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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 횡단하는 존재 혹은 시간REVIEW/Theater 2026. 3. 7. 14:41

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구성/연출: 강훈구)[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이하 〈오감도〉)는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에서 ‘시 제 1호’의 제 1 아해부터 제 13 아해까지 순차적으로 “무섭다고그리오”라는 시의 구조와 함께 문장을 가져와 변주함으로써 13개의 장을 토대로 구성한다. 즉 하나의 장에는 “제○의아해가” ○○ “무섭다그리오”라는 문구가 새겨지는데, 여기에는 각각 1부터 13까지 순차적인 숫자와 무서움의 다른 대상이 기입된다. 처음 아해(박지안)는 “태어나기”를 무서워하는데, 이는 상수에 들어선 줄 하나를 잡고 ㅅ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착지와 함께 줄을 놓고 빽 소리를 지르는, 엄마 자궁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리고 탯줄을 자르는 것까지를 재가시화한 장면으로부터 차례차례 일렬횡대로 누워 뒤집고 앉고 서고 걷고 달리고 하는, 일련의 아기의 신체 발달 과정을 묘사한다.
이 아해가 되는 과정은 어둠 아래 어떤 차이로 분화하기 전의 최대한의 잠재성을 공통적으로 함축한다. 동시에 이 전표현적 통과의례는 본격적인 현실 이전의 “사는 건 고통”이라는 마지막 대사와 같이 앞으로 펼쳐질 고통의 현실적 차원을 예고하는 한편, 가장 처음의 고통을 딛고 나아간 아해의 의연함으로 태어남을 과거로 결정 짓는다. 제4의 아해가 무서워 하는 건 “집”으로 토요일 집의 풍경은 늦잠을 자는 부모와 부모를 어떻게든 깨워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아해(박아윤)의 응석, 투정, 연기 등의 행위가 반복된다.

괴물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아해(박나연)의 상상력의 언어는 직육면체 뼈대 구조물 안에만 있던 부모(장성익, 이지민)가 상수로 이동한 그 구조물 앞에서 괴물을 연기하고, 이것이 하수 쪽 천에 확대된 그림자로 비치는 것으로 갈음되는데, 이와 같은 의식의 창조는 부모와 나의 애착 관계가 분리되는 시점에서의 공포가 무의식적인 원-이미지의 차원으로 자리 잡는 것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아마 이 무의식적 공포는 현실을 자각하고 미래의 차원을 마주할 때 더 극단적 차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이와 공포를 결부 짓는 건 이상함으로 수식되는 특정 어린이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이상함을 근본적으로 지닌 모든 아이의 독특함의 특징을 조명하는, 보편적 차원에서의 특수성과 예외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포라는 특징 역시 발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은 곧 주체와 세계의 관계성을 조각하는 일 아닌가. 그 세계를 온전히 인지할 수, 파악할 수 없는 주체의 두려움과 공포가 어린 시절에 더 근본적 차원으로 주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곧 시인 이상의 언어 유희적 공명으로서 도출된 ‘이상함’과 시가 적시하는 ‘공포’의 맞물림은 아이를 평범함이 아니라 독특한 주체의 차원으로 현상해 낸다.
4장에서 삼성전자 주식 방송을 보는 아버지와 쿠팡이츠 쇼핑몰을 검색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적나라한 현실의 표상이다. 거기에는 그에 대한 가치 평가는 물론 현실 세태에 대한 풍자 이전에 객관적으로 표기된 작금의 현실이 가로 놓이는데, 아이들의 관점에서 또 그들의 욕망에서 동시대는 검열 없이 편입되고 가시화된다. 이 지점에서 현실은 더할 나위 없이 사실적으로 다가오며, 거기에 따른 공포도 선연해진다.

가령 7장의 “스마트폰”에는 성냥팔이 소녀를 패러디해 성냥 대신 스마트폰으로 온기를 내려는 아해(김지은)는 아버지가 일론 머스크가, 어머니가 아이유가 아닌 자신의 여러 현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데, 이는 아이가 보는 세계과 그에 대한 욕망을 적시한다. 그에게 펼쳐지는 세계는 일종의 인스타그램의 릴스나 유튜브의 쇼츠로 이뤄진 자동으로 스와이프되는 세계이며, 이는 이미 AI 기술이 잠식한 세계의 상상적 재현이다.
그가 성냥 대신 스마트폰을 켜서 자신의 행복한 삶을 표상하는 데에는 AI가 조작해 낸 트럼프와 장원영, 손흥민이 아해에게 따뜻한 미소와 말을 건네는 가상의 현실이 동원되고, VJ 방송의 툴 아래 후원을 받아 현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베트남 노래 〈Phut Hon〉 아래 양팔을 머리께로 올리고 골반을 좌우로 반복적으로 흔드는 제로 투 댄스를 추며 어른들의 행태를 핍진하게 재현하고 자본주의적 열망을 고스란히 체현한다.
이는 상수에 초록색 배경지가 아해 뒤에 깔리고 그가 방송을 준비할 때, 하수의 릴스로 이뤄진 세계는 그가 따라 하는 제로 투 댄스의 무대가 정작 관심의 초점이 되는 식으로 모호하게 그의 성공은 좌절된다. 스마트폰이라는 매체가 아해의 삶을 떠받치고 있고, 세계를 재표상하고 잠식하며 그의 욕망을 주조한다는 사실보다 적나라하며 적확한 현실의 공포를 표현한 부분이 있을까. 아마도 그로부터 현실 세계의 반향은 공포의 차원을 어른과의 공통적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7장은 8장의 “아이돌”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는데, 아해들이 꿈꾸고 열망하는 그 미래의 상은 백설공주의 마법의 거울 모티브를 가져와 “소원을 이루는 거울”로서 나(민유경)를 계속 변경시킨다. 세 가지 소원은 예쁜 얼굴을, 아름다운 목소리를,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으로, 이는 하나를 얻을 때마다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더해진다. 여기에는 불길함이 자리하는데, 알라딘의 요술 램프가 아니라,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소거하는 대신 인간의 다리를 얻는 소원 성취에 따라붙는 감산 작용이 전제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9장의 “나이드는 것”의 공포는 마지막 13장의 “나”에 대한 공포를 미래에 대한 상상의 차원에 입각해 선취한다. 13장은 미래의 나와 현재의 아해로서 나가 마주하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하고 안정과 평화를 얻는 카타르시스적 승화로 완성되는데, 이는 그 전의 12장이 내세운 세 개의 문과 입구를 상정하는 구조물의 상징적 이미지로부터 도출되는 바깥과 경계의 은유가 아니라, 나에 대한 직시의 내재적 차원에서 고유한 하나의 ‘입구’를 찾게 됨을, 비로소 현재에 안착됨을 의미한다.
곧 “전쟁”에 대한 공포로부터 전유된 “막다른 길”의 메타포가 선연해지는 12장은 세 개의 문을 두고 갈팡질팡하며 “미래로 가는 길”의 불확정성과 어느 길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과 불안을 안은 ‘불안정한 걷기’로서 “질주”의 양상에 근접해 가며, 그 불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장으로서, 여기서 구체적으로 ‘전쟁’은 그것이 다시 어른들의 세계로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실제적인 차원에서 출발해,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삶의 차원에서의 절박함의 은유로 비약하며 그 의미를 새롭게 한다.

9장의 오랜 과거가 구성되는 적층된 시간의 차원은 오히려 미래의 시간을 앞당긴 결과로써 10장의 “꿈”에 대한 공포와 직결된다. 곧 1976년 누군가의 꿈이 변화된 그의 현재로 이어지는 순간, 누군가의 꿈은 다른 누군가의 이뤄지지 않은 미래의 자리를 선취하는 것이 된다. 이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맞바꾸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교차하게 된다. 나의 미래적 타자는 나의 (미래를 꿈꾸는) 과거적 타자와 맞물리는 지점에서, 나는 너로, 과거는 미래로 교환된다. 이는 어린아이도 노인이 된다는 선형적 서사가 아니라, 노인도 어린아이의 잠재적 차원의 분기이고, 나아가 미래라는 것은 무한한 잠재성의 영토임을 그리고 그 안에 모든 존재가 혼합됨을 또한 의미한다.
도래하는 과거와 선취된 미래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아해와 어른/노인은 상호 교환된다. 13장의 어린/실제 김강민과 어른 김강민(남재국)의 마주함은 전쟁이 초래한 혼돈의 상황으로부터 미래를 길어 올리는 것의 공포를 겪는 “나”의 모습이 심각하게 요동치며 두 개의 자아의 분화로 또 그 두 자아의 맞물림으로 증폭된다. 이것은 또한 극단적인 안정화의 파고를 산출하는데, “그래봤자 너는 나니까”와 “그래봤자 네가 될 테니까”라는 말이 서로를 교차하면서 되먹임되어 돌아오면서 나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나’로서 안정화된다. 나를 나로서 바라본다. 두 개의 결정된 시제 사이에서 미결정의 경로가 구성되고 그 사이의 무한한 잠재성의 지대는 오로지 각각의, 순간의 현존으로 소급된다.

노인의 기억와 어린 아이의 꿈이 맞물리는 9장이 오직 바깥의 시점에서 일종의 다른 두 존재를 혼동하며 그 둘을 하나의 시차로서 종합함으로써만 진리의 차원으로 도약 가능한 것이었다면, 13장은 과거의 타자적 나와 미래의 타자적 나는 오직 하나의 물리적, 장소적 연결 안에서 ‘시차 없이’ 직접적으로 현상한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를 자신으로 혼동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경유해 스스로에게 소급되며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된다. 나는 실패하거나 성장하지 않은 자의 열화된 버전으로서 나가 아니며, 그와 반대로 나는 더 성공하지 않은 자의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나가 아니다.
“그래봤자”는 어떤 미래를 향한 열망의 포기나 과거로부터 연장된 일정한 정체성에 고착됨을 의미하는 심드렁함과 회의주의적 정념의 제스처로 오해될 수도 있음에 주의해야 하는데, 이 둘의 마주함은 기본적으로 ‘나’라는 것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정의 내리는 것의 공포를 전제하며 그로부터 현재 존재의 양상에 집중함으로써 그 관념에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안정화되는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존의 절대적 추구는 나의 각 순간으로서 분화된 현존‘들’을 고유한 것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그것들이 고립되지 않은 연속선상의 나로 이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그 하나의 순간으로만 정의되기 때문에, 나는 이미 과거의 주어진 나의 고정된 틀에서 살아가는 것 역시 아니며 마찬가지로 나는 미래의 고정된 나의 모습을 향해 달려가는 것 역시 아니다.

〈오감도〉는 이 동등한 마주함을 통해, 나를 나의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봄을, 타자의 시선으로서 나를 정초함을 구성한다. 그것은 과거의 나가 미래의 나로, 또 그 반대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감도〉는 아해들의 이야기로써 그들에게는 어른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쥐여주며, 어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잠재적인 것으로 다시 기울어지게 하며 현재의 관성적 차원을 성찰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의 시선과 아해들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노정된다.
곧 어른들의 관성적 시선이 아해들의 다른 시선을 경유해 ‘신선한’ 것으로 계승된다면, 어른들의 시선은 아해들의 시선을 통해서만 적확하게 시선화된다. 아해의 존재가 단지 어른의 미약함, 부족함의 차원으로 감축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잠재성을, 꿈을 상정하는 것처럼, 결국 〈오감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형적인 시간의 도식과 그것의 발전적 방향으로의 고정된 이미지를 허물어뜨리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아해들이며, 무엇보다 시간의 배합과 혼합의 과정 아래서 아해와 노인을 횡단하는 기억과 꿈의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김민관 편집장
[2026 기획초청 Pick크닉] 〈 셋톱박스〉
* 일 시: 2026.2.6.(금)-2.14.(토) / 평일 19시30분, 주말·공휴일 15시 (화요일 공연 없음)
* 장 소: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 소요시간: 80분(인터미션 없음, 변경될 수 있음)
* 관람연령: 5세 이상 관람가(2021년 12월 31일 출생자까지)
■ 스태프
구성/연출_ 강훈구 조명_ 이경은 의상_ 조은실 무대감독_ 김동영 음악감독_ 김재훈 무대_ 단형석, 김봄(DayDay) 음향감독_ 이지영 영상_ 장주희 안무_ 오예현 기획_ 변은서 조연출_ 전준구, 한우빈 공동제작_ 종로문화재단 ■ 출연진
성인_ 장성익, 이지민, 류세일, 남재국, 오예현 어린이_ 김강민, 김지은, 김찬유, 민유경, 박나연, 박아윤, 박지안, 이주안, 조마리 'REVIEW > Thea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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