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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균, 《예언과 시나리오》: 믿음의 체계 혹은 비틀림REVIEW/Visual arts 2026. 6. 30. 23:00

신정균, 〈타임 캡슐에 관한 대화〉, 2025, 싱글 채널 비디오, 25분 43초. ⓒCJYART STUDIO(조준용)[사진 제공=아마도예술공간]. ‘예언’과 ‘시나리오’는 미래에 대한 두 다른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전자가 미래를 확약하는 믿음의 체계를 전제한다면, 후자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현실에 뿌리를 둔다. 시나리오가 예언을 현실과 봉합하는 표현이 되거나 예언의 비현실성을 구체화하는 형식으로 복무하는 지점에서의 균열을 찾아내는 방식, 아마도 이 둘이 상호 복무하며 통합되는 지점에서의 간격, 그 둘을 각자의 자리로 다시 돌려놓고자 하는 태도가 둘의 병치 속에 자리하며 전시의 실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 다가와 있는 미래, 다른 현실에 대한 반영, 미래를 바라보고 지각하는 여러 태도들은 미래에 대응하는 유사 과학적 혹은 핍진적 현실의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서사, 비인간의 상이한 지각 체계, 분산되며 재발견되는 파편으로서 사물들을 통해 드러난다. 전시는 그 예언과 시나리오 사이의 이행의 단계들을 상정하는 단서들로서 산만하게 주어진다, 또는 지각자의 의식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산만하거나 분산된 사물-이미지들은 이 미래가 현재를 탐침하고 해석하는 상이한 시점과 경계, 오래된 시간의 차원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는 상이한 표현 양식과 작업에 대한 다른 경로들이 지정하는 여러 주체의 접합으로서 전시가 구성됨을 의미한다. 이는 예언과 시나리오라는 개념의 분화 외에도 각자의 분화들이 이뤄지게 된다는 것이다.
〈Troll/ Round/ Catch〉(2024. single channel video, 3min. 25sec.)에서 돔 형태의 공간에 프로젝션되는 구명환 사용법의 절차들은 공간을 뒤덮는 육중하고 더딘 차원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지나쳐 가는데, 그 정보의 과잉된/과장된 형식으로 인해 원래의 기능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다. 그것은 광고 문구와 슬로건으로 소비자의 행동 심리를 추동하는 것에 가까운데, 의미를 탈맥락화하고 수수께끼 같은 서사의 일단으로 전용하면서 그것은 읽고 해석할 수 없는 텍스트-이미지가 되며, 동시에 성가의 표현 형식으로 반복하면서 전달되지 않는 텍스트-목소리가 된다.

신정균, 〈Troll/ Round/ Catch〉(2024. single channel video, 3min. 25sec.) 무엇보다 둥글게 마감되는 글자들은 구명환의 로프가 그리는 포물선의 이미지를 환유하는 것이다. 다만 그런 차원에서 부합하는,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설치 텍스트와 그것을 구조화하는 공간 전체가 필요해진다. 지연된 읽기와 듣기가 해석 작용을 무마하는 이러한 방식으로부터 등장하는 관객의 쪼그라든 생명력은 그 크기와 가상적 이미지의 차원에서 대비를 이루며 형성되고, 그 공간에 대한 실재의 증거처럼 기능한다. 예컨대 ‘이것은 실제 벌어졌던 전시에 대한 기록 영상인가?’ 해상도 낮은 영상이 흐릿하게 산란하며 주의를 빼앗고 또 주의를 옮겨가게 하는 일종의 광고 영상이라면, 그를 뒤따르며 지하 전시장을 뒤덮고 있는 노래는 기이한 성화, 마취의 효과를 자아낸다.
결과적으로, 〈Troll/ Round/ Catch〉의 존재에 침범하는 기호들이 그 미지의 공간에 들어선 존재의 경로로 반전되는 지점은 이어질 전시의 관점으로 주어질 것이었다. 어쩌면 이는 새로 축소된, 전이된, 이후 다른 작업들에서의 존재의 시점을 체현하는 것인데, 〈Troll/ Round/ Catch〉의 연장선상에서, 기능하지 않는, 기능하지 않기 위해 기능으로서 기호를 차용하는, 비상구 표지에서 인간 형상의 픽토그램 뒤집고 기울인 후, 180도 반전된 형태를 색 차를 두어 겹치고, 이에 조명을 비추어 그것을 부각시키는, 구원의 빈도 〈Frequency of Salvation〉(2025. object, light, dimensions variable.)의 경우에서도, 작업은 인간의 기호학적 변형과 특수한 디자인적 용례로 부각되며 그 관점에 대한 관점―이미지는 저 뒤틀린 기호인가, 그것을 마주한 조명인가, 조명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인가.―으로 환원된다는 차원에서 역시 공통된다고 하겠다.
〈Crashing Signifier〉(2025, single channel video, 3min. 7sec.)는 구원의 빈도의 새에 대한 실험 버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지하층의 창문에 부착된, 버드 세이버를 차용한 〈Screen Saver〉(2025. sheets on window, dimensions variable.)의 일부를 숲속의 한 ‘하얀’ 표지판에 부착함으로써 기능을 상실하는 설치 기록 영상으로, 이 표지판은 투명한 빌딩 창문에 동류의 형상으로 체현되는 것과 달리, 일종의 불투명한 장애물로만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수집된 것으로 보이는 동으로 된 매 혹은 독수리 조각상을 앞에 두고 사선 방향의 뒤쪽 LED 패널로 이를 반영해 내는 〈Inflection Point〉(2025. LED panel, object, dimensions variable.)는 새의 움직임의 변곡점에 이르는 짧은 경로의 무한 반복인데, 그러한 움직임의 분절적 양상, 결과적으로 ‘움직임의 갇힘’에 대한 형상화는 새의 정지된 재현에 대한 매체적 상응점―LED 패널의 짧은 기억의 반복적 형상화―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물론, Screen Saver가 가리키는 원래의 의미가 작동하는바, 그 기능적 영상이 실제 구현된다는 점에서, 두 작업 간의 연결고리를 상정할 수 있다.
실제 효과를 가져오는 초음파로 조류를 쫓아내는 〈Repeller〉(2025. repeller, manual, 68×46cm.)가 물론 새를 쫓아내기보다 새에게 기능하는 매체 형식을 기입하는 차원에서 놓이게 된 것이라면, 그 새를 쫓아내야 하는 상황, 긴급하고도 위험한 상황 자체의 부각은 앞선 작업들을 포괄하는 관점의 전제가 된다.
〈타임캡슐에 관한 대화〉(2025. 싱글 채널 비디오, 25분 43초.)는 의뢰를 받고 타임캡슐을 제작해온 일종의 ‘업자’인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기초로 하는데, 이는 그것의 기념비적 성격이 지닌 공허한 상징 의례의 차원과 전형성과 시대 착오성이 착종되는 지점―현재로부터의 미래적인 것이 반영하는 전형성의 상상력―, 그 안에 든 올드 미디어의 시대 특정적인 한계 등 공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핍진하고도 형식적인 허술함을 파헤치는데, 이때 작가를 포함한 두 사람의 화상 채팅이 네거티브 이미지로 제시되는 것은 한층 그것이 사실에 가깝다는 인상을 형성하는데, “픽션 면책 조항”의 삽입은 그것을 교란한다.
결과적으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그려본다면, 곧 그것이 너무 사실 같기 때문에 픽션일 수도, 너무 사실 같지 않기 때문에 픽션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너무 픽션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에 사실일 수도, 너무 픽션인 것 같지만 실은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타당해 보이는 건 그것이 전적으로 픽션이 아님을 말하는 것도, 또한 픽션일 뿐이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일 것이다. 곧 픽션과 사실은 어떤 하나에 대한 선택으로 소급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횡단하는 계열로 묶이는데, 그것은 두 개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영상을 현실에 대한 참조점을 두고 진행한 연기라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1) 신정균, 〈파편 조각을 위한 스터디〉, 2025, 철제 캐비닛, 수집된 물건, 138x120 cm 2) 신정균, , 2025, 수집된 액자, 가변크기 또 다른 영상 작업 〈G2 연구소 관리인을 위한 업무 지침서〉(2025. single channel video, 8min. 43sec.)의 경우, 매뉴얼로서 괴담이 인터넷상에서 우연하고 자의적으로 발생하는 지점을 수여하고자 하는데, 괴담은 그 자체로 매체로서 전파된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 〈링〉(1998)이 비디오 안에 귀신이 담겨 있는 것처럼. 실제 한 연구소에서 수집한 동물 표본들을 전량 폐기한 사례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탓이겠지만, 이는 거꾸로 매뉴얼 자체에 ‘귀신’이 씌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곧 매뉴얼 자체가 괴담인 것이다―매뉴얼 자체가 상연된다는 것(하단의 텍스트로서 우에서 좌로 빠른 속도로 흘러나간다.) 자체가 괴이한 것이다.
또한, 여러 뒤섞이는 소리는 곰팡이 균으로 퍼져 나가는 포자의 가시화일 수도, 기계적으로 변형되어 뒤틀려 귀신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후 조금씩 늦추어지는 오르골은 Troll/ Round/ Catch의 음악과 조응하며, 그 소리 자체에 머물기보다 소리에 개입하는 존재를 암시한다. 또한 외화면에서 침투하는 몇몇 요소들은 하나의 시각 장이 아니라 편재한 사물들의 개별적인 시각 장으로 이뤄진 전시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선취하는데, 곧 전시 자체가 하나의 연구소이며, 그 세계는 어떤 연구소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괴담이 괴담 스스로에 대한 발화인 것처럼, 여러 사물들을 하나의 재현적 증거로서 제시하는, 과거에서 온, 사후적 이미지들임을 말해주는 것과도 같다.
이는 커다란 캐비닛 안의 각각의 서랍들 안에 수집된 사물, 잡지, 문서 등이 놓인 〈파편 조각을 위한 스터디〉(2025. cabinet, 수집된 재료들, 138×120cm.)나 여러 수집된 액자들의 〈Compilation〉(2025. 수집된 액자들, 가변크기.)에서도 드러나는데, 그것은 무언가를 말하기보다 그 자체로 아카이브라는 체계를 묘사하고 재현한다. 그리고 그것의 범주적 속성의 불분명함은 동시에 그럴 듯함은 무엇에 대한 아카이브가 아니라, 아카이브적인 무엇을 그리고 그것과의 간극을, 시차를 선사한다. 그것은 곧 현재적이지 않은 무엇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것의 원래 주인도, 그것을 다시 모은 작가 역시도 그 현재로부터 밀려나는 듯 보이는데, 이러한 미끄러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신정균, 〈올라서는 자리〉, 2025, 철, 가변 크기 2) 신정균, , 2025, 경광봉, 고정대, 단안 망원경, 가변 크기. 1) 신정균, 〈올라서는 자리〉, 2025, 철, 가변 크기 2) 신정균, , 2025, 경광봉, 고정대, 단안 망원경, 가변 크기. 결과적으로, 아마도 이 전시를 가장 신비스럽게 감싸는(공간 자체를 반향하는 영상의 성격에 따라) 음향, 곧 〈Troll/Round/ Catch〉의 징후적 차원의 목소리는 위험에 대한 잠재적 차원의 두려움과 그것을 잠재우는 초재적 차원의 힘의 평안함 모두를 안고 있는 양가적인 차원의 기호 작용으로, 이는 시스템을, 믿음의 구조를, 믿음의 유형학을 가시화하는 작품들의 차원 가운데서도 예외적으로 그 믿음의 기저에 대한 반향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믿게끔 하는 것(핍진성의 사물들)에서 믿는 것(감염된 주체)을 추출하는 전시에서, 그 주체의 중핵을 차지하는 대타자의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믿음의 체계 바깥에 놓인, 곧 모든 걸 허구로 환원하는 비믿음적 믿음의 자리 역시 제시하는데, 그것이 곧 상징계적 질서를 참조점 삼아 재배치, 전유, 가시화함으로써 폭로하는 사실의 허구성과 허구의 사실임 직함 사이를 횡단하는 예술의 고유한 권리이자 형상인 “픽션 면책 조항”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전시기간
2025년 2월21일(금) - 3월23일(일)
전시기획
신양희
참여작가
신정균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아마도예술공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4길 8)
디자인
윤현학
전시전경
CJYART STUDIO(조준용)
후원
서울문화재단
설치
다목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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