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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ANCE 2025] 안토니오 루스 컴퍼니, 〈파르살리아〉: 해방을 위한 전쟁의 서사
    REVIEW/Dance 2026. 5. 18. 19:59

    안토니오 루스 컴퍼니, 〈파르살리아〉ⓒPark Sang Yun[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상동).

    안토니오 루스 컴퍼니의 〈파르살리아〉는 시인 루카누스의 동명의 서사시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업으로, 이 서사시가 다룬 로마의 파르살루스 지역에서 벌어진 카이로스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은 현대식 군대 복장과 함께 돔 형태의 비닐 안에서 주로 표현된다. 처음 봉긋하게 솟은 거대한 두 개의 무덤과 같은 형상의, 실제 공기가 주입된 아이보리색 텐트를 하수에서 상수로 약간의 사선 방향으로 건너지르는 여자의 등장에서 시작된 〈파르살리아〉는, 투명 비닐 국기를 들고 중간 쪽 객석을 건너는 도중에 마무리되는데, 이 두 다른 여성 무용수의 횡단, 그리고 하부든 상부든 간에 펄럭임을 만드는 자유로운 혹은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 너머의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수여하고자 함이 드러난다.

     

    열린 틈새, 경계 너머의 지시는 이 작위적으로 시시각각 조율되는, 닫힌 공간으로부터 출현하는 것인데, 이들의 막 안에서의 고립은 전쟁에 대한 재현의 가능성, 곧 전쟁에 대한 관음증적 거리 두기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그것은 그 내부에서의 폭력과 여진을 내밀한 고립의 차원으로 굴절시키고 강화시킨다. 무대 디자인의 영역으로서 공간의 조율은 다양한 차원에서 섬세하게 작동하는데, 천장의 내피가 한 꺼풀씩 벗겨지며 투명해지고, 조명에 의해 공간 안쪽 천장에 거꾸로 투사되는 반영 공간이 더해지거나 거꾸로 안쪽 너머 확장된 원환으로부터 뿌연 공간으로 되먹임되기도 한다.

     

    또한, 공기를 뺌에 따라 점차 좁아지고 조명을 조정함에 따라 불투명해지는 이 공간은, 전체적으로 조명-공기의 동적 변환에 따라 섬세하게 조율되는 시노그라피의 고도화된 영역으로, 무용수들 역시 이 공간의 스케일을 체현하는, 조명을 상대방에 비추는 식의 조명-기계가 된다거나 하며 그 공간을 미세 조율하는 행위자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게 된다. 살갗이 비치는 신축성 소재의 상의에서 일상복으로, 시작과 끝에 해당하는 의상의 사이에는 일괄로 맞춘 철모와 전투복의 복장이 있고, 이는 닫힌 내부 공간 안에서 적용되는 주요한 상징이다.

     

    텐트 안 공간의 불투명도는 횡의 방향이 아닌 종의 축에서의 관계 양상으로 연장되는데, 가령 공간 모서리 부근에서 집단의 양상과 일자의 관계는 평면성의 차원에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를 거꾸로 횡으로 배열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아마도 그것이 반대로 간다면, 거리 확보의 어려움과 초점의 심도를 맞추기 어려워질 것이다. 곧 상수 쪽에서 모두 포복하는 모습이라든가 하수 쪽에서 훈계를 듣는 집단의 모습이 그러한데, 이 집단 내부의 명확한 명령 체계가 군대의 행위를 재현하는 데 바탕을 둔다면, 그 가운데, 중앙부에서 이를 이탈하며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추상적이고도 단단하지 않은, 흐느적거리는 일자의 모습은 현실에 대립하는 환상의 영역을 투사하는 형국으로 명확히 대비된다.

     

    전쟁을 위해 훈련받은 체현된 몸의 명료한 기호와 고통과 분열의 증상을 겪는 주체의 발화가 지닌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언어의 병치는 또는 교차는, 〈파르살리아〉가 전쟁의 다층적인 측면을 인간이 지닌 입체적 측면으로 옮기는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인데, 이는 텐트 바깥 공간, 곧 닫힌 공간으로 전도되기 전의 애초의 광활한 공간, 그리고 그것이 꺼지면서 나타나는 바깥의 세계 공간은 처음 객석과의 경계에 위치하다가 객석으로까지 연장되는데, 객석 중앙부까지 침투한 무용수가 들고 흔드는 흰색 비닐 깃발은 영토를 점유하지 않은 초월적이고 투명한 국가의 상징을 기입한다.

     

    해방은 역사와 서사, 무대의 이탈을 통해 구현되는 셈으로, 이는 탈국가적 차원에서 서사의 기능적 활용과 매개의 차원을 상정한다. 따라서 이전까지의 서사를 환영으로서 기각하면서 새로운 현재의 역사를 쓸 수 있음에, 함께 해방감과 자유의지에 도취될 수 있음에 명확하게 초점을 맞춘다. 텐트의 서사는 곧 변증법의 정확한 중간 과정인 셈인데, 실은 이 텐트는 그 자체로 일종의 환영의 장치 자체로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명을 통해 투명 텐트 안의 경계로 나타나는 그림자극과 같이 반영과 투사의 원리, 그러니까 그 경계 안의 지시 작용으로써만 성립하는 임시성의 예술로서 효과, 환상의 실재성과 같은 부분들은 전쟁의 명확한 재현이 아닌, 막 자체로서의 가시화, 곧 그 환경의 불투명성을 끊임없이 비춰 내는 과정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파르살리아〉는 전쟁을 투명 텐트라는 매개항을 경유해 재현하고 그 매개항을 이탈, 소거함으로써 현재의 역사가 새롭게 생성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그것은 과거의 뚜렷한 형국 위에서, 과거를 얼룩으로 갖지 않고, 다만 새롭게 기입될 수 있는 투명한 막으로, 환영으로 상정함으로써 이뤄진다. 진공의 역사로부터 현장의 해방의 급격한 변전은 전자의 참혹함으로부터 분기되는 개체의 히스테리적 몸부림의 계기와 이전으로부터 이어 온 그 상징적 표지로서 차원이 전제되어 있다고 하겠다. 곧 닫힘 내부의 온전한 종속이 아닌, 그 막을 전후로 그의 닫힘을 가시화하는 표면적 외침이자 발화로서 움직임이, 전쟁을 구성하는 집단적 명령 체계의 너머로 존재의 개별적 양상이 그 막의 경계를 ‘투명하게’ 함께 드러내 왔던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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