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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 《안티바디와 싸이킥에너지》: 근미래에 대한 도착적 희망REVIEW/Visual arts 2021. 11. 8. 00:01
비계 같은 골격과 이음부 구조로 확장되는 대부분의 설치물은 연결된 전자 회로 기판에 의해 제어되며 움직인다. 거기에는 되게 슬로건 같은 문장이 따라붙는다. 이러한 구조적 설치의 형태는 (인간의 정상적인 몸을 바디로 칭한다면) 안티바디의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러한 안티바디는 각자의 전자적 원동력을 통해 바디의 입구를 탐색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자가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작가”의 경험은 기계 장치의 신체로 체현되기보다는 언어적으로 발화되거나 은유적으로든 재현된다. 제목에서 이 안티바디를 “싸이킥에너지”로 연결하는 것, 곧 안티바디의 “신체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상쇄’시키는 싸이킥에너지를 도입한 것처럼 안티바디는 싸이킥에너지과 같은 도약의 순간을 마련함으로써 또는 그와 같은 순간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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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은,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신화적 세계와 그 공백에 대한 이야기REVIEW/Performance 2021. 11. 7. 23:59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그 고래가 있던 시간을 떠나 보낸 현재의 시점에서 그 존재와 시간을 애도하고 오마주하는 상연이다. 이러한 상연은 두 명씩의 한정된 관람으로 조건 지어졌는데, 장소 이동에 따른 관람 방식과 매체 활용이 달라지며, 이를 퍼포머가 라이트를 통해 이동의 동선을 관람객에게 안내하며, 매체의 켜고 끔을 수행하고 때론 제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나누어 준 쪽지에 담긴 허먼 멜빌의 고래가 없어진 것에 대한 은유적 나열은 이 상연이 지시하는 언어의 내용과 형식을 갈음한다. 고래는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로서 감각의 저변을 확장하고 새로운 감각을 수여하는 낭만적 존재라면, 휘발유가 고래를 구원했다는 대사처럼 고래기름을 사용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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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바키, 〈보더라인〉: ‘무엇을’ 말할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발화할 것인가의 문제REVIEW/Theater 2021. 11. 7. 23:36
〈보더라인〉은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는 평화로운 국제 질서의 세계를 염원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념을 쌓아나가는 과정은 뉴다큐멘터리 연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극장에 처음부터 자리한 한 명의 배우와 극장 바깥의 한국과 독일의 배우 네 명의 화상 연결이 비로소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마지막 장면―사실 그 전에는 기록된 영상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비로소 배우의 존재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까지 과거의 기록을 교차시켜 쌓아나가던 공연의 존재 방식은, 리얼타임의 성격을 강조한다. 이는 결국 무대 위의 현존이 아닌 화면에 기록되는 배우들 대부분의 존재 방식, 현재의 이야기가 아닌 과정의 시간을 보고해 나가며 누적된 시간을 해명하는 한편 그 시간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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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홀 씨어터, 〈당신을 초대합니다〉: 경계 넘기로서의 초대REVIEW/Theater 2021. 11. 3. 17:33
〈당신을 초대합니다〉는 언어에 대한 분열로부터 출발해, 현상학적 타자의 호출로서 제목의 함의에 도달하기까지 매체의 변위에서 장소의 변위로 옮겨가며 체험의 층위를 달리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특히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고 앉은 중반까지의 과정이 무대 전면의 위치를 반전시키는 순간, 타자에서부터 내재적 차원의 경험으로 옮겨온다. 곧 우리가 타자를 언어적으로 정의하고 인식하려는 불가능성의 조건이 타자를 마주하기 위해 뒤틀린 우리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반전되며 현상된다. 먼저 입방체로 구획된 무대에 종횡으로 빽빽하게 놓인 큐브들 위에 관객은 앉는다. 그 앞뒤 간격은 좁으며, 이후 몸을 틀어 뒤를 볼 때 옆의 관객이 곁으로 인식되는 조건으로 연장된다. 큐브에 앉고 그 옆에 걸린 헤드폰을 끼고 음성을 순전히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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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디자인Column 2021. 11. 2. 23:09
안대웅 얼마 전 ≪서울, 25부작≫의 홈페이지와 관련해 SNS상에서 자그마한 논란이 있었다. 시작은 최황이라는 이름의 작가로,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가 자신이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한 ≪광장조각내기≫와 “아이디어와 보여주는 형식”이 몹시 유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는 미술계 일을 꽤 많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자인 스튜디오인 일상의실천이 만든 것으로, 공교롭게 일상의실천은 ≪광장조각내기≫ 웹사이트의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일단, 최황은 일상의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아마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의 제작자가 일상의실천으로 동일하므로 표절까지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그러다 약 4시간 뒤 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