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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넝쿨, 이은경 <Hard Duo> : '제4의 벽'을 열어젖혔을 때REVIEW/Dance 2013. 5. 3. 14:40▲ LIG아트홀ㆍ합정 개관기념 공연 댄스 엣지Dance-edge, 밝넝쿨, 이은경 지난 4월 30일 열린 공연 장면 ⓒ 이운식 [사진 제공=LIG아트홀] 밝넝쿨과 이은경은 제4의 벽을 열어젖힌다. 관객에게 자신들의 춤이 현재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모종의 참여를 유도한다. ‘이 춤은 재현되고 있음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사유가 부가되는데 ‘이 춤은 재현된 무엇을 드러낸다’라는 것이다. 패션쇼의 형식을 차용한 몸짓들과 의도적인 춤판의 열어젖힘의 만남은 이제 현실 코드의 전유와 지금 여기의 현시 사이에서 춤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향한다. 단순한 코드의 조합, 곧 패션쇼의 분위기를 달구는 소진되는 반복의 음악, 그리고 그에 부가되는 몸짓은 음악의 지루함, 그리고 몸짓의 소진, 곧 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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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칼집 속에 아버지> : ‘꿈과 현실의 시차’REVIEW/Theater 2013. 4. 29. 09:59‘뽑히지 않은 칼’ ▲ 4월 26일 (작가: 고연옥, 연출: 강량원) 프레스리허설 (이하 11cut 상동) 제목인 '칼집 속에 아버지'는 어떤 은유도 아니다. 이는 ‘아버지의 위치’를 가리킨다는 축자적 해석이 가능함으로 이어진다. 칼을 뽑으면 아버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을 뽑는 행위는 그 칼끝이 외부로 향하는 과정에서, 결코 그것만이 주가 아닌 가운데, 이 ‘칼집 속에 아버지’가 드러난다는 예언의 효과를 함축한다. (작가: 고연옥, 연출: 강량원)에서 갈매(김영민)는 칼을 뽑기를 주저한다. 이는 유약해 보이고 아무런 의지도 없는 존재로 그를 보이게 할 정도다. 그리고 그는 늘 실제로 꿈꾸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곧 칼을 뽑는 행위는 외부의 적에 대한 공포가 아닌, 스스로를 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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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안티고네>: '실재는 무엇인가'REVIEW/Theater 2013. 4. 21. 05:31이 작품은 안티고네의 극인가. 크레온의 극인가. 어디에 극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그것을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인다. 안티고네는 실재(Real)의 지점을 건드리는가. 죽음에서부터 시작되는 테베는 죽음의 징후로 가득하다. 테베 시민들은 전형적인 코러스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지 않는 의견의 분별을 보이는 군중의 모습에 가깝다. 공포를 마주하고 죽음의 징후를 온 몸으로 드러내는 이들은 신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들판에서 헤맨다. 한편으로 신의 뜻을 갈구하는 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것과 거리가 멀어진 저주 받은 산주검이다. 이들은 현실과 신의 경계 영역에서 그 말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영매와도 같은 모습이지만 그것을 듣는 데 실패하는 오로지 그 실패로써 삶을 끝내지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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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봄] <와의와의과의과 같이>: '재현과 표현의 시차'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3. 4. 21. 04:28재현과 표현의 시차 (공동 연출: 이강일, 최승윤, 위성희, 장현준) ⓒ 장현준 세 명은 삼각형 구도를 이뤄 하나·둘·셋의 순번으로 앞 사람을 모방한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는 개성 없는 불특정한 현대인, 가령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고와 디디의 변주로도 볼 수 있을 듯하다. 동작과 단어는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데 순서대로 반복하여 일정한 단위를 또한 이룬다. 문장을 혹은 단어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 문장(단어)이 지닌 속도와 제한된 시간의 제약 내지 규칙에 좌우된다. 이는 재현이 얼마나 원본(선후 관계의 앞)을 똑같이 재현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그 만큼의 발생된 시간과 어렴풋한 형태에 대한 강박적 집착에 의해 이 발화가 추동되고 있음을, 나아가 그 발화되고 있음에 더 크게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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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석 <무대 공포>: 전도된 실재-환영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3. 4. 21. 04:13를 보는 균열의 지점 ⓒ 서현석 는 극장은 블랙박스(암흑 공간)라는 정의를 축자적으로 구현해 내는 데서 출발한다. 곧 오롯한 이 어둠에 빛이 투영되어 죽음에서 삶을 탄생시키며, 무에서 유를 일시적으로 창출하는 마법술의 공간으로 기능을 하는, 작위적이고 그래서 특별한, 어떤 장치적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지점에 맞닿은 채로. 이는 다시 극장이 야외가 아닌 실내로 들어오고 조명(빛)의 발명과 발전에 맞춰 ‘현재의 극장’이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음을 상기시키며 ‘극장 발생’의 시원적 지점을 메타적으로 성찰하게끔 한다. 가령 프로젝션을 통해 몇 개의 흩날리는 실크 스크린을 투과하는 문장들을 환영 자체로 드러내는 장면 같은 경우는 장치의 개념과 이 장치를 가능케 하는 어둠으로서 무대를 정의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 어둠..