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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럽공간으로 간 댄스’ : [디스코버스] 리뷰
    REVIEW/Dance 2012. 3. 16. 11:49

    ▲ 신영준

    [디스코버스]는 극장에서 주로, 아니 대부분 춤을 췄던 무용수 내지 안무가들을 클럽으로 소환하면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우선 문전성시를 이룬 이 비-극장으로서의 극장에서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관람은 불가능했다.

    클럽은 엄밀한 공간의 분할이 불가능한 공간이다. 개인적인 영역이 성립되기는커녕 접촉과 음악과 춤에 의한 유동적인 흐름 하에 재편되는 공간으로, 빛과 색감 있는 화려한 조명 아래 테크노나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은 어둠 속 집단 제의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저마다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상이라는 집단적 도취 상태에서 자아의 구속을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일종의 변형된 무아경의 상태.


    ▲ 김한성

    실상 이 안에서 공연이란 곧 관객과 댄서가 엄밀히 구분이 되어 관찰하고 보여주는 따위의 분리가 상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묘연한 춤의 공간은 그래서 댄서의 움직임을 나의 것으로 전유하며 참여가 이뤄진다. 반면 그 춤은 나의 춤이 가동되는 한 그다지 큰 주목은 이뤄질 수 없다. 여기에 [디스코버스]의 아이러니가 성립한다. 조금 더 살펴보면 정확해지겠지만 이 아이러니는 이론적인 것이고 실상 그렇지는 않았다. 즉 관객은 여전히 극장에서처럼 충실한 관객의 몫을 하고 있었다.

    [디스코버스]의 현장을 이룬 관객들은 매우 다층위적인 양상이었다. 클럽의 의상을 전유했지만 공연을 보러 왔거나 공연 이전에, 이 새로운 기획 하의 공연의 콘셉트를 한번 보려는 의도들이 있었을 것이다. 선배든 후배든 같은 그룹이든 간에 동료의 위치로서 극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원래 축하나 실력을 가늠하는 측면에서의 일반적인 열광이나 음미의 관객과는 다른 차원의 사적 박수나 덤덤한 심경이 표출되는 것이 이곳에서는 실상 더 직접적으로 감각됐다.
    즉 관객의 위치는 평상시처럼 유지됐다. [디스코버스]는 공연이라는 보여주기와 관객이라는 보는 이의 관계를 여전히 유지했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 밀착된 관객과 하나의 조명과 사운드로 재편되어 있는 모든 이는 그 간극을 흔드는 결정적인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곧 어떤 단단한 전제는 모두의 공통 감각이었고 이 환경과 조우하며 그것과 간극을 이루는 것 역시 모두의 공통 감각이었다.

    ▲ (사진 왼쪽부터) 조지영, 김호연

    실상 시작은 디제잉이었다. 또한 기계처럼 작동되는 조명의 예측 불가능한 양태였다. 이 사운드는 목소리요 하나의 지상 명령이다. 춤을 추라는, 리듬을 타라는 클럽의 규칙은 준비됐었더라도 어떤 즉흥적인 움직임을 가동시켰다.

    댄서들의 춤은 그 짧은 리듬에 분절시켰고 또한 노출시키며 작동됐다.
    춤은 이 사운드를 따라 매개된다. 이 지상 명령의 선분을 구현하는 게 댄서의 임무가 된다.
    여기서 둘씩 구성한 안무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실패를 감수해야 했다. 즉 두 사람의 안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상정하고 先 의도와 내러티브를 어느 정도 전제하고 있었다. 또한 이미 누구와의 관계도 성립할 수 없는, 곧 모두의 몸이 되어 버린, 내지는 나의 몸이 되어 버린 댄서의 판타지적인 몸에 들러붙는 시선은 한 사람만을 위한 춤으로 고착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곧 내 몸을 대신하는 댄서의 춤은 영상의 측면을 띠지만, 즉물적인 몸으로 하나의 대상적 측면 역시 지닌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몸은 그 즉물적 신체로의 변용이 감정과 (두 사람 간에 성립하는 한정된) 시선에 따라 약화됐다. 즉물적 신체는 하나의 안무 키워드였고 또한 클럽의 욕망 자체를 매개하는 것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확장하는 그래서 이 비좁음의 공간을 더욱 궁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사라지며 물질화되는 몸 자체가 더 결정적이었다.

    ▲ 차진엽

    이 즉물적 신체란 자신의 부분 신체를 바라보며 대상화하고 또 다른 평면의 나로의 변신술을 가동시키는 차진엽의 안무와 군더더기 없이 이 클럽의 리듬을 몸에 전이하며 자신의 몸을 따라가다 결과적으로 타자와 자신의 시선 자체를 없애고 몸 자체에서 어떤 또 다른 시선을 만들어 내던 이재영의 안무에서 드러났다.

    김한성의 경우에는 클럽 자체의 먼 타자의 위치를 구현했다. 곧 이는 물리적인 거리를 형성할 뿐 진정한 거리두기가 아닌 이 클럽의 일부분인 것 같은 한 사람을 연기했다(결과적으로 본다면).

    차진엽이나 이재영, 김한성 모두는 그 절대적인 사운드의 외침의 선분을 타고 출현했다. 디제이의 공간에서 직선으로 뻗쳐 나왔다. 이는 무대보다 런웨이를 연상시켰다. 또한 이는 자신의 몸을 전시한다는 패션쇼적인 느낌도 연상케 했다. 이는 다시 즉물적인 몸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실제 차진엽은 옷을 순식간에 갈아입고 다른 춤을 췄고 이재영은 자신의 웃통을 벗었고 김한성은 후드 티로 패션을 이미 완성하고 있었다. 클럽은 그렇게 춤의 주제나 얼개 자체를 좌지우지했다.

    ▲ EDx2 Dance Company의 류진욱

    이 즉물화된 몸이라는 것은, 그리고 순간에 따르는 몸의 리듬들은 앞서 제대로 공연을 볼 수 없었다는 전제의 전제가 되는 부분으로 나아갔다. 곧 금방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끝났다기보다 군중들 틈새로 홀연히 사라지고들 말았다.

    이 거대 소음과 시선으로부터 순간으로 사라짐은 이 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환영을 남겼다. 직접적인 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금세 사라져 버렸다. 이는 이 클럽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며 전체의 제의에 동참한 의미로도 가늠이 가능했다.

    관객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공연이 순식간에 끝나자 관객 역시 대다수 빠졌다. 어떤 쇼의 소모적인 측면이 아닌 공통의 생성 문법이 그 클럽의 무한정한 놀이 규칙처럼 성립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못한 바다. 이는 또한 관객이라는 것의 인식 자체를 허물기가 어렵다는 것의 반증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는 일단의 아쉬움이 크다.

    ▲ 이재영

    극장 바깥에서 댄서의 춤을 본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디스코버스가 이뤄지는 클럽이라는 곳은 극장에서의 해방이자 해방 공간 자체이기도 했다. 엄숙함 내지 총보score 따위는 벗어 버릴 수 있는 즉흥의 한 발판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도 있었다. 또는 순수 움직임이 클럽을 되먹음 하고 새롭게 변화되어 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과제는 어떻게 함께 즐길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속에서 몸을 다시 사유할 수 있을까.

    [공연 개요]
    ■ 공연명: 디스코버스
    - 첫 번째 이야기 ‘엣지(Edge)’
    ■ 일  시: 2012년 3월 8일(목) 21:00
    ■ 장  소: 레벨 라운지 & 클럽 (서울 강남구 논현동 97번지/ 도산대로 사거리)
    ■ 관람연령: 만 19세 이상 ※ 클럽 입장 가능 연령 기준에 따름
    ■ 출연진: 총 6팀
    신영준 Funky Boots | 차진엽 Collective A | 조지영 김호연 0R |
    김한성 DISCOBUS | 이재영 Physical Bricoleur | 이인수 류진욱 EDx2 Dance Company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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