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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왕은 죽어가다>: ‘죽어 있음과 죽음의 시차’REVIEW/Theater 2013. 8. 15. 23:08
▲ 연극 콘셉트 촬영 사진 [제공=극단 맨씨어터] (이하 상동) 왕의 자리에 앉는 것, 왕의 권위를 체현하는 것은 그의 신하 대리인이다. 곧 스모그와 불이 켜진 후 비로소 드러난 수족관의 기표는 왕의 등장을 알리는 효과다. 하지만 여기엔 어떤 간극이 느껴지는데, 왕은 그가 그를 보는 하지만 그가 보지 않는 그를 경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의 눈치를 본다. 이는 물론 그가 왕이 아니었음에 기인한 것으로, 이는 왕이 완성되는 방식을 사유케 한다. 무엇보다 그가 왕으로서 드러났던 처음이나 그것이 아님으로 드러났을 때 역시 왕(의 모습)은 ‘왕’ 자체에게서 내재적인 부분이 아니다. 왕 바깥에서 왕과의 직접적 관계없이 왕이라는 형식 그 자체에서, 또 그것을 보존하는 그 ‘이외의 것’(그가 보지 않는 시선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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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8월의 축제>: ‘누군가를 이제는 놓아줘야 할 때’REVIEW/Theater 2013. 8. 15. 21:34
▲ 7월 11일 프레스리허설 장면 (이하 상동) ‘주영’(이시원 배우)의 존재를 담아내는 방식이 조금 특이하다. 주영은 죽었지만 아버지와 남편과 한 가족을 이뤄 생활한다. 한편으로 이는 죽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는 더 인식하려고 하는 장인으로서 ‘광현’(손병호 배우)의 모습에서 감지되는 잊기 싫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속으로 보내줘야 한다는 입장과 잊기 싫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죽었음 자체도 인정하지 못하는 그의 아들 같은 사위이자 젊은 남편인 ‘영민’(김민기)의 입장의 간극과 함께 꿈과 현실 사이에 있는, 곧 한편으로는 마음의 작용, 또 한편으로는 실재라는 두 다른 신념의 차이로써 그 존재는 드러난다(처음에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장인의 권유로 그 역시 심한 부정으로 그것이 마음의 작용의 영역이라는 것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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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마로니에여름축제] 팩토리1+1+1 <Salon de Factory>: '춤의 메타적 리서치'REVIEW/Dance 2013. 8. 15. 20:32
▲ [2013 마로니에여름축제] 팩토리1+1+1 까페에서 먼저 일시적으로 체험한 이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으로 옮겨갔다 (이하 상동) 무용수만큼의 여러 흐름으로의 무용수들은 춤을 느슨하게 추며 넓게 퍼졌다. 관객 한 명씩과 네트워크하고 중앙의 무대로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이는 곧 관객과 중앙의 경계를 허물며 하는 자와 보는 자의 경계를 역시 소멸시켰는데 이는 몇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의 무용수가 순환하며 갖가지 제스처를 취해 관객의 주의를 허물고 멈춰 있음의 긴장을 해소시켰다. “나는 지금 무대에 섰다”는 것을 전제하며. 어떤 놀람의 반응이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갖가지 상징적 기표들, 이는 어떻게 튀어나오는 것일까, 각종 의성어로부터 대사의 편린들은 어떤 근거로 튀어나오는 것일까. 이는 우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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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악회: 아리랑 삶의 노래-강원도 평창>: ‘삶의 노래들’REVIEW/Music 2013. 8. 15. 20:31
▲ © 노승환 [사진 제공=국립극장] (이하 상동) 생황은 이국적 울림을 안긴다. 무조격의 음계는 무미건조하게 지속되고 다양한 음계의 분절식 오르내림이 이중적으로 겹쳐진다. 이 아스라하고 강한 주선율의 생황 가운데, 구음 위주의 보컬, 해금, 거문고, 장고, 징이 작은 긴장으로 큰 낙차 없이 진행된다. 장고가 이 와중에 그 리듬의 편재된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이 역동적인 또 둥글게 굴러가는 반주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일순간 멈춘다. 그러나 이 순간에 어떤 의식의 환기가 일어나며 한 차례 이 끝은 끝이 아닌 반복인 것처럼 다시 온다. 각 장소에서 소리 채집을 통해 그가 자연스레 있는 곳, 현존을 담아낸다. 연출된 것이라기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으로 통칭되고, 곧 삶의 노래를 대표하는 형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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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물탱크 정류장>: '묘한 의식의 변용'REVIEW/Theater 2013. 8. 15. 20:28
▲ 연극 리허설 [사진 제공=남산예술센터] (이하 상동) 의식은 방기된다. 침대 위 자유로움, 관객 자유로움은 구분되고, 서로가 서로를 닮아 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 이 바텐더는 미세한 입자들로 날아간다. 분해된 섞임과 섞임의 이동, 그리고 부분으로서 치환되며, 어떤 내세울 수 없는 순차적 흐름의 일환으로 존재, 그리고 삶은 치환된다. 시작,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도 읽을 수 있는 내레이션은 마치 주체(화자)인 듯 말하지만, 극 세계를 벗어나며 일종의 매개자임을, 이 내레이션의 파악 불가능한 의미들의 흐름인 듯 그 목소리 역시 하나의 떠돎으로, 그리고 이 엇갈린 층위들의 불가능한 소통의 관계를 매개하지 않으면서 나아간다. 이 술집은 그리고 ‘물탱크 남’은 직접적으로 우연히 대응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