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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니 안무, 〈Pan & Opticon〉: 우리를 붙들어매는, 자유의 장치
    REVIEW/Dance 2026. 2. 25. 13:34

    이해니 안무가, 〈Pan & Opticon〉ⓒBAKI(이하 상동).

    이해니 안무가의 〈Pan & Opticon〉은 18세기 말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을 뜻하는 ‘판옵티콘’을 어원적으로 다시 분절해 인터랙티브한 환경 조성으로부터 주제의식을 설정해 낸다. 곧 모두[편재하는(pan)]와 보다[시각(opticon)을 가진 존재(on)] 사이에 간격을 둔 간격을 통한 절합을 통해, 모두‘가’ 보는 능동적 보기의 산출과 모두‘를’ 보는 일방향적 보기의 산출을 기약하며, 본래적 의미에서의 후자를 전자의 환경으로부터 추출해 내고자 한다.

     

    ‘판옵티콘’은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내면화되는 감시 체제의 일환으로서 규율 권력을 가리키기 위해 새롭게 발굴해 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Pan & Opticon〉은 원형감옥의 의미를 휴대폰 중독의 환경과 거기에 전제된 알고리즘의 지배로 표상하고자 한다. 관객석은 3면으로 원형 무대를 둘러싸며, 원형의 빈 무대 중앙에는 시작 전에 놓인 짐벌 삼각대 위의 카메라가 360도로 회전하며 정면을 찍고, 이에 따라 3면으로 된 객석의 관객들은 천장 중앙에 있는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 고스란히 송출된다.

     

    관객은 공연 중에도 무대를 찍을 수 있으며, 이를 따로 올릴 수 있는 권리 역시 수여된다. 모두를 모두가 관찰할 수 있는 체제가 설정됨으로써 판옵티콘의 보이지 않는 주체의 차원이 사실상 묘연해진다. 먼저 중앙에 놓인 카메라의 회전이 모든 수감자의 그림자가 비치는 중앙 감시탑의 보이지 않는 간수의 위치를 대리한다면, 노출된 중앙 공간은 이 본다는 행위의 은밀함과 비가시적 지배의 위치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것은 본래의 단어가 지닌 의미를 즉자적으로 실현함으로써, 곧 가시화해냄으로써 주체와 대상의 간격을 헐어낸 결과이다.

     

    〈Pan & Opticon〉은 관객석으로의 돌출된 개입 행위로써 안에서 바깥을 향하거나 애초에 촬영될 수 있음의 연결 가능성을 전제함으로써 안으로 향하며 제4의 벽이라는 형식적 경계를 건드리는데, 이것은 크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비유이며 규율 권력(체계) 안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 규율 권력 자체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이며, 또한 그것은 자연스러운 CCTV에 둘러싸인 우리의 현실을 특정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에서 반추된다.

     

    손을 말아쥔 채 눈에 갖다 대 일종의 망원경으로 현실과의 거리를 벌리고 또 좁히는 몸짓은 반복해서 출현하는데, 이는 판옵티콘의 감시자의 모습을 상징적인 제스처로 표현하며, 역설적으로 판옵티콘의 무대를 허물고, 그것이 하나의 표현 양식일 뿐임을 드러낸다. 이는 이 환경 너머의 탐침의 시선을 무마하거나 그것을 대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시선으로부터 숨는 역설적인 제스처로도 보인다.

     

    그것이 반대의 기호로 읽히는 건, 〈Pan & Opticon〉이 감시와 감시됨의 지위를 혼돈의 양상 속에서 관객과 무용수가 뒤섞이고 있으며, 예컨대 간접적인 참여의 절대적 조건 아래, 직접적인 참여 역시도 관객은 종용받고 있고―무대로 이끌려 가기도 한다.―, 무용수 역시 어떤 구속 없이 공간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공간은 또한 분산된, 예기치 않은 카메라에 의해 교란되는데, 이는 관객 스스로가 그 게임을 자신의 영역 안에서 체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Pan & Opticon〉은 판옵티콘의 주체를 가시화하여 역전한다. 곧 종속된 대상(의 심리적 억압)이 사실상 사라지고, 모두가 이 과도한 시각에 대한 확대와 보충의 연장으로 기능하게 될 때, 본래의 판옵티콘의 의미는 탈각되고, 대신 관객은, 관객이 포함된 세계의 체험은, 고정된 무대와 시선의 축이 사라질 때 겪는 일종의 과잉된 시각의 세계 내의 아노미 현상 같은 것에 가까워지지 않는가. 이는 신체 곳곳에 달린 버튼의 징벌적 효과가 고통보다는 무기력함이라는 것에서 징후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누르면 스마트폰의 알림이 울리는 이 장치는 소리와 함께 실제 신체 반응으로 동기화되는데, 일시적으로 꺾이는 신체는 너무나도 가까운 네트워크로부터 잠식된 우리의 일상에 대한 반향으로, 일종의 〈Pan & Opticon〉의 주요한 모티브임을, 실제 작품을 풀어낼 단서임을 상기시킨다. ‘편재하는 시각’은 신체의 부분들에 체현된 몫으로 변경되었다. 그것은 이미 어떤 물리적 거리를 상쇄하며 우리의 신체 일부이자 의식의 흐름을 이루는 스마트폰의 차원에서 드러난다.

     

    비가시적인 감시의 물리적 환경과 완벽한 심리적 통제의 차원에서 판옵티콘은 과잉 산출된 투명한 감시자와 그로부터 수용자의 입장을 재구성함으로써 일상 풍경 자체를 무대로 연장한다. 곧 일상에 대한 과잉된 산출로서 그것과 거리 두기를 위해. 여기서 무용은, 발레는 표현으로서 메시지를 구축하는 대신에, 공간에의 상호 소통적 역량을 확인시키기 위해 기능적으로 복무한다. 찍히기 위해, 관객을 가로지르며 공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화면 안의 하나의 이미지로 구성되기 위해 발레는 그 자체의 외양을 크게 구부리지 않고서도 자리할 수 있다(이것은 아마도 이후의 작업 〈꼬끼-오〉에서 발레가 그 자체의 비인간 존재의 외양으로서 발레의 본래적 지위를 되돌려놓는 것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을까. 곧 발레의 표현적 양식 자체가 아니라 주제적 양식 안에서 발레를 사용하는 것, 또는 발레를 발레의 외양으로 드러내는 것).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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