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025 SPAF] 올라 마시에예프스카(Ola Maciejewska), 〈로이 풀러: 리서치(Loie Fuller: Research)〉: 매체적 감축과 시각예술적 불순물
    REVIEW/Dance 2026. 6. 11. 21:46

    올라 마시에예프스카(Ola Maciejewska), 〈로이 풀러: 리서치(Loie Fuller: Research)〉©Martin Argyroglo[사진 제공=서울국제공연예술7제(SPAF)]

    올라 마시에예프스카의 〈로이 풀러: 리서치〉(이하 〈로이 풀러〉)는 20세기 초 미국 무용가 ‘로이 풀러(Loie Fuller)’의 ‘서펜타인 댄스(Serpentine Dance)’를 다시 선보이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원본의 매체적 감축을 동반하는 동시에 특정한 매체로 압축된다. 움직임에 부착되는 색의 변화, 곧 컬러 젤을 발라 조명에 따라 달리 채색되는 의상 효과는 초기 영화의 애니메이션 효과와 조응되며 뤼미에르 형제의 푸티지 필름으로 기입되며 현재로 연장되는 반면, 〈로이 풀러〉에서 춤은 의상과 몸의 순전한 관계 아래의 표현 양상으로 집중된다. 

    이러한 아날로그적 전유에 대해서는 그 움직임의 온전한 가능성에 대한 탐구 이전에 오히려 석화된 역사의 이미지더라도 그것을 다시 구현할 때는 여전히 현재적인 것이 된다는 시대착오적 개념을 서술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는 몸이라는 매체에 대한 특수한 반영이 전제된다. 따라서 마시에예프스카가 탐구하는 건, 현시하는 건 로이 풀러의 움직임 자체라기보다 풀러의 움직임이 경유되며 펼쳐지는 순간 자체이다. 그것을 수행하고 있는 현재의 매개자다. 그 매개자 자신이 확산되는 현장 자체의 여분의 순간들이다. 그러니까 미디어상으로 존재하는 로이 풀러의 이미지는 재수행되면서 로이 풀러가 갖는 신화적 이미지, 선구자적 예술가의 면모와 여성으로서 서사, 그에 대한 역사적 기억, 아울러 당대의 미학적 가치는 모두 사라지는데, 그 텅 빈 자리에는 의상과 존재의 관계만이, 의상-존재의 수행만이 자리하는 것이다. 

    그 한 명의 무용수 장 레스카(Jean Lesca) 역시 남자라는 점은 그 움직임을 매체 특정적으로 재조직하기 위해, 곧 움직임 자체를 고도화하고 물리적으로 특화하기 위해, 입체적 파장을 만드는 단순 행위의 체력적 소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투명한 선택지처럼 보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 천을 다루는 데 있어서 여성적인 것, 비인간적인 것, 사물적인 것의 차원이 강조되는 가운데 소거되는, 비가시화되는 존재의 차원에서 남성성의 일환과도 결부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 전용의 주체를 바꾼 부분은 은밀하게 여성성의 이미지를 입는 남성의 젠더적 접촉과 분화, 경계를 지시하는 효과 차원에서 전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지는 않는 듯 보인다. 

    로이 풀러의 외모에 대한 비난, 무용에 대한 선입견이 투과되면서 강화되는 여성 혐오로서 대중의 인식은 그의 풍성한 의상의 효과와 결부되면서 반전되고 재승화되는데―곧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서사―, 〈로이 풀러〉는 그 같은 전사와 첨예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제목은 다소 어폐가 있는데, 로이 풀러가 아닌 ‘로이 풀러의 서펜타인 댄스에 대한 매체적 탐구(혹은 전용)’ 정도가 정확할 듯하다. 

    이러한 탐구는 수행의 형상으로 주어지는데, 풀러의 신화, 이미지, 역사, 현존을 대체하는 건 곧 ‘수행’이다. 처음 검은 천과 노란 천을 들고 나온 레스카는 노란 천을 구석에 내려놓고 먼저 검은 천부터 ‘탐구’하는데, 이 천을 마치 하나의 존재를 대면하듯 다루는 것은 새로운 서사다. 곧 의상과 존재의 완전한 결합으로 펼쳐졌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분절하는 차원에서 의상과 존재의 결합 과정 자체, 의상과 존재의 틈과 간격을 드러내는 건 전반의 주요한 수행이다. 리서치는 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이음매를 드러내고 궁구하는 것에 다름 아닌데, 그가 원의 형태로 그 천의 주름을 하나씩 다잡아 가는 과정은 섬세한 접촉을 동반하며, 그 전에 천의 위쪽을 말아 쥐고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물질은 신체의 가능성을 이미 얻게 된다.  

    존재의 연장으로서 이미지와 이미지를 만드는 존재의 행위가 포함되는 또 다른 이미지와의 차이가 이렇게 사물에 대한 존재적 차이를 구성하는 것을 경유해 만들어지는데, 완성된 원으로부터 나와 그 곁에 눕고 이를 살피는 과정 역시 사물에 대한 인격화를 동반한다. 원 중심의 구멍으로 들어가 목에 천을 끼고 마침내 준비를 마치기까지의 이 긴 과정은 ‘본문’ 전의 유일하게 분기되는 차이의 과정으로, 노란 천을 다룰 때의 과정은 그 본문에 곧장 이르는 경로이자 검은 천 행위의 변주와도 같다―여기서도 노란 천을 목에 끼우고 얼굴에 걸려 있는 노란 천을 내리는 데까지 행동은 (부차적인 것이 아닌 차원에서 그 자체로) 심미화된다.

    결정적으로 천을 휘날리며 그 무늬가 그리는, 신체를 넘어서는 독립적인 잠재적 영토, 자율적 이미지, 생명의 변용으로서 신체는, 강렬한 펄럭거림의 끊임없는 반복의 차원에서 로이 풀러의 이미지를 조금 더 강도 높게―빠르고 단단하게―, 실천하기에 이르는데, 이 최종적 이미지는 앞의 예열의 긴 시간 이후에 도달하는 부분으로, 거기서 발생하는 ‘펄럭거림’은 곧 그 이미지의 최대치의 확장에 대한 매체적 변환의 표지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 강도가 유예되면서 그 바깥의 소소한 행위의 결정들이 새어 나오고 가시화되는, 그러니까 독립적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사물에 침투되는 과정 자체로 〈로이 풀러〉를 재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차라리, 그 같은 펄럭거림에서 오는 확장성의 이미지가 순전한 효과에서가 아니라 규칙적인 수행의 차원이 주는 행위에서 언캐니함이 생겨나는데, 여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소리 없이 두 번, 그리고 소리를 내며 앞으로 한 번, 돌아오며 뒤로 한 번이다. 곧 천에 달린 나무라는 지지체를 두 번의 순전한 이미지 현시 이후에, 덜컹거림으로 동시에 현시하는 것인데, 이 역시 이미지-소리로서 사물이라는 매체를 가시화, 심미화하는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로이 풀러〉는 ‘로이 풀러’ 되기라기보다 그것을 전유해 사물-인간 네트워크로써 재분절하고 가시화하는 작업으로, 로이 풀러라는 서사를 도려낸 자리에, 사물을, 사물에 대한 탐구의 영역을, 그 자체의 심미화를 수행하며, 생각보다 그 과정은 지루한데, 막판의 로이 풀러 이미지에 어쩔 수 없이 가까워짐으로써 그것이 지니는 별개의, 예외의, 페티시 차원에 쏟아 붓는 애착에 대한 관점을 은폐하는 형국이 된다. 

    로이 풀러는 현대 예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이는데, 그 비근한 예로서, 양윤화 작가의 퍼포먼스가 결합하는 전시 《오팔 Opal》(2024)에서 쓰인 천을 둘러싼 여러 퍼포머들의 다양한 형상-역할의 스코어적인 정교한 배치의 기술이나 그의 전시 《오렌지》(2025)에서 앉거나 만질 수 있는 붉은색 오렌지 모양의 동그란 매트는 매체적 차원에서 〈로이 풀러〉의 펼쳐진 검은 천보다 절대적으로 더 입체적이며 감각적이다. 따라서 매체적 압축은 시각예술의 불순물을 내포한다는 지점에서 온전하지 못한데, 또는 불완전한데―반대로 《오렌지》의 시각예술의 확장은 다양한 감각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그 물질을 매체의 차원에서 강화한다, 로이 풀러의 매체적 확장의 특징을 오히려 소거하는 그 같은 방식에서 있어서도 예외적인 차원을 이루는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10.18.Sat. 7pm10.19.Sun. 3pm 정동1928 아트센터 

    공연 시간 90분

     

    • 안무 올라 마시에예프스카
    • 무용 구성 디자인 욜란타 마치에프스카
    • 해석 장 레스카
    • 프로덕션 및 유통 니콜라 쇼시
    • 행정 카롤린 레디
    • 프로덕션《우리는 춤을 출 수도 있잖아(So We Might As Well Dance)》 – 올라 마시에예프스카
    • 커미션 텐트 로테르담(TENT Rotterdam, 네덜란드)
    • 후원 제이벨트 극장(ZEEBELT THEATRE, 네덜란드)
    • 특별 감사 유디트 쇼네펠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