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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 〈안녕, 평안굿〉: 평안함, 여성들이 이룬 세계REVIEW/Music 2026. 7. 6. 13:34

김소라, 〈안녕, 평안굿〉[사진 제공=김소라](이하 상동). 〈안녕, 평안굿〉의 도입부는 “여성농악이 누렸던 부흥의 순간”을 기도한 것과 같이, 가장 열린 형태의 공간에서 현장을 구축하는데, 이는 극장 뒤편에서 하나둘 등장해서 관객을 연희자들이 에워싼 채 일종의 현존 차원의 입체 서라운드 환경을 조직한 후, 무대에 오르는 제법 긴 시간의〈어헛〉이다. 전자 사운드의 단속적 출현 아래, 무대로 온전히 소리 환경이 옮겨져 단단한 초점이 그로부터 응결되어 확장되는 〈열림의 굿, 다시 연결되는 우리〉의 시작까지 〈어헛〉의 고양된 순간은 매끈하고 밀도 있게 연장된다.
〈어헛〉은 또한 끊임없이 혼돈을 안겨주는 곡이기도 한데, “아~”를 길게 끄는 가운데 소리의 진폭이 내내 요동치며 하나의 주기를 이루는데, 이때 “헛”의 결단은 단호하지만 그만큼의 짧은 여운을 남긴다. 이는 계속 반복되고 점차 그에 동반되는 안무 역시 조금씩 변화하는데, 처음부터 대부분을 차지하던 안무는 양손을 앞으로 뻗어 포옹의 전초 단계의 자세를 취하다 “헛”에서 자기를 보듬으며 관객과 연결됨의 발신을 표하는 것이다. 우선 이 요동침의 “아~”의 상승과 하강을 동반하는 주기, 그래서 결코 하강도 상승도 하지 않는 음의 불안정성 자체가, 맥놀이가 쉴 새 없이 관객을 강타한다, 여기저기서.
관객을 직접 향하며 방사되고 끌어안는 적극적 발신이 관객을 에워싸는 가운데, 다음 무대인 〈열림의 굿, 다시 연결되는 우리〉의 방사로 이를 전이시키는 데 어떤 시차도 없다는 점은 준수하고 탁월하다. 광선검처럼 수직으로 떨어지는 빛과 날카로운 전자음의 결기는 내통하는데, 이 무의 확장을 통한 재연결의 방식은 “다시 연결”을 위한 방법인 셈인데, 〈두마치 굿 - 전환의 장단〉은 어떤 예열 없이 피리와 해금의 선율이 풍성하고 다채로운 선율을 조직하면서 무대 뒤쪽, 얇은 천 막 안쪽의 협연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곧 피리와 장구가 동조되면서 계단형 선율로 상승해 나간다.
이 두 곡이 1막의 굿의 ‘문’을 여는 문굿이었다면, 2막은 풍악과 연행이 한데 섞이는 판굿으로, 〈호호맞이 - 길을 트는 소리〉로 시작돼 〈농부가〉와 〈안녕, 평안굿〉으로 이어진다. “아(어)헛(핫)”은 추임새이자 기합과도 같으며, 초반 곧고 순일하게 뻗어나가며 힘과 정동을 체현한다. 한 바퀴를 크게 돌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 횡 축을 기준으로 대칭으로 나뉘어 반바퀴를 돌고 2열 횡대로 앞으로 튀어나오며 그 기세가 배가되는데, 이 축은 유동적이며, 다시 종 축으로 전환돼 무대 전체로 퍼져 나가는 순간을 만든다. 북과 장구가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가운데, 일부 아프리카나 타악 느낌의 변용이 느껴지기도 한다. 종으로 3열을 이룰 때 이미 음악은 단정한 연주곡으로 전환되어 있다.

태평소의 요란함으로 집약되는 후반부는 피치를 올리며 대열의 역동적 흐름과 조응하며, 그 마지막은 단속적으로 불며 마치 전자 신호음의 잔상으로 인상적인 맺음 형태를 보인다. 그 가운데, 전적으로 자유롭고 발산적인 풍악 현장이 만들어진다. 이후 3막의 3개의 놀이는 텅 빈 무대에 개인의 기량을 소소하고도 자유롭게 펼치는 것에 가깝다. 먼저, 〈채상소고놀이〉는 채상모를 쓰고 머리에 흰 띠를 돌리는 일반적 형태에 양옆에서 흰 띠를 들고 손으로 돌리는 무용수와의 조합으로 변화를 꾀한다. 소고가 실재적 차원의 효과음으로, 마치 폭탄 소리 같이 거기에 강렬하고도 멀리 소고 자체에 소리가 응결된다면, 해금과 가야금은 일부 개입되는데, 무엇보다 움직임의 새로운 시각화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음 황금빛 조명 아래 〈장구놀이〉는 단속적 장구 연주에서 잦은 열채의 타격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하” 기합은 연주를 입체화한다. 마지막으로, 〈징놀이〉는 징 소리를 반향과 굴절 차원에서 조명하면서 매체의 경계부적 차원을 강조하는데, 이는 신비로운 전자음을 입고 산란되는 효과로 연장된다. 징의 부딪힘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그것의 여진이 더 강조되는 것으로, 일종의 연주 자체로, 소리의 공간적 전파와 그 지각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4막은 다시 소리굿으로 다채로운 흐름의 여정을 다시 장대하게 마무리하는데, 막 위의 붉은 파도와 태양의 무늬가 투사되다 걷히고 이는 해의 여진 이후 부각된 달의 세계를 부각한다. 〈축원을 향하여〉가 짧은 연주 안에 아쟁이 두드러지게 자리한다면, 〈축원의 소리〉는 뒷쪽 열의 좌우 살랑거림과 구음으로부터 장구가 피치를 올리며 전체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태평소가 좁은 틈에의 타격과 함께 의식을 무화시키면서 점입가경의 세계로 확장된다.
4막은 잦아든 세계와 함께 다시 관객을 마주하며 끝 인사를 보내는바, 앞서 떠들썩함과 풍요 이후에 여진을 안고 삭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실제 잦아들고 고적해진 느낌이 배가된다. 집단적 의식의 고양으로 텅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시작과 다른, 광대한 여정과 그 여흥을 마무리하는 데 가깝다.

〈안녕, 평안굿〉은 처음부터 공동체적 경로를 가설하며, 뻣뻣하고도 갈라진 개체적 차원의 군중을 재편하고자 한다. 해에서 달로 변화해 가는 과정은 무대 전체의 시각적 기호가 전이되어 가는 과정이다. 다시 그 안에 집단적 배치가 생의 약동을 안고 부상하는 2막이 승화된 클라이막스의 지층을 이룬다면, 안무의 세부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며 전통과 절합되어 구조적 차원으로 거듭나는 3막은 안무의 실험적 차원의 새로움과 정교함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해와 달의 기호학적 의미 지층이 음악과의 상관성을 더욱 강화하며 교차되었다면, 열기와 그것의 잦아듦의 시간성을 의미적으로 더 풍부한 것으로 구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공동체의 출발과 개인을 경유해 도달한 어떤 경계 지대, 문굿에서 소리굿으로 가는 여정은 밝기의 표면에서 깊이의 누층으로 내려가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앞서 증폭된 에너지를 서사적으로 유연하게 매듭 짓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관객을 장악하고 품고 끌어들이는 처음 입문 의식으로부터 또 다른 출구의 의식적 절차가 선명했더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다.
〈안녕, 평안굿〉은 여성만으로 충분한, 충만한 흥과 힘, 평안함, 따뜻함 등이 느껴진다. 소리의 측면이 다소 약화되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발화로서 음악보다는 한데 잠겨 있는 모두의 엮임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집단의 형상이 가시화된다는 걸 의미한다. 가령 〈징놀이〉에서 세 명의 무용수가 한 명의 징 연주자를 둘러싸고 어른거리는 징의 그림자들이 징의 여운과 확장에 대한 가시화로 나타날 때, 넷은 하나의 분화이자 하나는 넷의 결합으로 입체적인 이미지는 하나에서 떨어지지 않은 세계를 이룬다. 동시에 징의 여진은 이 확장된 몸체의 이미지에 응결된다. 이 여성적인 것들의 합이 그 자체로 어떤 의미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아닌 세계와는 다른 무엇을 분명히 전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이 한데 뒤섞임 안의 어떤 우위도, 우열도 없다는 것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2026.01.24 ~ 2026.01.25 토요일 15:00, 19:30 / 일요일 15:0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출연진 및 제작진 소개
스태프
연출/예술감독 | 김소라
총괄 프로듀서 | 하늘벗
시노그라퍼(무대/조명) | 김려원
음향감독 | 손홍희
음악감독 | 임지혜
연희감독 | 현승훈
무대감독 | 박민호
작곡 | 최은아
안무 | 유재성
미디어아트 | 신효흔
스타일리스트 | 최다희
촬영감독 | 바이원
출연진
타악 | 김소라
가야금 | 임지혜
생황·태평소·피리 | 홍지혜
아쟁 | 김슬지
해금 | 소명진
전자음악 | 최은아
연희 | 박소현, 박지언, 이보현, 오준희, 정시온, 구태경
무용 | 김다현, 윤수진, 천성은
소리 | 이수현, 임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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