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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메커니즘〉: 원자, 시스템, 공동체REVIEW/Dance 2026. 10. 6. 20:05
재연, 배가와 감축

이재영, 〈메커니즘〉ⓒ목진우[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메커니즘〉은 진자 운동의 모티브를 가져오는 것―1―에서 시작해, 원형 집단에의 제의적 차원으로의 확장을 꾀하는데, 처음 1에서 2로, 다시 3으로 인원이 배가되는 과정은 움직임의 기초적인 동시에 기원적인 순간을 압축적인 단편의 전개 양상으로 추출한다. 곧 어둠 속에서 권혁의 무대 중앙부 뒤쪽 ‘직립’이 추의 수직적 기호와 주체적 위치의 소실점이라 한다면, 이후, 이후 그의 상수 쪽 옆에 선 존재―한규은―가 그의 몸짓을 함축하는 가운데, 과거가 현재로 건너오면서, 장소의 범위가 확장된다.
이때 음악이 출현하면서 동작에 강세를 더하는데, 사선으로 비켜 선 둘의 조합은 실존적 양상의 차원을 가정한다면, 다시 셋―변혜림이 가세한다.―으로 갔을 때 이 복제된 그리고 독립된 이미지는 관계 안의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변화하면서는 본격적인 생산 공정의 궤에 탑승하게 되며, 이제 관계 안에서 공간의 범위가 유동적이고 응축된 상태로서 구성된다.
한 명이 둘의 관계를 끊어놓거나 사이에 파묻히며, 곧 외부로서 도입하거나 내부로서 합성되며, 하나의 선분을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다른 존재와 연결되고, 재정위되는 동작―이는 힙합의 터팅(Tutting)을 차용해 만든 것이다.―은, 미시적 차원의 논리적인, 기계적인 합선으로부터의 정교한 세공 절차라는 메커니즘에 기인한다. 이는 셋의 문법에서 이미 완성되며, 사실 그 이상으로 갔을 때는 지연 작용으로 인해 강도가 감축되며, 다른 인원은 그 구조를 모방하여 장소적 차원에서 배가되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그 멀어짐을 경유하면서 느슨해지거나 또는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것은 분산을 통해 주변부 시각과 클로즈업을 하나의 조망권으로 두지 못하는,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는 얼룩으로 자리한다. 이는 정교한 배치 자체의 세공술을 시험하는 과정이면서 (의도치 않게) 구조적 메커니즘이 갖는 부정성을 노출한다. 곧 강박적 프로세스에 대한 존재의 복속은 그것이 제의적 차원으로 전화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부속적 신체 혹은 일의성의 신체

일자(들)의 오른손을 왼쪽 어깨죽지에 올리고 왼손을 그 위에 더한 뒤, 다시 오른 손을 허리에 얹고 왼손을 얹은 뒤, 무릎, 바닥으로 내려오는 손의 분절적 이행은, 기초적인 운동의 제스처이며, 특히 처음 동작에서 약간의 심리적 추이를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셋의 관계에 이르러서는 ‘공정’ 자체에 대한 심대한 몰입 가운데 소거되거나 은폐된다. 포드 시스템의 공정 자체를 의태하거나 포드 시스템의 규칙을 체현하는2, 최단 거리의 노정과 빈틈 없는 최적의 연결과 구성의 차원이 소진이나 신경증적 발작, 탈락의 상태로 이어지지 않고, 일종의 트랜스의 영도 아래 있음은, 예외적이거나 독특하다.
직선의 연결 합은 원형의 집단 대열로 바뀌며 끈적해지고 열광적이 되고 공동체적이 된다. 아마도 이는 거꾸로 ‘시나브로 가슴에’를 통해 이재영 역시 펼쳐온 제의~트랜스의 차원 안에 기계적-근대 이후의 특정 메커니즘의 운용이 부속되었다는 전제―메커니즘으로부터 트랜스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어쩌면 메커니즘에서 트랜스로의 승화 혹은 비약의 출현 조건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이 공정의 ‘현실적 차원’―존재의 가시화 조건으로서 조명―의 배가에서 또는 미시 동작들의 지층에서 순일한 결의 집체적인 안무로, 동시에 신체 전반을 운용하는 안무로 변화할 때, 동시에 조망권의 영역 아래 집체적인 구조가 들어올 때, 그것은 또한 기계적인 메커니즘의 일환이 아닐까3.
그러니까 공정(의 메커니즘)은 간극과 오차 범위 내에서 작동한다. 반면 트랜스는 공통성을 추출하고 집단에서 함의하는 집단적 합치의 과정에서 작동한다. 전자가 아마도 신경증적 증상을 떠안은 독립된 개인의 조합으로 환원될 것이라면, 후자는 개인이 지워진 구별과 식별이 불가능한 공동체로 환원될 것이다. 두 개 모두 일체화를 지향하지만, 전자가 개인을 소거한다면, 후자는 개인이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운다.
시스템적 균열

집단의 분열적 지점, 산만함이 집단의 통합적 지점, 충만함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메커니즘〉은 작품의 결정적 분기점을 또한 지난 〈메커니즘〉(2022)과의 결정적 분기점을 형성한다. 이는 후자의 차원보다 전자의 차원에서의 배가에 의한 차이에 의거하는데, 곧 물리적인 차원에서 (무용수들이 많아져서 그것을 하나의 몸인 양 운용하는 것으로부터 어떤)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지점(으로부터 전체 서사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고, 또 후자의 경우, 집체 움직임이 더 증폭된 형태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물리적인 변화에는 몇 가지 차원이 있는데, 2022년 초연 후 여러 변화로는, 6명에서 9명으로 확장―안무가가 무용수에서 빠지는 것을 포함 3명이 빠지고, 6명이 추가되었다.―된 것 외에도, 몇 가지 항목이 더 있다.
곧 진자 운동을 가리키는 바텐에서 내려온 진자 추와 같은 별다른 무대의 오브제가 투입되지 않는 것도 있고, 의상 역시도 큰 변화가 있는데, 레슬러 복장―어두운 검은색 전신 타이즈와 청회색의 싱글렛―에서 인명 구조원 유니폼 혹은 미국의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 맥도날드의 과거 유니폼을 상기시키는 노란색 폴로 셔츠와 빨간색 긴 바지의 조합―지난 번이 채도의 차로 구분했다면, 이번에는 채도보다는 쨍한 명도의 미세한 차로 구분한다.―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운동이 갖는 최적의 효율과 최대의 강도의 두 가지 측면이 이 옷의 밀착된 피부에의 감각으로 극대화되고 있었다면, 이번 경우의 의상은 현실을 의태하되 조금 더 헐겁고 소속된, 원자화된 존재들의 캐릭터성을 암시한다―전 작의 의상이 특정 직업의 정체성을 범주화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 직군의 일부로서 특정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레슬러와 비슷한 복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인에서 관계로

〈메커니즘〉에서 일자에서 삼자를 오가는 구성은 꽤 길며 정교하다. 사운드 스케이프 자체가 거대한 무대의 진자 운동과 같은데, 하수에서 (진자 운동의 결과로서) 타격음(의 페이드 아웃)에서 상수의 육박하게 깔리는 진동음(의 페이드 인)으로 이동, 이는 좌우가 교환되고 하는 과정에서, 감각의 혼란을 초래하거나 초과된 신체성으로서 조망 불가능한 시점에 이른다.
권혁이 무대 중앙부 앞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 종으로 누워 있는 상황에서, 이우빈은 김소연을, 정재우는 변혜림을 각각 뒤로 기울여 들어 옮긴다. 그리고 초록빛 조명 아래 집단적 공통의 움직임이 편재된다. 한쪽 다리를 접고 다른 쪽 다리를 뒤로 뻗은 채 앉아 위로 팔을 뻗거나 한 발씩 걷기, 드럼 비트의 상승과 하강 아래 권혁을 피라미드 꼭지점으로 해서, 상수 쪽 뭉뚱그려진 집단, 팔을 앞뒤로 흔들며 흡사 에어로빅의 포즈를 취하는 일체의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이는 앞으로 튀어나오고 두 팔을 좌우로 저어 가며 한층 과격해진다. 이때 독립적으로 격발되는 권혁의 움직임은 하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데, 진동음의 상승과 급격한 하강 아래, 비보잉의 역동적 포즈와 호랑나비 춤의 기우뚱함과 넘실거림이 잠재적으로 뒤섞이며 정면의 얼굴을 중심에 두고 하나의 격랑하는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이 놀라운 장면으로부터 강도를 앞세운 매스게임 같은 엄격한 동적 구성의 배치가 발생한다.
곧 셋씩 짝을 지어 종으로 선 그룹으로의 분화에서, 가운데 사람과의 반대 방향으로 앞과 뒤의 사람이 팔을 휘젓는 안무가 그것이다. 거의 유일하게 드러나는 존재의 표정, 권혁의 뒤뚱거리는 신체에 매달린 얼굴은 묘하고 모호한데, 거기에는 무엇보다 발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반복하여 비로소 갱신하는 또는 승화하는 게 한규은의 집단에서 뛰쳐나와 독립적 무대를 구가할 때이다. 이것이 호응 가능한 실제적인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해방의 몸짓

자유의 외침과 해방의 발화로서 한규은의 몸짓은 역동적이면서 역시 변용적인데, 그의 신체성-개성이 무용수의 그것과 다른 무언가가 있고, 그것은 그의 정체성의 어떤 격발로서 예외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거기에 이르기에는 부족한데, 곧 권혁과 한규은 사이에는 하수 쪽을 향하는, 상수 앞쪽에서 하수 뒤쪽을 모로 가르는 집단적 선분이 맺히고, 일종의 강강술래와 같은 원형의 대열이 이뤄짐이 필요한 것이다.
전자에서 교대로 서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펴서 앉고, 그 사이사이에는 몸을 쪼그리고 앉는 식의 움직임, 한 명은 허리를 뒤로 젖혀 두 다리가 앞으로 나온 자세를 다른 한 명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달려나가는 자세를 취하는 움직임이 교대되어 하나의 일직선을 만드는 움직임 등으로 나타난다. 반면, 강강술래는 원형의 대열에서 머리를 약간 조아리는 태도로서 응결된다. 그리고 그것을 깨고 나오는 한규은은 내부로 닫힌 심연을 허물고 제4의 벽을 곧장 가로질러 나타나는 셈이다.
한규은의 움직임은 그 전의 크게 직선의 합선, 구조적 (차원의) 분절을 벗어나는, 발화이자 입체적인 파장이며, 와킹이랄지 팔 동작의 과시가 두드러지는 뭔가 다양하고 유연한 움직임의 창발이다. 이는 〈메커니즘〉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체제를 탈주하는 것 자체를 내세우는 메시지이다.
이는 전이된, 전화된 메커니즘의 두 번째 단계에서 이뤄나는 것인데, 곧 메커니즘이 실은 일종의 기계적인 노동과 같은 세계에서 일상을 벗어난 제의적 세계에서 역시 작동하지만 그것은 더는 미시적, 원자화된 개체들의 몸짓이 아니라, 세계 자체로 화하는 집단의 굵직한, 집체적인 움직임으로 변경된 가운데 그것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의 메시지로서 한규은이라는 간격이 전제된다.
음악적 순일함, 색-체적 반향

〈메커니즘〉은 한편으로 구조에의 잉여를 도출하고 다른 한편으로 구조 자체의 내파를 추동한다. 음악은 구조를 따르고, 구조를 갱신한다―더 정확히는 자신을 구조 내에서 갱신한다. 그것은 장과 막을 구분하지 않고, 순일한 하나의 흐름―4―이로써 그것은 한 곡의 음악인 양 독립적으로 감상이 가능하다.―을 형성하며, 그 안에서 자신을 갈아끼운다. 그러려면 어떤 하나의 주조음이 있고, 유격이 있고, 새로운 것이 도킹하는 접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앞선 언급처럼 주로 초반―초반을 넘어서는 식별이 불가능해진다.―에는 상수와 하수를 좌우 축으로 해서 일종의 스테레오 사운드의 교차-횡단으로 자리하며 물리적-공간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실제 구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증폭되어 나간다. 점증적으로 확장되는 음악에 미시적인 세부로서 점-선이 연결, 결정되는 지점에서의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움직임이 탑승하고 도킹하면서, 진자 운동을 한다.
이 강렬함은 초연과 다르지 않고 또한 여전히 유효하지만, 1로부터 확장되어 가는 것, 3의 단위나 전체의 집합이 아닌, 초반~중반 사이에서 4+5로 끊는 집단의 재조직의 차원―앞의 무대가 있고 뒤의 무대가 등장하여 합선된다.―에서 배치술이 더해지는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 전반적인 무대의 톤이 달라졌는데, 이는 조명의 변화가 아니라, 무채색의 의상이 강한 명도의 의상으로 바뀌면서 시각적 반향을 더하기 때문으로, 이러한 차이들은 작품에 모종의 의미로서 역설적으로 지연과 균열을 가져온다.
어쩌면 움직임을 더 잘 보여주는 건 초연인데, 일종의 일상복은 몸과의 유격 역시 더 크기 때문이다. 의상으로 인한 효과가 있지만, 의상은 다소 징후적인 차원으로 소급되는 바 있다. 그러니까 〈메커니즘〉은 새로운 의상을 통해 메커니즘에 종속된 타동적 존재의 차원을 상정하게 되는데, 이는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표현적 질서를 단지 구가하는 것이 아닌, 무의식적 차원에서의 구조적 탐침이 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된다.
김민관 편집장
- 1. 이는 지난 초연에서 상징 오브제를 물리적으로 도입한 것에 비해 신체 움직임으로만 지시되는데, 참고로 최강프로젝트의 기초 단위로서 움직임이 이것이지만, 〈메커니즘〉은 그와 같은 사물적 지속을 통한 언캐니한 측면을 가져가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 2. 이는 이재영의 전 작 〈젤리디너〉와의 연관성을 암시한다. “이때 끝없는 반복성을 기약하는 그 존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계속된 노동의 복무에 투여되게 하는 어떤 최면적 상태의 노동 행위는, 소진 자체를 소거하는 듯 보이는데, 이는 상품의 물신화와 컨베이어벨트에 묶인 노동자의 형상이 기묘하게 절합된…”, 김민관, 「국립현대무용단, 〈젤리디너〉(안무 이재영): 자본주의의 학습 기계 혹은 자본주의적 상상계의 욕망!?」, 『아트신』, https://www.artscene.co.kr/2360 [본문으로]
- 3. “우리 전통 의례나 종묘제례, 그거 자체가 ‘프로세스’를 중요시하잖아요. 그런 형식화된 과정이 가장 전통적인 특징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게 메커니즘과 통한다고 생각을 했고…”(이재영), 이지현, 「무대 위에서 ‘현존감’을 즐길 여유를 만들어 내는 두 작품 이야기」, 국립현대무용단 『트리플 빌』 프로그램 북. [본문으로]
- 4. 이는 음악이 질적으로 좋지 않은, 잔여적인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또한 내용적으로 부정성을 띠는 대부분의 대극장 무용 공연의 경우에서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참조=“김민관, 말하기 연습 3: 무용(음악)에 대한 얕은 사변”, 《ARTSCENE-LOGUE》, https://youtu.be/bGFWUVmrtsc?si=M5wTHLFpLm6CRIC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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