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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이 오셨다」,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REVIEW/Theater 2011. 5. 2. 10:18


    「주인이 오셨다」,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간 공동체적 ‘온정 주체’, ‘버려진 타자’의 이야기이자 ‘우리 안의 타자’ 간의 멀고 가까움, 원형질적 본능인 선과 악의 양면적 특성. 신경증적 자기 영역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원시적 삶과 치유.

     이 작품은 매우 많은 알레고리들이 대구를 이뤄 줄달음질 치고 있다.

    순수한 영혼의 주인공 자루가 악의 화신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전과 후의 인격은 크게 우리가 공감이 가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하나의 단독자적 주체로 위상 지어지는 것이 아닌, 어쩌면 우리였거나 우리가 버려둔 것, 우리 외부에 밀쳐둔 것이자 우리 내부의 타자로서의 영역들이 줄다리기를 하며 그를 밀고 당긴다.

    이른바 집단을 이뤄 주인공을 배척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적 층차를 그리는 동시에 현재 다문화 사회에서 성립되는 여러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포개며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집단은 엄밀히 하나의 공통 영역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그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영역을 뚜렷이 하고, 그것을 매너와 개인적 사적 영역으로 한정 지어 상대방에 대한 침투, 자신에 대한 침투의 영역을 금기화시켜 놓은 것을 의미한다.


     극이 마지막에 보여줬지만, 이러한 신경증적 주체의 경계를 극복하는 대안은 끝없는 모정으로서 사랑, 대자연의 품음 정도밖에는 없다는 비극적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곧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신화적 상상력과 대자연가 등가 되는 모성적 사랑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결말로 한정될 수 있는, 그렇지 않은 타자와의 결속의 가능성이 제시되지 않는 차원에서 해석에 있어 비극적 지점이 보이는데, 사실상 ‘우리는 근대인인 적이 없었다’는 라투르의 말을 이 작품은  우리는 결코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지는 못 했다는 것, 금을 긋고 선분을 만들어도 여전히 타자에 의해 우리 삶은 커다란 진폭을 겪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곧 배제된 것은 다시 부상하며 밀어둔 것은 다시 나를 끌어당기는 언캐니 주체로서 주인공은 따돌림 주체, 따라서 떠돌이 주체로서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적 분리된 동화적 인물이 되는 게 아니라 밀어두기에 부착되는, 곧 그를 배척하는 집단과 사회 그리고 그 자신 사이의 어느 한 가운데 우리가 있고, 그 둘을 오가는 탄력적인 상태의 마음이 주체를 결정짓는다.

     주인은 다름 아닌 우리가 버려둔 것으로, 주인공이 부조리한 타자와의 관계 논리에서 부당함을 언설하는 것으로 결코 이룰 수 없는 차원을 인지하며 사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수를 감행할 때 테러는 소통을 여전히 차단시키고, 그와의 간극 또한 분명하게 성립시키는데, 죽음과 죽음의 간극은 매우 짧고 확대되어 있어 이는 특정 주체의 죽음이 아닌 수많은 잊힌 타자들과 소용돌이적 시간의 휩쓸림을 미약한 구멍으로부터 터트려 낸다.

     반면 그러한 허무한 죽음과 멈출 수 없는 분노는 비극으로 치닫는데, 진짜 비극은 보이지 않고 미디어적으로 인지된 표피적 죽음과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는, 내 안의 타자를 죽이는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살인 행위를 해석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그의 죽음은 배제된 것의 부상으로 인한 그간 구축된 것의 위태로움과 견고한 세계의 균열을 보여준다.

     개인주의적 영역과 이로 인한 신체적 히스테리와 신경증 같은 그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반응은 해독되지 않는 원시적 폭발력의, 마치 이는 킹콩과 같은 제 삼의 힘을 의미하고, 이는 미디어의 관심과 안전장치, 포장 장치로서의 미디어적 기능 아래 감금으로써 호모사케르를 만들며 끝난다.


     곧 그가 개인적 주체가 아니라 개인이 밀어둔 사회의 배제된 영역이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다. 살인을 통해 존재를 인지시키고 그들의 삶의 영역에 침투하고자 했던 그가 어떤 괴물 그 자체로 감금 이후 사라지게 되고, 어머니는 제 3의 타자적 영역으로부터 정상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은 비정상인 사회의 강제적 폭력적 기제의 표층을 드러낸다.

     곧 우리 내면을 작동시키고 있는 키는 무엇인가? 우리는 근대인인 적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가 단독적인 주체였던 적은 없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주인이 오셨다’라는 것은 그래서 무섭다.

     떠나보낸 것이 아닌 배제된 것, 용솟음치고 있는 것, 그러고 보면 주인공 곧 주인은 의식 너머 무의식의 한 일면으로까지 해석 가능해 보인다.

    [공연 정보]
    공연명 주인이 오셨다
    일자 2011년 4월 21일(목) ~ 5월 1일(일) [총 10회] 화~금 20시, 토, 일 15시, 월 쉼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작 고연옥
    연출 김광보
    스태프 무대디자인: 김은진 | 조명디자인: 김하림 | 동작지도: 고재경 | 음악: 최정우 | 사운드디자인: 강은아 | 의상디자인: 홍문기 | 소품디자인: 원나래| 분장디자인: 길자연 | 조연출: 강민영  | 무대감독 정재성 출연 조은경, 이기돈, 문경희, 한윤춘, 천정하, 김준배, 김송일, 권택기, 문호진, 안준형, 유영욱, 유명상
    예술감독 손진책
    제작.주최 (재)국립극단
    관객과의 대화 4월 23일(토), 24일(일) 오후 3시 공연 후 (참석자: 김광보, 고연옥, 조은경, 이기돈)
    관람료 일반 3만원 | 청소년(만 24세미만) 2만원 국립극단 다솜석 5만원
    공연문의 02-3279-2233
    예매  인터파크
    www.interpark.com | 1544-1555 국립극단 02-3279-2233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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