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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영 각색·연출, 〈마른 여자들〉: 여성이라는 신화 혹은 증상
    REVIEW/Theater 2026. 3. 7. 14:14

    박주영 각색·연출, 〈마른 여자들〉[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마른 여자들〉의 쌍둥이 자매 로즈(이세영 배우)와 릴리(황미영 배우)는 첫 등장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찰싹 붙어서 고개를 정면으로 함께 돌린 포즈로써 어린 시절 마치 하나였던 둘을 보여주는데, 이는 언니 릴리가 로즈를 떠나는 순간에 이르러 로즈의 릴리에 대한 그 애정과 의존의 강도를 드러낸다. 곧 언니의 찢겨져 나감은 마치 나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이 상실된 영역이 영구히 지속될 거라는 인상을 주는데, 여기에는 곧 둘의 결합된 육체, 놀이를 통한 긴밀한 공통 감각이 둘이 하나였던 신화적 시간의 응축된 인트로 장면의 효과가 전제된다. 이러한 둘의 친밀한 사적 영토는 사회적 틀로, 더 큰 사회적 관계로 적용되며 희미해진다. 로즈의 삶은 거식증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한 병동에서 고착된다.

     

    언니를 향한 로즈의 “나의 릴리”라는 이따금 외는 혼잣말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존재에 대한 애정과 상실감, 그리고 그의 극단적인 섭식장애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드러낸다. 로즈의 내면에 대한 표현은 그만의 중심을 유지하는 세계, 곧 닫힌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하는 그의 물리적 위치 안에서 구분되고 강조되는데, 몇 개의 동심원으로 퍼져나가는 무대 바닥의 경계 표시가 중앙의 로즈와 그 주변으로 퍼져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뚜렷한 영역 구분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먹지 않으려는 로즈의 충동은 마치 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경험으로부터 상실에 대한 방어이자 어린 시절에 대한 고착, 성숙과 성장에 대한 거부가 총체적인 연관성을 형성하는 가운데 획득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그가 가장 좁은 원 안에서 멈춰 있다는 사실로부터 조금 더 명료해지는 부분이다. 사실 〈마른 여자들〉은 로즈와 릴리의 대비되는 몸의 설정 아래, 그 사이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차이로 의도되는데, 곧 실제 마른 몸의 표상을 배우에게 일관되게 적용하는 대신에, 또는 마른 몸의 배우들로만 출연진을 구성하지 않는 가운데, ‘마른 여자들’이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아래 포획된, 그리하여 자기 구속의 신체적 정념에 지배되는 ‘하나의’ 여성을 다양한 차이로써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마름과 뚱뚱함의 기준이 결벽증적 자기 의식적 산물임을, 어떤 오인과 균열에 연관되어 있는 것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내재적 차원에서의 인물의 지각이 마치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 바깥의 관객 자신의 혼동과 오지각을 불러오는데, 이것이 더욱 뚜렷한 효과를 남기는 건 마름과 뚱뚱함의 실제 기준과 괴리된 것처럼 보이는 인물의 자기 인식이 사회적 차원의 기준과 부합하는 것인지 혹은 괴리된 것인지를 미결정 사태로 밀어붙인다는 것, 나아가 그 사회적 기준 자체를 불분명하게 만든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릴리의 친구들인 제나(김유민 배우)와 로런(김별 배우)은 주변 남자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며, 자신들 내에서도 서열을 자리매김하는데, 이때 뚱뚱함과 마름으로 대별되는 릴리와 로즈를 두고 릴리를 매력적인 인물로, 로즈를 그 반대의 차원으로 정의한다. 이 둘 역시 마르기 위해 음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며 살아가는데, 이는 그 둘의 공통된 삶의 기준과 그 공유와 실천의 차원에서 서로가 결속됨을, 그 기준에서 벗어날 경우, 서로의 우정이라 믿어졌던 것 역시 깨어져 나갈 것임을 의미한다.

     

    실제 제나가 서열 1순위로서, 로런을 비롯해 주변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역시 그가 아마 가장 마르고 또 매력적인 인물로 표상되기 때문일 것인데, 아마도 릴리가 아닌, 로즈가 그들로부터 밀려나는 건 로즈 스스로가 그러한 미의 기준으로서 마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그들이 알고 있거나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미에 대한 가치는 그 사회적 기준의 엄밀함이 아닌, 그것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맹목적 믿음의 체계를 경유해 완성된다. 여기서 이 둘의 마름에 대한 의식은 마름의 신체적 형상을 결정짓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여기서 릴리의 외모적 특징이 그들과 로즈보다 더 상대적으로 차이를 이룸에도 그만이 인정되는 건 극단적인 마름과 극단적인 뚱뚱함은 결국 하나의 계열체를 이루는 기호들이기 때문이다. 곧 뚱뚱함으로서 식별됨은 마름의 가치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며, 또한 마름의 기준이 통상화된 현실에서 뚱뚱함은 예외적 가치로서 그 자체로 특별함을 지님을, 그렇게 인정될 수 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의미화되는 기호의 보편적 특성에 근간을 두지만, 무엇보다 실질적인 표현 양태로부터 오는 차이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재현의 차원에서 엄밀히 작동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마른 여자들〉은 다양한 표현형의 외모를 경유해 외모의 차이를 물리적 차원으로 규정짓는 대신에, 그것에 강제된 사회적 인식으로서 이데올로기를 투영해 내고자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른 여자들〉은 여성의 거식증이라는 특이한 양태 이면에, 여성이 지닌 외모에 대한 강박을 짚어낸다. 로즈는 조금 더 복합적인 인물의 속성을 띠는데, 사회에서 여러 남자를 만나는 릴리와 달리, 로즈는 잃어버린 대상으로서 과거의 시점에서의 언니라는 존재에 고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세계 속에서 극단적으로 가벼워져서 사라진다는 어떤 거식증이 구성하는 환상의 성격과 같이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기약 없는 애착, 또는 이 닫힌 세계에 대한 반동의 성격 등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는 가장의 성격, 그리고 성장하지 못한 자아를 외부적으로 규정하며 자신을 인식하고자 하는 충동의 성격에 더 가까워 보인다. 언니와의 지난 대화에서 언니에 이어, 언니와 달리 자신이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았던 것이 무언가 잘못되었고 수정되어야 함의 감각으로 인지되었던 찰나의 사건에서부터, 제나의 무리로부터 레즈비언으로 의심되고 규정되었던 사건은, 결국 로즈가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적 규칙으로부터 자신을 부정하거나 (재)규정해야 함을 드러낸다.

    또한 창문 너머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발화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사랑으로 인정되고 규정된다는 점에서, 그 사랑은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서 작동되는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곧 그 사랑은 처음부터 그 대상을 지칭하는 것―그 상대방이 누구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거나 상상적 차원에서 가장되는 것임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로즈의 정신병리적 차원이나 낭만주의적 환상의 차원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결여의 차원이 더 근원적으로 작동하는 것임을, 사회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만드는 결여 바깥의 또 다른 환상이 자리함을―또는 그 이데올로기 자체를 만드는 환상이 자리함을―, 그리하여 ‘마른 여자’라는 관념이 수행적 지침을 넘어 증상으로, 신앙으로, 몸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여성들에게는 단순히 이성과는 다른 또 다른 차이의 존재가 선망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그의 눈빛에는 어떤 부정의 여지도 검출되지 않는다.―, ‘마른 여자들’로 지칭되는 여성의 자리가 감옥의 자리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김민관 편집장

     

    [크레디트]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원작 다이애나 클라크(Diana Clarke)
          소설 『Thin Girls』(HarperCollins, 2020)
          소설 『마른 여자들』(㈜창비, 2021, 번역 변용란)

    각색·연출 박주영

    조연출 김서휘

    출연 김별 김승환 김유민 이세영 임윤진 정제이 조어진 최정화 황미영

    프로덕션 무대감독 김영주

     

    무대디자인 남경식

    무대제작 에스테이지(s_TAGe, 대표 이윤중)

    제작팀장 김세진

    제작팀 김용선 임대환 정재현 박호준 이승윤 박경준 이준혁

    작화팀 작화공간(대표 이남련)

    작화팀 이재형 박지원 채근주 이주은

     

    조명디자인 김지우

    조명어시스턴트·프로그래머 김현

    조명오퍼레이터 박채린

    조명팀 박희진 배연진 엄지혜 이상민 이예진 이현동 이현직 임민영 임혜성 전의준 정찬영 정채림 한상우

     

    안무 하영미

     

    음악 정현정

     

    영상디자인·제작 LIMVERT(임정은)

    음향디자인·시스템디자인 LIMVERT(임정은)

    음향작업 백상길

    영상·음향오퍼레이터 김서휘

    영상촬영 앨리스 스튜디오 프로젝트(대표 방지현)

     

    의상디자인 이윤진

    의상제작 옷장

     

    분장·소품디자인 장경숙

    분장팀 홍주미

    소품팀 박진아

     

    그래픽디자인 박연주
    사진(프로필·설정) 정희승 스튜디오(대표 정희승)
    사진(연습·공연) 서울사진관(대표 김호근) 
    영상(공연 실황) 헤즈스튜디오(대표 김선우)
    SNS콘텐츠제작 필루미에르(대표 이화승)
    인쇄 으뜸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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