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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간극장, 〈인제, 너에게, 이제야〉(조문정 작가, 박서현 연출): 부재를 메우는 형식
    REVIEW/Theater 2026. 9. 13. 19:53

     부재 너머의 삶

     

    야간극장, 〈인제, 너에게, 이제야〉(조문정 작가, 박서현 연출)[사진 제공=아르코예술극장](이하 상동).

    〈인제, 너에게, 이제야〉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사라진 청년 승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고자 하는 강일에 의해 승훈의 가족과 주변 사람 등등이 소환되면서 인터뷰 촬영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승훈이 사라진 “이유”를 찾고자 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표면적 이유는 후반에 이르러서야 강일 스스로가 그가 마주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인터뷰이로 입장을 선회함으로써 그의 내면을 성찰하는 것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승훈의 주위를 맴도는 이 같은 행위는 사실상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닮아 있으며, 승훈의 현재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곧 그의 동기를 전적으로 추정할 수 없으며, 나아가 그의 동기가 있었는지 자체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와의 관계가 중단된 것에 대해 외부적으로 해석해 낼 수도 없지만, 내재적 차원으로 접근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와의 마지막 순간으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 이외의 경로는 닫혀 있다.

     

    그의 전 여자친구 여은이 “왜 사라졌는지”가 아니라 “왜 돌아왔는지”를 묻고자 하는 건 마치 승훈이 어쩔 수 없이 이 세계를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릴 수 없었던 피치 못 할 사정을 가정하는 대신, 영원한 이 세계로부터의 사라짐을 응당 더 적극적으로 그 자신에게 요청하고 결정했음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과거가 아닌 현재, 곧 다시 세계로의 새로운 접지가 그 반대의 차원에서 능동적이고 또 적극적으로 선택된 것임에서 긍정성을 피어올리게 된다.

     

    승훈은 다른 세상에 자리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그가 들었던 교양 수업으로서 “양자역학”이라는 ‘단서’가, 승훈을 둘러싼 세계를 승훈의 세계를 보는 관점 자체로 연장해 재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여할 때 더 분명해지며, 승훈이 불가피하게 떠남을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그를 보거나 보지 못하는, 마찬가지로 그가 우리를 보거나 보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단지 시차적 착오를 겪는 것 아닐까.

     

    이유로써 봉합되는 존재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아니라 승훈의 관점에서만 풀 수 있는 문제라면, 곧 승훈이 하나의 검은 점을 수업 과제로 제출한 것과 같이, 그의 세계가 하나의 결정된 지점에서 멈춰 있기보다 응축되어 모든 것이 구분 불가능한 것에 속하는 것이라면, 현실의 의미는 그 지점에서 멈추어 있기에 그것을 과거로 지나쳐 온 우리가 단지 그의 현재를 볼 수 없는 것이라면.

     

    마치 〈인제, 너에게, 이제야〉는 그런 지점에서 의뭉스럽지만, 우리의 관점이 덜 밀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역설의 알레고리를 전달하는 듯하다, 부재에 대한 애도의 차원과 유사하지만 다른 계열을 걷는 것이다. 그것은 승훈의 사라짐은 어떤 원한감정이나 부당한 압력과 같은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것과도 조응된다. 그런데 “이유”라는 것은 우리가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당위정 같은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인제, 너에게, 이제야〉는 존재의 이유 자체를 찾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승훈(의 사라짐)은 맥거핀이며, 그것의 이유를 찾는 강일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이유는 추적하여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부재 자체에 다가서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 자체를 직시하는 데 있다.

     

    그 이유라는 것이 타인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충동을 마주하는 것이라는 것은 실은 승훈이 하나의 명목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자신을 집어넣음으로써만 이 다큐멘터리는 자기 스스로를 시작으로서 기입하며 완성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유로 특정되기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잠재된 차원이며 다큐멘터리 그 모든 것의 원인이다.

     

    카메라 바깥에서

     

    카메라 모니터로 들어오는 화면은 별도의 프로젝션으로 전면 막에 투사되는데, 그 카메라가 향하는 곳에는 승훈이 앉아 있고, 아마도 카메라는 별도의 조작 없이 켜진 상태로 오퍼석에서 제어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영상이 들어오면 승훈과의 과거가 상연된다. 영상은 확고하고도 예외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재생하는 매(개)체로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는 카메라라는 매체가 가진 애도의 차원(이 지닌 환영성)을 함께 드러낸다.

     

    마지막 카메라를 (승훈의 명령 체계의 연장에서 세혁이―이때 세혁의 차원이 거의 부각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점점 줌아웃해서 강일에서 강일-승훈으로, 다시 수진의 옆모습까지를 잡아내기에 이르러서는 그가 승훈을 언제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리라는 고속터미널이라는 이전의 장소를 그러나 독립적으로 새롭게 포획해 내는 결과에 이른다.

     

    이는 의도치 않게 하나의 카메라를 사용한 결과(에 대한 전적인 혼동으)로, 사실 카메라의 역능을 지닌 승훈 아래 포착된 수진의 미래적 현재를 우리가 보는 걸, 두 개의 영상으로 쪼개지 않는, 더 정확히는 두 개의 카메라로 쪼갤 수 없었던 탓이다―그러니까 하나의 장소가 이미 구성된 상태에서 다른 장소로의 가설이 필요하다면, 수진의 위치, 곧 수진의 정면을 비추는 카메라가, 곧 관객의 자리에서 관객의 시점을 지닌 또 하나의 카메라가 필요하다.

     

    참고로, 낭독극이라는 재현 방식에 입각해, 일렬로 놓인 의자들로부터 등장과 퇴장이 없는 동시간의 배우들은, 상수의 강일과 카메라가 하수의 승훈과 그 옆의 카메라가 켜질 때만 증언자가 앉는 또 다른 의자를 마주하게 되는, 교직하는 또 다른 축의 장소가 중첩되는 것 안에 있게 되며, 이는 스크린을 통해 확장, 매개되는데, 이로써 카메라의 시간, 곧 예술의 시간은 과거를 매개하는 특별한 역량으로 상정되기에 이른다.

     

    다큐멘터리라는 하나의 관점

     

    하지만 이는 수진이 마치 카메라 바깥의 세계에 미치며, 미칠 수 있는 능력으로 오인될 때 그것이 주는 어떤 해방의 가능성은 의도치 않게 작품의 새로운 출구를 열어주는 듯 보인다. 카메라는 과거를 매개하고 포착하는 환상의 횡단으로서 매체이지만, 현실은 강일의 순간 바깥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승훈의 가족인 수진과 은경의 승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계기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 둘의 삶은 승훈을 경유해 지속되고 있었다.

     

    “그 사람만 시간이 멈춰버린 거 같”다고 하는 강일에게서 다큐멘터리의 이유가 부상하면서 승훈의 이유가 사실은 그 다큐멘터리로써 봉합되고 있(으며 실은 그것은 강일의 이유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우연하게도) 그 카메라가 수진을 향하게 되는 건 다큐멘터리가 포섭하지 않는 실재의 삶이, 그 이후의 시간이 주도권을 갖게 됨을, 가져야 함을 인지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가.

     

    〈인제, 너에게, 이제야〉는 애도를 다루기보다 다큐멘터리가 자기 근거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며,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는 것을 다루며, 그 이유가 각자의 관점을 고유화한 것이며, 우리는 동시성의 차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평행선상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하며, 특정한 관점을 회복하는 것으로서 다시 돌아온다. 이는 곧 (다큐멘터리) 예술에 대한 (어떤/새로운)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인제, 너에게, 이제야〉에서 다큐멘터리는 서사를 매개하기 위한 부가되는 매체가 아니라, 그 매체 자체를 정의하기 위해 서사를 찾고 동원한다. 곧 그 매체가 탐색한 하나의 서사가 어떻게 규명되는지 안에서 그 서사를 해결, 완수하는 데 그치는 대신에, 어떤 관점화되는 사건을 현시한다.

    그것은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매체에 대한 직접적 소명 대신에, 매체 안에 그것이 담긴다는 것에서 비교적 투명하던 매체가 마지막으로 찍는 자의 셀프 숏과 자기 규명을 통해 부재라는 내용이 부재하는 대상 자체의 주체성으로부터 그 형식이 비틀리(며 그 자체로 부상하여 부재를 채우고 대체하)기에 이른다.

     

    김민관 편집장

     

    2026.08.30(일) 오후 4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영상 이민정 주민경
    조명/음향 오퍼 박사망
    자막 제작/운영 임민정
    출연 강상헌 김다솔 김현 문병재 양정욱 오제우 정대진 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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