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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진, 하지민, 〈밤짐승 놀이패〉: 역사를 뒤집기 또는 존재를 입기로서 수행REVIEW/Performance 2026. 5. 11. 20:31

조현진, 하지민, 〈밤짐승 놀이패〉ⓒ안초롱[사진 제공=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하 상동). 조현진, 하지민의 〈밤짐승 놀이패〉는 동일한 크기로 분할, 배열된 거대한 “이동식 배경막”을 뒤집고, 수거하고, 바꾸고, 바닥에 던지며,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한 집단이 여러 카드를 동시에 내보이거나 하는 일종의 “카드섹션”의 형식을 변주한다. 이때 적용되는 집체적인 움직임은 통일성을 지향하는 “매스게임”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의례의 비의성을 기계적 합리성으로 분산시킨다. 그것은 제식과 가까운데, 이때 제목이 가리키듯 “밤짐승”은 재현되지 않고 전문적으로 수행된다―“놀이패”―.
여기서 배경막은, 카드는 모두 존재를 초과하므로, 행위는 찰라적이기보다 지루한 수공업적 노동에 가까워지는데, 엄밀히 카드의 반 바퀴 회전, 곧 카드를 떼서 카드 중앙 상단의 홈을 다시 후크에 거는 이 행위는, 배경에 부착되는 형상의 이미지라는 과잉된/지연된 존재를 산출함으로써 배경을 기워 넣는 행위자를 ‘배경’으로 전치시킨다. 그러니까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최종 목적인 이미지의 변경은 행위와 맞바꿔지면서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이미지를 낳고, 그 이미지의 일관된 톤을 직조할 필요성을 동시에 낳는데, 이는 특별한 정념을 띠지 않고, 그것에 몰입되는, 대상과 결착된 존재의 차원으로 낙착되는 듯 보인다.
그것은 포드 시스템을 의태하지만 사물의 지위를 통해 변경된다. 곧 동일한 사이즈의 이미지를 포함한 직각 구조물에 대응하는 몸은 비-주체성보다는 반-주체성에 가깝다. 이는 사물-지지체로부터의 어포던스로 연장되며, 제식 행위와 맞물리는 장면을 예기한다. 이는 후반부에 공간 중앙 기둥에 반으로 분절한 배경막 두 개를 90도로 끼워 맞추는, 배경막을 하나의 형상으로 다루는, 또는 환원하는 장면이 나머지 퍼포머들이 나란히 몸을 붙여 제식으로 사방을 직각으로 회전하는 장면과 동조화되는 것으로 확장된다―존재들은 사각형의 경계이고, 삐죽 나오는 후크이며, 탈부착되는 카드이다.
배경막은 ‘이미지+지지체’라는 합성체인데, 그것은 일종의 행위가 자리하는 배경으로 전도된다. 처음 사선으로 누운 양성구유의 신체 조각상의 이미지가 ‘걸려’ 있는데, 이를 뒤집어서 그래픽상 그리드 이미지를 일부 만든다. 이는 하단부에서 카드를 떼어내어 글씨가 적힌 다른 카드를 드러내는 것으로써 3중으로 겹쳐진 신체-그래픽-문자의 이미지로 결정된다. 양성구유를 이야기하는 문장―문자 카드들의 선형적 배치―은 다섯 개의 참조 자료로부터 인용―“역사 속에서 공통의 이념을 실어 나르는”―되며, 5번의 변용 절차로써 매순간 나타나는 과정을 거친다.
텍스트는 기입되는 것이 아니라 꿰매지는 것이고 표식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텍스트-사물로서 카드를 뒤집는 ‘놀이’를 보는 것인데, 그 중간에, 그 사이로 삽입되는 건 양성구유를 상징하는 비정형 신체들이다. 첫 번째 나타난 신체는 공간 가로를 거의 차지한 배경막 양옆으로 신체를 덮는 삐죽한 돌기들이 달린, 극피동물의 형상을 띤 가죽의 커다란 의상을 걸치고 기어오는, 그리고 이를 각각 양립한, 세 개의 인간-생물(비인간)의 아상블라주로서 두 존재이다―이는 봉산탈춤의 사자춤같이 탈을 쓴 행위자의 요소가 각인된다. 그 중 하나는 줄줄이 내장 같은 것이 뒤에 달려 있는데, 이 두 형상이 하나의 ‘내장’을 가진 신체로 연결되며, 그 안의 존재가 다른 존재를 덮친다.

〈밤짐승 놀이패〉는 둘의 하나로의 합성, 곧 둘씩 짝 짓는 일을, 배경막 작업 사이에, 배경막 사이에서 펼치는데, 그것은 양성구유라는 하나의 신체, 하나가 배가된 그 하나의 신체를 두 개의 신체로 분절해 합성하는 방식으로서 표현하는 것과 같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정상’의 개념이 범주화하는 데 실패하는 관념의 미진함, 어려움 따위를 드러낸다. 그 하나의 완전한, 균열 없는 합성을 위해, 둘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둘의 기원적 경로 안에서 특이성과 고유성의 차원을 봉쇄하는 것―일종의 기계적인 부착―으로써 행위를 종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계적 행위의 차원은 ‘하나의’ 신체라는 신화적 모티브의 서사로 전도된다.
그것은 시간을 상쇄한, 소거한 기원의 모티브에 대한 (‘딱딱한/정형적’) 안무로서, 정확히 양성구유라는 어떤 신체에 대한 불완전한, 변환하는 접근이다―양성구유 자체라기보다 ‘밤짐승’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글자-카드들을 결정적인 텍스트로 읽어 내기는 어려운데, 그것은 항시 이중의/뒤집힌 이미지 자체로서 충분히 기호화되기 때문이다. 곧 그들로부터 뒤집힘 당하는 건 양성구유의 전도된 신체이거나 오역된 신체이다. 그리고 표기되지 않았던, 은폐되었던 역사의 비가시성이다. 그러니까 카드는 신체이며, 텍스트는 역사이다. 카드에 부착‘되는’ 텍스트는 곧 역사는 언제나 1/2의 확률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념화한다. 그래서 텍스트라는 것이 있다면, 이는 들려주기보다 또는 보여주기보다 신체를, 역사를 체현한다.
들려지는 것이 있다면, 음악인데, 이는 대체로 거대한 신화적 모티브를 배경으로 하는 듯 보인다. 처음과 끝에 그리고 중간 중간 주조음을 이루는 금관악기의 음 아래, 카드를 탈부착하는 행위는 장중한 분위기 안에 무심하게 작업하는 형상에 가깝다. 그 무심함은 이 음악적 숭고함에 잠겨 있기보다는 이 음악을 경유해 일정하고 규율화된 법칙을 승화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이 긴 금속관을 타고 나오는 공기로서 음악은 공간을 뒤덮는 사운드스케이프로 이어지면서, 어떤 물리적 신체의 용출로서 재표기되는 데 가깝다.
이때 그것이 가리키는 환경은 광활한 초원과 같은 공간의 이미지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이와 맞물려 퍼포머들은 일종의 양떼를 모는 목동의 이미지에 가까워 보인다. 이 소리는 그렇게 서사적 차원에서 형상을 어렴풋하게 주조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지루한 노동을 무마하는 재분절의 기제로서 활용된다. 카드를 뒤집는 것은 이후 카드가 걸린 나무 패널이라는 카드의 지지체 자체를 뒤집는 것으로 바뀌는데, 이때 양 배경막을 2조로 분배해서 동시에 뒤집는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회전함으로써 안은 다시 바깥의 위치로, 또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로 전환된다. 이때 사선에서 응시하는 하나의 얼굴이 현현한다.
이원의 스크린이 이중의 경계로 바뀌는 그 사이에서, 그러니까 이미지와 텍스트의 전치 과정 아래, 신체는 이형적 차원으로 부가되거나 배가되는데, 앞선 극피동물의 탈, 그리고 바지에 결착하는 활 모양 하얀 성기, 올라간 1단 사다리 아래로까지 내려온 왼쪽 팔에 낀 하얀 용의 몸통 같은 긴 원통형의 종이 오브제 역시 그러하다. 곧 배경막이 이미지를 전사한다면, 그 앞의 형상들은 대조적으로 평평하지 않은 솔기를 나타내는데, 찢긴 종이들을 담은 비닐봉지는 알레고리화되지 않은, 될 수 없는 신체-텍스트/이미지 파편을 은유한다.

앞선 하얀 긴 팔은 다른 팔로 투명 봉지의 종이 쪼가리들을 뒤적여 찾은 사탕 하나를 실어 보내는 통로가 되는데, 이는 그것이 신체적인 것, 특히 생명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성적인 것이 통과하는 채널임을 드러낸다―앞선 동물의 내장 역시 가죽을 뒤집어 쓴 이의 헐떡임 아래 꿀렁인다는 점에서 이로 소급될 수 있겠다. 그걸 받아먹는 또 다른 존재는, 그 채널로부터 ‘생명’을 수신한다. 하지만 이 파편적인 것, 바닥과 가까운 종잇조각들은 마지막에 이르러 구획된 세계를 허물어가기 시작하며, 배경막을 자신으로 당겨오기에 이른다.
이 변경은, 세계 내 중재, 또는 세계 자체의 몰락은 천장에 결착된 몇 개의 후크에 건 로프들의 연결로 지탱된 앞선 활 모양의 구부정한 성기 모양으로 몇 개의 단위로 분절, 재봉된 커다란 하얀 천의 형상이 로프를 잡아당기는 행위로써 ‘닻’을 올리게 되는, 구부정한 성기가 도래하는 기점 이후에 있다. 이 성기가 쏟아내는 건, 그걸 뒤집어 뱉어내는 건 역시 하얀 종이들이다. 거기에는 어떤 글씨나 이미지가 들어 있지 않다. 그리고 퍼포머들은 파란색 배경에 문자가 적힌 카드들을 아래로 철회하기 시작하고, 배경막은 조명과 조응하는 어두운 이미지들로 남고, 이는 다시 바닥에 놓인 검은 천으로 연결된다.
그 천을 2인 1조로 펄럭거리면서 바닥의 종이들이 휘날리고, 배경막의 카드들도 덜렁거린다. 이는 역사적 사실들이 사라지거나 지워지는 흔적으로서보다는 단지 밤의 앙면으로서 유동하며 잠재된 차원으로 솟구치고 새어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카드 뒤집기와 같이 그것은 견고한 역사적 토대에 대한 불투명성을 동시에 투과성을 기초로 한다. 역사를 매만지는 손 그리고 벌떡이는 내장적 감각의 제어 불가능한 신체로부터 찢겨진 신체들에서 이윽고 진동하는 표층으로서 역사의 피부―거대한 역사가 숨을 쉬는 것으로도 은유할 수 있을 것이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밤짐승 놀이패〉는 역사를 기입하기보다 역사를 기입하는 대상으로 바꾼다.
밤짐승을 놀이하는 패에 가까운 이들의 행위는 타자성의 존재를 현상하고, 놀이하는 존재들의 묵묵한 수행으로써 역사의 한복판에 던져진 무심하고 투박한 관찰자의 형상을 조각한다. 그러니까 타자에 대한 재현은 놀이의 양태들, 인형 조종사와 인형과의 절합된 관계 양식을 경유하고, 각종 오브제와 사물을 결합하고 분화시키고, 교착된 신체 형상에 대한 안무를 소화하고, 문자-조각들을 조각해 내는 등 직접적이기보다 구성적 차원에서 그것들을 수행해 낸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놀이’하는 주체의 창의성과 즉흥성―아상블라주적 양식에서 기인하는―이 부각된다.
김민관 편집장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개관특별전 세마 퍼포먼스 《호흡》 조현진, 하지민, 〈밤짐승 놀이패〉, 2024/2026.
서서울미술관 지하1층 전시실2
라이브 퍼포먼스
3.20.(금) 20:00
3. 21.(토) 19:30
3. 22. (일) 19:30
콘셉트 및 연출: 조현진, 하지민
퍼포머: 송민진, 김영현, 박지수, 손경은, 이동현, 전채린, 정주영, 조현
영상: 박기정, 하지민
조명 디자인: 손민영
사운드 트랙: 이하령
조명 수퍼바이저: 공연화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커미션(2026)
기획 제작 이성민
제작: 운영 곽소민, 김수나, 박수정, 이소영, 이지연, 임다울, 이도현 조명 공연화, 김세현, 신유미, 박지원 음향 김성욱, 이원석, 전희주
무대 이도엽, 이유성, 김지수, 김진태, 손성현
사진 안초롱,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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