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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춤, 〈회귀의 궤적〉: 결정적인 혹은 환원적인REVIEW/Dance 2026. 10. 6. 20:03
맴돎으로서 존재

[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상동). 〈회귀의 궤적〉은 정용진의 승무를 시작으로, 이를 삶의 자전 축으로 놓고, 물린 뒤, 역동적인 삶의 흐름을 서사적이고 드라마적인 차원에서 전경으로 펼쳐 놓는다. 승무라는 고유한 리듬이 배경으로, 기초적인 삶의 전제로 잠재하게 된다면, 이후의 시간은 극적 차원으로 진작되고 고양된다. ‘회귀의 궤적’은 이 전자에 깃든 영원하고 무한한 시간의 차원에서 현재적이며, 극 전체의 양식에서는 후자가 전자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에서 구조적이고 또한 과거-미래적이다.
인트로 영상으로 1972년의 한영숙 무용가의 담장 밑 승무 기록 흑백 영상이 나오는데, 영상 삽입은 복합 미디어의 지향보다는 전통을 계승하는 현재성의 의미를 지향하는 공연에서 원본을 확정을 짓고 그것의 아우라를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관습적 절차에 가깝다―이 지점에서 모든컴퍼니의 〈씨름〉은 영상을 역사가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차원을 보여주기 위해 적극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혼성 미디어의 지향 차원에서 차용한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1 .
처음 헤이즈로써 두 개의 산이 안쪽 전면부에 그려지는데, 이는 일종의 굽이굽이 산과 자연의 확장됨을 표현한다. 이때 무대 중앙부를 덮는 사각형이 그어지고, 정용진의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선회하는, 일정하고도 반복된 흐름 자체를 만드는 움직임이 구성된다. 이때 그는 두 개의 회전 양상, 곧 제자리에서 자전과 단―사각 테두리―을 따르는 공전 모두를 가져간다. 이때 음악은 전통음악에 리버브를 줘서 환상성을 띤다.
전자음향적 잔상이 정용진(의 맴돎)을 맴돈다. 단 중앙부에는 동그란 원이 있고, 이는 옹달샘이거나 정수를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것에 다다를 때 장삼의 날갯짓이 도약하고, 상수 날개와 하수 날개에 두 사람―정송이, 현보람(아마도 상수와 하수 각각의 위치성이 고정되어 공연 전반에 적용되는 듯 보인다.)―이 등장한다. 중앙부는 빗살 무늬 혹은 엉켜 있는 무늬들―고보 패턴―이 새겨지고, 정용진이 쥐고 있던 소매 안 북채가 드러난다. 곧 이제 본격적인 장이 펼쳐질 것이다.
주체의 이전

이는 정용진에서 두 사람으로의 바통 터치와 같은데, 전경과 배경이 전복된다. 중앙부를 돌던 정용진 앞뒤로 자리하며 엇갈린 두 사람이 배경이었다면, 정용진에 부착된 조명이 그의 주체성을 부각할 때 그는 이제 둘을 위한 승화의 몸짓을 취하며 전경의 자리에서 상징적으로 비켜서게 된다. 그리고 곧 모로 돈 신체에서 순간 삐거덕거리는 신체, 지팡이를 짚듯 앞으로 고꾸라지는 듯한 신체는 잠깐의 장애, 인생의 굴곡 같은 걸 체현해 낸다.
그러니까 이는 곧 하강이고 퇴장 직전의 예비 순서이다. 이제 사물놀이의 배경음이 부각되고 전자음악적 반향이 빠지고 단이 걷힌 이후 한결 무대는 가벼워진다. 반면 사물놀이 자체의 빠르기가 거셈에 따라 혼란 역시 가중된다. 상수 앞쪽과 하수 뒤쪽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며 교차하던 둘은, 마침내 함께 춤을 추게 된다. 정송이, 현보람의 춤에서 눈에 띄는 건 소매이다. 그건 지나치게 길어 비정형적으로 펄럭인다.
전면에는 영상이 투사되는데, 이는 검은 배경에 하얀 형상으로 그려진 산에 사슴 혹은 노루가 지나가는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는 처음 아랫단에 치우쳐 있다가 마치 그것을 복제해 붙여넣듯 순간 위쪽으로 확장된 이미지를 구성하고, 새들이 날아가는 이미지를 만든다. 일종의 고정된 배경 위에, 더디게 움직이는 이미지가 부착되는 식이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영상 작업을 상기시킨다.
상수 앞쪽 하이라이트를 받는 현보람의 모습은 실존적 곤궁 그 자체다. 이때 다섯 명―정예영, 고귀연, 김예원, 변근영, 장유아―의 하수 안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원을 만들고 있는데, 이 안에서 현보람은 그들의 감쌈으로 수호받는다. 이는 두 번째 바통터치를 예비하는 순간(에 그 직전의 주체화, 부상됨과 같음)으로, 이 다섯 명만의 춤은 관계의 배치술에 의거한다.
결정적 전통
한 명이 중앙으로 나오면서 이윽고 다른 상대와 둘씩 짝을 짓고 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순식간에 구심과 원심의 역전이 일어나게 된다. 장구와 꽹과리만 단속적으로 오가며 반복되는 배경음 속에서, 움직임은 신속하고도 역동적이다. 이어 넷이 뒤쪽에 일렬로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고, 한 명만 앞으로 나와 차이를 벌린다. 이는 다시 내부적인 주체의 떠맡음과 책임, 주체화의 기전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사실 1에서 잠시 3을 품고 2로의 전환, 다시 1에서 5를 품었다 5로 전환되는 가운데, 주체의 이양 작업이 두 번 반복되게 된다. 이는 관성성으로 드러나고, 이전이 해소되지 않은 채 점입가경으로 들어가는 것이 주는 일종의 모호함과 복잡성, 아울러 어떤 피로도 같은 것이 발생한다.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자막과 같이, 사실 질문은 떠넘겨진다.
삶의 기약 없는 고통과 어떤 반복적 출현이라는 하나의 진리로서 외양은 이로써 환원되며, 삶의 환원됨의 속성―이른바 ‘삶은 죽음으로 가는 통로이다.’쯤의 전제―으로서 진리와 만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의 확고한 배경이자 결정적 차원의 심급으로서 ‘승무’(만이 작품을 구원할 수 있을진대, 그 중요한 승무)가 구조의 반복 속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지점이 오며, 다시 재출현하는 결말에 도달하지만, 그때는 비약적 승화에 가까워진다는 인상을 주기에 이른다.
〈회귀의 궤적〉은 이 승무가 다시 도착하는 지점을 결과적으로 일컫고 있으며, 그 사이에 어떤 합성물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따라서 그 궤적은 복합적이면서도 순일한 차원의 이탈을 목도하게 한다. 승무의 마지막 출현은, 앞선 다섯 명의 기도가 이제는 배경이 되는 순간과 함께, “원형, 그 안에 답이 있다”라는 진리로써 무대를 탈색한다. 〈회귀의 궤적〉은 이 장르적 차원의 확장 속에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곧 허물어질 서사를 선택한다.
김민관 편집장
09.14.(Mon) 7:30pm서울남산국악당소요시간 : 60분크레디트연출 정용진
안무 정송이 현보람
작곡 및 음악감독 현재두, 조효승
출연 정용진, 이광석, 정송이, 현보람, 정예영, 고귀연, 김예원, 변근영, 장유아- 1. “그러니까 비판의 시점을 왜 영상으로만 선취하느냐라는 질문이 거기에 따라오는데, 이는 씨름이라는 어떤 긍정 자체라기보다 환상의 영역으로 주어지는 대상 자체가 드러내는 태도, 곧 경도되고 도취되는 대상, 그리하여 투명한 기원의 신화가 아닌, 현대의 신화성을 가진 것으로 재정위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artscene.co.kr/22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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