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주은길, 〈초록이가 거짓말을 하면 우린 모두 박수를 치는 거야〉: 연극이라는 외양은 현실에 대한 망각적 진리를 시현하는 것…
    REVIEW/Theater 2025. 11. 5. 14:17

    주은길, 〈초록이가 거짓말을 하면 우린 모두 박수를 치는 거야〉[사진 제공=주은길](이하 상동).

    〈초록이가 거짓말을 하면 우린 모두 박수를 치는 거야〉(이하 〈초록이〉)에서 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초록이가 꾸었다며 들려주는 ‘갈색수염을 입은 북극곰’ 이야기로, 사냥을 하러 온 인간인 갈색수염을 죽이고 이를 뒤집어쓰고 그의 외양으로 인간 세계에서 살아가는 북극곰이, 알고 보니 주변의 모든 인간이 북극곰이 위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지는 그들 모두가 북극곰이었다는 사실에서 나아가 그만 빼고 모두가 그 위장에 대한 사실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북극곰과 인간 사이의 공통의 지점이 그 존재적 본질을 구성하며 연결될 수 있는, 어떤 신화적 시간을 가리키는 ‘대칭성 인류학’적 진리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일종의 위장된 존재로서, 그 자체로서 인간이 아닌 그 이전의 다른 존재이며, 이는 사회적 차원으로 고양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2장에서 반복되는 이 이야기의 반전은 처음의 갈색수염이 북극곰이 분장한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온다. 이야기는 그렇게 하나의 순간으로 귀환해, 북극곰을 죽이려는 인간의 외양을 한 북극곰과 사실상 또 다른 그 북극곰으로부터 인간이 되는 북극곰의 양 시점을 오가는 하나의 원환을 완성한다―과거는 자신의 먼 미래가 귀환한 것이다. 그러니까 북극곰 너머에 인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는 (인간으로서) 북극곰 하나의 종만 자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에는 사실상 인간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외양을 갖추지 ‘못한’ 인간은 일종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위협을 겪고 나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사냥은 상징계적 차원의 거세이며 그 세계로의 진입의 매개인 셈이다. 

    초록이가 바라는 바를 위해 그 주변의 모든 이는 연기를 하는 존재들이다. 상징적 세계의 격식과 억압에 메스꺼움을 느끼는 초록이로부터 비가시적 존재가 되어야 함을 연기하는 선생, 부모와 동료 집단으로 그의 뜻을 같이 수행하며 가시화되는 진정한 친구의 두 부류로 이는 구성되는데, 이들은 갈색수염-북극곰 주변의 인간-북극곰이 실상 갈색수염이 북극곰인 걸 알고 인간을 연기했음을, 그 연기의 공동체를 이뤄 왔음에 상응하는 선취된 진실이다.
    하지만 그 같은 진실은 갈색수염-북극곰이 언제나 갈색수염이었던 것과 같이, 곧 갈색수염이라는 별도의 존재는 언제나 없었던 것과 같이, 초록이 스스로가 그 연기를 알게 되면서, 그 연극은 필연적으로 힘을 잃고 만다. 그러니까 연극은 거기서 사실상 종료된다. 곧 세계가 조작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에 자신의 의지가 투여된다는 감각이 빠지면, 그 의지가 반영된다는 감각이 없어지면, 세계는 단지 재현되고 복사되는 이미지에 불과하게 된다. 

    여기서 연극임을 알고 연극을 하는 것, 더 정확히는 그 연극에 임하는 것은 연극에 대한 진리적 고양, 곧 연극이 무엇인지를 탐문하는 것, 또는 연극이라는 것의 메타포, 곧 연극이 가짜의 세계를 연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 가짜의 세계를 진짜로 연기하고 있는 것이 연극이며, 그것에 기꺼이 동의하고 하나의 의례임을 알면서도 모두가 합의한 규칙에 따라 응당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에 이끌려 가는 것이 연극임을 드러낸다. 극 중 인용처럼 프로이트에게 꿈속의 꿈이 없듯 연극 안의 연극은 없다. 오로지 연극임을 아는 연극과 그렇지 않은 연극이 있을 뿐이다. 

    이는 그린피그가 보여온 연기임을 드러내는 연기, 과잉의 연기, 거꾸로 틈새를 드러내는 연기, 그 틈새로서 연기의 철학을 서사적으로 설명하고 완성하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가령 말 가면을 쓰고 끊임없이 인조 나무의 가지를 훔쳐 대는 동작은 잉여의 장면으로 그린피그의 이전 공연들의 형상에 겹쳐지는데, 이는 〈초록이〉에서 드디어 연극의 틈새를 드러내는 동시에 틈새로서 연극의 이념으로 정착된다. 
    연극인 줄 알면서 연극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연극이라는 형식에 의존하며, 이미 우리가 (초록이를 경유해) 그 사실 속에 있게 되었을 때 연극이 끝나는 시점을 짚어내는 건, 곧 커튼콜을 치루는 건 의미가 없는데, 그건 그 전까지의 관객의 연루 작용을, 연극의 자기 지시적 시간을 급격하게 종결시키기 때문이다. 곧 연극을 넘어서는 힘을, 관객을 초과하는 시간을 극장의 형식 안에서 불러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끝나지 않는 연극의 형식은 그린피그의 작년 역사시비 프로젝트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참혹한 현실의 상황이 사실 연극을 흉내 낸 것일 수 있는가. 무덤을 파고 시체를 묻는 행위에서 어떻게 시체는 매번 살아날 수 있는 것인가. 선생님은 어떻게 그 무덤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다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가―이는 한편으로 〈초록이〉에서 꿈과 현실이 중첩되는, 그리고 꿈이 현실을 앞서 튀어나온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기이한 장면이다(물리적으로 초록과 연두에 종속되었던, 그 둘의 시야 아래 포획되어 있던 선생님이 그 둘을 앞질러 중앙의 무대에 곧장 등장한다는 점, 그곳이 학교임이 언어로 뒤늦게 지시되면서 공간‘들’의 틈 없는 변환을 연결로 기능하게 하지만 이는 두 공간을 곧장 하나의 경로로 이행하는 선생님을 맡은 배우의 신체에 대한 감각이 상회하는 바까지를 완전히 봉쇄하지는 못한다).

    이는 연극 자체의 물리적 한계와 그로부터의 가능성이라는 보편적 차원에서 기인하는데, 곧 고유한 공간들이 중첩되면서도 혼동되지 않는, 가장 처음의 예순 번의 삽질이 허공 위의 손질로 대체될 수 있음은, 하나의 역할이 내레이터로 변화되어도 자연스러운, 그리고 그것이 깊은 구덩이와 연결되는 것임은 모두 연극이라는 매체에서 가능한 부분들이다. 그런데 〈초록이〉는 그 속에서 그것들이 연극으로서 수행되는 바와 실제의 기호임을 합의하는 것의 틈새 자체를 함께 드러내고는 하는데,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사실상 초록을 위한 연극인 동시에 초록의 연극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극의 기호로의 합의는 초록의 인지적 틈에 의해 가늠되며 연극임의 기호로 식별된다.

    곧 선생님의 앞선 가로지름이 그의 두 가지 역할, 시체로서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균열 없는 수행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내레이터와 역할을 오가는 부분, 곧 시체가 청테이프를 떼고, 그러니까 시체로서 신체를 지시하는 청테이프를 탈부착 가능한 기호로 변환하면서 시체로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게 되는 것이 연극이라는 하나의 기호로 묶이는 것과 같이, 부엉이와 고양이의 인형 옷을 입은 각각의 배우가 탈만 벗어서 실제 부엉이와 고양이임을 지시하면서 나아가 헐렁하게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같이, 이 모든 건 연극의 효율적 경제 안에서 작동하는 기호들이면서 초록이의 연극적 현실이 지닌 틈새를 확인시키는 〈초록이〉 안의 기호들인 것이다. 

    초록이의 인사라기보다 무기력한 고개 숙임은 세 차례 위치 전환 이후 수행되는데, 이는 초록의 연극 안에서 진정한 친구, “진짜 도모다찌 트루 프렌드”가 되고자 하는 녹색, 오로지 이 연극 안에서만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진정성의 화신, 녹색이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재등장한 초록과 만나고 나서이다. 연극은 1장에서 끝이 나지만, 2장과 3장으로 거듭 반복된다. 

    연두의 시점에서, 앞선 북극곰 이야기의 재결말을 내리기 위해, 그것을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해,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미 도착한 미래로부터의 처음을 위해, 초록이의 시점을 제하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명백하게 연극이었음을 재확인하기 위해 쓰인 2장을 지나, 3장에 도착한다, 다름 아닌 1장의 마지막 연극 놀이가 주는 생경함을 상투적 현실의 자연스러운 서사의 결말과 대립시키며 그 환원으로의 격차를 조명하기 위해, 연극의 코드로부터 연장된 현실의 코드, 곧 현실이 존재하기 위해 연극이 존재해야 하는 전도된 연극과 현실의 위치를 확인시키는(커튼콜의 제도는 현실의 것이지만, 연극의 그것을 본뜬 것이며, 연극은 이로써 유일하게 현실적인 코드가 연극 안에서만 일어나는 장면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북극곰임에도 실은 갈색수염이 되어야 함을, 더 정확히는 갈색수염으로만 존재로서 드러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그 뒤늦은 커튼콜 인사의 비틀림을 경유하기 위해.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공  연  명: 초록이가 거짓말을 하면 우린 모두 박수를 치는 거야
    일      시: 2025년 8월 22일(금) ~ 31일(일) 화-금 7시 30분, 토-일 3시 (*월 공연 없음)
    장      소: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작 / 연 출: 주은길
    출      연: 김원태, 김효영, 권오득, 박은혜, 윤아진, 이승훈, 이태은, 최주연

     

    스  태  프
    음악_ 신혜원 | 조명_ 윤혜린 | 의상_ 온달
    기획_ 김보람, 노지상 | 그래픽디자인_워크룸 | 기록 촬영_한문희

     

    주최 / 주관: 주은길, 그린피그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 람 연 령: 만 10세 이상
    소 요 시 간: 100분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