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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극 「백치 백지」리뷰 : 존재를 흡착하는 백지 같은 순수한 세계로부터...
    REVIEW/Theater 2011. 6. 23. 09:30

     

    「백치 백지」는 라이브 연주와 사운드가 동반되는 음악극이자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극화하는 시도가 동반된 연극이자 뮈시킨이 들려주는 백지의 이야기를 극중극에서 다시 극의 외부로 둠으로써, 그리고 극과 만나게 함으로써 매우 독특한 극의 양식을 출현시키는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을 극으로 옮긴 가운데 소설의 구조, 캐릭터성, 소설의 작가가 도출해 내는 시점은 극으로 치환하는 가운데 상당히 큰 변화를 예고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내러티브는 다양한 관계의 복잡한 양상을 대화와 존재 간 마주함으로 치환해서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각각의 캐릭터들은 이야기를 엮고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역할 차원으로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튀어나와 목소리를 실천해야 한다. 곧 생생한 인물상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소설 속에 이념과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한 기능적 역할과는 달라야 한다.


    연출이 포커스를 맞춘 뮈시킨을 일종의 타자성(the otherness)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그리는 것에서 백지로서의 존재가 출현한다. 그는 세상이 말하는 백치에 가깝다.

     연출이 내세운 백지의 이념 곧 백치를 백지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원작은 다른 식으로 변용되게 된다.

    뮈시킨은 우리에게 타자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일종의 타자성을 상정한 존재로, 곧 소설에서의 이념을 드러내기 위한 역할 그 자체에 머물러 있는 느낌을 준다. 곧 깨지기 쉬운 세상에 기꺼이 이용당하고 자신을 내어주고자 하는 천사 같은 존재, 순수함을 표상하는 존재는 타자로 다가오기 이전에 자신과 다른 타자에게 환대의 철학을 실천하는 존재, 그래서 그 미약하고 가녀린 표현 외에 내용이 없는, 곧 선함 뒤에 주체적 목소리의 내면이 없는 하나의 이념으로서의 캐릭터성을 안고 있는, 그래서 거리두기가 가능한,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출현한다. 나아가면 우리는 주인공 뮈시킨의 내면에 동화되기보다 그를 둘러싼 끊임없는 간접적인 시선의 한 부분을 전유하는 데 더 가깝다. 

    그런데 이는 실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데, 우리가 곧 세상의 대척점으로서 자아의 고착과 개인주의적 일상과 타인과의 간극을 형성함으로써 살아가는 우리에게서 역설적으로 자기 몫을 주장하지 않는, 이익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모습의 누군가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래서 타자 그대로 다가오기보다 타자성을 상정하는 우리 마음 자체에 닿는, 어떤 마음의 작용에서의 존재 아닌 존재성이다.


     사실상 이러한 백지 같은 순수한 상태의 마음을 지닌 인간으로, 원작의 등장인물들 역시 거기에 다분히 감화되며 그 캐릭터 본연의 모습을 많이 잃게 된다고 볼 수 있는데, 곧 술에 찌들고 세상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자신을 다잡지 않고 멋대로 누출시켜 낭비적인 외양을 만들거나 하는 나스따시아 역시도 그 나약함, 다잡을 수 없음을 하나의 백지처럼 표상한다. 이는 분명 뮈시킨의 타자성에 감화를 받은 결과이기는 하다.

     또한 매우 거칠고 호기에 찬 로고진 역시 나스따시아의 타자성을 어찌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나약함의 존재로 그려진다. 지난번의 「백치 백지」와 다른 점은 표독스러워 보이는 나스따시아가, 거칠게만 보이던 로고진이 조금 더 백지의 주파수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극중극으로 위치하는 백지의 이야기는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극을 위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가면 이야기의 인물이 실제로 빠져나와 백지의 죽음과 나스따시아의 죽음을 등가시키는 데 이른다.

     이는 백치의 이야기 자체가 극중극의 한 축으로 대등하게 이야기되는 것을 이야기하며 두 이야기가 메타적으로 병치되고, 더 큰 시선에서 하나의 축을 형성하는 이야기의 부분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백지의 덩어리로서 죽은 신체는 이것이 현재화되는 것인 동시에 순수함의 표상으로 세상에 바쳐진 우리에게 삶의 거룩함, 순수한 생명이 주는 정화를 우리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만날 수 없는 극중극의 한 부분이 중심 이야기와 만나며 그와 같은 공식을 깨어버리며 하나의 공동체의 모습에서 화해를 하고 모두 유희의 세계에 젖는 것은 어찌 보면 백지라는 이념이 갖는 하나의 유토피아적 세계 자체에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마는, 곧 그렇게 복잡다단한 원작의 압축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만큼의 급작스러운 결말처럼 느껴진다.

     리아가 어린 백지로 출현하는데, 그녀는 무대 뒤에서 또는 무대 안을 누비며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와 절규를 사운드를 현재화하는 무대 메커니즘의 기술 아래 울림으로 치환한다.

     신체 움직임과 라이브 연주와 목소리가 덧대어짐, 코러스가 목소리를 확장시킴은 이 작품이 대사에 치중하기보다 무대 자체가 갖는 순일한 목소리의 변주, 총체적인 무대, 가시화되는 것 이면의 것들을 표현하는, 그래서 원작의 복잡다단한 이야기의 숨은 정서를 세밀하게 표현하며 감각적으로 와닿게 바꾸는 장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연 개요]
    공 연 명  : 바보음악극 <백치 백지, The Idiot & The White>
    원    작  : 도스토예프스키
    연    출  : 임형택 & 안드레이 세리바노프(Andrei Selivanov) 공동연출
    제    작  : 극단 서울공장
    출    연  : 윤길, 신동은 유나영, 이채경, 정의욱, 이도엽, 리아, 안이호 외
    주    최  : 한국공연예술센터, 극단 서울공장
    주    관  : 극단 서울공장
    후    원  :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    찬  : MF 휘트니스, 라라베시, 시베리아
    공연일시  : 2011년 6월 17일(금) ~ 6월 29일(수)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7시/ 일요일 오후 3시(총14회)
                 6월 20일(월) 공연 없음 / 6월 27일(월) 공연 있음
    공연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공연가격  : R석 35.000원 / S석 25,000원 / 학생 20,000원
    관람등급  : 만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0분
    공연예매  : 인터파크, YES24, 사랑티켓, 한국공연예술센터
    공연문의  : 극단 서울공장 02-923-1810 /
    www.seoulfactory.co.kr / 트위터 @seoul_factory / 페이스북 www.facebook.com/seoulfactory2003

    ▶ 프레스콜 사진 보기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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