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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코 다 실바 페레이아 Marco da Silva Ferreira, 〈카르카사 CARCAÇA〉: 혁명을 혹은 공동체를 체현하는 몸
    REVIEW/Dance 2026. 6. 20. 09:42

    마르코 다 실바 페레이아 Marco da Silva Ferreira, 〈카르카사 CARCAÇA〉[사진 제공=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상동).

    카르카사는 롤 형태의 막 위에서 집단 차원의 수행성을, 의식을, 운동성을 움직임으로써 고취한다. 여기에는 환호, 독려, 기합 등 각종 관계적 신호로서 음성이 뒤따르며, 막 모서리 가 하수와 상수에서 각각 실시간으로 드럼과 전자음악이 투여된다. 바디수트와 팔과 어깨에 두른 붉고 얇은 상의를 입은 채 이들은 주요하게 척추를 곧추세우고 바깥으로 신전한 몸에서 쭉쭉 펼쳐내는 팔 움직임과 같이 탄력적인 신체 움직임과 경쾌한 발놀림을 기초로 그와 조응되는 신체 전반의 움직임을 구사하는데, 이는 모두 특정 영역 내에서 에너지를 효율적이고도 극대화된 차원에서 피드백을 완성한다는 공통점을 띤다

     

    이 집단 체제는 아마도 박쥐와 같은 특정한 동물 토템을 가진 원시 부족의 공동체적 삶의 영위로 일견 비치는데, 이는 후반 일종의 뮤지컬 곡목으로서 음악 위에 내레이션을 얹듯 노래를 단체로 부르기 시작하고, 무대 하수의 묵중한 추를 올려 롤을 중앙부의 정면으로 선 막으로 띄우고, 거기에 이 노래의 자막을 투사하기 시작함으로써 라 마르세예즈와 같은 혁명의 찬가를 부르는 운동의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이들은 곧 민중이거나 인민인데, 이를 물가 폭등과 실업 사태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배고픔을 참고 빵을 갈구하는 일하며 힘들게 사는 여자들의 삶에 빗대 페미니즘적 의제를 계급 투쟁 일반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돋보이는 건 또한 예외적인 건 오른쪽 팔에 의수를 낀 남자인데, 그는 처음부터 노래를 부르는 대신, 물구나무를 서며 그 원뿔형 보족물을 무게중심을 잡는 주요한 부분으로 반전시키는데, 한 음절씩 힘주어 새기는 이 노래와 같이, 거기에 실리는 무게는 일종의 깃발을 꽂는 것 같은 상징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그가 물구나무 자세를 풀고 노래에 동참하고 나서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 곧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이 싸움의 순간에서, 그는 보족물을 뺀 팔을 들어 그것의 부재를 가시화하는 한편, 대신 그 보족물을 앞을 향해 뻗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마치 화약을 장전하고 대포를 쏘는 일련의 정교한 기계 장치 다루기의 역학적 움직임으로 보인다

     

    그가 가진 상징성은 일종의 전위부대로서 그가 장애를 특별한 것으로 가시화하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얇은 카디건 같은 상의를 어깻죽지 부위에 착용한 상태에서 양팔을 뒤로 뻗어 다람쥐나 박쥐 같은 포유류의 날개 막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앞뒤로 선 채 타원형으로 끄트머리의 옷을 연결해 입술의 형태를 만든다. 이는 민중의 가짜 친구들의 거짓말일까 아님 그들을 지시하는 진짜 민중의 이야기일까. 노래 직전에 이들은 상수 쪽에서 집단으로 죽은 듯 누워 활동을 멈추는데, 이는 폐허와 무너짐의 상태로써 제목에서와 같이 동물의 시체가 된다. 노래는 그들을 혁명 주체로 되살아나게 하는 일종의 강령술이 되는 것이다

     

    세워진 롤의 벽에 모든 벽은 무너진다라고 조명이 부착된 펜으로써 형광의 글씨를 힘주어 새기면서 카르카사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세운 벽에 투여된 의지를 부정의 역사가 사라질 미래에 대한 염원으로 바꾸면서, 동시에 사라지는 역사의 자리를 기입하며 마주한다. 카르카사가 지니는 정치적 힘은 투박하고 또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이며 움직임의 서사를 침범하는 덜그럭거리는 불순물일까. 그들은 급작스럽게도 민중의 형상을 하고, 현실의 각박함을 토로하고, 정치인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일까

     

    이처럼 매체적 분기가 이뤄지는 부분이 정치적 발화가 시작되는 부분과 겹쳐진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짐을 넘어, 하나의 사건이었어야만 했음을 드러낸다. 반면, 이들의 몸이 지닌 서사에 함축된 것들에 혁명의 씨앗이 묻어 있다고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건 전후의 간극은 공동의 춤이 일종의 공동체의 형상을 이루며 또한 그 공동체의 윤리와 이념을 체현하는 것이라 전제하고, 그 공동체는 위계 구조가 아닌, 정치 경제적 차원에서 평등하고 동등한, 공산주의 이념에 가까운 현실을 구현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는데, 그러한 비약에 이르기 전의 세공된 어떤 절차들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정형의 시간과 역사 이전의 시간, 비언어성의 절대적 전제를 경유한 신비한 세계로의 은유와 근거 없는 자족적 생태계의 시간 너머, 운동의 시간, 민중이라는 주체의 자리, 언어와 상징 질서의 도입이, 무용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예외적인 부분인데, 아마도 사건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진정으로 출현하는 것일지 모른다. 여기서 음악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이 필요해지는데, 곧 드럼을 기초로 한 탄력적 신체 움직임으로부터 전자 음악의 파고 아래 잠식되는 신체는그러니까 환상의 영역과 서사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전자 음악의 효과는, 비로소/다시 이 타악의 물질적 세공에 힘입어 현실 세계에 발을 딛는 신체로서 공명하게 된다. 그러니까 혁명의 힘은 이 신체에 대한 즉물적인 효과와 힘의 작용 그 자체로부터 온다. 그리고 이 부분이 어떤 서사의 언어적 세부도 없다고 판단되던 부분이 실은 가장 분명하게도 몸으로서 임체현되고 있었다고 사후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인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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