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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영게더링, 〈동물이 인간을 본다, 신이 인간을 보듯이〉: 인간을 괄호 치고서
    REVIEW/Dance 2026. 6. 10. 12:59

    유지영게더링, 〈동물이 인간을 본다, 신이 인간을 보듯이〉: [사진 제공=신촌문화발전소](이하 상동).

    유지영게더링의 〈동물이 인간을 본다, 신이 인간을 보듯이〉(이하 〈동물이 인간을〉)는 감자를 먹이로 갖고 오는 인간을 녹슨 철창의 틈새로 지켜보는 돼지의 시선에 이르기 위한 수행적, 문학적 차원에서 몇 가지 시도로 볼 수 있다. 중앙부에 놓인 욕조 하나를 향해, 아이처럼 어르듯 수건으로 포갠 감자를 품에 안고 등장한 이가 열 두 개의 감자를 물이 담긴 욕조에 하나씩 떨어뜨리고 나서 양 옆에 두 존재가 그의 머리를 붙잡고 물에 그의 고개를 처박은 채 열 둘을 세는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의식을 경유하는 퍼포먼스다. 

    여기서 감자는 수건에 싸인 감자가 아닌, “수건을 두른 감자”로서, “목욕”, “감기”, “피부”와 같은 용어와 함께 인격화되는데, 첫 등장의 분홍색 (돼지) 창자를 주렁주렁 가져오는 이 셋은, 곧 돼지를 감자라는 생명체로 환유하며, 그것과 등치되는 인간 존재의 공식을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곧 고문적 의례에 참가하고 지지하는 차원에서 동등한 존재 간의 합의를 성립시킴으로써 동물-식물-인간의 종차를 허물고 종합하고자 한다. 

    욕조 안의 감자가 12개가 아닌 12명으로 근본적으로 다시 셈해지는 것처럼, 이는 조금 더 너른 영토 안에서, 범주의 위계를 질문하며 상호 교환되고 교차되게 되는데, 감자를 씻는 행위에 대한 재메타포화, 곧 감자의 “피부”를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목욕”시킨 후에 수건으로 닦아주는 인간의 행위는, 고개가 처박히고 다시 돌아와 수건에 닦이는 퍼포먼스의 환유적 제스처로써 선취된다―반대로, 행위는 언어의 보족 행위를 통해서만 의미화된다. 이른바 생명-사물에 대한 폭력적 제스처와 무감함이 인간의 신체를 경유할 때 비로소 민감한 것으로서 윤리적 차원에서 회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이 같은 행위가 소구된다. 

    〈동물이 인간을〉은 퍼포먼스의 투명성 대신에 비의의 분위기와 모호한 감각을 전면에 드리우는데, 이는 언어의 차원이 발화의 주체로 소급되는 대신에, 그 행위를 재의미화하기 위한 문학적 수사로서 자리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종현의 내레이션은 “수건을 두른 감자”에 대한 묘사로,  코러스처럼 따라 붙는 둘의 언어―계미현, 유지영―는 셋의 의식의 차원을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가운데―여기에 Rechel Epperly 역시 의식적 차원의 연주를 더함은 그 말을 시차적으로 증폭시키는데, 여기에는 언어의 건너옴과 번역의 과정이 또한 전제된다.―, 마치 그 텍스트를  경전화하는 것과 같다. 어떤 신성함은 사물과 인간의 전도 아래 있고, 그 의식 절차를 통해 사물은 인간 너머의 존재로 격상된다. 

    〈동물이 인간을〉은 한유리 작가의 동명의 글을 제목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책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2022)에 실린 글이다. 인간에 의해 살려지고 또 죽임당하는 각종 동물들은 타자로서 우리를 향하는데, 곧 그것에 직면해야 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동물을 보는 시선을 신이 인간을 보는 시선을 경유하여 체현하는 대신에 유예한 후, 동물을 신의 자리로 곧장 전치함으로써 인간이 신을 보는 시선을 동물로 향하게 하는 이 문장은, 인간의 시선을 비워둔 채 곧바로 거기로 직진한다. 

    곧 여기에는 인간의 주체(성)만이 남는데, 어쩌면 인간만이 모두 볼 수 있는 동물의 시선과 신의 시선, 두 차원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가능한 이 인간의 예외적 위치는 혹은 존엄함은 또는 신화적 서사는 신이라는 신성한 존재로서 동물을 대하는 것으로써 그 둘의 위치를 상정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어떤 도약이나 모험이 전제되는데, 우리에게는 동물의 시선도, 신의 시선도 동시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공통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동물을 보는 양분된 시선과 신을 보는 양분된 시선은 내통한다, 곧 공포와 의존의 분열적 양상으로. 하지만 우리가 단지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시선은 그 평온함이 주는 의존의 감각일 것이다. 따라서 동물-신을 잇는 인간의 위상을 재정초하는 문장에는 어떤 선택이, 그리고 둘의 분열된 양상을 종합하는 어떤 결단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동물이 인간을〉은 사물을 동물화하고 인간을 사물화함으로써 인간을 향한 시선을 예기한다. 

    관객을 가에 둔 네모난 프레임으로 설계된 공간은 입구이자 출구로부터의 빛의 틈새를 가정하게 되는데, 이는 후반, 그 맞은편에서 철창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그 빛을 마주하는 돼지의 자리를 체현한다. 이때 동물이 인간을 보는 시선은 인간을 매개하지 않고, 곧 인간이 비어진 자리를 향하게 되는데, 그것은 내레이션에 가까운 발화로써 문학적이고 또 빛의 투여로써 무대적인 효과에 힘입어 구현된다. 

    그 빛의 알레고리 이전에 그 문의 물리적 차원은 의식을 열고 닫는 시간성을 가리키는 한편 공간 전체에 대한 구조적 틈을 드러내는데, 그것에 연결된 그 네모난 프레임 안의 경로는 그것으로부터 맨 처음 구불거리는 창자의 연결망 존재들의 이동과 같이 능동적인 이행으로 연장된다. 그리고 이 이행은 종차를 가로지르는 횡단의 알레고리로 확장되는데, 그것은 곧 인간-동물-식물의 연접 그리고 횡단의 기호화 작용을 거쳐 인간을 보는 동물에서 동물이 보는 그 인간의 자리에 대한 확인과 재설정에 대한 요구로 나아가는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극작 계미현
    퍼포먼스 이종현, 유지영,
    드라마투르그 한수민
    음악 Rechel Epperly
    조명디자인 김휘수 
    그림 이빈소연
    디자인 유연성클럽
    영상기록 오채현 
    오브제 유지영
    주최 신촌문화발전소 
    주관 유지영게더링

    2025 신촌문화발전소 청년예술 지원사업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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