입은 와이셔츠가 헐거워지는, 모든 작용이 유동하는 지표로서 검출된다. 인형의 얼굴은 금배섭이며, 금배섭의 얼굴은 인형의 신체로부터 추동되어진다.
이것이 첫 번째 이미지적 공작이라면, 무심한 인형의 이 얼굴은, 실은 허공에서 줄을 잣는, 일정하게 당겨오는 물리적 공작의 차원을 성사시키(려)는 집중의 차원에서 (그것을 감축하면서) 획득되는 얼굴이다.
실상 이러한 이미지 처리가 더해지는 건 음악이 갖는 특정성 때문으로, 미묘하고 섬세한 음의 변화, 파동의 차이 등을 몸으로 온전하게 구체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테이프의 흩날림을 조작하는 행위, 두 선의 테이프를 맞잡고 흔드는 행위는, 그 기다란 테이프의 허공에서의 역동적인 떨림과 변화로써 그 음악에 응전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때 주체의 그보다 덜 유동적인 행위, 투박한 행위는 대상의 격렬한 차이로의 연장됨을 위한 정도로의 격렬함만을 취한다. 그것은 물아일체의 한 경지이지만, 그 스스로의 움직임이 특정하게 미학적 제스처로 환원되지는 않으며, 조작의 합목적성 아래 테이프-인형의 시발점으로서 전제된다. 그것은 단순히 복잡하게 테이프를 조작하는 한갓된 행위이지만, 그 테이프의 요동으로부터 재소급되는 인형 자체로서 현격화된다.
움직임으로서 행위

실제 〈바흐〉는 행위에 의해 정초되며, 움직임은 행위와 양립한다. 테이프나 와이셔츠를 조작하는 행위가 춤이다. 하얀 마스킹 테이프를 들고 온 금배섭은 이를 무대 하수 앞쪽 바닥에 일부 붙인 후 상수 안쪽으로 향하는,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두 개의 선을 만드는데, 이는 가장 긴 경로를 만들기 위함이다. 테이프를 붙일 때 역시 왼발로 다리고, 오른발 끝으로 따라붙는 허공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외양이 흥미롭다.
하수 두 선분의 끝점에서 안쪽으로 꺾어 테이핑하여 시그마 기호 같은 모양이 형성되고, 금배섭은 위에 걸친 와이셔츠를 벗어 접기 공작을 통해, 버섯 모양의 위가 반구, 그 아래로 삼각기둥으로 내려오는 두 개의 입체 도형이 결합된 형태의 인형을 빚어 두 손을 그 연결부 사이에 넣고 들어 올린 채 주로 굴신된 무릎의 지지 아래, 수직 운동의 궤적을 밟는다. 이를 펼치자 와이셔츠의 두 손을 맞잡고 춤추는 형국이 된다.
또 그 뒷덜미를 물어 정면의 마주함이 아닌, 등에 맞닿는 그리고 상대방은 고개를 숙이는 형상에서 춤춘다. 이후 자유로운 몸으로 흩뿌리듯 두 팔을 양옆으로, 위아래로 뻗는다. 이때 털어내는 이 움직임은 앞서 흐물거리는 두 와이셔츠의 팔을 의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시 하수에 이른 금배섭은 안쪽으로 꺾어놓은 두 테이프 끝으로 와이셔츠 두 팔 끝을 감아 봉해 두는 공작을 벌인다.
이제 그걸을 다시 걸쳐 한 몸이 되자 앞선 인형 팔을 지닌 금배섭의 무심한 듯 손 안 대고 테이프 일정하게 뜯어내기의 경로가 가설된다. 공간 중간쯤 왔을 때 그는 스피커 위 고리에 옷 끝을 연결해 큰 키의 기다란 두 팔이 중앙 끝점의 선을 든 형국이 만들어진다. 이는 바로 자유로워진 몸이 상수 쪽의 끝 선을 한 번 꼬아 중앙 바닥에 붙여 하수 쪽으로 가져오면서 그 떠 있는 선을 좌우로, 두 손으로 잡아 하나의 꼭지점을 더해 연결된 두 직선의 긴장을 탄력적으로 조율한다.
서사적 음악

하나의 꼭지점에서 두 개의 꼭지점으로 이동할 때 모두 직선의 경로는 유지되고, 얇은 테이프는 흐물거리는 수많은 떨림을 그 안에 가로놓는다. 그리고 이것이 음악의 파동임은 말할 것도 없는데, 그는 다시 꺾임을 풀고 테이프 끝 선을 잡고 가장 긴 직선의 차원에서의 파동을 조심스럽게 시현한다, 그것에 직접 떨림을 손 끝에서 바닥 끝으로 점진적으로 이전시킴으로써 말이다. 그리고 두 팔을 역동적으로 위아래로 움직이며 테이프 전체가 휘적거리면서 춤을 추는 광경으로 요동하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먼저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가 퇴장한 후, 징과 북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온다. 이 소리와 금배섭은 일부 맞물려 있는데, 그의 퇴장 후에도 음악이 이어지면서, 앞선 스피커에 걸린 와이셔츠 인형의 존재가 처음으로 초점화된다. 그러니까 두 번째 음악이 갖는 극적 효과는 음악에 금배섭이 걸려 있다는 것, 곧 클라이맥스가 빈 무대 이후의 여운이라는 클리셰적 절차를 깨었다는 지점에 있다.
음악은 금배섭의 빈 행위와 함께 마지막을 ‘선취’한다. 금배섭은 마지막을 예기한다. 마치 와이셔츠 인형은 금배섭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이 텅 빈 초점으로부터 모든 것이 사라진 부재의 영점이 충만해진다. 그리고 이 음악은 또한 줄타기에 대응하는 몸짓 단서에 대한 해소이기도 하다―이전 작업(2024)에서는 테이핑 과정은 생략되고, 그에 맞춰(?) 제2의 음악이 출현하지도 않는다, 곧 모든 움직임은 바흐 음악과 온전히 동기화된다.
〈바흐〉는 풍선 인형처럼 떨리는 외양을 통해 주체의 위치를 이전한다. 사물에 자신을 양도하며 주체성은 초점화되지 않으며, 비주체성의 신체는 사물 자체이거나 사물의 중간에 자리한다. 이것은 인형을 조작하는 자의 무심함을 닮아 있는 한편, 인형-와이셔츠 자체를 걸치는 행위로부터는 신체는 탈구되고 인형과 주체는 상호 배합되기에 이른다.
또한 금배섭은 테이프로써 음악의 파장을 연주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금배섭은 사물적인 것으로써 음악적인 것을 체현한다. 그는 음악 안에 (서사적으로) 있기보다 (음악을 즉물적으로 매만지며) 함께 있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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