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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플랫폼’으로서의 공간Column 2021. 12. 4. 02:03
부재하는 (기획의) 언어 김민관 어떤 여러 작가 혹은 아티스트를 모은 축제(페스티벌) 혹은 그룹전/단체전 형태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어젠다 혹은 이념에 참여 작품들은 완전히 합치되거나 복속될 수 없다. 그것을 엮는 또는 꾀는 그러한 ‘시도’로서 이러한 이념은 작품 앞에 놓인다. 주로 물리적 장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주치는 서문과는 다소 다른 이러한 말은 그 축제의 첫 번째 입구가 된다. 그 축제를 인지하는 정보가 된다. 그러한 종합의 언어는 왜 이 작품들이 하나의 이념으로 모였는지, 그리하여 이러한 이념과 결부되며 작품 해석의 또 다른 단초를 제시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작품이라는 실재가 있다면, 거기에 어떤 관점을 첫 번째로 부여하는 것이 이 기획의 언어이다. 이 언어는 작품들을 동시대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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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내용적 진실으로서 VRREVIEW/Visual arts 2021. 12. 2. 12:01
고이즈미 메이로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하나의 텍스트에 대응하는 두 번의 관람 방식을 취하는데, 한 번은 VR, 두 번째는 스크리닝이다. 이 매체의 전환이 실은 이 작품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VR의 활용은 부차적인 것이면서 필연적인 것이 된다. 동시에 그 텍스트는 순전한 내용이 아니라 두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AI 기계음의 목소리가 가상 공간에 대한 가장 분명한 부재를 지시하는 현존―가령 목소리는 인간의 현존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기계의 목소리이다.―이라면, 스크리닝에서는 실제 루게릭병 환자의 말과 동기화된다. VR이 기술적 시현을 위해 신체를 ‘구속’한다면, VR 장치를 벗어버린 스크리닝의 시간은 이 지점이 예외적 존재가 발화하는 하나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음을 전한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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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출입금지》_〈닥쳐 자궁〉, 〈♡〉, 〈마지막 인형〉 리뷰REVIEW/Dance 2021. 12. 1. 01:15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의 〈닥쳐 자궁〉은 연극적 캐릭터성을 가진 세 퍼포머의 연기로부터 ‘흐릿한’ 현실적인 서사의 단초들을 제시한다. 휴전선 일부가 무대 중앙의 앞뒤로 자리하는 무대 배경으로부터 연장된 퍼포머의 움직임은 전쟁과 그 기억, 시련을 겪는 공동체의 형상 들을 직조한다―반면 그것은 어떤 정확한 시대 배경과 장소에 대한 정보로 수렴하지는 않는다. 말과 행위, 몸짓 등은 지독한 현실을 감내하는 실존의 양상에 어린 정동을 향한다. 가령 배효섭이 이경구를 뉘어 거꾸로 들고 시모지마 레이사의 허벅지를 밟고 휴전선 바깥으로 시선을 향할 때, 이는 타자를 짓밟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타자를 추어올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짧은 순간을 의도된 상징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폭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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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인,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 예술가의 그늘을 비추다REVIEW/Theater 2021. 12. 1. 01:15
예술이 노동인가의 질문으로 시작한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은 인간의 유희에 대한 본능과 일상의 잉여 짓에 주목하며 예술의 범주를 일상으로 확장하려 한다. 곧 예술이 예술가 고유의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것임을 지시하는 것으로써 예술의 고립된 영역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며 예술가의 현실/법적 소외 또는 예술가의 예외상태에서 우리 모두 예술적 인간이라는 인식의 지점으로 도약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매개자로서 예술가들은 담론을 나르고 그것을 상호 간의 몸으로 분배하는 자리를 가져간다. 영화 〈모던타임즈〉를 인용하기도 했지만,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은 톱니바퀴처럼 얽혀 들어가며 역할 간의 바통터치로서 분배, 말의 나눔과 움직임의 원환을 구성하는 놀이를 규격화해 수행한다. 마치 노동을 하듯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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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준,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 결집과 누락이 공진하는 밤REVIEW/Performance 2021. 12. 1. 00:59
유령극단의 〈심각한 밤을 보내리〉는 단순하게는 남산골한옥마을을 산책하며 헤드폰상의 목소리들과 로봇들의 움직임과 마주치는 공연이다. 한옥 다섯 채의 각 장소에 따라 사운드가 다르게 재생된다. 이 말들은 어떤 내용의 구체성을 가지며 서사의 형태를 갖추기보다 밤에 대한 어떤 정동의 제스처이며, 관계를 위한 구애이자 밤에 대한 감응, 영원에 시간의 동기화에 대한 주문이다. 밤이 이 공연을 평등하게 둘러싸고 있듯 헤드폰이 귀에 눌러앉고 목소리가 가리키는 시간과 화자와 최종적으로 수신자의 불분명성, 그리고 달의 메타포를 갖는 빛나는 구체를 손에 포개고 사람들과 비좁은 길목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압력은 비가시적 환경에의 매체의 협응이라는 제안이 전제된다. 공기처럼 귀를 감싸고 있는 건 사운드이다. 반면 이것이 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