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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미인, 〈거의 인간〉: AI가 만드는 세계의 존재 양상에 대한
    REVIEW/Theater 2026. 5. 27. 13:37

    극단 미인, 〈거의 인간〉사진 제공=국립정동극장](이하 상동).

    수현과 재영, 두 여성의 이야기는 마지막에는 연대의 형식으로 결합하며, 미래의 문화적 지형을 새롭게 구성한다. AI가 작가의 영역을 대체하고, 인공자궁을 통한 출산이 가능해진, 지금에서 딱 10년이 지난 시점은  두 인물에게 시련과 고통의 상황을 부여하고, 두 인물은  리트머스지처럼 그 상상 실험을 겪어 내며 돌파해 낸다. 곧 〈거의 인간〉은 미래라는 가상의 세계를 통과하는 두 주체의 궁핍이 페미니즘적 연대의 차원으로 극복됨을 보여준다.

    AI의 멘토로서 AI의 글쓰기를 돕다가 현재는 연금생활자로 생활하며 안분지족하는 작가 재영, 인간문화재 1호 발레리나에 도전하는 무용과 교수 수현은, AI 기술 발전에 의해  달라진 또는 위협받는 예술가의 지위를 문학과 무용이라는 장르의 차원에서 대표한다. 근미래의 위기 혹은 변화는 연극 바깥의 현재 상황으로부터 자연스레 연장되는데, 멀지 않은 물리적 시점의 설계는 동시대의 의제를 질문에 붙이는 한편, 예측하기 어려운 동시대의 상황에 대한 혼란스러움에 대한 반영이다. 

    SF는 현재 너머를 보여주기보다는 현재의 곤궁을 적시한다. 문화비평가 프레데릭 제임슨의 말과 같이, SF는 전적으로 창의적인 사고의 반대편에서, 현재 창의적이지 않은 우리 사고의 한계를 보여주는 데 가깝다. 따라서 AI가 펼쳐낼 새로운 세계, 또는 AI의 인간 너머의 가능성을  〈거의 인간〉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거의 인간〉이 맞추는 초점은 새로운 세계에 직면한 인간의 불안정함, 해명하거나 해소할 수 없는 인간의 새로운 정동의 창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거의 인간”이 결코 주체가 될 수 없는 건, 작품이 현재의 인간이 가진 불완전성에 기대어 있음에서 온다―타자의 존재가 우리에게 위협적인지 또는 관계의 자장을 형성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SF를 구분한다면, 〈거의 인간〉은 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곧 〈거의 인간〉은 거의 인간과의 구분된 역할 속에서 인간 역할의 정립을 꿈꾸며, 마지막은 인간(성)의 회복에 대한 경구로 수렴하며, 비인간의 의사-인간의 특성은 인간의 창의성과 대별되는 것으로 전제한다. 여기서 AI의 새로움은 대중의 유행에 비견되는데, 따라서 인간과 비인간의 대립은 기실 예술가와 대중의 유비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창의성과 대중의 무지함이라는 도식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거의 인간〉이 AI 기술에 응전하는 예술의 현 처지에 대한 대응물이자 증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AI 기술이 장악한 문화의 저변을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수현의 서사를 재영이 다시 쓰는 것으로 풀려 나간다. 이는 비약된 구간으로 그 성공적 결과로만 담보되지만, 실은 한 사람의 것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옮겨 적었거나 온전히 재창작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곧 이 둘의 대화는 일종의 공동의 글쓰기 형식을 띠고 있을 것이다. AI가 과거의 모든 것을 합산해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태생적 결핍에 대해 AI가 알지 못하는 개인사―수현의 내용―를 다시 쓴다―재영의 형식―는 것은 그야말로 새로운 창작의 경로가 된다.

    이들의 서사는 AI의 입장에서 보면, 기록으로 등재되지 않은 이야기의 유일무이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두 사람의 정서적 감응이 전제되어 있음으로부터 새로운 글쓰기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나아가 재영이 수현의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고 할 때 전제되는, 작가 자신―수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향하는 재영―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창작의 본원적이고도 상식적인 차원의 경구가 새로운 시대의 돌파구를 여는 입구가 되는 건, 다분히 낭만적이고 판타지적이다. 그를 통해 분명해지는 건 AI에 저당 잡히지 않는 예술(가)의 영역에 대한 현재의 불안과 희구이다.

    예술이 지닌 다른 가치의 시대적 보편성을 이야기하며 결론을 짓는 〈거의 인간〉은 실은 그 두 주체가 여성이라는 것에서 작품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해석의 근거를 마련한다. 곧 미래 사회 역시 사회적 약자는 존재하되, 공교롭게도 그 둘의 몫을 여성으로 상정하고, 이 둘의 공동체적 혹은 연대적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미래의 틈을 여는 몫을 구성한다는 것.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더 미약하게 그려진 발레리나 수현의 경우에 비해 더 비중이 큰 재영, 그 둘 모두의 사례와 결을 달리 하는, 목사 남편의 권유로 인공자궁 출산을 결정한 수현의 사례라는 단서가 있다. 

    혼자 살며 연금을 통해 근근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사회에 예속되지도 않으면서 살아가려는 재영에 비해, 수현은 인터넷상의 줌(zoom) 수업 장면―이러한 장면은 예술에 관한 태도에 있어 세대적 차이를 통한 동시대 예술이 사라지는 자리를 보여준다.―이 보여주는 것처럼 많은 학생을 상대하는 교수이자 예술계의 사라져 가는 인간의 역할을 최초이자 최후의 기술적 이전의 몫으로 바꿔야 하는 멸종위기의 예술 계통의 종이자 사회적 위신을 갖추고 거기에 연연하며 동시에 불륜 행각을 벌이는 이중적 면모의 남편을 둔 아내로서 여러 역할을 맡고 있다. 

    미래의 창작의 사례에 대한 논의가 재영을 경유하며 결론의 과정에서 해소되는 데 비해, 인공 자궁을 통한 임신을 시도하는 수현의 사례는 극단적인 긴장과 사건의 차원으로 동결되며 잠재된다. 수현의 경험은 예술가의 경계를 넘어, 여성에게 더 직접적으로 향하는 문제이며, 페미니즘의 오래된 언어에서 주창된, 미래 사회의 테크놀로지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삶의 권리 취득을 위해 발현되는 대신, 여전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낙태법의 재도입은 인공적인 생명의 탄생 범주를 인간의 그것과 등가시키는 것이면서 아직 판단 너머의 것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거의 인간〉은 미래 사회에는 모든 인권의 더 나은 지점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자동으로 담보된다는 판타지를 수용하는 대신에, 오히려 새롭게 여성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정초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시대착오적 지점을 도입하며, 페미니즘의 오랜 역사적 자취와 그 의의를 상기시킨다. 

    낙태법이 도입된다고 해도 자궁이 외부로 이전된다면, 사실상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그것과 함께 완전히 해방된 것이라고 전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신체의 이전은 분리가 아닌 정서적 이입과 분리감 자체가 낳는 기이한 정동을 초래한다. 투명한 비닐팩, 구체적으로는 링거 팩이라는 레디메이드-스테레오타입의 사물에 태아가 이양되어 있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이다. 그것은 흐릿하고 매우 작지만, 그래서 더 가짜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 링거 팩을 빼서 던지는 수현의 돌발적인 행위는, 예측 불가능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수현은 생명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생명에 대한 묘한 애착과 책임감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향하는 여성의 지지난 지위를 다시 확인하고 완성하는 부조리한/갑작스러운/혼란스러운 상황에 맞서 하나의 구분선을 그은 것에 가깝다. 발작적인 충동은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고 과학이 대리하려는 인간의 자리에 의문부호를 붙인 것이기도 하고, 법적인 금제를 넘어서 죄를 떠안음으로써 낙인의 형상으로부터 여성의 권리를 주창하는 것이기도 하다. 링거 팩 속의 태아는 『인형의 집』에서 로라의 가장 작은 집에 해당하며, 로라가 가부장적 억압의 장소로서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그 링거 팩을 던져버리는 것은 극단적인 폭발이 보여주는 여성의 지위와 불안정한 정서의 급격한 낙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사실 〈거의 인간〉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간은 AI 지아와 인간 글쓰기가 병행되는 구간이다. AI는 재영의 말과 의도를 간파하려 노력하고, 그에 해당되는 자료를 순식간에 추출하고 펼쳐놓으며, 문장 형태로 완성해 낸다. 말과 글은 조응하고, 생각은 글로 전환되고, 글은 연속된 글의 다음을 유도하며 말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AI는 이야기를 전개시키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우리의 입장을 구성하며 동기화되고,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구문으로 완성해 내는 AI의 보조적 역할은 재영을 경유해 삶의 질적 전환과 편리의 조건으로 나타난다. 

    AI는 또 다른 우리의 본원적 욕망과 우리 생각과 행위의 연장으로서 자리한다. 이를 엄격하게 재영의 몫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아가 AI는 가상 화면의 부자연스러운 고개의 반복되는 움직임으로 일별되는 모습에서, 스크린상의 엄청난 속도로 구문을 완성하는 비가시적인 존재, 곧 인간의 형상을 가진 존재를 상정하는 이미지로 옮겨간다.  AI는 데이터 처리 장치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그것을 처리하는 부스터의 부속적인 차원으로 자리하지만, 재영의 생각을 놓을 곳, 연장할 장소로서 문장을 실제 만든다. 


    재영과 공동으로 글을 쓰던 AI 지아는 그 전신인 AI Z1에서 업그레이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데이터와 신체 모두를 자발적으로 양도했던 것과 같이 AI 신유로 탈바꿈한다. 여기서 AI 신유는 하나의 닫힌 공간에서 정박돼 있던 지아와 달리, 더 거대한 세계 안에 자리하고 있는, 마치 그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서 확장되어 나타난다. 화면상의 이미지이지만 신유의 달라진 이미지는 인간을 초과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초과분은 온전히 해소될 수 없다. 반면, 지아는 자신의 작가로서의 생명 일체를 더 나은 신체/용기가 상정하는 다음 시점으로 기꺼이 양도 가능한 것일까. 사라짐과 대체의 손쉬운 과정에 비해 대화하며 곁에 있었던 지아의 그 살아있었음의 경험은 수현에게 기억의 잔여로 각인된다. 


    〈거의 인간〉의 마지막 장면은, 낙태법을 어기고 감옥에 간 수현과 AI 신유가 동원된 법정 다툼에서 패소해 막대한 빚을 떠안은 재영―이 실패의 순간들은 하나의 지나간 사실로 언급된다.―이 새로운 문화 조류를 낳는 소설을 탄생시키고 나서 AI 인터뷰어에 의해 인터뷰를 당하는 방송국의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이들을 둘러싼 실제 그리고 실시간의 현재 상황은 10년을 건너뛴 AI 사회가 낳는 변화로 접속할 수 있느냐고 관객에게 묻는 것처럼 보인다. 도약과 선택의 순간이 이들을, 우리를 감싼다. 그리고 무대 바깥이 열리며, 극장의 이면과 배경이 노출된다. 새로운 실재는 그렇게 과잉과 초과의 변증법으로 완성되며, 협소한 현재의 자리는 더 큰 현실 안에 불안(정)하게 통합된다.

    재영에게 AI 지아의 죽음은 저자의 권리가 진공/미궁 상태로 빠졌음 너머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까. 가령 그의 옆에 존재하며 그와 창작의 시간을 같이 쌓던 동료이자 나의 신체적 연장이자 나를 비추던 거울로서 AI 지아는, 하나의 위험이나 부인의 직접적 기제가 되기보다 존재와 다른 존재의 만남과 함께 존재의 차이를 가져오지 않을까. 따라서 결말의 어떤 불안정한 통합의 기제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인간과 AI의 구분과 분리에 대한 강박이 혼재된 상황 속에서 AI가 우리의 미래의 틈으로 향하는 현재에 놓여 있음 자체를 가리킨다. 〈거의 인간〉은 AI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대안이나 해법보다는 그 증상 자체로 부상한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현재적이다. 

    김민관 편집장 

     

    • 2024.8.23.(금) ~ 8.24(토)
    • 시간금 19:30, 토 14:00
    • 장소예술극장 예술극장 극장2

    출연 강해진 강현우 김선경 김유민 김정은 서창호 성여진 안병찬 양지민

     

    작가 구두리
    연출 김수희
    프로듀서 코르코르디움
    드라마투르그 전강희
    무대 디자인 조경훈

    조명 디자인 신동선
    사운드 디자인 정혜수
    영상 디자인 신민승
    의상 디자인 김우성
    분장 디자인 장경숙
    소품 디자인 김예슬
    움직임 지도 안병찬
    무대 감독 서지원
    조연출 김수진

    주최/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재)국립정동극장
    제작 (재)국립정동극장
    작품 개발 극단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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