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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단, 〈은의 혀〉(박지선 작, 윤혜숙 연출): 여성의 몫을 재활성화하기 또는 재가시화하기
    REVIEW/Theater 2026. 11. 6. 14:46

     하층노동자로서 여성의 보편적인 상

     

    국립극단, 〈은의 혀〉(박지선 작, 윤혜숙 연출)[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은의 혀〉에서 여성의 일상적인 노동은 하층 노동자의 지위로 낙하한다. 정은(이지현 배우)의 위로 역시 상조 도우미라는 일종의 직업으로 나타나지만, 이 역시 그러하다. 정은을 통해 극은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고 또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굳이 일상으로 그것을 옮겨 오지 않고 극단적인 캐릭터의 설정을 통해서. 이는 통속적인 여성에 대한 캐릭터가 아닌, 여성이라는 역사의 이념을 새롭게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다만 이 작업은 전자의 차원처럼 비춰지는 바가 크다. 억척스럽고 넉넉하고 넉살 좋은 캐릭터와 조용하고 고고하고 예민한 캐릭터는 여성 존재의 극단적인 나눔이다. 양분된 두 캐릭터는 내재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기보다 사건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잠깐 만나며 실은 병렬되어 진행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두 이질적인 캐릭터는 곧 하나의 사건을 전제로 해서 접합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은수(강혜련 배우)의 자신의 죽은 아들의 사례는 그 자체로 중요하기보다는 부차적이며 다분히 기능적으로 삽입된 것처럼 보인다. 아들과의 전사 역시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정은의 보편적인 여성의 삶에 더 중심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극은 순수 문학의 형태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그것이 사회학적 리서치를 기반으로 해야 하며,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더 듣고 있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건 순수 문학의 차원으로 한정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곧 정은의 여성성의 대표적 일면과 여성의 위치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 전반의 현실적 지위는 여성 고유의 특성이자 긍정의 속성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여성으로의 환원 혹은 여성의 고유성

     

    그것이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것은 양가적인데, 그것이 여성의 운명적 족쇄인 것처럼 곧 정은의 친족의 3대에 걸친 밥 짓고 접대하는 여성만의 역사에서처럼 여성의 구조적인 삶의 취약함으로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면, 등재되지 않는 역사의 열외되는 주체성의 차원에서 정은의 삶이 긍정적으로 유효하다는 것, 그러니까 그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기 삶을 기꺼이 그렇게 연장한다는 점에서 그 부정성은 뒤집힌다.

     

    반면, 그것이 여성만의 것이고, 그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가시화한 것은 탁월함에도, 그 이후의 지평은 다소 모호한데, 곧 그것이 여성 바깥의 인류의 역할 또는 여성 너머 모두의 역할로서 유의미한 지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과 여성만이 그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나아가 탁월한 잠재 역량의 산물임을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가시화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정은의 캐릭터는 여러 긍정적인 차원도 가지고 있음에도 다분히 과거의 인물이고, 역사 이전의 전형적인 존재의 형상을 띤다. 발랄함과 경쾌함이 긍정성이나 동시대성의 기호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 이 극의 자막이 음악을 음표가 아닌 이미지, 기호로 번역하는 것과 같은 부분은 음악까지도 하나의 언어로 치환하려는 노력과 의지, 아이디어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시도로 느껴진다.

     

    상조 도우미 정은이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로 죽은 아들의 장례식장을 혼자 지키는 은수의 곁에 머물면서 극은 두 사람의 지난한 관계의 시작을 알린다. 극은 처음 정은의 은수를 보는 시선이 마침내 은수의 정은을 보는 시선으로 바뀌는 것으로 나아간다. 명랑하고 쾌활한 정은이라는 캐릭터는 상실감과 슬픔에 깊게 침잠되어 있는, 외부로도, 외부로의 말로도 이어지지 않는 은수라는 캐릭터와 비대칭적 구도를 형성한다.

     

    죽음을 둘러싼 관계성

     

    시종일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정은은 자신의 3대에 걸친 역사의 굵직한 사건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던 밥을 하는 여성 계보를 잇고 있음을 픽션처럼 들려주며, 자신이 은의 혀를 지녔다고 말한다. 이는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고, 신비와 미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극의 결말과 중핵을 예기한다.

     

    정은은 실은 상조 일을 하기 전에 학교 급식실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며 발병한 폐암이 전이된 상태를 숨기고 일상에 복귀한 것으로, 이 비밀이 은수에게 중요한 사실이자 정은의 중요한 삶의 내력으로 다가올 때 ‘은의 혀’는 거짓 서사를 창출하는 자유자재의 전유의 혀가 아닌, 색이 바랜 고통과 신음의 혀, 말을 하는 게 불가능한 물리적 신체의 바로미터로 비로소 자리잡게 된다.

     

    처음 은수 자신의 아들의 장례식장이 후반 정은의 병실로 바뀌며, 죽음의 메타포로 점철된 공연의 성격이 공고해진다. 정은의 역사 속 밥을 하는 여자들이 그의 친족인지 아닌지, 또는 친족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의 밥 짓는 일의 위치가 시대를 건너서도 유효하고 지속되고 있으며, 역사의 이름에서 지워져 있음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상조도우미로서 정은은 은수의 삶을 포괄한다. 물론 은수의 슬픔은 특정화할 수 없는 그 고유의 것이다. 그럼에도 밥을 짓고 나아가 밥도 짓고 사람도 위로하는 정은의 역할을 통해, 희곡은 누군가의 슬픔이 아닌 그 슬픔과 다른 슬픔 모두를 애도의 차원으로 전이될 수 있는 다른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정은은 처음 은수를 보고 상조 도우미의 매뉴얼을 초과해서 그를 곁에서 은근하게 지켜낸다.

     

    전형적 여성, 그리고 사건으로부터의 주체

     

     

    정은을 통해 여성의 돌봄 노동의 고정된 역할과 그것의 하층 노동자로서의 위상, 그리고 실은 누군가를 살리고 사회를 지지하는 중요성을 띠고 있음이 드러난다. 물론 이는 정치적 고발과 비판의 성격보다는 친족 여성 계보의 중첩된 역할과도 같이 기구하고 특수한 정은의 중첩된 역할, 곧 급식실에서 장례식장으로의 역할 변이의 삶 자체와 그 삶의 전형성이 드러내는 여성의 상징적 역할을 보여준다.

     

    ‘은의 혀’는 비단 정은을 향하지만은 않고, 정은이 만들어 낸 픽션, 정은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전형성과 여성이 지닌 숭고한 타자성에 대한 지향의 일면을 모두 향한다. 그것은 이 이야기가 진실임 직하지 않다는 것을 향하는 대신에, 그 진실임 직하지 않은 삶이 여성의 현실임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정은은 여성의 전형성을 대리하며, 여성의 돌봄 노동의 삶을 체현하는 존재이다. 그는 여성에 관한 메타 서사를 구성하는 이야기꾼이면서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하는 주인공인 것이다.

     

    그에 비해 은수의 축축한 삶, 곧 젖은 몸으로 꿈에 찾아오는 아들과 수영장의 이미지, 또 아들이 죽은 성인의 3번 레인에서 수영을 하는 은수, 평소 충고를 잘 듣지 않던 아들의 청개구리 이미지 등으로 연속되는 은수의 정체되고 반복되고 고립되어 있는 삶은 정은이라는 강력한 삶과의 만남으로 인해, 정은이라는 실재의 몸덩어리와 맞닿으면서 애도와 함께 현실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곧 이야기의 축은 정은이며, 정은이 캐릭터의 동력을 잃게 되었을 때 마침내 은수가 그 중심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아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자의 자리에서 올라와서 은수는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일종의 극을 매개하는 악사 혹은 연주자의 존재는 은수의 삶이나 정은의 죽음에 이르는 삶과 같은 극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 전에 더 중심적으로 자리한다. 따라서 이는 극의 주요한 모티브를 보조하기보다는 또 다른 하나의 무대를 끼워넣는다는 인상을 준다.

     

    통속적인…

     

    가장 처음, 시적인 말들로 지은 노래는 극의 서사와 상관없는 라디오와 같은 다른 매체의 삽입 기법으로 보이고, 비좁은 무대를 조금 더 비좁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정은의 말하기에서 은수의 삶으로 다시 정은의 육체와 은수의 고백으로 넘어오는 극의 과정에서 별도의 무대, 연주가 과연 필요했던 것인지는 반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은으로 인해 발현되는 명랑, 쾌활한 극의 정서와 비극적 죽음에 직면했을 때 신파적인 요소 등은 모두 대중적인 정서가 아니라 그것의 비극성과 희극성이 뒤얽힌 복잡하고 미묘한 영역의 차원으로 그려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다소 건조하고 밋밋한 방식의 구현에 더 맞지 않았을까. 윤혜숙의 연출에 의한 정은의 캐릭터성에 대한 강조는 은수의 주체적 위치에 있을 때의 돌연함의 결과를 낳는다. 곧 정은의 죽음은 급작스럽고 또 짧게만 느껴진다.

     

    두 다른 여성 캐릭터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한 죽음의 고찰이라는 지극히 극적인 모티브는 삶에 대한 반추이기도 하다. 누구나 죽는 존재이며, 죽음 직전에 위로와 곁의 동반자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또 통속극이자 대중문화적인 소재의 특이점도 갖고 있다. 은수의 애도 불가능성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발화되는 여성의 삶

     

    곧 이 극은 경쾌함이라는 표면 뒤의 어둠, 그 둘의 어울리지 않는 배합을 전제로 하며, 하층 노동자의 비극적 사과 애도 불가능한 사고라는 두 개인의 모습을 통해 사회학적 단면의 비극성을 그렇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를 하는 여성으로서의 모습이 그것이다.

     

    은의 혀를 지닌, 곧 죽음의 증상을 간직한 정은이 그것을 긍정으로 포장하며 픽션의 영역, 그것도 여성 역사의 실재를 연합해서 그려낼 때 여성의 새로운 역할이 탄생된다. 그것은 결코 비극에 침잠되어 있는 무력한 여성의 초상과는 다른, 적극적인 삶의 동력을 추구하는 좌절하지 않는 자의 비범함에 닿아 있다.

     

    은수의 결핍으로서 캐릭터성이 장례식장이 지닌 특유의 답답하고도 하강하는 대기가 주는 정동적 차원에서 흩어지고 부유하는 것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곧 물체적 자장이나 진동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은의 죽음을 매개로 해서 두 개의 죽음이 공진하며 애도 불가능성을 삶의 긍정성으로 이행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주체의 변화로서 은수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로부터 어떤 발화의 낌새를 감지할 수 있을까.

     

    보편성과 일반성의 여성의 지위를 여성에게 부여되는 어떤 속성과 구분 짓고, 사회 의제적인 차원을 조금 더 정교하게 세공해서 매개하는 방법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같은 지점에서, 드라마의 영역이 진짜 드라마가 아닌 사실의 반영임을 보여주는 차원으로 극은 어떻게 분화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극이 더 고민할 수 있는 지점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2024.08.15 ~ 2024.09.08 평일 19시 30분 / 토·일 15시 (월 공연 없음) ※ 접근성 회차: 8.30.(금)-9.1.(일) / 한글자막해설, 접근성 테이블, 이동지원, 무대 터치투어 ※ 8.15.(목) 광복절 19시 30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만드는 사람들

    • 작 박지선
    • 연출 윤혜숙

      무대 김다정
      조명 성미림
      의상 김미나
      음악감독 박소연
      음향 임서진
      영상 강수연
      음향·영상 기술감독 이현석
      소품·분장 남혜연
      안무감독 허윤경
      접근성 매니저 이청
      연주 기타 김정민
             신디 이석원, 양예본
      조연출 김성령
      컴퍼니 매니저 박지현

      출연
      은수 役_강혜련
      정은 役_이지현
      혀 役_이경민
      혀 役_이후징
      월선 役_정다연

      그리고,
      국립극단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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