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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진 작, 연출,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현실에 개입하는 목소리REVIEW/Theater 2021. 10. 5. 21:52
정중앙 상단에 십자가가 자리하고 그 아래, 목사의 단상이 배정되는 교회의 물리적 장소성을 극장 전체로 전유한 것은, 이 연극의 언어가 사실임 직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과 맞물리는 한편, 장소적 아우라가 한 개인―여성, 청소년, 약자―에게 가해지는 위계와 폭력이 극의 주요한 모티브임을 지시한다. 드라마 연극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극의 드라마는 전개가 빠르며, 최소한의 간결한 전사를 전하는 데 그친다. 다른 한편으로, 일상의 시간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식으로 극은 극사실주의적으로 편집된 것 같고, 이는 특히 라이브 연주와 노래가 나온다는 것에서 그러한데, 라이브 공연의 경우, 장소의 아우라가 단지 무대 세트라는 간극을 은폐하기 위함이거나 공연을 통한 매체적 확장을 전시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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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형, 〈리허설〉: 정금형의 아카이브, ‘이음매는 끊어져 있다.’REVIEW/Performance 2021. 10. 5. 21:09
〈리허설〉은 정금형의 지난 작업들을 파편으로 가져와 변주하는 퍼포먼스이다. 이는 하나의 빈 공간에서 일어난다. 무대의 스펙터클이나 맥락, 구성 모두를 제한 상태에서 진행되므로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계열체로 남고 움직임 자체에 대한 형식적 탐구의 여지도 생겨난다. 반면 기존 작업들에서 움직임의 자료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재현(a)에 대한 재현(b)의 양상을 가지며, 기계와의 섹스를 재현해 온 지난 작업들의 연장/변형/재구성은 여전히 수행적이고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반면 ‘재현(a)의 재현(b)’은 애초 이 작업이 빈 무대라는 지점에서, 그리고 ‘리허설’이라는 유일한, 하나의 맥락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그 목적을 달리한다. 이는 순수한 표현의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 양태 역시 달리한다. 리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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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카이브로서 몸의 정동REVIEW/Theater 2021. 9. 22. 00:55
1992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과 2008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 전자에서 후자로 건너가는 지점에 복수의 김이박, 곧 하나의 김이박들이 있다. 곧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이하 〈김이박〉)의 제목에서의 동어반복의 제스처는 두 개의 다른 시간을 하나의 더 먼 곳에서부터 오는, 그리하여 합쳐지며 다시 과거가 되는 하나의 시간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분명 처음에 두 다른 김이박이 전제되지만, 이 둘은 무대라는 하나의 시간대에 있으며, 그러한 흐름 가운데 하나의 김이박과 다른 김이박은 역할을 교환하는 듯 보인다. 둘은 서로의 시간을 구성하지만 실은 거울처럼 상대를 비추고 그 상대에 의해 자신이 구성되는 관계로 엮여 있다. 1992년에서 2008년을 거쳐,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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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최진한, 《Other Ghost Lives》: ‘현실을 머금은 몸’REVIEW/Visual arts 2021. 9. 22. 00:36
밤에 전시 《Other Ghost Lives》를 재개한다는 것은 전시로서는 꽤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여기서는 그 자체의 새로움보다는 어둠 속에서 전시를 본다는 콘셉트가 중요한 전시라는 점에서 그 온당함을 이야기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윈도우가 개방된 Keep in Touch Seoul에 암막 커튼을 달고 관객은 레이저 포인터와 조명이 다 되는 작은 손전등을 받아 들고 벽을 더듬어 간다. 벽에는 하얀 포스트잇 위에 문장이나 단어 들이 있다. 사방의 벽의 중앙에는 높이가 긴 작은 면적의 테이블이 있다. 맥도날드 포장지로 만든 조각을 주로 선보여 온 작가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포스트잇은 크게 두 가지 서사가 전개된다. 하나는 작가의 현실을 주로 반영하는 말이라면, 다른 하나는 『바냐 아저씨』에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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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주 작, 이양구 연출, 〈집집〉: 하나의 집(을 지배하는 시스템) 아래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REVIEW/Theater 2021. 9. 22. 00:19
극장에 들어서면 작은 집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낡은 나무로 된 싱크대장 표면에 흰색 패널을 부착하는 것으로 극 중 유일한 사물의 변화가 여러 장면에 걸쳐 단속적으로 꽤 느리게 일어나는 것처럼, 리얼함은 임대아파트를 재현한 이 집 안 곳곳을 지시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마찬가지로 그 사물을 만지고 지시하며 인물의 발화가 구성되듯 일상은 한없이 느리고 세세한 시간성으로 구성된다. 리얼함은 곧 이 집의 외양, 곧 그 속의 사물들, 그중에서도 싱크대가 지지하며, 이 집은 20년의 시차를 둔 두 인물, 박정금(박명신·이윤화 배우_더블캐스팅)과 연미진(이나리 배우)의 삶을 오가는 공간이자 리얼함의 공통된 토대이기도 하다. 곧 그 둘은 다른 시간에서 마주할 수 없는 반면, 이 집은 마치 그 둘을 응시하듯 제 모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