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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옵신 페스티벌’: 아이디어는 자본에 맞서 실재를 움켜쥘 수 있는가
    Column 2026. 6. 22. 16:15

    안나 페어손, 〈산 짓기〉[사진 제공=옵/신 페스티벌]

    ‘2025 옵신 페스티벌’(=http://obscenefestival.com/festival)의 대부분의 공연이 비교적 소규모 인원만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아닌 공간들에서 열렸는데, 그중. 정원이 있는 옛 주택의 구조로, 대사관저로 사용되었던 LDK가 주요한 거점 공간으로, 보통 전시와 퍼포먼스 공간으로 사용되는 윈드밀에서도 세 개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극장의 정교한 셋업 과정과 거기에 들어오는 대규모의 복잡다단한 물자, 기술, 테크니션의 협업이 소거 혹은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공연의 규모와 공연의 형식 모두를 주요하게 결정하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거의 전적으로 퍼포머만의 역량으로 잠재된 공연의 성격을 현동화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노출된 실재, 은폐의 비가시화를 통해 드러나는 실재적 환영은, 역설적으로 페스티벌의 현 감독 마텐 스팽베르크의 ‘환상’에 대한 테제에 즉물적으로 걸리는데, 가령 페스티벌 중 예외적으로 대규모의 퍼포머가 투여된 안무 공연인 〈산 짓기〉의 경우, 한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퍼포머는 전문적인 무용수가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산 짓기〉는 모종의 연대의 행위로써 산을 짓는 스펙터클의 형상을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데, 거꾸로 말하면 산 짓는 행위라는 명분이 연대를 구성한다고, 구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자의적인 형상과 실재를 대체하는 행위, 그들이 산 짓기를 할 때마다 벽에 밀착됨으로써 거대한 산의 무게를 건물 전체로 이전하여 그 허구의 형상을 실제의 차원으로 가설해 낸다. 산이라는 표제어, 돌이라는 사물, 신체라는 투과체 혹은 매개체의 연결/접속은 거대한 재현의 가능성을 표현의 잠재된 역량으로 벼려 내어 언어적-신체적 구문을 계속 생산하는 힘이 되는데, 이때 산이라는 허구의 형상, 돌이라는 비언어의 사물, 신체라는 존재로부터의 감산 효과는 모두 크게 보면 환영의 범주에 속한다. 

    마텐 스팽베르크 Mårten Spångberg, 〈나튼 - 홀딩 어 캐슬 Natten – Holding a Castle〉[사진 제공=옵/신 페스티벌]

    〈나튼 - 홀딩 어 캐슬〉은 아마 페스티벌 중 가장 거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데, 사실상 4시간에 육박하는 공연에서 두 명의 퍼포머가 주된 움직임을 소화하고, 한 명은 거의 『나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차원에서 자리하며, 다른 한 명은 처음과 끝에서 집단의 움직임에 합류하는 정도로 그친다. 둘의 움직임 역시 미디엄 템포의 반복되는 음악 아래, 꿈꾸는 듯 허공 위에 몸을 살포시 얹는 정도의 몸짓들을 더디게 쌓아 가는 정도로, 결코 격렬하다거나 소진의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튼』의 입체 오디오 북 정도로도 이해될 수 있을 공연은 책이 전적으로 그 중요한 내용을 이루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디에게시스로서 병치되는 목소리가 그 자체로 계속 뱅글뱅글 돌며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리고 일정한 톤으로서 그 무저갱 같은 이야기의 바닥면을 상정해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것’과 나 사이의 간극과 거리를 다시 나로 재투여할 수 있음의 형식 때문에 중요해지는데, 의식의 흐름을 파편적으로 바느질하며 극장을 다른 하나의 세계로 이행해 가는 책의 무덤덤한 내용은, 결국 하나의 진리를 발화하는 일관된 ‘나’라는 형식이 있고, 이는 단 하나의 자리와 목소리로서 물화되어 솔기를 이루는 것이다, 곧 내가 아닌 나로서 실체 말이다.

    우리는 한 명이 매듭 짓는 이야기라는 신체성과 결부되어 그 밖의 세계의 거대함을 체감하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단 두 명의 주축이 된 퍼포머들은 그 바깥의 공간, 세계를 세워놓고 펼쳐놓은 각종 천 쪼가리들과 대응하며 스펙터클을 함입해 낸다. 이는 형상과 배경의 결부됨과 그 차이의 극대화를 효율적으로 성취한 결과에 다름 아닌데,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거대함은 이 더디고 취약한 움직임들이 이 거대함을 담는 매체적 수용체를 경유해 연장된다는 것이다. 곧 우리는 그 움직임을 거대함으로 혼동하게 된다. 

    김보용, 〈수의 감각〉[사진 제공=옵신페스티벌]

    〈나튼 - 홀딩 어 캐슬〉의 미학적 차원은 숭고함으로서 환상의 이행이라면, 김보용의 〈수의 감각〉은 상상적 관념이 이를 대체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돈의 최고 단위를 추정해 보는 것에서 현실을 움켜쥐는 관념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전반적으로 돈 자체를 수로 전유해 계속해서 넘겨주는 행위를 함으로써 평상시의 소비를 훨씬 상회하는 돈을 사용하게 된다거나 하는 부분에서, 돈은 단지 추상화된 감각으로, 숫자로 이행하게 되는데, 이때 그것은 우리의 손을 떠나 변화하는, 자율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티노 세갈의 〈이 환희〉는 공간을 전유하는데, 이는 이 퍼포먼스의 장소 특정적 성격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에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이 좁은 공간에서의 부대낌 혹은 밀착됨은 공간의 축소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은 원인과 효과를 혼동한 결과인데, 곧 그것이 비좁기 때문에 그것이 강도로서 가능하다는 건 퍼포먼스를 오인한 셈이 된다. 오히려 강도는 등장하는 두 퍼포머의 거리가 관계의 차원에서 비정형적으로 다듬어진다는 것에 있는데, 그에 따르면, 만약 거대한 무정형의 공간에서 퍼포먼스가 이루어졌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둘의 이행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곧 관객의 영향을 전적으로 미뤄두거나 상대적으로 후 순위에 두기 때문에, 공간과 결부될 때 비로소 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둘의 접촉이 강도를 강화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가깝다. 따라서 비좁은 공간의 선택은 실상 더 많은 이를 포용할 수 있는 무정형의 막힘없는 공간에서 했을 때 역시도 여전히 혹은 더 많은 것이 가능했을 수도 있는데, 이 공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혼동하지 않는 선에서 말하자면, 물적 토대의 빈곤에서 비롯된 축소된 공간의 활용에 대한 전거로서 공간의 선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김민관 편집장

     

    2025년 11월 20일(목) ~ 11월 30일(일)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야외마당 / 윈드밀 / 엘디케이 / 주렁주렁 영등포점

     

    크레디트

    예술 감독: 마텐 스팽베르크

    매니징 디렉터: 구예나

    책임 프로듀서: 이용석

    어시스턴트 프로듀서: 김예솔비

    홍보 마케팅 매니저: 김지후

    그래픽 디자인: 슬기와 민

    웹사이트 제작·디자인: 민구홍 매뉴팩처링

    서브 디자인: 김국한

    번역: 김신우

    기록물 촬영: 플레이슈터

    음향감독: 임성열 (파랑장레코드)

    AD 인턴: 박서영

    코디네이터 인턴: 편지영

    기술지원 인턴: 성무현

    인턴: 김산, 김예나, 박지인, 손여울, 이승현, 이예솔, 임나희, 장예진, 정승민, 주소연, 최언영, 황유진

    주최/주관: /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스웨덴 인스티튜트

    공간 협력: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윈드밀, 주렁주렁 영등포점, 엘디케이

    2025년 서울문화재단 서울예술축제(유망예술축제) 지원사업 선정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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