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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서울변방연극제, <미니어처 공간 극장>(안무: 허윤경): 관객을 제1의 전제로 배치하기
    REVIEW/Dance 2019. 8. 4. 20:46

    머리 바로 위로

    원 모양의 물체가

    보이는 곳에 머물러주세요.”

     

    공간 곳곳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펴보거나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공연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때에 위 지시문의 내용을 수행해주세요.”

    (공연 중간 허윤경 안무가의 지시로 다른 관객과 한 번의 교환을 통해 남은 두 번째이자 최종의 지시문)

    ▲ 허윤경 안무, <미니어처 공간 극장>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

    <미니어처 공간 극장>은 이른바 관객 각자에게 주어진 지시문을 통한 비선형적 수행이 구성하는 복잡계다. 이러한 개인에게 묻은 그러니까 일종의 비밀스런 스코어는 관객 자신이 원할 때 개입할 수 있음으로 지시된다는 점에서(쪽지의 접힌 면을 기준으로 위에는 지시문이 있고, 아래에는 그것을 알아서 그러니까 자의적으로결정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관객 스스로가 이 현장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적응하며 퍼포머-주체로서 판단할 여지를 만든다. 이 현장에의 개입은 어떤 순서를 예측할 수 없으며 사실상 순서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다.

    우선 극장 바깥에서 관객은 지시문을 받고, 안에서는 미리 지시문을 받은 관객들이 들어가 참여 또는 관람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관객의 시차적 또는 순차적 배분은 관객의 경험 층위를 다르게 구성하는 것인데, 중간쯤 무대로 직접 들어간 관객은 이미 무대를 띄엄띄엄 장악하고 있는 관객-퍼포머를 보게 되고, 이를 보는 앞선 그러니까 다른관객을 보게 된다. 한 번에 모두가 이 공간(무대와 객석)에 투여되었다면, 관객은 퍼포머로 바로 분화되거나 둘의 지층이 일정하게 나뉘어 배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그 앞선 장면을 온전히 상상할 수는 없으며, 조금 더 적극적인 관객 유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퍼포먼스가 퍼포머-주체가 관()-주체에 의해 대상화되는 곧 두 주체가 물리적으로 양분되는 과정을 겪는다면물론 그것을 깨는 것이 퍼포먼스의 숙명이 될 것이다이 퍼포먼스는 관객이 퍼포머가 되어 다시 관객의 보기에 수렴되고 다시 그 보는 관객 역시 퍼포머가 되는 묘한 주체의 전도와 뒤섞임 속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우리의 극장에서의 원근법적 시각 체제를 교란시킨다. 몸은 의자에 시종일관 온전히 놓이기보다 움직일 것을 종용당하거나 무대로 수렴되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될 것을 요청받는다. 몸은 여기서 뒤틀리고 그 부속물인 시각 체제 역시 뒤틀린다.

    조금 더 자세히 현장을 중개하면, 무대에 이미 알 듯 모를 듯한 지시문을 수행하는 각각의 관객-퍼포머-주체가 있는 가운데, 허윤경 안무가는 객석 중간에 틈입해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작은 음성으로 지시문을 전한다이때 관객은 앞을 보다 객석 중간을 보고 심지어 다시 무대로 나갈 수도 있게 된다. 이는 개인을 향한다는 점에서 지시문의 속성과 균일한데, 이 지시가 실은 다른 관객과 지시문을 바꾸라는 것이라는 점에서비밀스럽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다른 지시문(의 속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이는 내용적 전개가 덧붙는 게 아니라 형식의 교환에 다름 아니다. 이제 다른 이의 지시문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 방금까지의 지시문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수행의 역량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다.

    극장에서 가장 빨간색인 곳에 가는 것’, ‘머리 위에 둥근 사물이 있게 위치하기등의 지시문은 공간을 즉자적인 사물로 변전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극장은 물리적인 시스템이거나 그로 이뤄진 빈/투명한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닿을 수 있는 은유적 사물들의 체계이다.’ 이러한 지시문의 수행은 지난 허윤경 안무가의 작업에서 주로 퍼포머의 움직임과 텍스트의 이중 체계를 관객이 식별하는(그 두 개의 유사성을 또는 차이를 인식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이번에는 그 지시문을 관객에게 온전히 이양하고, 안무가는 시차적으로 관객을 배분하고(입장 순서에 따라) 시공간적인 배치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지시문의 교환을 추동하여) 이 공간의 끊임없는 변화의 질서에서, 관객의 경험이 또 관객의 몸이 가시적으로 각자에게 다르게 수렴되도록 만든다.

    이 가운데 지미 세르의 앰비언트 뮤직에 가까운 사운드는 이진법의 리듬에 가깝게 구성된다. 수행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행위의 무게는 다른 이의 실천에 의해 또 이 무화되는 음악의 무게에 의해 다소 지워진다. 물리적인 사물들의 체현으로 감각되는 사운드는 일정한 음악의 형태를 띠기보다 오직 달라지는 파편들이라는 측면에서만 하나의 비연속적음악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그런 형태의 사운드다. 의식이 무화되는 듯한 사운드의 지속 속에서, 그리고 시각 체제가 교란되고, 일자의 퍼포머로 수렴되지 않으며, 사건을 예측할 수 없는 비선형적 시간에서 관객은,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가. 아마 결과는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극장을 해체하는데, 무대와 객석의 분별을 지움으로써 그러하다.

    두 번의 공연, 혹은 퍼포먼스가 이뤄졌는데, 허윤경 안무가는 첫째 날과 둘째 날을 비교해, 전자를 공기의 두께가 가볍고 상대적으로 후자를 무겁다는 식의 표현을 썼다. 실제 관객의 양적 측면에서 후자가 많았는데, 이로써 전자에서 더 작은 일들이 잘 일어나고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안무가에 따르면 관객이 정지해 있는 것도 춤이라는 생각이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는 이번 작업은, 0이 아닌 1로 향해 가는 관객 움직임의 변화를 감지하고 또 그 가능성을 믿음으로써 출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미니어처 공간 극장

    공연일시: 2019.07.07-08. Sun 4pm/Mon 8pm

    공연장소: 선돌극장(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146-11)

    러닝타임: 45min

    연출, 안무, 출연: 허윤경

    사운드: 지미 세르

    조명: 허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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