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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희윤, 조윤영, 《양서류》(기획: 권하정): 비인간적인 것의 은유
    REVIEW/Visual arts 2026. 8. 29. 21:32

    지표로서 흔적

     

    《양서류》는 회화와 설치를 뒤섞으며 서로 조응하는 방식으로 재편하면서 일종의 설치로써 가늠되는 전시를 완성하는데, 결과적으로 수행사적 차원이 두드러진다. 제목은 작품들을 환유하는 측면에서는 재현적이며, 일종의 지표로서 남겨진 그 ‘흔적’을 좇는다는 지점에서는 모호하다. 또한 생태적 차원을 반향하려는 측면에서는 낭만적이거나 타자성을 도입한다. 《양서류》는 무엇보다 촉각적인 전시이지만, 동시에 모호한 이념을 매만지는 전시이다.

     

    가령 중앙의 조윤영의 〈들숨〉(2026. 부직포, 실, 아일렛, 와이어, 젤리제습제, 가변설치.)과 양희윤의 〈구내염〉(2025. 종이에 목탄, 가변설치, 9장 각 102×72 cm.)은 서로를 마주하는 구조로 설치되었는데, 전자가 양서류의 그것에 직접적으로 해당한다면, 후자는 그것을 인간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여기서 인간과 양서류의 교집합은 혼종적인 것보다는 공통적인 차원에서 온다.

     

    반면, 가의 이빨과 중앙부 입천장의 검은 배경 위의 흰색 소용돌이 같은 흐름, 거친 표면은 “동굴”(양희윤) 같기도 하고, 미시적인 것이 그리는 증대된 세계의 환경이 다시 존재를 체현하는바, 그것은 인간적 시점을 그 안에서 다시 찾아오는 대신에―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확장과 형해화, 모호성의 견지에서 인간의 환원적 시점에 양서류를 ‘재’도입하는 경로를 쓴다.

     

    이 두 작업이 시각적으로 맞물리지만 거리를 벌리고 있다면, 양희윤의 〈개구리는 개굴개굴 울지 않는다〉(2026. 전시장 벽 위에 목탄, 가변설치.)와 조윤영의 〈겉아가미〉(2026. 젤리제습제, 가변설치.)는 가장 큰 반경에서 직접적으로 뒤섞이고 있는데, 이는 각각 벽에 그려진 드로잉과 설치이다. 이때 〈구내염〉에서 특정된 인간 이빨의 형상은 확실히 전도되어 “개구리”의 새어나오는 울음을 상정하는 듯하다.

     

    낭만적이고도 지저분한

     

    반면, 이는 제목과 전시명이 주는 혼동 안에서 그러하다. 곧 이 작품은 제목을 경유해, 인간의 형상으로부터 인간의 관념을 재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인간의 (물리적이 아닌 관념적) 확장과 인간을 벗어나기라는 의제가 사실은 ‘어렴풋하게’ 양서류를 가리킨다. 이것에 중첩되는 건 조윤영의 양서류의 흔적이다. 순서상 회화 위에 설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드로잉에 색이 배어드는 매체적 합성의 효과 안에, 뒤섞음 자체를 전시의 이념으로 길어 올린다.

     

    그것은 또한 낭만적이다―이념을 낭만으로써 성취한다. 둘의 불일치를 드러내고, 동시에 둘의 자율적 절차를 수행하는 가운데, 하나의 이념을 향한 침입-수용의 절차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개구리는 인간의 언어적 인지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 학습하지 않는다. 이 제목의 재가시화 전략은 무엇보다 개구리가 아니라 인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양서류의 ‘침범’에 대응하는 건 드로잉이라기보다 실은 흰 벽 자체이다.

     

    이 지점이 《양서류》의 낭만적이고도 지저분한, 너저분한 어떤 방식이 갖는 이념이 인간 너머의, 비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주제를 표상하는 데 적합해지는 근원적 단서인 셈이다. 흰 벽은 작품을 거는 게 아니라 캔버스가 되고 이 지점에서, 작품의 규격을 엄정하게 구획화하지 않음으로써 일시적인 차원―전시 후에 소거될 대상―으로서 시도 차원에서는 확장성을 띠고, 작품 차원에서는 격하되는데, 거기에 설치가 더해지면서 실은 공간 자체를 매체화한다.

     

    이는 다시 (반복해서) 말해, 양서류를 좇는, 따라가는 어떤 전시이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조윤영의 〈기둥〉(2026. 젤리제습제, 가변설치.), 전시장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인장되는, 특정 주형 틀에서 주조한 것으로 보이는, 옅은 갈색의 젤리가습제 덩어리 자체로 ‘주입’되지만, 일종의 관성적 차원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실질적으로 더 효과적인 건 〈담던 담〉(2026. 석고, 제습제 찌꺼기, 가변설치.)이다.

     

    실물을 의태하기

     

    스티로폼 상자의 실물을 의태하는 이 작업이 갖는 거리 구석의 풍경을 불러오는 것에서, 작품은 곧 환경으로 확장된다. 양희윤은 거기에 조응하는 작업을 두는데, 〈꾸뻑-꾸뻑〉(2026. 플라스틱, 지점토, 수성흑연, 포장지, 종이, 파스텔, 지퍼고리, 13×22×15 cm.)으로, 앞에서 보면 지퍼 고리가 달린 검은색 직사각형 작은 가방으로 보이지만, 거기에 사전을 오린 종이가 붙어 있고, 뒤에서 보면, 일종의 포장 틀 같은 것에 포장지가 들어 있는 전혀 다른 형국이다.

     

    단어장은 “꾸”로 시작되는 단어들이며, “꾸불”, “꾸붓”, “꾸뻑”, “꾸역”과 같이 주로 두 번 반복되어 형태나 움직임의 부사를 나타내거나 형용사로서 어간이 되어 변주되는, 그러니까 구체적인 묘사와 의태로서 갈음되는 단어들이다. 이는 뒤의 포장 용기 안에 말려 들어간 포장지를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묘사의 단어들―꾸불거리거나 꾸역꾸역 놓인―로 볼 수도 있다.

     

    〈담던 담〉이 스티로폼 상자와 유사한 질감을 석고로써 구현하는 가운데, 제습제 찌꺼기가 거기에 오물의 형상을 수여하여 단단한 질감의 무름이라는 혼동을 선사한다면, 그것 ‘안’에서 〈꾸뻑-꾸뻑〉은 버려진 가방으로 보이면서 인간의 자취를, 삶에서 옮겨온 어떤 사물의 생생한 현전을 우연한 결합, 접속의 차원으로 인계한다. 이때 전시는 외부를 끌어온다.

     

    조윤영의 ‘테’ 1~7(2026. 젤리제습제, 가변설치.)은 마치 대충 떼어 놓은 반죽 파편들 같은데, 그것이 외부를 가장한다면―내부 안의 외부―, 〈담던 담〉은 외부 자체에 가까워진다. 양희윤의 〈검은 그녀의 것〉(2025. 종이에 목탄, 50×36cm.)은 머리카락에 덮인 얼굴을 드로잉한 것인데, 화면 전체를 휘감는 머리카락의 잔영들로부터 눈-입술이 일정한 타원형의 크기로 조각되어 새어 나온다.

     

    귀와 눈

     

    그리고 수평선이 동일하게 그어져 있는데, 이로써 비인간적인 형상을 의태하게 된다. 물론 이 그림은 인간의 유비이며, 전체 공간으로부터 이격되어 있다. 곧 마치 그것이 이 세계를 조망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거의 천장 가깝게 위에 붙어 있어 ‘발견’되는데, 따라서 응시가 응시되어지면서 그 위태로운 비인간적 균열의 지점을 물리적으로도 숨겨 놓게 된다.

     

    양희윤의 〈열린 13분〉(2024. 갱지에 목탄, 60×42 cm.)과 〈열린 17분〉(2024. 감지에 목탄, 60×42cm.)은 각각 좌우로 나란히 걸린 작업으로, 상단의 귀 한 쪽과 하단의 눈 한쪽으로 그려진 작업으로, 각각 오른쪽과 왼쪽의 부위를 지시하고 있다. 이 신체 특정 부위의 해체와 재조합은 하나는 구멍을 하나는 표면의 식별되는 시각성을 상정한다. 그리고 귀가 비교적 선명하다면, 눈은 흐릿해지는데, 그것은 시각의 흐려짐과 시각물 자체의 흐림을 혼동케 한다.

     

    특히 귀의 구멍 쪽이 검고 뚜렷하게 구멍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리하여 구심점으로서 구멍을 구성한다면, 눈은 전체 잔영의 한 부분으로서 뭉개지며 마치 초점을 잃어버리도록 형해화된다. 눈은 귀를 보지 못하고, 시각장의 영역을 지배하는 듯 보인다. 이 귀라는 시각장은 눈이라는 흐릿함의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런데 무엇이 열리는 것이고, 그것은 어떻게 시간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인가.

     

    〈들숨〉의 커다란 부피가 거대한 양서류의 어떤 숨을 나타내기보다는 그 중앙에 맺힌 배설물의 차원을 실감 나게 현상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곧 유동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그 ‘배설물’이 천을 바짝 잡아당겨 고정시키고 있다면, 그 아래 〈구내염〉은 자기들 안에서 섞고 혼합된 지층을 이룸으로써 생명력에 대한 어떤 표현으로 자리하는데, 심층과 표층, 힘의 자장으로서 세계-배경이 오히려 숨을 상정하는 듯하다.

     

    제도 너머에 대한

     

    《양서류》는 설치의 자율성과 재량을 극대화하면서 작업 역시 그에 맞춰, 또 상정해 간이한 차원으로 시도되는 것으로 보인다. 양서류의 어떤 흔적에 대한 작업은 작품의 자리로 고착, 결정되지 않는 임시성의 차원에서 산만하고도 산재하며, 그에 따라 역동적으로 작업을 좇고 연결하게 된다. 지속적인 차원에서의 흔적들로서 〈기둥〉은 그 가상적 경로에 대한 서사를 상정하면서 그것의 지표로서 기능한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울지 않는다〉의 이빨들과 조윤영의 〈겉아가미〉의 어떤 피부, 흔적, 배설물 같은 표면은, 상호 토대를 이루게 되는데, 전자 위에 후자가 흡착되고, 후자로써 전자가 착색, 포장된다. 무엇보다 이 두 신체적인 것의 결합은 의미적으로가 아니라 신체적으로 조응되며 이 이질적 접촉 자체가 이 전시의 가장 명확한, 물화된 이념임을 지시한다.

     

    《양서류》는 이 촉각적인 것의 전이된 상태로부터 전시의 자유로움을, 제도적 이탈을, 아울러 불쾌의 쾌를, 엄정함으로부터의 이격을 시험, 실험하며, 양서류의 감각을 양서류에의 어떤 것으로 옮겨오면서, 그것을 예술적 시도의 방법론적 차원에서의 비유로 전이시킨다. 이때 비인간적인 것은 비인간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인간 자체를 벗어나기의 일환으로서 인간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김민관 편집장

     

    [전시 개요]

    참여작가 | 양희윤, 조윤영
    기획 및 글 | 권하정

    전시 기간 | 2026. 7. 9. - 7. 29. / 일, 월 휴무
    운영 시간 | 주중 13:30 - 19:00 토 11:00 - 19:00 / * 오픈 당일 17시부터 운영
    오프닝 | 2026. 7. 9. (목) 17:00 - 19:00
    장소 | 전시진행중, 서울 마포구 홍익로 10 지112호

    디자인 | 신다빈
    촬영 | 권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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