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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혜경, 〈공룡과 공룡동생〉: ‘과’라는 사이의 기호학
    REVIEW/Theater 2026. 3. 3. 20:35

    백혜경 작·구성, 〈공룡과 공룡동생〉[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백혜경의 〈공룡과 공룡동생〉은 언니 ‘공룡’과 동생 ‘재영’ 간의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을 환상적으로 횡단하며 현재를 극복해 나가는 두 자매의 삶을 그린다. 기억은 구체적 사건으로 나타나는 대신에, 그것을 통과해야 하는 문지방성(liminiality)인 쓰레기 섬으로 환유되는데, 그것은 온갖 잡동사니가 육박하며 푹푹 빠지는 구렁텅이가 되어 발목을 붙잡는, 가시화되지 않는 기억의 누층―곧 기억은 복잡다단한 무의식에 싸여 있고 또한 그것에 묶여 있다.―을 환각적 세계, 의사-꿈의 세계로 연장해 낸 것과 같다. 이는 누워서 베개로 얼굴을 감싸면서 수중으로 내려가는 프리폴을 체현하는 의식의 입문 단계가 지닌 환유적 차원이 일정 정도 연장된 바이기도 하다.

     

    공룡과 재영 사이에는 ‘과’가 있는데, 경지은, 이 셋을 백혜경, 이미라 세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수행한다. 그것은 일견 세 배우의 두 역할에 대한 대등한 나눔을 위한 것이지만, 그 효과는 어떤 역할에도 세 명의 배우가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모든 역할에 결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역할의 임시성과 배우의 수행성 사이에 경계가 그려지게 되는데, 이는 ‘공룡’이라는 메타포로 전이된 언니에 대한 굴절된 재현이 유동성의 차원에서만 단지 우연히 결정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현실을 재현 불가능한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지각의 조건을 경계 넘기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원위치시키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재현의 위험으로부터 도피하기가 아닌 재현의 토대를 끊임없이 검토하는 일이 된다. 여기서 ‘공룡’이라는 메타포가 IQ가 75로 소개되는 언니―경계선 지능, 혹은 느린 학습자로 설명되는―에 대한 왜곡과 멸칭의 차원을, 일종의 퀴어라는 용어의 성립에서처럼, 역으로 전유해 승화시키는데, 거기에는 또 다른 의미들이 파생한다. 곧 은유의 공간 안에서 부정적 의미는 일차적으로 유예되며 거대한 쓰레기 섬과 같은 인접한 상상의 세계로 확장된다. 다시 말하면, 거대한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모든 것들이 흡수되며 지연된다.

     

    하지만 이 쓰레기 섬은 그 자체로 재현될 수 있는 기억의 차원을 이루지는 않으며, 나아가 부정적인 차원 자체를 수용해야 한다. 그것은 양가적인데, 프리폴이 현실에서 피신해서 수면 아래의 기억에 잠기는 하지만 현재에 대한 부정적 기억을 또한 마주할 수 있는 역설적 차원의 ‘자유’를 의미한다면, 여기서 결국 중요한 건 의미 자체가 아니라 통과함의 행위 자체가 된다. 곧 쓰레기라는 부정적 의미에의 고착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하는 하나의 절차적 구간으로, 과제로 치환하는 것, 하나의 의미를 벗어나 또 다른 의미를 향해 가는 것, 의미와 의미 사이를 통과해 가는 것, 의미가 그 과정에서 전치될 수 있음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룡과 공룡동생〉은 은유를 통해 지칭하고 작동하는 한편, 은유 자체의 의미를 체현한다. 재영은 후반에서야 “공룡동생”이라는 이름을 획득하는데, 그것은 언니를 괄시하며 밀쳐 언니가 사물함과 부딪혀 떨어져 나간 언니의 송곳니를 찾는 지금까지의 여정이, 쓰레기 섬을 지나 마침내 그 원인과 마주하며 복수의 순간을 쟁취할 때, 그러니까 놀림당하는 언니 동생의 위치를 자임하고 행동에 나설 때 자기 명명의 근거를 그로부터 함께 가져오는 것이다. 반면, 이 짜릿하면서도 짧은 ‘승리’의 순간은 억눌려 있던 기억과 현실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난한 사투 이후에 부속되는 바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신체적 얽힘, 매체로서 나의 질적 변용이라는 환유의 세계이다. 이는 내장 기관처럼 구불거리고 또한 뒤섞이며 압축된 솔기 어린, 하얀색 캐스팅 구조물들이 장벽인 듯 또한 방어막인 듯 군데군데 집적―안쪽의 계단형 구조물, 덩어리들, 바깥쪽의 가구 의자 형태 등―되어 마치 미로 같이 무대를 싸고 있는 하수와 중부, 그리고 상수의 패치워크된 천 조각들은 어떤 기억의 계층적 차원과 연관되는 듯 보이는데, 곧 하수-중부의 덩어리 진 기억의 환유로부터 상기되는 기억의 파편들이 드문드문 재현되는, 곧 명확한 가시화가 구성되는 장소는 상수이다.

     

    공룡과 재영 둘만의 은밀한 방으로서 상정된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안정적으로 보존된 그 일화적 기억들은 1세대 아이돌 god의 멤버 김태우를 좋아하는 언니의 고백, 입술이 아니라 혀가 닿는 ‘키스’를 둘이서 체험하는 것에서, 세 번의 죽음이 나열될 때 공간은 중앙의 구조물과 얽히기 시작하는데, 길고양이 다크시니를 길에서 (계단 뒤에서) 길어 올려 아버지의 눈을 피해 서랍에 넣어두는 모의-실행 이후에 곧장 하수 옆쪽 무대 바깥에서 헤드라이트와 오프 사운드가 난입하면서 아버지의 등장을 알리고 둘은 뒤섞여 드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어붙고, 그렇게 고양이가 있는 공간을 회피―아버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고양이의 (상상적) 눈의 자리를 소거―하며 하수에 고착되는 순간이 출현한다.

     

    바깥쪽 스피커로부터 직접 출현하는 오프 사운드는 안쪽으로 통과하며 외화면 사운드로 전이되는데, 거기에는 물론 시간적 간격이 없지만 물리적 차원의 피드백이 그 지연됨으로의 착시를 수여한다. 그러니까 이는 시각적 지연의 사태가, 머뭇거림의 지각적 혼동에 따른 시차가 실제 발생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폭력의 전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곧 이러한 지연은 예측 불가능한 사태에서 비가시화된 존재가 또는 마주할 수 없는 존재가 출현하는 것에 따른 것으로, 이때 바깥으로부터 건너오는 소리는 그가 지배적으로 공간을 고정하는 것의 효과와 연결된다.

     

    지연은 곧 들린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진동이다. 이때 그 둘의 행위는 시각적 판단의 근거를 애써 외면함으로써, 곧 그 바깥쪽을 보지 않음으로써 그것의 산출 근거로서 장소를 무의식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온전히 지배당함의 구조적 차원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나아가 이를 가시화한다. 그 둘만의 공간이 무력화되고 집 전체의 재편에 따라 은신의 차원으로, 무대가 아니라 암약하는 백스테이지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들만의 세계의 총천연색 기억과 그것이 가려지는 어두움의 기억, 그리고 다크시니, 앵무새 오미자, 어머니로 이어지는 세 존재의 죽음에 대한 기억, 잔여들로 이뤄진 뭉쳐진 덩어리의 수면 아래의 무의식적 기억,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다시 현재화하는 혁명으로서 가상의 기억은 상수, 중앙, 하수 세 개의 공간을 조명의 변화와 함께 분별 지어 나타난다. 객석 중앙 통로를 가로질러 천장의 송곳니를 떼어 가져오는 공룡의 모습은 예외적으로 현실을 직접 관통하는 사건의 의미로 기입된다.

     

    둘의 셋으로의 나눔, ‘과’라는 중간자적 존재의 삽입은 이 둘의 나눌 수 없는 관계, 운명적 결속의 아이러니를 지시한다기보다 존재 간의 통약 불가능성을 가시화하며 그로부터 둘의 연결이 각자의 차원에서는 나눌 수 없는 또 다른 가능성을 산출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은 곧 그사이인 ‘과’를 안고, 그 사이로서 존재한다. 이 ‘과’는 우리를 나누면서 연결한다. 우리는 나누어진 존재들로서 연결된다.

     

    이 ‘과’라는 존재로부터 둘에 대한 서술의 지위가 또한 마련되는데, 곧 그 두 존재 각각으로 분화되며 하나의 증폭된 존재의 형상을 이루기도 하지만, 그 둘로부터 서로를 연결짓는 제삼자의 지위를 체현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 〈공룡과 공룡동생〉이 낭독극의 형식을 택한 건 중간 과정의 단계를 이 작품이 밟고 있어서라기보다 그 ‘과’의 전이성과 매개성이 작품의 이념 자체이기 때문이다.

     

    곧 낭독극에서 언어를 수행한다는 측면, 언어에 의존하며 임시적 역할로서 그 언어를 소유하지 않고 다만 전유한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과’의 차원으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마치 ‘과’가 공룡도, 공룡동생도 아닌, 공룡과 공룡동생의 사이에서 그 모두의 영역을 하나로 지칭하는 잠재적인 것의 모든 이름인 것과 같이, 언어와 수행자 사이의 ‘과’를 표기하며, 언어와 실재 사이의 잠재성의 지대를 구성한다.

     

    인물의 직접성을 언어적 차원에서의 매개로 전이시키는 이 같은 부분은, 언어의 객관성에 의존하기 위함이 아니라, 또는 실재의 과도함을 방어하기 위해 언어의 허약함을 도입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기술의 과정에서 언어를 새롭게 갱신할 것이, 언어의 토대를 가설할 것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재현적 수행의 차원은 확고한 사실의 차원으로의 환원이 아니라, 기억의 더듬거림과 의심, 그리고 늘 현재의 위치에서 재구성되는 언어의 다시 쓰기적 전략과 그 토대 아래에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낭독극은 기억에 대한 언어의 절대적이지 않은 차원에서의 접근을, 매개의 필연성을, 그 언어에 대한 조심스러움의 태도를 가시화하는 형식이다.

     

    중간자적 사슬로서 ‘과’라는 존재는 공룡과 공룡 동생의 하이픈적 연결의 물화이면서 동시에 공룡과 공룡동생 모두를 자신과 함께 언어적 사물로 구성한다. 곧 〈공룡과 공룡동생〉이 ‘공룡’이라는 가시 돋힌 은유를 공룡 탈의 접지로 가시화할 때 발화 주체의 수행적 정체성과 무대의 근거가, 그리고 전도된 적극성이, 새로운 가시성의 권능이, 나아가 주체의 자유와 발산의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과’는 또한 부가된 그리하여 존재를 배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것은 존재에 기생하지만, 반대로 존재가 기생할 근거를 마련해 준다. 공룡과 공룡동생 사이에는 그와 같이 ‘과’가, 절대적으로 매개가 필요하다.

     

    ‘과’의 기생성과 반-존재성은 ‘과’가 공룡 탈과 같이 반드시 존재에 부착될 때만 의미화되며,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는 둘을 셋으로, 또한 셋을 하나로 존재하게 하는데, 이때 그 셋이 다름으로 고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절대적 차이를 매개의 사이로 연장하기 위해, 셋 안의 역할이 아닌 배우의 교환이 이뤄진다. 이는 언어와 실재의 교환으로서 그사이로서 존재하는 낭독극의 특징과 조응한다.

     

    ‘과’의 서술적, 매개적 위치의 존재가 특별한 것이 되지 않도록, 예외적 차원이 아니라 모두에 대한 보편적 언어의 차원이 되기 위해서 그 배우의 교환은 필연적인데, 그렇게 ‘과’는 둘이 아닌 셋으로의 연결-접속을, 그 둘의 확장된 세계로부터 또 다른 가능성의 틈을 만들어 낸다. 또한 ‘과’는 공룡을 바라보는 재영이라는 일방향적으로 화자가 결정되지 않기 위해서, 공룡동생을 초과하는 공룡만의 세계와 윤리가 자리 잡기 위해서 횡단하는 양방향의 경로 의존성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양립 가능할 수 있도록 하며, 직접적인 그들의 이야기와 동시에 그것을 서술하는 자가 들여다보며 생기는 거리를 안고 있는 이야기를 또한 양립시킨다. 그사이에 결정 불가능한 존재의 기억을 위한 분투의 작용이 있다. 곧 고통스러운 기억을 재체현하기는 그 기억을 말하기의 고통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 확정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한 지난함과 어려움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불안정한 고통에 접근하기이기도 하다.

     

    프리폴이 고통에 대한 재접지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아니라 그 고통을 의미화하는 것처럼 고통의 현재화는 현재의 재의미화가, 진정한 현재가 고통을 경유해서만 가능하며 그 고통으로부터 쓰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존재와 다른 존재의 사이, 하나의 존재와 그 변화된 하나의 존재 사이, 그리고 현재와 기억 사이, 역사와 미래 사이에서 ‘과’는 그 모든 것의 잠재성을 이야기하며, 그 잠재된 것을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현재 기입하고 있다는 것이 아마 이 낭독극의 형상이 비추는 그 자신의 고유한 이념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기획 두산아트센터
    작·구성 백혜경
    드라마투르그 장영, 장기영
    출연/창작 경지은, 백혜경, 이미라
    협력창작 백소정
    기술 이효진


    움직임 허윤경
    무대·소품(오브제) 디자인 미팍
    무대팀 김하니
    조명 디자인 윤혜린
    조명 오퍼레이터 윤혜린 
    조명팀 김효민 나홍선 양상모 이상혁 전수진 
    사운드 디자인 지미세르
    사운드 오퍼레이터 양대은
    사전음성소개 제작 구지수 김내원 김혜영


    프로덕션 무대감독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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