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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윤, 〈길티( )풀 (Guilty( )ful)〉: 구조주의적 세계에 대한 믿음 혹은 맹신
    REVIEW/Dance 2026. 6. 12. 00:11

    박수윤 안무가의 〈길티( )풀 (Guilty( )ful)〉(이하 〈길티( )풀〉)은 2D 아케이드 게임 ‘슈퍼 마리오’의 버섯 캐릭터 ‘키노피오’를 입은 캐릭터들의 무대 앞쪽 수평선을 기준으로 도열한 가운데, 그 게임 이미지가 전면에 펼쳐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자막상에서 “길티(풀)게임”으로 정의된다. 중앙의 케이크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한 시도들의 계속된 미끄러짐이 동반―무대의 장면은 곧 화면으로 이행된다.―되다 한 명이 이를 쟁취하며 모두가 한 번에 조명이 아웃되면서 소거되는데, 이는 게임의 생존 기술로 전유되며 현실의 자본주의적 경쟁 사회로서 모습이 희석되는 차원과 게임의 이미지에 투영된 기계적 신체의 찰나적 체현에 가해지는 비정함 또는 그 닫힘의 순간 발생하는 짧은 잔여의 틈이 갖는 침묵의 신체, 곧 게임이 감추며 발생하는 매우 미소한 생채기로서 이미지-신체가 부상한다 혹은 명멸한다. 

    바닥을 딛고 일사불란한 동작들은 해상도 낮은 게임의 디지털 이미지를 흉내 낸 것이고, 그것은 기계적이고 분절적이다. 또한 일정하고 단순한 리듬에 ‘기꺼이’ 예속됨으로써 그것은 생기발랄하고 비인간적이며 소진되지 않는 신체의 유형에 접근하게 되는데, 그 음악적 잔영이 주는 효과는 신체의 잠식인 동시에 강박적 신체에 대한 추동이다. 그리고 이는 음악이 신체를 초과하고, 그 신체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을 무력화한다는 것, 그리고 관객에게 역시 그것을 강제하고 요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집단적 비체들, 오로지 욕동적 신체로서 탈락되거나 소거되기 위해 잠시 분투하는 이들은, 경쟁 구도에 잠식된 자본주의의 비주체성을 가리키기 이전에, 그 게임에 대한 매혹 자체를 불러일으키고 곧 그 감염된 주체의 속박당한 신체를 불러오고, 그 신체와 맞춰지며 그 신체를 동시에 체현한다. 곧 그것은 비유적이기보다 즉물적으로 ‘나’와 동기화된다. 

    길티(guilty)와 플레저(pleasure), 곧 죄책감이 드는 행위에서 역설적으로 즐거움을 겪는 길티 플레저에서 온 제목과 같이, 이 비정하고도 귀여운, 냉소적인 유희의 게임은 그 게임의 문맥 안으로 관객을 급격하게 동화시키고, 게임의 화면이 갖는 소구력이 극장의 스펙터클로 옮겨지며―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우리는 조작하며 조작당하는 신체 자체를 체현하게 된다. 여기서 게임의 리듬에 종속되었음은 게임의 음악에 속박된 무용수들의 신체, 그 음악과의 틈이 없는 신체 양상으로 발화되는 것과 같으며, 그 음악은 더욱 빨라지면서도 그 기본적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영속적인 원환에 빠진 신체의 굴레를 드러낸다. 

    게임 화면이 사라지고 난 뒤 남는 음악은 게임의 룰 대신에 그 음악이 갖는 특유의 정동, 반복으로 유예되고 반복을 추동하는 특성으로부터 각 잡힌, 구조의 체계를 이루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유희의 속성을 가속화, 또는 유연하고 생기발랄한 신체를 공간 전체로 확산하는데, 음악적 긴장과 등치되는 속박된 움직임이 음악적 고양과 합치되는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이행된 이후, 변화의 계기는 역시 물리적 차원의 도입, 앞선 게임 화면 속 세계의 전유와 같이 구조적 변경에 의해 온다. 곧 하늘에 뜬 블록들, 곧 천장에서 내려온 테트리스 블록들을 보며 이를 잡으려 뛰는 동작이 뒤따른다. 

    도착적 희망과 이를 좇는 가능성의 불가능한 신체는 광활한 열림 아래 역동적인 힘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그럴싸한 세계에 대한 짜 맞추어짐이며, 바로 그러한 닫힌 세계 속 인물의 극적 재현이다. 여기서 〈길티( )풀〉)은 또 다른 도약을 예비하는데, 이는 마찬가지로 물리적 차원의 도입을 경유하며, 꿈의 도취적 속성을 꿈의 실재적 파열로 전도한다. 무대 막이 열리고 등장한 라이브 밴드의 연주는 여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곧 이는 클라이맥스로 확장되는, 커튼콜로 치닫는 확장된 밴드 음악에 대한 조명으로서 클리셰를 은폐되었던 바, 실재의 드러나지 않은 차원, 상황과 환경을 주조하는 주체의 위상으로 재기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가상의 존재들 너머의 그것을 조작하는 존재가 있음을 하나의 핵심 메시지로 드러내는 것일까. 

    〈길티( )풀〉은 이 세계 환경―그것에 지배당하는 존재들의 하찮음 또는 캐릭터성을 포함해―에 대한 시각화로써 무대를 스펙터클로 조직하는 데 방점을 둔다. 따라서 게임 화면을 신체들로 체현하는 무대, 그것이 부재하는 감각이 연장되는 실재의/공백의 무대, 그리고 게임 화면이 오브제 설치로 연장된 무대, 마지막으로 완전한 하나의 무대(라는 환상), 크게 이 네 개의 무대가 서로를 비집고 상대를 뒤집으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소거하며 세계의 왕국을 이루는 일자로 자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으로서 〈길티( )풀〉이 자리한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우리가 그곳에 예속되어 있음을, 우리를 초과함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우리를 쾌락의 스크린에 ‘접속’시킨다. 곧 여전히 우리는 게임 안에 있고, 실재의 ‘또 다른’ 무대를 그 실재로서가 아닌, 환각의 시각적 반영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은 실재의 파열이 아닌 실재를 파열하는 환영이며, 처음 게임 등장의 압도적인 감각의 반복이다, 다만 그것이 게임-가상현실에서 무대-극적 현실로 전도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따라서 그 ‘뒤‘의 주체들은, 일종의 환영으로서, 게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자로서 그 게임의 너머에 있는 존재이기보다는 게임의 또 다른 플레이어로서 다만 그 게임을 완성시키는 자일 뿐이다. 

    〈길티( )풀〉은 결국, 세계라는 구조에의 상호 얽힘을 위한 차원을 제안하고 요청하며, 이는 거기서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던, 신체를 옭아매는 음악의 리듬이 결정적 매체였음의 사실로 판명되는 바다. 그리하여 여기서 철저히 기능적 차원에 소구되는 개별 무용수들의 캐릭터성, 기괴하지만 특이성이 상실된다는 점은, 의도된 한계인 동시에 합목적적 제약으로서, 세계를 환유하기 위한, 세계에의 환유를 위한, 자율성의 실조된 혹은 기각된 움직임들로 연장되는 부분이지만, 다시 말해 이는 세계 너머로의 도착, 세계의 균열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있음에서 가능한 부분이기도 한데, 명확한 시각화의 법칙의 절대적 우세는, 곧 하나의 무대라는 미장센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이 부분은, 또한 무용수들의 개별성과 구체성을 소거하는 안무의 공식에 상응한다. 

    어쩌면 〈길티( )풀〉은 이 중독 현상의 신체 속에서 끊임없이 무화되고 소진을 부정하는 비자연적 신체(에 대한 강제)로써 세계에 구속된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개체성을 띤 게임 너머의 주체, 그 게임 속 캐릭터들과 등치하는 이 주체를 체현하는데, 거기서 몸의 또 다른 가능성은 절대적 한계와 대립하기보다 은폐되고 망각된다. 작품의 의미 이전에 이 작품의 결락되는 부분, 그리고 은폐되는 무의식적 차원―아마도 작품 이후, 공허로 감각되는 부분―은 세계의 구성을 위한 몸의 강제 혹은 그 권력 구조를 반영하기 위한 과정에서 부수적 차원이기 때문에 밀려나는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는 어쩌면 세계를 진정 (환영이나마) 믿는 안무가의 신체의 강박적 (무)의식을, 또는 안무적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세계―스펙터클―는 굳건하고 개체―개별적 몸짓들―는 허술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쾌하고 강렬한 이 〈길티( )풀〉에서 남는 질문은 또는 회의는 다음과 같다. 곧 작품에서 개별성이 보편성으로 환원되는 것, 곧 모든 것이 동등한 가치로 하락하는 현상, 또한 구조에 개체 모두가 종속되는 사태는, 그 절대적 구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합목적적 결과인가, 그 전제 아래 개체는 어떤 사건도 일으킬 수 없는 닫힌 게임 속 캐릭터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니까 비판은 어디에서 가능한 것인가, 아니 시도되는 것인가. 아니 그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김민관 편집장 

     

    2025.07.30 ~ 2025.07.31 수~목요일 19:3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김유식 김소혜 김민수 박경희 정종웅 남가영 최정인 채예림 장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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