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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림, 《Night Movers》: ‘바깥’의 기호들REVIEW/Visual arts 2021. 10. 19. 16:49
전시 《Night Movers》는 상징으로 파악되거나 도상으로 수렴되지 않는 기호적 사물들의 불연속적이고 불균질한 매듭들이 점철된다. 이 말이 없는, 또는 말이 되지 않는 엮음에 따라 그 사물의 이름이 지워지며 갱신되는 전시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지웠을 언어, 곧 캡션 없는 이 사물들의 전시에서, 어떤 언어가 있는 세계의 현재를 표상하는, 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그림이자 가장 거대하게 자리하는, 본문이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있는 이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본문에 해당하는 그림 역시 명확하지는 않다. 우선 기름종이에 그려진 이 그림(〈Recall〉, 우레탄 비닐, 마커 펜, 600×400cm, 2021.)은 도구를 다루는 사람들, 작업하는 사람들을 표한다. 당연히 그것들은 어떤 멈춰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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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연출, 〈순교〉: 폐허의 역사로부터 나아가기REVIEW/Theater 2021. 10. 19. 16:49
SF 서사를 유기적 공간의 아이디어로 실현하다 극장은 중앙과 중앙을 둘러싼 두 원형의 무대와 객석으로 양분된다. 관객이 바깥쪽 원형의 객석을 차지하면, 중앙의 무대는 배우들의 안정된 자리가 아닌 비어 있는 구간으로 주로 놓인다. 호시 신이치의 SF 원작 서사를 바탕으로 한 〈순교〉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한 음습한 느낌의 발명가에 의해 저세상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는 통신 장치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순식간에 온 세상의 사람들이 저승을 향해 목숨을 던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간결한 공간 디자인의 영역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처음 발명가가 저승의 아내에게 말을 건네는 때에는 무대 중앙 아래로 떨어지는 조명과 의자 사이의 간격이라는, 아주 좁은 물리적 영역으로 한정되며, 의구심과 미지의 영역에 있는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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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 중층의 시간과 시각REVIEW/Visual arts 2021. 10. 15. 11:38
문화연구의 시각을 도입하기 적산가옥이 산재한 동인천 부근에 새롭게 자리한 부연에서 열린 전시 《적산가옥》은 해당 지역의 역사를 현재에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미술 전시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세 명의 작가는 이의중 건축가와 같이 현대 미술 작가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는데, 건축사와 근대사를 연결하는 리서치를 작업으로 연장해 온 카마다 유스케와 실제 『신흥동 일곱주택』이라는 책을 이의중 건축가 외에 여러 작가와 함께 만든 오석근 작가가 참여하며, 건축에 대한 전문성과 실제 경험을 공유하며 전시로 연장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레퍼런스가 모인 테이블 위에 함께 놓인 『신흥동 일곱주택』은 전시의 밑거름이자 전시를 참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산(敵産)은 자기 나라에 있는 적국(敵國)의 재산(財産)을 의미한다. 적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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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set 프로젝트, 〈관람모드-있는 방식〉: 극장으로써 다른 삶의 존재 방식을 자각하기REVIEW/Theater 2021. 10. 8. 16:02
이동―출발과 도착, 그리고 머묾―은 〈관람모드-있는 방식〉의 시작과 끝, 곧 형식적 골자를 이룬다. 출발과 도착의 장소는 같고,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운영하는, 국회의사당역 앞 이룸센터가 그 장소가 된다. 사실상 여기서 무언가가 진행되지 않지만 이 장소는 공연 자체가 장소의 서사라는 전제에서 텅 빈 기표의 공간을 질문으로 채우게 하는데, 공교롭게도 법을 제정하는 의회와 인접된 곳이라는 점에서, “법”을 키워드로 한 페스티벌의 전체 지향점과 맞물린다. 〈관람모드-있는 방식〉은 법이 있기 전의 장애인 시설에 대한 법적 규정이 미흡했을 때부터, 오늘날 법의 탈시설의 수용과 같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곡점에 새겨진 법의 무늬들을 확인할 수 있다. 폐쇄된 장소에서 이전의 기억을 듣는 것과 탈시설 운동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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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길 ,〈2-1-3〉, 〈1-2-3〉: 허구와 실재 사이에서REVIEW/Performance 2021. 10. 8. 15:14
퍼포먼스는 극장 천장 쪽 양쪽에 달린 스피커 두 대의 음향을 듣는 것으로 진행된다. 무대는 텅 비어 있는 대신, 류한길 작가는 객석 뒤편에 자리한다. 극장은 어둡고, 관객은 어슴푸레한 환경에서 스피커에 가해지는 또는 튕겨 나오는 노이즈의 강도를 그리고 그 끊임없는 변형을 한없이 지켜보게 된다. 온전히 스피커의 소리를 듣는다는 점에서 인천아트플랫폼 옆 동에서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는 전시 《③》의 연장이자 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었고, 작업자의 존재가 아닌 행위를 비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음이 연원하는 소스를 알 수 없게 하는 일종의 청취 공간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었다. 여기서 작가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일종의 변형들의 흐름을 구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으로 초점화할 수 있는데, 실재의 음원의 경로를 추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