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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반응, 〈슈미〉: 드라마적 완성도와 동시대적 질문의 낙차REVIEW/Theater 2021. 11. 15. 12:43
〈슈미〉는 원작 ‘헤다 가블러’를 각색해 재창작한 작업이다. 원작의 주인공이 제목과 동명이었던 것처럼, 〈슈미〉에서 주인공은 헤다 가블러를 치환한 슈미가 된다. 〈슈미〉는 흡입력 있는 대사와 움직임을 갖춘 탄탄한 드라마로 관객을 몰아세운다, 슈미가 다른 인물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일종의 가스 라이팅으로 볼 수 있을 타인의 심리와 행동을 자의대로 조종하는 슈미의 행동은, 소위 ‘피씨함’의 범위를 많이 벗어나 있으며, 고전이 갖는 인간의 “광기”나 “불안” 같은 심리의 근간을 떠받드는 것만으로는 동시대의 언어로는 과도할 것이다. (아님 이를 포섭하기 위한 또 다른 언어를 개발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슈미와 엮이는 인물들 간의 관계는 어떤 군더더기가 없다. 적어도 누군가를 조종하고 조종받는다는 인식을 갖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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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흐르는.〉: 언어와 몸을 재접재시키기REVIEW/Dance 2021. 11. 8. 18:05
〈흐르는.〉은 소극장 규모의 신촌문화발전소 극장을 기존의 무대와 객석의 낙차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관객석을 둥근 울타리 안에 배치한다. 결과적으로 극장 안의 비선형적인 분포는 극장을 해체하며 재편하는데, 장혜진 안무가는 그 안을 배회하며 퍼포머가 관객과 접면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중앙 천장에 달려 내려온 마이크는 퍼포머에서 역동적으로 반대편 객석으로 허공을 가로지른다. 객석 중간, 벽에 붙인 의자에 앉아 있던 장혜진은 한 손을 얼굴 가로 올린 뒤 움직임을 연다. 전체적으로 노이즈 사운드가 군데군데 묻어 나오며 의식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사운드 역시 같이 시작된다. 장혜진의 움직임은 중심을 신체 전체로 퍼뜨리고 미세하게 옮기며 소위 흐늘거리고 바들거리는 신체 양상을 만든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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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픽스달, 〈내일의 그림자〉: 간격의 공동체를 구성하다REVIEW/Dance 2021. 11. 8. 00:13
〈내일의 그림자〉는 공동체를 현상한다고 보인다. 이는 이 공연에 대한 거의 몇 안 되는, 그중 가장 커다란 범주의 은유가 될 것이다. 화려한 색감의 점퍼와 치마 그리고 얼굴을 두른 손수건까지 일괄적인 복장 아래 원으로 퍼포머들이 도열해 있음에서 출발하는 공연은, 간격으로부터 벌어지는 움직임의 변형태들로 나아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간격에서 시작돼 간격의 형태를 시험하고 기입한다. 그리고 그러한 간격은 공동체의 이상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려진 얼굴은 앞을 보지 못하고 감각한다. 짜인 동작들은 무리로 확대되는데, 이는 동시적이며 예외적인 선두의 리듬을 가진다. 곧 시작하는 예외적인 누군가가 있고, 이는 급속히 전파된다. 시간 대부분은 이들이 군집한 상태에서 진행된다. 무릎을 살짝 접고 펴는 동작이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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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 《안티바디와 싸이킥에너지》: 근미래에 대한 도착적 희망REVIEW/Visual arts 2021. 11. 8. 00:01
비계 같은 골격과 이음부 구조로 확장되는 대부분의 설치물은 연결된 전자 회로 기판에 의해 제어되며 움직인다. 거기에는 되게 슬로건 같은 문장이 따라붙는다. 이러한 구조적 설치의 형태는 (인간의 정상적인 몸을 바디로 칭한다면) 안티바디의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러한 안티바디는 각자의 전자적 원동력을 통해 바디의 입구를 탐색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자가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작가”의 경험은 기계 장치의 신체로 체현되기보다는 언어적으로 발화되거나 은유적으로든 재현된다. 제목에서 이 안티바디를 “싸이킥에너지”로 연결하는 것, 곧 안티바디의 “신체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상쇄’시키는 싸이킥에너지를 도입한 것처럼 안티바디는 싸이킥에너지과 같은 도약의 순간을 마련함으로써 또는 그와 같은 순간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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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은,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신화적 세계와 그 공백에 대한 이야기REVIEW/Performance 2021. 11. 7. 23:59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그 고래가 있던 시간을 떠나 보낸 현재의 시점에서 그 존재와 시간을 애도하고 오마주하는 상연이다. 이러한 상연은 두 명씩의 한정된 관람으로 조건 지어졌는데, 장소 이동에 따른 관람 방식과 매체 활용이 달라지며, 이를 퍼포머가 라이트를 통해 이동의 동선을 관람객에게 안내하며, 매체의 켜고 끔을 수행하고 때론 제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나누어 준 쪽지에 담긴 허먼 멜빌의 고래가 없어진 것에 대한 은유적 나열은 이 상연이 지시하는 언어의 내용과 형식을 갈음한다. 고래는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로서 감각의 저변을 확장하고 새로운 감각을 수여하는 낭만적 존재라면, 휘발유가 고래를 구원했다는 대사처럼 고래기름을 사용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