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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호빈, 〈생각하는 새 Ⅱ_스승과의 대화〉: 깨달음 혹은 여성적인
    REVIEW/Dance 2026. 9. 13. 19:50

    연극적/연결적 장면들

     

    박호빈, 〈생각하는 새 Ⅱ_스승과의 대화〉[사진 제공=창무국제공연예술제](이하 상동).

    〈생각하는 새 Ⅱ_스승과의 대화〉(이하 〈스승과의 대화〉)는 혼자 다도를 하는 존재―박호빈―의 존재론적 차원의 변이되는 경로를 따라 가는 차원에서 연극적인데, 이때 가상의 존재인 스승은 물리적으로 부재하나 정신적으로 남자를 사로잡는 중요한 존재로 부상한다. 이는 독송하는 소리가 지배적으로 부상하는 것과 맞물려 한편으로는 집착과 번뇌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수도의 과정으로써 스승의 이미지, 스승의 지배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가 다도를 하다 그곳을 이탈해 다시 다도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은 변증법적 이행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지배적 차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에서의 지난함과 고통의 과정을 동반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스승의 자리에, 차를 쏟아버리면서 스승을 모욕하고 물리치는데, 하얀 방석은 빨갛게 물든다. 곧 직선으로 떨어지는 물로 스승을 모욕하기보다 마치 그 투명한 칼로 스승을 배어버리는 것인데, 그것은 적확하게 스승을 죽이는 것이다.

     

    남자는 수도를 하러 들어가는 모습을 여행자의 모드로 설정한다. 수트케이스를 들고 한쪽 끝이 찌그러져 있는 대접, 곧 일종의 숙우를 들고 무대 중앙으로 등장한 남자는, 대접의 파인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갖다 댄 후, 얼굴께로 들고, 정면을 보며 씩 웃으며, 상수 안쪽에 깔린 두 개의 흰 방석으로 이동한다.

     

    사이 혹은 새

     

    이때 희미하게 소극과 같은 양상이 벌어질 것 같은 낌새가 새어 나오는데, 동시에 얼굴만한 대접과 싱크가 이뤄지며 존재와 사물이 교환되면서 사물이 또한 존재화되는 그 순간은, 그것과 조응할 존재의 차원을 궁구하게 하는 미래적 단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는 생명 존재만이 아닌 사이를 의미할 것이고, 그것은 생각이 발동하는 지점을 가리킬 것이다.

     

    중의적인 차원에서 가늠되는 ‘새’는 생각의 긍정성, 생각의 날갯짓, 부상에 대한 메타포로서 재결착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변화나 전이가 일어나는 잠깐의 순간, 그러니까 인식론적 변화가 존재론적 변화이기도 한 어떤 순간이 도래한다. 곧 나의 생각의 변화 이후와 물리적 세계의 변화가 새롭게 관계를 맺을 것이다. 영어 내레이션은 커질수록 작아지는 어떤 것이 무엇인지를 화두로 꺼낸다.

     

    수트케이스를 옆에 두고, 다기를 꺼내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따라 차를 추출하여 스승과 나의 자리에 한 잔씩을 올리고 하는 일상의 실제 행위에서 연장되는, 양반다리에서 종교적 수행의 여러 동작이 분절되어 이어진다. 이는 가상의, 환상의 차원에서 한층 확장, 증폭되는데, 무대 중앙에 다다른 남자는 어둠 속에서 독송 혹은 주문을 외는 소리에 맞춰 허공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번뇌 이후

     

    두 팔을 교차시켜 태극 도상을 만든 후, 그는 무대 하수 쪽 한복판 벽에 조명이 비정형의 도형으로 맺히는 가운데, 그것과 떨어져 실루엣으로 움직이다 마침내 그 안으로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히 미끄러져 가는, 축 늘어지는 모양새를 여러 차례 취한다. 휘청거리는 존재는 그로기 상태, 의욕을 잃은 무기력한 상태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거꾸로 긍정성으로 전화되기 위한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이에 겪는 번뇌가 극중극처럼 삽입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는 생각의 날갯짓이 물꼬를 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스승과의 대화가 획득하는 건 스승의 말(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사실 모든 건 기억의 차원, 수도의 차원에서 사상과 이미지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이 실재로 변환하는 효과는 죽음을 상기시켜 주며 죽음의 자리를 그야말로 고정시킨다.

     

    이 지점에서 스승의 죽음은 불가사의한 효과를 남기면서 하나의 차원을 덧붙이는 듯 보인다. 곧 여성적인 것을 상기시키는데, 실은 거기에는 어떤 남성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시선과 수직적 도상으로부터의 지배, 남근적이지 않고 여성의 생리나 하혈에 관계된 감각, 죽음은 그 자체의 시각적 효과로 고정되는 대신, 여성적인 것의 탄생과 같은 효과를 의도치 않게(?) 드러낸다. 그리고 〈스승과의 대화〉는 이 지점에서 분명 가장 강렬한 동시에 독특한 잔상을 남긴다.

     

    김민관 편집장

     

    2026. 08. 24. 월요일 7:30pm
    창무포스트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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