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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재일기〉: ‘그들’을 불러오는 방식들
    REVIEW/Theater 2025. 10. 19. 21:37

     

    〈산재일기〉는 각종 산업 재해의 피해자들, 그 주변의 여러 이해 당사자 및 관계자 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다. 소속 및 지위가 함께 표기된 이들의 이름이 극장 전면에 띄워져 있고, 암전과 함께 나타나는, “2,080 / 122,713”은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 재해자 수로, 산재보험을 받은 인구, 법망의 테두리 안에서 등록된 인구에 해당한다. 〈산재일기〉는 이 숫자의 바깥을 향하는 동시에 이 숫자 자체를 비판하는데, 전자는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을 수많은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을 하나의 범주로 조명하고자 하는 것으로, 후자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그 존재들의 발화를 경유해 이 숫자의 다분한 관념성과 피상성을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숫자가 무언가를 확인시키면서 다른 많은 것을 (내용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누락한다는 것, 그럼에도 이 숫자가 가진 공허함과 아득함은 사실 그 수많은 등재되지 않은 이름들의 나열을 통해 반복되고 상기되는 것으로 보인다. 곧 화면에 개입되는 수많은 산재 노동자들의 사고 경위와 함께 그들의 이름들을 띄우며 그들의 존재를 불러오는 경우, 이는 추상적 분포로 자리한다. 

    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한, 이 이야기 바깥의 경우들로서, 무대의 신체가 아닌 화면의 일부로, 우리가 일일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연관되어질 수 있음의 영역 바깥으로 기입되(며 스킵되)는 것이며, 이는 거꾸로 현재 우리에게 당도한 이 이야기들이 그 같은 한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집 전략과 방식을 따르고 있음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재현은 매개의 몸을 상정한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목소리는 그 각자의 목소리로부터 온 것이고 동시에 두 배우―신윤지, 공지수―의 몸에서 최종 안착된 것이다. 앞선 화면의 이름들은 다양한 범주로 나뉘는, 수많은 산재 노동자가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으로 놓인다면, 그중 소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두 배우의 매개하고 있음을, 그것이 역할들의 대화로써 전개되는 연극의 형식을 경유하고 있음을 또한 보여주는 것이다. 

    전자가 타자의 자리를 사회적 자리에 등록하는 절차라면, 후자는, 곧 연극의 토대는 타자가 우리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그 과정에서 그 말을 대신 전하는 이가 어떻게 그것을 대하고 그것과 자신과의 어떤 틈을 마련하여 존립하며 수행할 수 있는지를  또한 보여준다. 신윤지와 공지수는 각 역할에 따른 어투를 고스란히 재현―예컨대 정확한 발음에 다소 격앙된 차원으로 뉴스를 전하는 기자나 심드렁하고도 형식적으로 심문을 받는 기업 총수―하기도 하지만, 어떤 일정한 톤과 어투와 태도를 가진 하나의 역할-배우를 만들어 낸다. 

    수많은 등장인물은 일종의 혼란과 혼동을 준다. 수많은 인물들은 두 배우로 분화되고, 무대 위에 놓인 수십 개의 의자로 배치된다. 따라서 중년 이상의 나이, 사투리의 억양이 섞인 말투, 자기 상황을 회고적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소하듯 바라보는 ‘어떤’ 특정인의 발화는 정확히 어디에서 온 것인지 결정하는 건 까다로운 부분이다. 동시에 배우들은 의자를 끊임없이 이동시키고 그 하나의 의자를 선택해 오르거나 그 의자와 관계 맺으며 발화한다. 

    인터뷰어의 몸이 예외적으로 드러나는 첫 번째 순간―연극에 대한 메타적 서술의 차원으로 본다면, 그에 앞서 자막으로 이 연극이 노회찬 재단의 2021.02.04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음이 명기되는 순간이 있다.―은 셔츠의 손목 부분에서 근육 한 점이 없음을 발견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인터뷰어의 시선이 표기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부분의 말들은 그 화자가 곧바로 관객에게 직행한다. 

    인터뷰어의 몸을 우리에게 이전하는 이 예외적 틈새는 타자의 수월한 발화가 가능한 지점, 곧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에서의 라포를 또한 보여준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터뷰어로서 혼동-이입은 이 작은 절차로부터 마련되는 것이며, 그 틈새로부터 연극 바깥의 수많은 시간이 상기된다. 곧 〈산재일기〉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표기하면서 그 이야기들의 일부만을 제한적으로 이야기함을 또한 표기하면서, 그 제한된 이야기가 압축된 것으로서 수많은 시간을 포함하고 있음을 또한 (비)표기한다.

    배우의 빈 무대 위의 잉여적 몸짓, 의자를 경유하는 분투하는 몸짓은 그들이 그 발화 ‘당시’ 있었던 자리의 부재, 곧 장소의 부재, (인터뷰이의) 재현의 (배우의) 재현의 간격, 그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노동 환경, 대화에서의 그의 정동 그리고 동시에 나―인터뷰어―의 정동 그 모든 것의 어떤 복합적 기호로 자리한다. 그러니까 대화에 포함되지 않는 장면, 지금의 둘이 아닌, 과거의 혼자서의 처절하고도 언캐니한 장면, 거대한 기계의 인간에 대한 침범과 그 대비까지에 대한 상상이, 재현이 필요하다. 
    곧 뚜렷한 실체로서의 발화 너머의 부재하는 것, 비가시적인 힘, 어쩌면 구조적인 차원의 효과에 대해서도. 따라서 몸짓은, 의자와 ‘나’의 관계는 발화를 완성시키는 재현의 부수적,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 너머에서 발화의 근본 조건을 성찰하는 능동적,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의미의 차원에서의 분별이 아닌 무의미적인 몸짓 자체가 발화하는 지점의 추상성과 분별되지 않음의 차원을 또한 가리킨다. 

    사건은 부재하는 것이다. 반면, 부재하는 간격은 신체로 기입된다. 앞선 박용식의 신체로부터 우리는 사건을 그의 경험에 대한 발화보다 더 뚜렷하게 상기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손목이 밀링머신으로 빨려 들어가 저 너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을 때 “그러려니”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감정 상태를, 자신과 유격된 자아의 관점을 그것이 과거의 간격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을까. 이 미리 도래한 무심함은 아마도 더 큰 구조적 환경의 익숙함, 길듦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은 아닐까. 

    〈산재일기〉는 이를 역사의 확장된 사회적, 구조적 현실로 곧장 연장한다, 작은 공장에서만 1년 동안 잘린 손가락이 한 가마니가 나온다는 풍문을 수용하면서. 그러니까 이는 박용신의 그가 알고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수용적 자세를 재수용하여 사회 구조적 차원의 한 부분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우리의 연민적 태도, 불가해한 일에 대한 놀라움과 공감의 시도는 그의 태도 아래 미끄러지며, 동시에 그로부터 이 사회의 구조적 단면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직시의 태도가 요청된다. 

    그의 신체가 가진 타자의 형상―그러니까 그의 말은 그 모습이 우리의 삶과 철저하게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오인하는 가운데 성립함을 보여준다.―과 그의 천연덕스럽고도 거기에 기반한 친근한 태도가 실은 상충되는 것임을, 그리고 이후 다른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표현되는, 산재를 당할 때 그들이 드러내는 모습은 거대한 대자연의 힘에 무력해지는 연약한 인간의 형상임을, 그저 공통된 우리의 한 표현임을 일깨워 주는데, 이는 그 사건들의 예측할 수 없음, 제어할 수 없음, 인지할 수 없음 등의 상태 아래 있다. 

    산재 노동자를 우리와 공통된 인간의 가장 순전한 신체를 간직한 모습으로 추출하고, 그와 대립되는, 인간이 만든 비인간적 힘의 형상, 새롭게 자연에 유비되는 기계의 힘이 거대해지는 찰나의 순간은 산재로 각인된다. 그 노동자의 전사나 개인적 발화,  그의 취미와 사유가 향하는 바 등을 포함하지 않으며, 그는 가장 순수한 인간의 형상으로 그 사고 앞에서 돌아간다. 또한 그 기계에 대한 기계학적 관점, 묘사, 지식 등이 첨가되지 않는다―대신, 이는 의자와 ‘나‘의 안무를 통한 여러 관계적 모색으로 상상된다. 곧 박충식에 대한 묘사와 그의 심드렁한 자기 기술은 사실 〈산재일기〉의 결정적 순간인 동시에 산재를 바라보는 결정적 태도를 상정한다. 

    비인간의 형상은 2021년,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서 임종성 위원의 질의에 대한 쿠팡의 노트먼 조셉 네이든 대표의 형식적인 답변의 태도로부터 먼저 주어지는데, 대표 및 대표 이사 9명이 선 자리에서, 그들의 말이 보여주는 건 그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들이 있는 자리가 그 노동 현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곧 그들은 노동자들을 소유하(는 권력을 갖)지만―어쩌면 이는 그 시점에 맞춰 의자를 쓰러뜨리는 동작에서 환기된다.―, 그 노동자들의 삶은 그들의 삶에서 손쉽게 축출될 수 있다. 

    그러니까 〈산재일기〉가 끊임없이 구성하는 형상, 의자 배치의 기술은 그 노동자들이 있는 그 고유한 자리, 그리고 그와 밀착된 노동자들을 우리에게 불러오는 것과 같으며, 인간-기계의 다양한 아상블라주를 전제하는 그 형상들은 무엇보다 신체적이고 또한 장소적이다, 그 형상이 입각한 부재의 조건으로부터. 곧 신체는 장소를 직접 재현하지 않는다. 나아가 장소는 신체에 의해 재현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신체는 뚜렷한 장소에 의거해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신체는 비장소적 장소에서 장소를 구현하려는 지점에서 추상적이다. 이 추상성은 구체적 형상들로 이뤄진, 그러나 재현의 완전성을 향하지는 않는, 그렇지만 어떤 몸들을 성립시키고 그것과 대면하는 우리를 성립시키기 위한 몸에 대한, 구체성을 향한 하나의 이념적 형상이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2025.05.09 ~ 2025.05.18

    공연시간: ~금요일 19:30 / ~일요일 15:00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연출: 이철

    작가: 이철

    조연출: 임범규

    조명: 윤해인

    음악: 이재

    무대: 남경식

    출연: 신윤지, 공지수

    관람등급:  11(초등학교 5학년) 이상

    관람시간: 100

    주최: 서울연극협회 

    주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창작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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