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카셀주립무용단, TANZ_KASSEL, 〈황홀경에 대하여-변형된 교향곡 Let’s Talk About Trance-Transmuted Symphony〉: 트랜스 혹은 트랜스로서 불순물
    REVIEW/Dance 2026. 10. 6. 19:31

    불순물적인…

     

    카셀주립무용단, TANZ_KASSEL, 〈황홀경에 대하여-변형된 교향곡 Let’s Talk About Trance-Transmuted Symphony〉, 사진 출처=카셀 주립 홈페이지=https://www.staatstheater-kassel.de/play/letstalkabouttrance-3167. (이하 상동 As above).

    〈황홀경에 대하여-변형된 교향곡〉(이하 〈황홀경〉)은 처음 반복되는 동작의 집단 수행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구조적 차원에서 황홀경 곧 트랜스를 겪는데, 이는 전기와 후기가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됨을 의미한다. 특히, 초반에서 두 발을 좌우 양옆으로 널찍하게 교대로 찍는 제자리 스프린트는 폭발적인 신체 양상 자체를 보여주는데, 이는 거의 그 격렬한 흐름의 진자 운동의 즉물성 이외의 것에 어떤 여지를 남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전기가 신체 자체의 일정하고도 짧은 반경 내의 피드백 루프에 ‘하염없이’ 갇히면서 트랜스를 겪는 것이라면, 후기는 이 흐름을 깨고 막―이 막에는 그 뒤에서 하얀색 스프레이 프린트를 뿌려 넓적한 수평 축 동세가 강조된 낙서가 구성된다.―을 끼고 구분된 두 개의 공간에서 모종의 사회라는 것이 상정되면서 신체적인 것은 존재적인 것으로 다변화 혹은 의미의 지층을 확장하게 되는데, 신체의 강도로써 획득되는 트랜스는 이제 의식의 변전 속에서 모호하게 획득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이 두 큰 흐름의 차이 자체가 하나의 트랜스이겠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왜 시도되는 것일까. 후자가 말하는 사회, 일종의 현대 사회의 재현적 차원이란 무엇을 뜻할까. 왜 신체의 순전한 매체적 동원으로 끝까지 지속하지 않았을까. 왜 그 자체의 서사는 무력해진 것일까. 〈황홀경〉의 처음이 분명 상기시키는 건 얀 마르텐스의 〈도그 데이즈, 오버 2.0〉(이하 〈도그 데이즈〉)[각주:1]로, 이는 집단적인 반복의 움직임이 어떤 소강 상태에 이르며 변용되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황홀경〉은 〈도그 데이즈〉에 비해 순일하지 않으며, 〈도그 데이즈〉가 매체적 지속의 불가능성, 격렬한 몸의 반복으로부터 소진과 균열의 차원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매체로서 몸을 탐구한다면, 〈황홀경〉은 이 지점을 일종의 즉물적 표층으로 두며 심층적 차원의 심리-드라마적 혹은 연극적-상징계적 세계의 이전으로 상정함으로써 전자를 서사적으로 재정의하기에 이른다. 폭발적 신체 움직임은 일종의 장면화된 기억으로 갈음된다.

     

    집체 운동 그러나 개별-고립적인

     

    세부가 명확한 차이를 불러오는 지점은 〈황홀경〉이 집단적 수행을 하지만, 그것이 고립된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것으로, 〈도그 데이즈〉가 자신의 기본 스텝으로서 제자리 점프가 어떤 개성으로서 차이를 의도적으로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시차의 속성 역시 더 넓은 차원(의 규약)에서 포함하고 있음의 견지에서 〈황홀경〉과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들이 무엇보다 집단적으로 묶여 있음을 의미하며, 그 안에서 동화와 차이 사이의 제어를 (비)의도적으로 가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그 데이즈〉에서의 이 집단적 차원에서의 안무가 〈황홀경〉에서는 무대 전체에 무용수들을 정면을 바라보면서 3행으로 배치한 후, 거의 변함없이 진행된다는 차이를 띠는데, 이는 이후 전기 이후 둘씩 짝을 이뤄 곡예적인 차원으로 상대를 허공에서 돌리고 꺾고 하는 동작과 같은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이전의 설정은 관계 없음의 차원(이 지닌 부정성)으로 ‘요약’되며, 중기 이후, 둘의 짝지음은 이제 사회적 차원의 세계를 이루는 변증법적 매개로 사후적으로 재정립되기에 이른다.

     

    물론 그 직전에 서로의 등에 팔을 대고 일렬로 교차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과 같이 집단으로서 규칙이 체현되는 바가 있으나 이는 엄밀히 집단 안의 규칙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음을 그들의 인지 차원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엔트로피적 차원이 집산되고 이제 흩어질 준비에서 어떤 정점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없다. 곧 이제 모든 질서는 허물어지며, 결과적으로 각각의 고립은 급작스럽게 집합이 되고, 혼란으로 역전되기 시작한다.

     

    사실상 관객 입장 가운데 행해지고 있던 3행 구도의 움직임, 무릎을 굽혔다 가슴을 튕기며 올라오는 동작, 이는 고정점을 갖고 움직이는 것인데, 여성은 브라 톱 하나를 더하고, 공통적으로 팬츠, 양말, 운동화를 신은 무용수들은 과시하며 전시된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공통적 토대 아래서 식별되고 분별되는 대상적 기호이기도 하다.

     

    인종적인 혹은 강렬함의 식별

     

    이는 피부색의 대별로도 나타나는데, 이른바 다양성의 문화를 하나로 집산하며 신체적 특질을 오히려 과장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문화-재현적 차원의 직접적 매개, 어떤 투박함은 클리셰적 환상성의 차원에 입각한 것임을 되돌려 주는 차원에서, 후반 어두워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거의 단일화된 집단을 구축하는 장면이 출현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대별되는 차이, 식별의 기호에 덧붙여지는 의미의 어떤 여지 같은 게 있(었으며 비로소 사라지)는 것 아닐까.

     

    이 공통됨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동일성의 토대로부터 차이는 오히려 현격하며, 특히 가운데 중심부의 무용수들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더 강도가 있고, 더 눈을 사로잡는다. 이는 따라서 실제로는 군무라기보다 전경과 배경의 뚜렷한 시차 아래 작동하는 구별짓기의 일환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것에 항의서한을 보낼 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다.

     

    특히, 무대 앞쪽에서부터 중앙부 1행과 2행, 약간의 상수 쪽과 하수 쪽 각각, 셀린 마르텔로(Selene Martello), 마일스 L. 헌터(Myles L. Hunter)는 탁월한 기량을 보이며, 헌터는 가장 맹렬하다. 이 둘은 다른 이들을 거의 압도하며, 후경으로 분류 짓는다. 그러니까 헌터의 탄력적인 추동력과 근육 등의 돋보임은 스포츠 운동 과학적 분석 차원에서 흑인성에 입각하면서 실은 흑인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무용수들은 덜 강(렬)해 보이는데, 그것은 이 차이가 집단 자체의 승화를 위한 의도적인 차이가 아닐까. 무용은 스포츠를 내포하지만 그리고 군무는 동일성을 지향하지만, 그 차이가 공통성의 차원을 위한 것이며 차이를 부정성으로 정의 짓는 가운데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이 전시는 성립되며 또 과잉되는 것 아닐까.

     

    두 개의 세계

     

    여기서 예외적으로 상대적으로 3행의 한 남성은 브라 톱을 입고 있는데, 이는 제3항의 도입을 통해 혼란을 더하면서 또한 이분법적 논리를 일정 정도 소강시킨다. 집단적 정렬의 균열은 수 바퀴 제자리 회전과 같이 원심력을 경유한 스펙터클한 파열과 함께 이뤄진다. 마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에 팅팅 하는 파열음에 맞춰 숨을 고르고 좌우로 다시 뒤로 다시 좌우로 오가는 스텝과 함께 반복적 집체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1열로 모이며 프로펠러 소리만이 남고 점점 몸이 구부러지고 서서히 구겨진다. 여기에 채찍질 소리가 더해지고 어둠 속에서 신체들이 엉키고, 프로펠러 소리는 커지고 작아지고 하며 움직임이, 신체가 쌓여 나간다. 스피커가 떨리며 노이즈가 발생하고, 몸들은 각자 자리에서 각축한다, 몸을 구기고 강도를 잔뜩 실어서. 무대 안쪽 샤막이 보이고, 그곳을 바라보며 한 명씩 이동한다.

     

    그러니까 〈황홀경〉은 저 너머의 위치성을 통해 분절된 두 층위와 변화된 시간성을 동시에 구성한다. 이는 다분히 서사적이고 드라마적인 장면이며, ‘주체’의 심리와 정서를 구성한다. 막은 반투명한 차원에서 그 앞과 뒤의 신체를 투영하여 체현하는 풍부한 신체 형식의 외양 속에 의미를 갈음하는 대신, 외부에 대한 환상을 가리키는 순수 내용 자체로서 두 개의 세계를, 과거와 현재를,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식역)을 만든다.

     

    앞선 바닥에 뭉쳐 결정되는 무작위적 연결들처럼, 발목을 두 손으로 잡고 머리를 뒤로 해서 허리를 꺾는 제임스 포터(James Potter)의 모습은, 일종의 경계에 대한 추동, 막으로서 신체를 가시화한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에너지적 분배와 교환의 작용으로, 빠르기의 강도를 더딤의 강도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힘의 솟구침을 굴절로써 조율, 변양하는 것이며, 리듬적 추출에서 호흡적 몰입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운동 감각에서 점진적 이미지에의 초점으로 새롭게 주의를 조정하는 일이다.

     

    세 번의 각기 다른 트랜스

     

    실루엣으로 저 바깥에서 뒤돈 채 추는 건 클럽이라는 새로운 장소를 상기시킨다. 이제 개별자들의 식별과 분별은 불가능해지며, 새로운 구성체로서 집단의 효과가 일상의 불특정 다수를 재현하는 차원으로 옮겨 가며, 움직임은 춤이 된다. 마지막에 숨이 멈추며, 빛 역시 감축되는데, 소리와 소리 지름이 뒤섞인다. 마지막 장면은 숙이자 암전이 되어 가고 그 가운데 앞을 보는 무용수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황홀경〉은 클럽 공간의 현대적 제의 공간과 의식의 무화된 경계를 시험하는 특정 시공간의 경험을 후반부에 불러오지만, 그에 앞서 오히려 집단적 도열의 측면이 지닌 엄숙성과 숭고함 따위에 동반되는 강렬한 힘의 효과를 드러내며, 그 중간에 덜그럭거리며 분열을 일으키는, 자기 모순에 처하는, 도착되고 착복되는 기이한 관계의 중심을 보여주고자 한다.

     

    일정한 강도로 끝을 맺는 대신에, 불순물적 결말에 이르기 전에 순일한 강도의 차원에서 움직임을 보여주는 〈황홀경〉은, 그럼에도 몸 자체에 심화되는 강도 자체를 시험한다는 점에서는 지속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리듬의 단위를 지정할 수 있는 것에서, 호흡의 단위로 측정되는 정위할 수 없는 이미지로서 신체의 무작위적, 유동적인 단위를 보는 것으로써, 공연은 다소 지루해지고, 종잡을 수 없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황홀경〉은 이를 통해 희미하지만 뚜렷하게 곧 희미한 틈새의 빛과 저 너머에 대한 열망과 뚜렷한 현실로의 접속을 가설하며, 문이라는 은유를 통해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지정하여 그 사이에 일정한 통과 의례 차원의 지연을 가져간다. 곧 처음에는 물리적 차원의 반복적 신체 강도를 통해, 두 번째는 관계적 결착과 늘어짐을 통한 이완과 은밀한 교류로써, 세 번째는 움직임의 음악적 엑스터시 속 분간할 수 없는 집단적 의례의 차원으로써 황홀경을 만들어 낸다.

     

    김민관 편집장

     

     09.04.(Fri) 7:30pm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
    소요시간 : 60분
    예술 감독 Thorsten Teubl
    안무 및 연출 Andrea Peña
    사운드 디자인 Coppélia La Roche-Francoeur
    세트 및 의상 디자인 Sibylle Pfeiffer
    조명 Stefanie Dühr
    드라마투르기 Thorsten Teubl, Lars Gunnar Anderstam,
    무대 감독 Sönke Baller
    리허설 및 트레이닝 디렉션 Keiko Okawa

    출연·공동안무
    Mario Cernicchiaro
    Agenese Biavati
    Lucie Horná
    Myles L. Hunter
    Hoyori Marou
    Selene Martello
    Safet Mistele
    Sara Nicastro
    Manon Anna Andral
    Shafiki Sseggayi
    Matthias Vaucher
    Tse-Wie Wu

    초연
    2025년 6월 13일
    Staatstheater Kassel, TiF – Theater im Fridericianum
     
    1. 1.김민관, 〈[2025 SPAF] 얀 마르텐스, 〈도그 데이즈, 오버 2.0〉: 몸이라는 착각 혹은 의무〉, 《아트신》, “얀 마르텐스의 〈도그 데이즈, 오버 2.0〉(이하 〈도그 데이즈〉)은 브라 톱과 쇼트 팬츠, 레오타드, 크롭티, 네온 컬러의 레깅스 등의 의상을 입은 채 무릎을 굴신하여 앞뒤로 점프하는 발 구름 동작을 하나의 ‘토대’로 두고 그야말로 공연 전체를 거의 일관되게 관통하는데, 이는 흔들리면서 정확한 몸의 지층을 구성…”, https://www.artscene.co.kr/2155.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