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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메디아>: 복수의 비극적 주체의 탄생REVIEW/Theater 2013. 5. 29. 09:50
코러스: 서술의 형식 야광 빛으로 덮인 암석의 표면을 확대한 영상에 호롱불을 들고 언덕을 올라 그 주변을 포위하며 오는 코러스의 노래는 단조와 같이 핀트를 벗어난 듯한 음조의 곧은 직선으로 퍼져 나간다. “이게 무슨 소리”, 등장인물의 물음에 코러스는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음성으로 내레이션을 부여한다. 이와 같은 ‘서술’의 측면은 이 작품이 일종의 극적 층위에 메타 양식이 덧붙여 있음을 의미한다. 왜 신음이 아닌 “신음 소리”라는 명확한 기표의 직접적인 지정으로 내세우는 것일까. 왜 이리 작품은 친절한 것일까. 이는 서구 극을 우리의 것으로 구현하기 위함이다. 곧 ‘이야기의 시작’을 지정하는데, 이것 자체가 하나의 사실 그 자체의 현시가 아닌 ‘몰입 가능한 이야기’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사의 전달은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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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혈맥>(김현탁 연출): '리얼을 구성하기'REVIEW/Theater 2013. 5. 29. 02:48
주변부의 삶을 비추다 ▲ 지난 5월 2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프레스리허설 (이하 상동) 이 작품은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것에 균열을 내며 과거를 현재적 관점에서 재접속한다. 독특한 프레임과 다양한 사람들의 절합적 만남이 우연적으로 무대에 배치된다. '다스베이더'를 가리키는 사운드 지표는 현실을 상상계의 어느 지점에 위치시킨다. 이발을 하며 중얼거리는 털보는 객석을 잇는 경계를 지운 연결‧접속 지점을 만드는데, 이 대사들은 옹알거리는 형태로 잘 들리지 않는다. 털보의 일상의 삶에서부터 시작한 극은 등장인물들 곧, 소시민들의 삶을 ‘주체’의 위치로 가로 놓지 않는데, 이는 주변인 자체의 내용에 ‘무게’를 싣지 않게끔 하는 사투리의 사용이나, 무대를 잠깐 스쳐지나가고 마는 식의 무대 선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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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스프링댄스페스티벌] 안애순 안무, <In Gut Out>: '신명'나는 춤판을 향한 대중가요의 전유REVIEW/Dance 2013. 5. 28. 10:20
▲ 안애순 무용단, [제공=강동아트센터] 초록색 레이저의 방출, 이는 무언가 신성한 곳을 가리킨다. 5000년 역사를 ‘침략 당함의 역사’, ‘평화의 성향을 지닌 민족’으로 표상하는 가운데 기운다. ‘진짜 사나이’,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 ‘밤차’,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때 그 사람’ 등의 대중가요가 한국적 정서의 표층을 배회하고 있는 음악들을 배치한다. 이는 시대상이 반영된 대중 풍속도의 유형학을 구축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사실상 이 역사의 시간을 현재로 호출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허무하면서도 실은 어느 정도 읽는 데 실패하는 기호이기도 하다. ‘신’이 든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말하는데 손가락을 어떤 기류처럼 자유롭게 놀리며, 영상에서는 나무뿌리가 생겨나고, 웃으며 음악의 “아름다운 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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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2013] 빠뜨리스 티보, <Fair Play>: '상징과 상상의 간극을 확장하며'REVIEW/Dance 2013. 5. 28. 09:37
▲ 빠뜨리스 티보(Patrice Thibaud), [사진 제공=모다페] 빠뜨리스 티보는 일종의 고깔모자를 가지고 무대 양옆으로 등퇴장하며 이것은 성화봉처럼 들고 이동하는데, 이어 이것을 허공에서 무형의 껌을 주고받는 식의 연기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껌 탁구’를 연출하며 상상적이고 상징적인 영역의 어느 중간에 위치한다. 곧 그것(껌)이 있음을 상상하게 하되, 그 소리의 흉내의 비슷함으로 인해 그것이 껌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마술적 상관물이자 다양한 현실을 상정하는 변용의 도구가 된다. 그의 보조 겸 파트너 필립 레이냑(Philippe Leygnac)은 피아노 위에서 재등장하는데 이어 피아노를 치는 가운데 빠뜨리스 티보는 피아노 속 공간의 공명의 떨림에 실제적인 가격을 당하게 된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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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2013] 정현진 안무, <뒤바뀐 새벽>: '관계의 시차적 생산'REVIEW/Dance 2013. 5. 28. 09:03
▲ 정현진 지난 작품 [사진 제공=모다페] ‘두 사람의 동일자적 모사와 말없는 연대’, 클래식 구문에서의 이들의 간극은 조명이 그린 프레임의 중첩된 기호의 복잡함 속에 절제된 양식으로 빚어진다. 이 조명의 막들이 일순간에 걷어지고 밝은 평면으로 재편됐을 때 음악 역시 일순간에 확산된다. 이 속에서 움직임은 넓어진 평면, 제약 없는 환영적 영토에서 머물게 되는데, 한 명이 정체된 움직임에서 돌연 이탈한다. 형식적 전환에서 실질적 전환이 첫 발생한 순간 음악은 닫히고, 조명도 사그라지고, 끈적거리는 몸의 관계 맺음이 이뤄진다. 클래식이 재출현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맞물림 속에 둘의 생생한 관계 맺음을 엮고 한 명은 순간적으로 계속 그 흐름을 이탈한다. 그럼에도 어떤 모던의 질서는 영속되고 유효하며 ‘이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