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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DP, 〈슬라임〉: 해방적 주체를 향한 경로
    REVIEW/Dance 2025. 10. 19. 21:40

    슬라임적 움직임

    점액을 가리키는 슬라임(slime)은 대표적으로 〈슬라임〉에서 좌우를 오가는 끈적거리는 움직임의 요체에 부합해 보인다. 즉물적이고 일차적 차원에서 점성이 있는 유체를 체현하는 수평적 차원의 움직임이 있고, 이는 기본적인 차원의 움직임 메소드로서 몸의 토대가 되며, 대체로 군중적이고 집단적인 모습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수직적 차원에서 하늘을 보며 손을 뻗는 구원과 환희의 제스처로 급작스럽게 승화된다. 직접적 양태를 구축하는 움직임의 형식은 몇 개의 질적 변환의 절차 안에서 그 양태가 갖는 내용으로서 코드로 이전되는데, 그중에서도 이 전자와 후자의 움직임의 도상적 차원의 대립과 (극적) 차이는 주제가 가진 하나의 메시지를 구성한다. 

    결국, ‘슬라임’적 움직임은 무엇인가에서 그 움직임이 나타내는, 그 움직임이 선택된 세계는 어떤 관점을 도출하는가라는 질문의 전이를 지켜보는 것이 〈슬라임〉을 구성하는 방식일 것이다. 슬라임의 속성, 곧 끈적거림을 강조하며 체현하는, 일정한 단위적 반복과 더딘 속도를 위한 탄성, 고정되는 스텝을 경유해 전신으로 번져가는 팔의 몸짓과 같은 부분, 미시적 차원의 세부적 움직임은 이후 계속 변경되는 사운드의 영역에서 그리고 후반 극적인 공간 연출적 차원에서 전유되고 확장된다.  

    개별자들의 현실 차원의 행위로부터 무대가 열린다. 무대에는 커다란 막이 드리워져 있고, 접힌 자리의 음영은 입체 구조물로서 착시감을 준다. 중앙의, 마주한 여자와 남자는 직접적 접촉 대신에 서로의 안쪽을 향해 천천히 미끄러지고 그 주변을 뛰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등장과 함께  반복적인 단속적 발화 구문의 사운드가 생성된다. 일상과 그것의 벌어진 틈을 공허와 단조로움의 정서로 포착하는 빈 무대는 어둠 속에서 집체의 풍경으로 전환을 이루면서 슬라임의 기본적 움직임 양식이 구성되기에 이른다. 

    구불거리고 미끈거리는 몸짓과 그 중심의 공허한 응시는 나르시시즘이거나 사물성의 강조이다. 곧 자아의 비대함을 보여주거나 그 자아가 완전히 상실된 자리를 드러낸다. 일자의 다자적 확장은 다자의 일자적 수렴으로 변환된다. 곧 집체 양식 아래, 유동적인 개별자들의 특이성은 사라지는데, 종의 대열이 순차적으로 좌우로 미끄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집단적 풍경은 슬라임의 양적 팽창인 동시에 집단 양식의 일방향적 운동성으로 고착됨을 의미한다. 

    화면을 통제하는 목소리

    외화면의 목소리는 움직임에 따라 붙고 움직임을 지배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첫 번째 남자의 기계적 목소리에서처럼 일정한 행위 양식의 규제인 양 의식을 마취시키다가 세분화된 몸짓들과 동기화되는 지시적 기호로, 다시 여성의 몽환적 목소리가 지배하는 음악에 이르러서는 클럽의 풍경을 연출한다.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커튼이 내려오고 홀로 남은 여자를 향해서는 남자의 지배적인 목소리, 초자아적 성격을 띤 목소리가 등장한다. 

    막이 걷힌 가의, 불 꺼진 건물의 외양, 일괄적으로 재단된 벽과 틈은 폐허의 현장을 연출하고, 발가벗은 신체들이 출현한다. 일상과 심리적 차원이 극대화된 세계를 오가던 〈슬라임〉은 마침내 실재의 영역에 다다른 듯 보인다. 근육이 그려진 인공 보족물을 덧댄 신체는 실체를 본뜬 것이면서 원래의 신체가 변용된 상태를 나타낸다. 일종의 슬라임적 육체라 할 수 있을 그것은 인공적이면서, 곧 기괴한 것을 표방하면서 기괴한 것으로서 일상의 틈을 현시한다. 

    연이어 긴 장막을 끌고 들어가고 나서 홀로 남은 남자는 웃음을 보이는데, 변경된 주체의 심리적 서사는 이어 뿌연 조명 아래 뒤에 등장한 실루엣의 집단적 성령의 강림 같은 이미지로 증폭된다. 평화로운 분위기 아래 남자의 표정은 환희로 가득하며, 집단적인 꿈틀거림 뒤로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인해 환상적 공간이 연출된다. 현실에서의 여러 차원의 규제적 몸짓과 공허로부터 집단적 상승의 양태로의 변화는 어쩌면 비약에 가깝다. 

    수평축에서 수직축으로 전이된 위로 뻗는 손짓과 그것이 드러내는 끊임없이 샘솟는 움직임의 열정, 조명의 효과로 극장의 천장 레일까지 확장된 선명한 공간은 인류의 어떤 미래의 시간을 예지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주체의 해방을 이야기하면서 해방된 주체가 도래하는 미래적인 외양을 산출한다. 그렇다면 그 미래는 앞선 시간들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적 해방으로서 메시지

    〈슬라임〉은 “시대적 흐름”에서 “변화”를 맞는 “몸”과 그 몸과 결부된 “왜곡된 자아상” 혹은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한 관심에서 출발하며, 그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바로 “포스트젠더적 해방적 자유”의 순간이다. 그렇다면 (다소 모호한 작품 의도에 따른) 그 순간은 “왜곡”과 “고유”의 두 대립된 가치의 축에서, 그 둘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제3의 형상으로 달성되는 것일까. 아님 순수한 후자를 찾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주름 진 막에서, 보이지 않는 어둠의 벽으로, 그리고 폐허로, 다시 온기를 간직한 도시로 되살아난 무대로 이어지는 세계의 변경 아래, 슬라임으로서 움직임은 수평축에서 수직축으로 이전한다. 그것은 관성적인 반복과 행위가 주체의 갈망과 정념을 가득 펼쳐 내는 움직임으로 거듭남을 의미한다. 〈슬라임〉의 기본적 움직임의 양식이 어떻게 ‘포스트젠더적 신체‘를 향하는지는 이 서사의 흐름에 맡겨져 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에 대한 종합이라기보다는 시스템과 시스템 너머의 차이로 갈음된다는 점에서, 다소 오래된 주제, 고유한 정치성의 회복이라는 전언에 기대어 있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2025년 LDP무용단 신작

    [슬라임SLIME] 안무 윤나라

    나에게 “아름답다”의 기준은 무엇인가?

    2025.5.2(금) 20시
    2025.5.3(토) 19시
    2025.5.4(일) 19시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용수_신호영 한윤주 김영채 윤승민 이홍 이정은 박지희 최호정 배현우 김민서 김석현 김예은 문대규 박지빈 서영빈 하연주
    길이 60분 | 만 7세 이상 
    문의 ldp1204@naver.com
    협찬 주식회사 대신코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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