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에이티브 바키, 〈보더라인〉: ‘무엇을’ 말할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발화할 것인가의 문제REVIEW/Theater 2021. 11. 7. 23:36
〈보더라인〉은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는 평화로운 국제 질서의 세계를 염원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념을 쌓아나가는 과정은 뉴다큐멘터리 연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극장에 처음부터 자리한 한 명의 배우와 극장 바깥의 한국과 독일의 배우 네 명의 화상 연결이 비로소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마지막 장면―사실 그 전에는 기록된 영상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비로소 배우의 존재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까지 과거의 기록을 교차시켜 쌓아나가던 공연의 존재 방식은, 리얼타임의 성격을 강조한다. 이는 결국 무대 위의 현존이 아닌 화면에 기록되는 배우들 대부분의 존재 방식, 현재의 이야기가 아닌 과정의 시간을 보고해 나가며 누적된 시간을 해명하는 한편 그 시간들에서..
-
래빗홀 씨어터, 〈당신을 초대합니다〉: 경계 넘기로서의 초대REVIEW/Theater 2021. 11. 3. 17:33
〈당신을 초대합니다〉는 언어에 대한 분열로부터 출발해, 현상학적 타자의 호출로서 제목의 함의에 도달하기까지 매체의 변위에서 장소의 변위로 옮겨가며 체험의 층위를 달리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특히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고 앉은 중반까지의 과정이 무대 전면의 위치를 반전시키는 순간, 타자에서부터 내재적 차원의 경험으로 옮겨온다. 곧 우리가 타자를 언어적으로 정의하고 인식하려는 불가능성의 조건이 타자를 마주하기 위해 뒤틀린 우리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반전되며 현상된다. 먼저 입방체로 구획된 무대에 종횡으로 빽빽하게 놓인 큐브들 위에 관객은 앉는다. 그 앞뒤 간격은 좁으며, 이후 몸을 틀어 뒤를 볼 때 옆의 관객이 곁으로 인식되는 조건으로 연장된다. 큐브에 앉고 그 옆에 걸린 헤드폰을 끼고 음성을 순전히 거기..
-
예술과 디자인Column 2021. 11. 2. 23:09
안대웅 얼마 전 ≪서울, 25부작≫의 홈페이지와 관련해 SNS상에서 자그마한 논란이 있었다. 시작은 최황이라는 이름의 작가로,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가 자신이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한 ≪광장조각내기≫와 “아이디어와 보여주는 형식”이 몹시 유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는 미술계 일을 꽤 많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자인 스튜디오인 일상의실천이 만든 것으로, 공교롭게 일상의실천은 ≪광장조각내기≫ 웹사이트의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일단, 최황은 일상의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아마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의 제작자가 일상의실천으로 동일하므로 표절까지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그러다 약 4시간 뒤 최황..
-
구자혜,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인간의 시점을 도륙하기REVIEW/Theater 2021. 10. 27. 00:54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시작은 이 작품의 극장과 작품의 구조를 지시하고 장면을 예고한다. 공연의 입구를 확장한 시간은 이 공연의 윤리적 차원이 공연의 형식 자체가 되는 과정의 일환이다. 문자 해설과 수어 통역, 음성 해설이 한 덩어리로 흘러갈 것을 예고하며, 표기법을 통일하고 몇몇 기술을 간략하게 줄이기 위한 절차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이제 완전히 다른 감각을 가진 존재들과 기존의 일반적 차원으로 간주된 존재들의 동거로서 체험된다. 이제 펼쳐질 세계는 우리와 언어 체계가 다른 동물들의 언어 체계이다. 물론 재현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동물들의 말은 극단적으로 그 양을 늘리거나 더듬거리며 지연을 발생시키거나 되돌아오며 누군가의 말인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 또는 어느 끝을 지정하지 않는 시간의 늪으로..
-
남정호,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사회 현상을 비추는 외양들REVIEW/Dance 2021. 10. 25. 12:26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유희와 그것이 부정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진행된다. 초록색 무대에서 열두 명의 무용수는 한 명씩 탈락하고, 탈락의 순간마다 그 초상이 스크린에 뜬다. 그리고 그 가의 색과 같이 검은색 천이 하나씩 깔린다. 검은색의 바깥 영역에 있는 죽음의 사도가 그 역할을 하는데, 탈락한 이들도 그에 합류한다. 하나의 무대는 하나의 음악이 사용되는 독립적 장으로 연출되므로, 각기 다른 무대는 공연의 개별적인 고유의 부분으로 분절되는 한편, 살아남음과 탈락이라는 하나의 서사에 종속된다. 이러한 지점은 서사를 강화하지만, 움직임은 그 서사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곧 열두 개의 무대는 각기 다른 음악과 함께 때로는 왈츠와 같은 장르적 움직임을 택하기도 하는데, 각 무대는 탈락될 각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