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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현주 작/연출, 〈사사로운 사서〉: 사사로울 수 있는 장소 위의 주체들
    REVIEW/Theater 2026. 2. 25. 13:22

    강현주 작/연출, 〈사사로운 사서〉[사진 제공=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상동).

    북부 도서관이라는 가상의 실재하는 도서관의 사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사로운 사서〉는, 도서관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으려 한 무대 세트의 배경 아래, 도서관의 일상 업무의 세부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대화의 시작으로써 극사실주의적 토대를 마련한다. 물론 이는 일차적인 것이며, 장마 기간의 엄청난 비로 인해 발생한 지하 보존 서고의 침수 피해로부터 책 복원 작업이라는 비일상적 차원의 특수한 업무의 긴급한 미션이 사서들에게 주어지며, 이는 책과 이들의 관계성을 묻고 책을 매개하고 다루는 이들로부터 어떻게 책 자체가 세계를 마주하는지, 나아가 세계를 반영하는 메타포로서 확장된 책의 모습이 펼쳐진다.

     

    보존 서고 한편에 우물이 있다는 괴담은 망각된 한국 근현대사의 알레고리들을 담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로 열려 있는데, 이 열림은 재선의 학창 시절 기억에서 매듭지어지며, 이는 그의 오래된 윤리적 책무와 관계된 죄의식과 상처를 그 시간을 새롭게 종합하는, 역사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책의 구절들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뒷모습에 오버랩되어 그의 심경을 위무하는 순간에 있다.

     

    사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그 바깥에서 장서를 찾는 보이지 않는 한 도서관 이용자의 집요함으로부터 반향되고 탐색되며, 실제 불가능에 가까운 책의 구제의 경로로 이양되는데, 보존 서고의 한 책 연암산문집을 찾던 그 이용자의 행위는 그 책을 읽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그 책의 버려짐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그 책을 바깥으로 꺼내 이용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이 숨겨진 책들을 바깥으로 꺼내는 소수의 예외적인 의지로부터 발현된 힘은 트리거가 되어 쉴새 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완전히 침식될 뻔한 책들을 앞서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우연한 접촉, 윤리적 책무의식에서 발현된 의지로부터 비롯된 외부적 힘이 또 다른 외부의 강제적 힘으로서 제어 불가능한 비의 강력한 외부적 힘이 맞닿는 지점으로부터 전자가 신성한 힘의 일단으로 재기입되며 이는 후자의 인류세의 기후 위기와 맞물린 또 다른 전제 조건으로의 환원에 대해 방어한다. 곧 개인의 보이지 않는 힘, 익숙한 스피노자의 평범한 지속에 대한 의무로서 내재성의 윤리를 드러내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사과나무를 심어라’라는 격언은, 그것의 일종의 변형된 버전으로서, 〈사사로운 사서〉에서는 책의 멸망을 막는 평범함의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그 평범함과 대별되는 극단적 상황의 위기를 봉합하는 안정화의 기제를 사후적으로, 선취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셈이다―그와 동시에 이 격언이 지닌 위기 앞의 평화로움과 담담함의 기조 그 자체가 체현된다.

     

    이 보이지 않는 이의 요구가 1년 차 사서의 미진한 경험의 차원에서 미끄러지는 지점, 그로부터 파생되는 윤리적인 작은 조각은, 곧 그의 대출 가능한 상태로 장서를 변경하는 도서관 시스템상의 변경에 대한 미경험으로 인해 다음날까지 그것을 (습득해) 가능하게 해놓겠다는 그의 약속을 받고 돌아간 이용자와 그에게 남겨진 도덕적 숙제는, 사실상 사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인자로 자리 매김되면서 더 주요하게 극의 핵심적 이념을 산출해 내는데, 그것은 책을 보존하는 동시에 책을 전달해 준다는 사서의 역할, 책임, 사명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가 느끼는 책임은 그가 마땅히 하지 못함의 이유, 곧 전문성의 결핍에 대한 반성보다는 이용자가 책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미션의 방향에서 그는 그것을 풀고자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결국 비로 인해 서고가 침식됨을 발견하는 날이 되고, 그로 인해 늦지 않게 잠겨길 책들의 사전적 구제 작업의 시작 과정으로부터, 읽기 위함이 아니라, 책을 말리기 위해 한 장씩 펼치고 넘기는 반복된 행위―그리고 이는 여전히 그들의 책을 읽기보다 책과 이용자, 나아가 책과 시대와의 연관성을 생각하고 그 매개에 힘쓰는 근본적 역할에 대한 즉물적인 구현이다.―의 무료함이 산출하는 대화의 예외성과 그 깊이는, 재선의 과거에 가닿은 것과 같이 다른 각각의 인물들 역시 자기만의 책과 결부된 생각과 일화 등을 꺼내놓는 것으로 연장된다.

     

    수서 담당 정윤의 미시사적 반경 아래 수많은 책의 문화사회학적 변경의 지도를 구성하는 것, 그중 자기계발서의 시대에 태어난 1년 차 사서 시연의 자기계발과 맞물린 위인전의 기능적 차원의 소구와 같은 생각이 자신의 시대를 반영하고 바라보는 관점으로서 그 시대를 해석하며 갈음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책과 결부되는 그 자신의 사고가 일화적 경험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는 대영의 경우, 소수자 친구가 가족 내 커밍아웃을 위한 학교 도서관 장서에서 이를 지지하고 매개할 책을 찾는 자신의 방안이 좌절된 경험으로 돌아갔던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이는 마치 그의 큐레이션의 사서 업무를 수행하는 현재를 선취하는 과거, 현재에 대한 교훈으로서 과거와 같다.

     


    대영의 지구에 대한 북 큐레이션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주제를 통해 책이라는 다양성과 무한함의 범주로서 의미로 주제를 환원시키는 데 가까웠다면, 모두를 위한, 그것이 순수한 자연(의 모습에 대한 현재 인류의 갈망)과 같은 어떤 문화적 코드를 분명 상기시키기는 함에도, 결국 모든 걸 포함하는 어떤 주제의 상응 지점으로부터 주제를 막연하게 찾았었다면―이는 도서관 사서의 역할이 그만큼 관성적으로 또 그에게 요구되는 바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수렴될 수 있음의 위험을 보여준다.―, 이후 그가 그 주제를 바꾸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누군가를 대리해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갖는 누군가를 짐작하고 사유하는 차원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책들을 선택하고, 근원적 차원에서 책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기초로 한 큐레이션의 역할 역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열어줄 것이다. 그것이 곧 그가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는 것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또 다른 이해 가능성일 것이다, 곧, 타자를 경유한 타자와 관계 맺는 법과 직업적 실천의 상응 관계에 대한 이해 가능성.

     

    결국, 일부의 책을 다시 펼쳐놓는 큐레이션과 달리 정윤의 수서의 몫은, 그 자신도 사서의 꽃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것처럼 주요하고. 또 중요하며, 그렇게 자신의 무덤덤한 그리하여 부단히 지속하는 그의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태연하게 드러내는 그 말을 갈음 짓는데, 또는 그 말이 상투적 수사가 되지 않는 차원에서 그의 태도를 반향해 내는데, 동시에 어쩌면 모든 사서의 제각각의 역할에 대한 중요함이 발화되는 극 안에서 그의 이 말은 조심스럽고 또 은밀하게 그래서 수줍고 작게, 대영과 단 둘의 대화에서 제시되는 장면이다.

     

    무한에 가까운 다양하고 넓은 범주를 지닌 책을 하나의 공공적 장소에 투과시키는 행위를 결정짓는 수서의 역할에 대해, 정윤의 그 말은, 그 무한하고 다양한 범주의 책들이 모여 있는 무개성의 장소라고 환원될 수 있는 위험에 항거하는, 미약해 보이나 실은 가치를 띤 역할을 이념화한다. 그리고 그것이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대영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내는 것 역시 다분히 의미심장하다. 이는 그것이 도서관의 미래적 가치와 비전을 함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행정의 고착된 범주 안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탐색하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실장 재선의 책과의 관계성이 그가 역사의 한 인물과의 직접적인 관계 아래 역사의 잊힌 자리의 한 인물로 고정되어 체현되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감동을 주는 이유가 그의 평소 웃음과 소탈함이 오히려 그 이면의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에 있다면, 무엇보다 그것이 의미의 고점을 찍는 건 실장 스스로가 역사화된다는 것에서 비롯할 것이다. 이로써 서사의 잠재적 구멍이자 그 내용으로서 물리적 구멍이 역사의 틈으로 (재)형상화되는데, 하나의 장면으로, 하나의 장막으로 그의 도서관 안 울음이 응결되는 것은 바로 그 틈이 메워지는 순간이자 잠재된 처음의 서사를 마지막으로 해결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사로운 사서〉는 고정된 장소 위에 (근)미래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 역사의 잔재로서 시간 들을 불러오면서 인물들 한 명 한 명에 주목해 그의 사상과 이념을 끄집어낸다. 그 사사로움이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인지, 사서의 책임과 직분에 관련된 것인지를 조명하면서 말이다.

     


    p.s. 극사실적 배경과 상황은 한계나 제약이라기보다 그 바깥의, 그 나머지의 인물 간의 플롯만을 고민하면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명확하게 희곡의 차원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이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가장 가변적인 부분은 2층 계단이 끝나는 부분의 벽에 맺힌 나무 그림자로, 이는 프로젝션으로 처리된 시간성을 띤 무채색의 영상이다. 결국 명확한 장소라는 건 그 배경의 고정된 값 안에 다른 나머지 (유동적인) 것들을 저장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의 기억의 유리함을 배가하는 부분 역시 있다. 이 단순하고 투박한 영상이 갖는, 열어젖히는 공간 너머의 환상은 아마도 이 단단한 장소의 외양이 머무르기보다 나아가고자 하는 결국 (나갈 수 없으니 안으로) 소환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어떤 충동의 그림자이다. 곧 서사가 지향하는 바깥, 그리고 시간, 사유, 감각에 대한 매혹을 드러내는 어떤 이음매, 균열 같은 것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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